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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쓰홍 “좌절과 실패의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다”

『귀신들의 땅』 천쓰홍 작가 서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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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실패자의 이야기가 더 큰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주인공의 귀향은 빛나는 금의환향이 아니라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채로 돌아와 과거의 유혼들을 마주하는 것이었습니다. (2024.02.05)

ⓒKevin Chen


“줄곧 ‘귀신’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귀문(鬼門)이 열리고 귀신들이 출몰하는 대만의 음력 7월 ‘중원절’, 천 씨 집안의 막내아들 톈홍이 고향 용징에 돌아온다. 문명이 있는 대도시와 달리, 황량함만이 남은 마을 ‘용징’. 그곳에는 사연을 품고 죽은 귀신들과 흉흉한 소문들, 사람들의 비밀이 떠돈다. 이 귀기어린 공간을 배경으로 한 소설 『귀신들의 땅』은 근현대사의 폭력을 통과하는 천 씨 일가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사람과 귀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소설가 천쓰홍은 줄곧 가족을 소재로 삼았지만, 고향의 이야기를 쓴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그 작업은 서른세 살에 시작해 10년이 지난 마흔 세 살에 끝났다. 용징에서 한 농가의 아홉 번째 아들로 태어나 고향을 떠난 그에게 고향은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였고, 수많은 귀신들의 입을 빌려 이야기를 쓴 끝에 용징의 기억과 마주할 수 있었다. 대만 최고의 양대 문학상인 금장상 문학도서부문상과 금전상 연도백만대상을 수상하며 대만의 젊은 거장으로 떠오른 천쓰홍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사라지지 않은 과거를 직시하는 일

『귀신들의 땅』 한국어판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소설을 쓴 뒤 작가님의 근황과, 한국어판을 받아보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저의 거주지인 독일 베를린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에 『귀신들의 땅』 한국어판을 받았습니다. 그날 저는 타이베이에서 팟캐스트 녹화를 하고 있었는데 출판사 편집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녹화 현장으로 달려와 제게 『귀신들의 땅』 한국어판 두 권을 건네주고 갔습니다. 기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분명히 제 책인데 한 글자도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호기심 가득한 고양이처럼 마구 책장을 넘겨봤습니다. 마음속으로 표지가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책이 한국 서점의 매대에 진열되어 있으면 얼른 집어 들고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요?

몇 시간 뒤에 저는 타오위안(桃園) 공항 게이트 앞에서 독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자신을 상대로 내기를 했습니다. 1분 내에 지상근무 요원들이 보딩 시작 안내방송을 한다면 핸드폰으로 『귀신들의 땅』 한국어판의 사진을 찍어서 서울에 있는 어떤 사람에게 보내기로 한 것이지요. 그에게 “이봐, 내 소설이 한국에서 출판됐어.”라고 말할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20년 넘게 만나지 못했습니다. 청춘 시기에 짧게 찾아왔던 여름날의 들뜬 연정이었지요. 당시 이별을 고하면서 그가 말했습니다. “한국에 오게 되면 날 찾아줘, 알았지?” 저는 한 번도 한국에 그를 만나러 가지 않았습니다. 20년이 지나 저의 책이 저보다 먼저 한국에 가게 되었네요.

지금은 독일에서 이 답변서를 쓰고 있는데 그가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서울에서 제 소설을 사서 방금 다 읽었다고 하더군요.

그는 울었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는 또 자기 딸에게도 이 소설을 읽어보라고 권하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작가와 아는 사이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작가의 말에 “줄곧 ‘귀신’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밝히신 것처럼, 소설은 귀신이 떠도는 땅, 용징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어떻게 시작된 소설인가요?

초등학교 다닐 때 반 친구들 모두가 돌아가면서 교단에 올라가 자기 가정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저는 누나가 일곱이고 형이 하나 있으며 나는 아홉째 막내라고 했지요. 한순간에 반 전체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제가 무슨 교실 안으로 뛰어 들어온 외계인이나 무슨 괴물이라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알고 보니 저희 집 가족구성이 꽤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집들은 아이가 한두 명밖에 되지 않았던 겁니다.

