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어떤 것이 좋은 소비인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80회) 『물욕의 세계』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2024.02.15)
불현듯(오은): 오늘의 특별 게스트는 마정현 번역가님입니다. 안녕하세요, 인사 말씀 부탁드려요.
마정현: 안녕하세요. 마정현이라고 합니다.
불현듯(오은): 오늘 함께 이야기 나눌 책은 현암사에서 출간된, 누누 칼러 작가가 쓴 『물욕의 세계』입니다.
누누 칼러 저 / 마정현 역 | 현암사
불현듯(오은): 먼저 이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번역가님, 『물욕의 세계』 어떤 책인가요?
마정현: 『물욕의 세계』는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물욕’ 그리고 ‘소비’에 물음을 던지는 소비 비판서예요. 저자는 누누 칼러라는 오스트리아 사람인데요. 한때는 일간지 기자였다가 그 후 약 6년 동안 그린피스에서 활동가로 일한 분이에요. 책에서 저자는 소비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심리와 소비를 부추기는 기업, 그리고 특히 견고한 마케팅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물욕의 세계』는 그러면서 좋은 소비는 어떤 것인지, 나쁜 소비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소비는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계속 묻고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불현듯(오은): 누누 칼러 작가님은 그전에 스스로를 맥시멀리스트라고 소개할 정도로 정말 소비를 많이 하셨던 분이고, 충동적 소비가 많으셨던 분으로 알고 있어요.
캘리: 책에도 보니까 굉장한 스트레스나 직업적인 압박감 때문에 그것들을 쇼핑으로 풀었다는 내용이 나오죠. 필요한 것도 아닌데 사는 행위에서 어떤 만족감을 느끼는 장면들이 곳곳에 나오더라고요.
불현듯(오은): 직장인들이 출근하기 싫으면 주말에 회사로 물건을 주문한대요. 그거라도 받으러 가는 거잖아요. 뭔가를 소비해서 나의 것으로 만든다는 소유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양상 같거든요. 그와 비슷한 내용도 『물욕의 세계』에서 만나볼 수 있고요.
번역가님께서 말씀해 주셨지만 『물욕의 세계』는 물욕보다는 소비를 겨누는 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소비자의 일상에서 출발해 궁극적으로는 이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커다란 책 같기도 했어요. 찾아보니까 이 책의 원제가 ‘나를 사줘요!(kauf mich!)’더라고요. 어떻게 지금의 제목이 된 걸까요?
마정현: 재미있게도 이 텍스트 자체에는 ‘물욕’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아요. 이 제목은 출판사에서 정한 건데요. 책의 주제를 다 아우르는 아주 적합한 단어를 골라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제목입니다.
캘리: 사실 물욕이라는 단어에 뜨끔한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저도 그렇지만 주변에도 보면 사들이는 것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거든요. 특히 요즘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정확하게 겨냥되는 그런 책이 아닌가 생각해요.
불현듯(오은): 물욕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봤어요. ‘재물을 탐내는 마음’인데요. 첫 번째 예문이 글쎄 ‘물욕을 채우다’였거든요. 이 예문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것은요, 채우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예문이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번역가님은 스스로 자신에게 물욕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마정현: 당연히 있죠. 인간이니까요. 물욕이라고는 하지만요. 사실 그 욕심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잖아요. 대부분 우리는 의지와 관계없이 소비 충동을 자극하는 유혹에 24시간 노출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요즘은 영상 이미지 시대잖아요. 드라마를 볼 때 우리가 물건을 사려고 보는 건 아닌데요. TV 속에 등장하는 PPL을 통해서 어떤 물건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기게 돼요. 갖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나는 거예요. 저 예쁜 가방, 저 예쁜 신발, 저 멋진 차 등 해서 물욕이 탄생을 하는 거죠.
캘리: 책을 읽으면서 정말로 가슴이 아팠던 게, 섬유 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기후에 나쁜 영향을 주는 두 번째 요인이라는 점이었어요. 청바지 한 벌 만드는 데 그렇게나 많은 물이 들어간다고 하잖아요. 그런 걸 생각하면 옷 이대로 괜찮나, 생각하게 되죠. 진짜 요즘은 옷이 안 튼튼해요.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정말 한 해를 입으면 다음 해에는 그 옷을 입을 수가 없게 되는 경우도 너무 많아서요. 섬유 산업에 정말 큰 문제가 있다 생각하게 됐어요.
