지금 시대가 원경왕후를 불러낸 이유
『원경』 서자영 작가 서면 인터뷰
단지 투기가 심한 여인, 남편을 왕으로 만들고 배신당한 여인, 이 정도로 치부하기엔 너무 대단한 여자라서 이제라도 주목받게 된 게 개인적으로는 무척 기뻐요. (2024.02.23)
예로부터 역사와 정치는 남성들의 무대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워진 여성서사를 재현해 내는 콘텐츠가 늘어나며, 독자들에게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태조를 도와 조선의 건국을 하고, 태종을 왕위에 올렸으며, 세종을 낳아 기른 사람. 원경왕후이다. 그녀는 조선의 기틀을 다지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했지만, 여러 매체에서 조선 건국기를 다룰 때 항상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소설 『원경』은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고자 고군분투하는 원경왕후의 일대기를 다룬 최초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원경』을 집필한 서자영 작가를 만나 보았다.
『원경』은 태조 이성계의 며느리이자 태종 이방원의 아내 그리고 세종대왕의 어머니 원경왕후의 삶을 조명한 소설입니다. 2024년에 만나는 독자들에게 원경왕후는 어떤 사람인지 소개해주실 수 있는지요?
조선의 문을 연 고려의 여인, 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여말선초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세 남자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여인이죠. 원경왕후가 없었다면 당장 세종대왕이 없었을 거고 그럼 한글도 없었을 테니,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원경』은 태종과 원경왕후의 부부관계가 매력적인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실록을 살펴보더라도, 태종과 원경왕후는 자주 싸웠다는 기록과 함께 가장 많은 자녀를 낳은 기록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서로 너무 뜨겁게 사랑했기 때문에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정치적인 동지였다면 이미 장성한 아들이 넷이나 있어 중전 자리가 확고한데 굳이 남녀로 엉켜 싸울 이유가 없었겠죠. 그런데 둘은 40대 후반이 될 때까지 서로 싸우고 또 끊임없이 자식을 낳거든요. 죽을 때까지 두 사람은 여전히 뜨거운 연인이었던 거죠.
『원경』 속 태종과 원경왕후의 이미지는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 사뭇 다르게 표현됩니다. 특히 태종의 경우 피의 군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작품에서는 유약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기존 이미지와는 다르게 묘사된 것 같습니다. 이런 캐릭터 설정을 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제목이 『원경』이다 보니, 원경왕후를 띄우려고 이방원을 유약하게 설정한 거 아니냐는 오해를 하실 거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방원이란 인물을 구성할 때, 실록에 근거하여 캐릭터를 구성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리가 흔히 아는 태종 이방원의 이미지 상당수는 왕자의 난 기록에 근거합니다. 왕자의 난 기록에 이방원은 군사를 많이 보유했으나 정도전에게 핍박당해 지방을 전전한 비운의 왕자, 이성계를 가장 많이 도운 왕자로 묘사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사실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 보면 이방원은 단 한 번도 군사를 보유하는 절제사를 맡은 적이 없어요. 당연히 지방에서 관직을 맡았다는 내용도 없고요. 사병의 숫자 또한 종친들 중 가장 적었을 것으로 유추됩니다. 즉 실록을 교차검증을 해보면 명백하게 왕자의 난 기록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기록됐을까요? 태종실록을 편찬한 사람이 왕자의 난을 기획한 하륜이기 때문이죠. 왕자의 난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이방원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그날의 기록을 의도적으로 하륜이 왜곡했을 거라는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하죠. 몇 백 년 동안 조선왕조실록 전체가 데이터베이스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륜의 의도대로 사람들은 이방원을 왕자의 난에 기록된 이방원의 모습으로 인식했던 거죠. 그런데 조선왕조실록 전체에서 이방원의 기록을 검토해 보면, 왕자의 난 이방원과는 무척 다른 이방원이 나옵니다. 몸이 약해서 이성계의 걱정을 산 아들이고, 문인이며, 지적이지만 잘 우는 감정적인 사람. 아들 바보에 형들을 너무 좋아하는 동생이 실록에서 표현되는 이방원의 모습이죠. 그래서 저는 이방원을 캐릭터 라이징 할 때 왕자의 난 그날 하루의 기록은 의도적으로 배제했습니다. 대신 실록에 기록된 다른 이방원의 모습들을 조합했죠.
오히려 왕자의 난에서 제가 주목한 건 이방원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어떻게 이성계의 최측근들과 일가친척들이 모두 이방원의 편을 들었나, 하는 겁니다. 절대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 수 없다는 정종을 멀리 보내면서까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이방원을 지지하죠. 사실 아버지가 위대할수록 아버지의 가신들과 아들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요. 가신들은 아들을 성에 차하지 않고, 아들은 아버지의 가신들을 부담스러워하거든요. 역사적으로 현대까지도 되풀이되는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성계의 가신들은 모두 그대로 이방원의 가신들이 됩니다. 심지어 이성계의 등에 칼을 꽂으면서까지 이방원의 가신들이 되죠. 과연 그 이유가 무얼까를 고민했고 저는 그 답을 이성계 가문의 가족관계에서 찾았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신빈 강씨에 비해서 다소 주목받지 못했던 이방원의 생모 신의왕후 한씨를 주목하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군왕이 되기 이전의 이방원, 누군가의 아들이자 동생, 조카인 이방원은 어땠을까, 에 더 집중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무엇보다 저는 여러 기록들을 종합했을 때 이방원이 제 생각보다 무척 다정하고 귀여운 인물이어서 반했거든요. 독자분들도 이방원의 다른 모습을 사랑스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근 역사 속에서 지워지거나, 왜곡된 여성서사를 복원하는 콘텐츠들이 새로운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원경왕후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 「원경」이 제작 중일 정도로, 원경왕후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원경왕후의 삶을 복원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원경왕후의 삶이 복원되는 게 오히려 너무 뒤늦은 거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이 책을 처음 쓴 게 오 년 전인데 그때 제가 그랬거든요. 신사임당은 오만 원권이 나왔는데 원경왕후의 위대함을 제대로 조명하는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 게 억울하다고. 태종이 직접 ‘왕후가 나라를 위해 한 일이 태조 왕건의 부인 유씨보다 더 크다’라고 할 정도인데 우리가 지금까지 원경왕후에 대해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지 투기가 심한 여인, 남편을 왕으로 만들고 배신당한 여인, 이 정도로 치부하기엔 너무 대단한 여자라서 이제라도 주목받게 된 게 개인적으로는 무척 기뻐요.