성인이 되어 글을 쓰면서 줄곧 제 가정을 원본으로 삼긴 했지만 고향인 용징에 관한 소설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제 가족은 구성원이 정말 많았고, 드라마틱한 사건도 너무 많았습니다. 아주 요란하고 시끄러웠지요. 저는 서른세 살이 되던 해부터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만 아직 풋내기라서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탓인지 몇만 자 쓰다가 중단하고 한쪽으로 치워버렸습니다. 그러다가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면서, 감히 성숙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훨씬 더 많고 다양한 아픔을 겪고 나서야 다시 이 소설로 돌아오게 되었지요. 이번에는 모든 귀신들이 전부 돌아와서 절대로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마흔세 살이 되던 해애 마침내 이 귀신들의 땅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귀신들의 그림자들이 떠도는 중원절* 용징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습니다. 작가님은 “줄곧 용징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오히려 끊임없이 용징을 쓰고 있었다”고 하셨어요. 고향 용징을 소설로 쓰는 것은 어떤 일이었나요? 

(*타이완에서는 음력 7월 15일을 중원절로 정하고
귀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절을 올려 건강과 사업의 번창을 기원한다)

저는 고향에 관한 이 소설을 독일 베를린에서 완성했습니다. 제가 아직 용징에 있었다면 절대로 써내지 못했을 겁니다. 용징은 전형적인 타이완 중부의 소도시로, 상당히 보수적이고 소박하며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는 곳입니다. 이런 시골 공간은 절대로 저의 생존을 위한 기대를 만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제게는 박물관이 필요하고 미술관과 영화관, 대형 서점, 국제 영화제, 극장, 음악회가 필요했는데 용징에는 이런 것들이 없었습니다. 물론 제 성적 취향이 주된 원인이었지요. 저는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시골의 대인관계 속에서는 자유로운 공간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용징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쓴다는 것은 사실 음혼(陰魂)들이 사라지지 않는 과거를 직시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혼신의 힘을 다해 고향을 떠나 타이베이로 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일로 이주했지만 고향은 계속 저를 잡아당겼습니다. 아무리 도망쳐도 언젠가는 다시 돌아와야 했습니다. 이 소설을 쓴 건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문학 속에서 귀향하여 과거의 유혼(幽魂)들을 똑바로 대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리(距離)가 이기(利器)였습니다. 고향과 바다를 사이에 둔 대륙에서 이 작품을 쓰는 동안 아무런 구속도 없었으니까요.

소설은 한 사람의 초점화자를 중심으로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 각 장마다 인물 각각의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천씨 가족은 물론, T의 어머니, 심지어 귀신까지 목소리를 부여받습니다. 이런 서술 방식을 택하신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저는 모든 소설가들이 서사의 각도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수많은 몸부림을 경험한다고 믿습니다. 1인칭 서사로 해야 할지 아니면 3인칭으로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게 되지요. 『귀신들의 땅』에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합니다. 사람도 있고 귀신도 있지요. 저는 줄곧 편안한 서사의 각도를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가족들과 한데 둘러 앉아 식사를 하면서 화제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로 모였고, 어머니 생전의 한 가지 일에 관해 얘기하게 되었습니다. 가족 모두가 각기 다른 기억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지요. 어떤 누나가 당시 어머니의 어떤 행동을 얘기하자 또 다른 누나가 그런 일은 절대로 없었다며 재빨리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이어가다가 마침내 말다툼 직전까지 이르렀지요. 저는 누나들의 말다툼을 조용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이안(李安) 감독의 영화 <음식남녀>를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타이완 가족들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는 종종 이처럼 애증이 교차합니다.(한국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저는 『귀신들의 땅』의 서사 각도를 찾았습니다. 저는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배역에 각자의 편을 할애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이든 귀신이든 간에 모든 배역에게 자신들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야 했는데도 말입니다. 물론 저는 이 소설이 끊임없이 시각과 서사의 각도를 바꾸고 있어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독자들의 인내심을 믿습니다. 저에게 약간의 인내심만 허락해 주신다면 책 속의 수수께끼들을 전부 연결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독자들이 이 점을 발견했을지 모르겠군요. 이 책 속에는 사람과 귀신의 서술이 구별되어 있습니다. 3인칭 서술은 전부 사람들이 말이고 귀신들의 배역이 등장할 때면 1인칭 서사 각도로 바뀝니다.

‘고향을 떠난 자가 고향에 돌아온다’는 플롯은 근대 및 산업화 시기 한국소설에서도 자주 발견되는 주제라 흥미로웠습니다. 그중 많은 한국소설들은 낙후된 고향을 바라보는 남성 지식인 중심의 시각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작가님은 톈홍을 중심으로 하는 ‘고향에 돌아오는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보고 싶으셨나요? 