불현듯(오은): 누누 칼러 작가님께서는 h&m 브랜드를 특히 많이 언급하시면서 패스트패션이 어떻게 지구 자원을 낭비해 가면서 오염시키고 환경을 파괴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잖아요. 흔히 스파(SPA) 브랜드라고 하는 것들인데요. 가격이 저렴하니까 비교적 쉽게 구입해서 입을 수 있는 옷들이 그 브랜드에는 많아요. 하지만 그렇게 접근한 옷들이 생각해 보면 내구성도 떨어지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이 별로 없더라고요.
캘리: 이 이야기도도 흥미로웠어요. 책의 앞부분에 ‘모겐슨 가족’ 얘기가 나오잖아요. 미국 어떤 마을에서 실험을 한 거죠. 배우들을 섭외해서 이른바 ‘정상 가족’을 한 집에 살게 하고요. 이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입는 것들을 마을 주변 사람들한테 광고했더니 실제로 그게 많이 팔렸다고 해요. 그러니까 인간에게 군집 본능이라는 게 있고, 그래서 남들이 좋다고 얘기하는 것이나 남들이 갖고 있는 것들은 왠지 나도 갖고 있어야 될 것 같은 마음을 품게 되는 거예요. 그것이 소비로 이어진다라는 부분도 되게 중요하게 들렸어요.
불현듯(오은): 누누 칼러가 그것을 가리켜 “우리가 사는 것은 물건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어쩌면 소속감일 수도 있다”고도 했죠. 나도 이 집단에 포함되어 있어, 다른 사람과 별반 다르게 살고 있지 않아, 하는 마음을 재확인하기 위해서 소비를 하고 있다고요. 그 부분도 굉장히 명쾌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캘리: 특히 저는 그러한 불안을 얘기할 때 여성을 향해 불안을 조장하는 뷰티 산업 얘기를 하고 싶어요. 여성을 향해서는 뷰티 산업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촘촘하게 불안을 조장하잖아요. 얼굴은 이래야 되고, 몸매는 이래야 되고, 그렇지 않으면 너는 관리를 못하고 있는 것이고, 여성으로서 매력이 없는 것이라고 불안을 조장하기 때문에요. 아무리 한 개인이 냉정하게 자신의 소비에 브레이크를 걸어보려고 해도 잘 안 되는 요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압박이 너무 크니까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여성을 향해 불안을 조장하잖아요. 이것은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소비자로서 산업 자체에 문제를 제기를 해야 되는 부분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도 책을 읽으면서 하게 되더라고요.
마정현: 누누 칼러가 바로 그 부분에서 광고 마케팅을 비판한 예가 있어요. 구동독 시절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를 책에 소개했잖아요. 저자가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요. 보통 사람의 몸에는 다 셀룰라이트가 있어요. 구동독 시절에는 그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하는데요. 그러다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나서 서독의 안티 셀룰라이트 크림 광고가 들어온 거죠. 그때부터 구동독 여성들이 자기 몸의 셀룰라이트를 다 약점으로 보게 되어서 그 크림을 구입했다는 일화가 등장해요. 광고가 얼마나 우리 몸을, 특히 여성의 몸을 이용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봐요.
누누 칼러는 의식적인 소비도 있지만 의식적인 비소비도 중요하다고 계속 강조하거든요. 그러면서 항상 이렇게 질문을 해요. 우리가 조금 더 비싼 유기농 제품을 먹을 수 있고, 또 자연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만든 제품들을 살 수 있는 것이 어떻게 보면 돈이 있는, 여유가 있는 특권자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닌가, 라고요. 그것도 엘리트주의가 아닌가 비판하는 지점이 있거든요.
캘리: 그 얘기까지 하잖아요. 팜유를 선택하지 않으려고 했을 때, 그래서 가령 코코넛 오일을 대체품으로 사용한다면 그것 역시 다른 식의 파국이 된다고요. 왜냐하면 팜유, 기름 야자에서 코코넛으로 옮겨가는 것이기 때문에요. 사실 소비자 한 명이 진짜 완벽하게 그 굴레에서 벗어난 선택을 한다는 건 진짜 불가능한 일인 것 같아요.
마정현: 책에서 떠오르는 한 저널리스트의 말이 생각나요. 그러니까 우리가 무엇을 사야 하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은 왜 그렇게 생산해도 좋은가, 라고요. 이 부분이 참 마음에 와 닿았는데요. 결국 본질적인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건 역시 기업인과 정치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분들이 이런 문제를 많이 고민하고 책임지는 행동을 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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