『원경』 속에서 원경왕후를 보필하는 강상인이나, 김행아 같은 등장인물들도 실존인물로 알고 있습니다. 기록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주요 캐릭터로 『원경』에 등장하는데요. 짧은 기록 속 인물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가님만의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모든 자료는 정사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 정사에 일관성이 없거나 모순점이 있거나 의외성이 발견되면 상상력이 개입될 여지가 생기는 거죠. 저는 기록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걸 좋아해요.
예를 들어 강상인은 ‘강상인의 옥’이라는 사건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제가 강상인을 주목하게 된 이유는 그가 이 사건을 통해 무척 심한 고문을 받은 게 신기해서입니다. 태종은 의외로 정적에게 너그러운 꽤나 인도적인(?) 왕이었습니다. 일단 태종은 삼대를 멸한 일조차 거의 없어요. 그래서 정도전, 정몽주의 후손들조차 훗날 모두 출사하여 관직을 얻습니다. 정적에게 그럴 정도니 가신들에겐 더 너그러워서 그들을 끝까지 챙겨줄 뿐 아니라 설혹 그들이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탓하기보단 용서해 주는 경우가 더 많았어요. 무엇보다 죄인에게 벌을 주더라도 고문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태종은 생각보다 꽤 너그러운(?) 왕이에요.
강상인은 태종의 최측근 가신이었어요. 기록을 보면 원경왕후와의 혼인 즈음부터 태종을 모셨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 정도 최측근에게 그리 분명치도 않은 죄명으로 끔찍한 고문을 가한다? 무엇보다 ‘강상인 옥’의 목적은 세종의 장인인 심온을 제거하기 위함인데 그를 위해 자신의 최측근인 강상인을 이렇게 잔인하게 이용한다는 건 정말 태종답지 않은 일이에요. 태종이 강상인처럼 다룬 인물은 강상인뿐입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정치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어떤 사감이 들어간 건 아닐까? 어떤 사감일까? 그런 궁금증에서 시작해 만든 인물이에요.
효빈 김씨로 불리는 행아도 그래요. 최초로 태종의 서장자를 낳은 여인, 거기다 원경왕후의 몸종이었던 여인이죠. 제 아내의 몸종을 첫 번째 측실로 삼을 정도면 태종이 대단한 사랑을 했나, 싶은데 자식은 아들 하나뿐이고 딱히 태종이 아꼈다는 기록은 없어요. 그런데 서자들에게 냉정했던 태종이 유일하게 서장자 만은 챙깁니다. 원경왕후가 대단한 투기를 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서장자가 효령대군과 충녕대군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거든요. 원경왕후가 효빈 김씨를 투기하고 모함해서 쫓아낼 정도로 싫어했는데 그녀의 아들로 하여금 제 아들들을 가르치도록 했다는 게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여기엔 또 어떤 사연이 있을까 상상하다가 지금의 행아가 나왔습니다.
최근 <고려거란전쟁>부터 <서울의 봄>, <노량>까지 역사 소재 콘텐츠의 제작과 소비 모두 활성화되는 분위기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계속 지속될지, 또 어떤 양상으로 변해갈지 작가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지속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상상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많이들 그러죠. 거기다 우리나라 역사는 말도 안 되게 극적인 사건들이 많은데, 아직 조명되지 못한 일도 많거든요. 역사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니까 더 많은 역사적 순간들이 소환되리라 예상합니다.
『별안간 아씨』나 『사주팔자』와 같은 사극 로맨스부터 이번 작품 『원경』을 통해 정치극까지 영역을 확장하셨습니다. 작가님의 다음 시도가 기대됩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준비하고 계신 작품이 있으시다면 간략히 소개해주세요.
현재 저는 수양대군과 김종서와 관련된 대체역사 소설을 집필 중입니다. 만약 수양대군의 손자와 김종서의 손자가 뒤바뀌었다면 어떨까, 라는 상상에 근간을 둔 작품입니다. 올 상반기 안에 다시 만나 뵐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 중이니 기다려주세요.
*서자영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특수교육학을 전공했다. 뒤늦게 작가적 재능을 발견하고 교사에서 드라마 작가로 전환했다. 처음 쓴 드라마 대본이 KBS 미니시리즈 공모전 최종심에 올랐고, 한국콘텐츠진흥원 스토리 창작역량강화 지원사업 대상 작가로도 선정되었다. 첫 장편소설 『별안간 아씨』와 궁합 로맨스 『사주팔자』로 메이저 제작사와 영상화 판권 계약을 맺으면서 주목받았다. 뛰어난 디테일과 감각을 겸비한 작가의 역량이 소설로도 발현되면서 다재다능한 전천후 작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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