천쓰홍이 고향을 떠난 것은 사실 실패와 모반에 따른 도주였습니다. 남들은 고향을 떠나면 큰돈을 벌거나 벼락 출세를 하여 피폐해진 고향으로 돌아와 집을 짓고 자본주의 세계에서의 큰 승리를 선포하곤 합니다. 소설에 나오는 왕씨 집안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귀향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애당초 갈 곳이 없기 때문이지요. 천쓰홍은 독일에서 감옥에 갇혔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한 푼의 가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내려다보는 각도에서 고향을 바라볼 수 있는 어떤 자격도 주어지지 않았지요.

제게는 실패자의 이야기가 더 큰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주인공의 귀향은 빛나는 금의환향이 아니라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채로 돌아와 과거의 유혼들을 마주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처럼 망가진 사람들에게 더 큰 관심을 갖습니다. 저 자신도 망가진 작가이거든요. 영광스러운 귀향은 너무 재미가 없습니다. 망가진 배역, 온몸이 상처인 인물이 고향으로 돌아와야 유감의 매력이 가득할 수 있지요.

저는 용징을 배경으로 『귀신들의 땅』을 써서 여러 나라에서 출판했고 타이완에서 큰 문학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용징 전체를 통틀어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아마 열 명도 넘지 않을 겁니다.(그 중 세 명은 제 누나나 친척일 겁니다) 저 자신을 평가 절하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낙후된 고향을 관망할’ 여유가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의 고향은 타이완의 부호들을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용징을 떠나 중국 대륙에 가서 컵라면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자본시장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성공을 거둔 것이지요. 용징으로 돌아온 그들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건물을 지었습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선명하고 구체적인 대형 물체가 있어야 제대로 부를 과시할 수 있습니다. 제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겨우 썩 잘 팔리지 않는 책을 몇 권 썼을 뿐이지요. 책은 빛나는 물체는 아닙니다. 이는 제가 오래전에 예기했던 좌절이자 실패입니다.

하지만 저는 좌절이나 실패에 개의치 않습니다. 실패는 제게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체험하게 해주거든요.

저는 계속 소설을 쓸 겁니다. 좌절과 실패의 이야기를 계속 써 내려갈 것입니다.


ⓒKevin Chen


누구나 실컷 울 필요가 있다

소설의 시간이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차적 구성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인물들의 기억을 풀어내는데요. 실제로 어떻게 써 내려가셨는지 궁금합니다.

제 소설은 줄곧 고무지우개를 들고 과거와 현재의 경계선을 희미하게 지워나가는 작업이었습니다.

방금 충전기 선을 찾다가 서랍에서 아이폰 선(신제품인지 구제품인지는 모르겠습니다)과 C타입 선, USB선, 기타 각종 전자제품 선이 마구 뒤섞여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애써 긴 시간을 들여 찾았지만 제가 찾고 있는 선은 끝내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선들은 시간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와 지금 이 순간, 그리고 미래가 한데 뒤엉켜 있지요. 저는 『귀신들의 땅』을 쓰면서 독자들에게 도약할 능력에 대한 도전을 제공했습니다. 서로 다른 시간 사이를 오가는 도전이지요. 아마도 저의 이러한 서사법은 독자들을 몹시 피곤하게 할 겁니다. 그래서 제 독자들은 아주 적습니다. 계속 이렇게 쓰면 독자들이 아주 싫어하는 작가가 되겠지요.

천씨 가문의 인물들은 폭력과 억압의 근현대사를 통과하며, 서로에게 폭력을 저지르기도 하는데요. 소설을 읽다 보면, 인물들의 비밀을 통해 누구도 이 억압의 세계에서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려운 일임이 드러납니다. 작가님은 폭력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고 싶으셨나요? 

『귀신들의 땅』은 전후에서 현재에 이르는 긴 시간대의 타이완 농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대의 압력은 변해 왔지만 시골은 여전히 미신으로 가득한 가부장 사회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부장 사회를 묘사하다 보면 정말로 폭력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여성과 성소수자들에 대한 가부장제의 압력은 대부분 폭력을 수단으로 하지요. 여기에는 신체에 대한 폭력과 정신적 폭력이 다 포함됩니다. 폭력은 권력을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전개하는 방법입니다. 폭력의 행사는 상대에게 신체적 자유를 갖지 못하게 하는 행위입니다. 상대의 신체를 소유하고 마음대로 통제하는 것이지요. 물론 권위주의 시대에는 폭력이 인민들의 반항과 도발을 통제하는 국가적 수단이었습니다. 국가나 정부와 뜻을 달리하는 목소리는 전부 철저하게 소멸해야만 정부는 신속하게 표면적으로 조화를 실현하고 권력자가 바라는 평화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권력자의 평화가 타자에게는 참극일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문학에서 독자에게 열독을 강요하는 폭력은 사실 폭력을 추방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방법을 강구하여 폭력의 본질을 제거해야 반격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작가님에게 기억이란 후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소설은 여러 가지 후각의 묘사로 가득합니다. 청초고 냄새, 양타오탕과 같은 음식 냄새, 벌꿀사탕 냄새 등 작가님의 소설에서 후각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며칠 전에 매일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다는 어느 유튜버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동영상을 찍지 않으면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예컨대 서울에 가서 매운 라면을 한 그릇 먹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영상을 중거물로 찍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뭘 먹었는지조차 생각나지 않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저는 자신은 어떤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도 영상에 근거하여 기억을 검색해야 할까요?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에 관해 묘사하면서 미각을 통해 기억을 소환해 냅니다. 이런 식으로 유년의 기억이 영원한 거작으로 탄생하게 되었지요. 저는 그 유튜버의 말을 생각하면서 이러한 기억법을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촬영 기구를 전부 내려놓고 감각기관을 최대한 개방한 다음,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으면서 진지하게 눈앞에 놓인 그 라면을 먹는 겁니다. 그러면 미각과 후각이 우리의 뇌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그 라면의 맛을 기억하는데, 굳이 영상이라는 증거물이 필요치 않게 되지 않을까요? 어쩌면 수백만 명이 일일이 확인해 줘야 진실이 존재한다는 말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말은 노인들이나 하겠지요. 제가 정말로 지나간 시대의 사람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하지만 저는 지나간 세월에 개의치 않습니다. 저는 항상 지나간 시간을 되새기고 있고, 앞서가는 시대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편이지요. 그래도 정말 좋습니다. 자신을 좀 더 천천히 지나가게 하고 시간을 붙잡아두는 겁니다. 천천히 책을 읽으면서 길을 가다가 영화관에서 네 시간짜리 유럽 영화를 한 편 보면 되니까요.

양타오탕이나 청초고는 전부 지나간 시대의 맛과 냄새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냄새를 맡으면 어김없이 유년의 기억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후각은 시간의 마술입니다. 확실히 냄새를 맡으면 과거의 자신이 되돌아옵니다.

톈홍과 그의 연인 T는 베를린에서 세상 어디에도 ‘집이 없는 기분(heimatlos)’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 감각은 소설의 등장인물 모두가 공유하는 감각 같기도 합니다. 현재 고향을 떠나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으신 작가님은 진정한 고향을 잃어버린 듯한 이 감정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 제가 받은 교육에는 국민당이 ‘집을 잃은’ 이야기가 가득했습니다. 당권자들은 강제로 중국에서 쫓겨나서 타이완에 와서는, 패전자의 신분으로 중국에 가본 적도 없는 우리 타이완의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집 잃은 설움과 눈물을 함께 받아들이도록 억압했습니다.

그래서 『귀신들의 땅』을 쓰면서 걱정했지요. 저의 ‘집 잃은’ 사람의 서사가 독자들로부터 공명을 얻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저의 용징과 저의 유년, 저의 도망이 도대체 이 세상과 어떤 관계로 얽힐 수 있을까요?

생각을 너무 많이 하면 글을 써 내려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문제들은 상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우선 쓴 다음에 생각하기로 한 것이지요.

책이 출판되자 제 걱정이 과도했다는 게 증명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쓴 ‘집 잃은’ 서사의 뜻은 역사적 사실과 잘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어디에 있든 진정한 안정을 찾기 어렵습니다. 몸과 마음이 이리저리 떠돌아야 살아 있다는 느낌이 더 분명해지지요. 귀신처럼 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귀신처럼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진지한 자세로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사람도 사람이 아니고 귀신도 귀신이 아닌, 영원히 ‘집 잃은’ 상태이지만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합니다. 모든 것이 연기이고 모든 것이 허점인 것입니다.

소설에는 인상적인 ‘울음’의 장면들이 있습니다. 특히 발트해의 작은 마을 라뵈에서 톈홍이 우는 큰 울음은 용징과 타이페이, 베를린 어디에서도 억압과 폭력을 감내하던 톈홍이 자신을 드러내는 울음 같았습니다. “줄곧 ‘울음’에 관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 장면을 쓸 때 어떤 기분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울기를 잘하는 귀신입니다. 최근에는 비행기 안에서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를 보면서 눈에 봄비가 내렸습니다. 마침 승무원들이 기내식을 제공하던 참이라 제가 울고 있는 것을 보고는 놀란 눈으로 “닭고기 드시겠어요, 아니면 소고기를 드시겠어요(Chicken or beef)?”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먼저 그 영화를 꼭 보라고 추천하고 나서, 소고기로 달라고 말했지요. 기내식을 먹으면서도 저는 계속 영화를 봤습니다. 계속 눈물을 쏟았지요.

저는 우리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이 시대를 살면서 모두가 AI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더더욱 대담하게 울 필요가 있다는 게 제 주장입니다. 저는 독자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기분 좋게 실컷 울었던 게 언제였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적당하게 운다는 건 신체의 해방에 절대적으로 건강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좀 슬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요. 눈물은 피부를 아주 매끄럽게 해주기도 합니다. 굳이 AI를 찾아 우리 대신 울어달라고 부탁할 필요가 있을까요? 울어야 하고 울고 싶을 때는 옆에 사람이 있든 없든 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제가 가장 최근에 울었던 건 타이베이의 지하철 안에서였습니다. 미셸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를 읽다가 참지 못하고 울어버린 거였습니다. 객차 안에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어느 부인이 샤넬 핸드백에서 티슈를 한 장 꺼내 제게 건네주고는 곧장 지하철에서 내리더군요. 저는 티슈를 받아 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했습니다. 울면서 지하철에서 내려 잠시 타이베이 거리를 산책했더니 몸이 가벼워지면서 기분이 아주 좋아지더군요.

발트해에서 우는 대목을 쓸 때 저는 정말로 엄동설한의 발트해에 가 있었습니다. 해변에 아주 오래 앉아 있었지요. 먼바다 수면 위에 하얀 점들이 무수히 떠 있었습니다. 물결 속의 별무리 같았지요. 그 하얀 점들이 서서히 해변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알고 보니 야생 백조들이었어요. 뭍에 오른 백조들은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면서 침입자인 저를 아랑곳하지 않고 제 옆에 아무렇지 않게 앉더군요. 밤이 되자 백조들은 모래밭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한 무리 순백의 야생 백조들에게 둘러싸인 저에게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만 느껴졌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또 울기 시작했습니다. 눈물이 눈에서 나오자마자 얼음으로 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 차가웠습니다. 그 상태로 몇 분만 더 있다가는 체온을 잃고 동사할 것만 같더군요. 저는 몸을 일으켜 아름다운 백조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습니다. “고마워. 너희들을 내 소설에 넣어줄게. 내 소설을 사서 읽어주는 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상관없어. 너희들은 이 소설의 아주 중요한 핵심 배역이야.”

이 책을 기꺼이 출판해준 한국 출판사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한국어판 역자와 그 아름다운 백조 무리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번역: 김태성



*천쓰홍

타이완 소설가이자 영화배우, 번역가.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다. 1976년 타이완 융징향(永靖鄕)에서 한 농가의 아홉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푸런(輔仁) 대학 영문과와 국립 타이완대학 연극학과를 졸업했다.

독자와 평론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현재 타이완 문단의 중심에 떠오른 작가로, 임영상(林榮三) 단편소설상과 구거(九歌) 출판사 연도소설상을 휩쓸었다. 그리고 『귀신들의 땅』으로 타이완 최고의 양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금장상(金鼎賞) 문학부문상과 금전상(金典賞) 연도백만대상을 수상했다. 산문집 『반역의 베를린』 『베를린은 계속 반역중이다』 『아홉 번째 몸』과 소설 『손톱에 꽃이 피는 세대』 『영화귀도(營火鬼道)』 『태도』 『변신의 플로리다』 『알러지를 제거하는 세 가지 방법』 등을 출간했다. 『귀신들의 땅』은 12개 언어로 출간되었고, 《뉴욕타임스》 《라이브러리 저널》 《르몽드》 《마이니치신문》 등에서 격찬받았다.


귀신들의 땅
귀신들의 땅
천쓰홍 저 | 김태성 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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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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