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 현직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쓴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
『환자명 : 대한민국』 송하늘 작가 서면 인터뷰
이 특별한 환자, 대한민국을 치료해보고자 경제의 관점에서 살펴본 특별한 처방전을 소개합니다. (2024.02.02)
참 특별한 환자를 소개합니다. 이웃들에게 이리저리 상처를 입고, 타고난 흙수저 운명을 받아들이며 ‘잘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정말 열심히 일만 하며 살아왔습니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성품 덕에 온 마을의 신임을 얻게 된 이 환자는 이제 많은 이웃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땅에서 이뤄낸 기적 같은 삶이었죠. 가난도 극복하고, 건강도 회복한 이 환자는 문화에서도 점점 두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이 대단해 보이기만 하는 이 환자에게 또다시 증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냥 두면 괜찮아지겠지 했지만 확산하는 속도가 상당히 빠릅니다. 이 환자의 증상은 ‘사회 갈등, 계층 이동성 하락, 저출산’입니다. 이 증상 역시 근본 원인은 먹고사는 문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증상으로 치료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 환자 옆에는 언제나 그렇듯 든든한 보호자가 있습니다. 이 특별한 환자, 대한민국을 치료해보고자 경제의 관점에서 살펴본 특별한 처방전을 소개합니다.
작가님을 처음 만나는 독자분들께 소개해주시고 책을 쓰시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환자명 : 대한민국』의 저자 송하늘입니다.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행정사무관으로 근무 중인 현직 국가공무원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를 돌이켜보면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약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저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경제학부 졸업논문을 쓰느라 혼자 끙끙 앓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대학원도 아니고 학부 졸업논문은 애국가 가사를 써서 내도 통과한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였지만, ‘따뜻한 가슴’이 왠지 모르게 그것만은 허락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저는 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여러 책과 논문을 쌓아두고 몇 날 밤을 새며 혼자만의 외로운 작업을 했더랍니다. 『한국 경제 정책의 의의, 원칙, 방향에 관한 철학적 직관』이라는 매우 거창한 제목을 가진 제 학사 졸업논문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사실은 게으름도 실컷 피우다가 제출기한을 앞두고 허덕이면서 다소 용두사미가 되기도 했지만요.
어쨌든 칼을 뽑아 무라도 베어보았던 이 과정을 통해서 저는 3가지 교훈을 얻었습니다. ‘첫째, 경제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둘째, 그런데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셋째, 그렇다면 이 중요한 경제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내가 한번 쉽게 풀어써 봐야겠다.’
그때부터 저는 경제가 왜 중요한지, 우리 삶에 어떤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우리 삶이 힘들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왜 문제인지,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해, 비전공자인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책을 써보자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나라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해나가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공직이라는 직업 외적으로도 참 의미있는 보람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 시간 동안 거쳐온 고민들을 퇴근 후에, 출근 전에, 주말에, 휴일에 틈틈이 다듬어오다가 이번에 책의 형태로 엮어서 내보게 되었습니다.
제목 『환자명 : 대한민국』이 은유처럼 다가왔습니다. 앞부분은 소설 같은 느낌도 나구요. 대한민국을 환자라고 생각하고 진찰을 해보자는 컨셉이 신선했는데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요?
앞부분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리면, 나라가 사람이라면 이런 삶을 살아왔을 것 같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이미 다 알고있는 우리나라의 현대사인데, 이렇게 풀어보니 새롭게 와닿았습니다. 쓰고 보니 더 역동적이고, 더 대단하고, 더 특별한 환자던데요?
그리고, 우리는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습니다. 나라나 사회도 문제가 있으면 구조적으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다만 나라는 개인에 비해 규모가 너무 크고 복잡합니다. 설령 증상이 있어도 5천만분의 1로 분산되고 축소되면서 개개인에게는 제대로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면 자칫 너무 어렵고 먼 이야기로만 느껴지기 쉽지요. 그래서 나라를 사람에 비유해본다면, 이 환자의 심각성이 조금 더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요즘 뉴스에 많이 나왔던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인 ‘사회 갈등’, ‘계층 이동성 하락’, ‘저출산’ 여러 가지 이슈들이 전부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셨는지와, 이런 이슈들을 경제적인 관점으로 해답을 찾아간다고 하셨는데요.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관심은 중학생 때부터 있긴 했는데, 그 때는 너무 어렸죠. 진지하게 고민해보기 시작한 건 아마 대학생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누가 시켜서 갖게 된 건 아닌데요, 경제학이라는 전공을 배우면서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사회 문제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도 하더라구요. 국립대를 다니고 이후에는 공직에 종사하기도 하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도 알게 모르게 조금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 현상은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책에서 강조했듯이(187~188쪽), 우리나라의 증상들을 초래한 이유가 꼭 경제적인 요인만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책에서 그 개별 원인들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은 이유는 그 각각의 개별 요인들을 아우를 수 있는 더 근본적인 진단과 처방법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실 아무리 복잡해 보이는 이슈라도, 그 기저에는 먹고사는 문제가 깔려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끔은 눈에 직관적으로 잘 안보여서 그렇죠.
그리고 세 가지 증상 중에 가장 심각한 증상은 단언컨대, 저출산입니다. 저출산은 이 나라가 앓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농축된 종합선물세트 같은 증상입니다. 대한민국의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두고두고 좌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나라 자체가 소멸될 위기이지요. 다만 그 여파가 바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심각성이 아직도 제대로 인지되지 못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런데 그 여파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때쯤이면 우리의 일상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있을 겁니다. 사실 이미 시작되고 있어요.
정부에서 일하고 계신 공무원인데, 정부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응하고 있지 않나요?
일단 저는 이 책을 개인 자격으로 썼기 때문에, 이 책이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닙니다. 또 제가 정부 입장을 대변할만한 책임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고, 정부가 하는 일을 모두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도 하고요.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점은, 결과적으로는 이 증상들이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그것만으로도 노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그건 정책의 공급자인 정부가 일일이 변명할 문제가 아니고, 정책의 수요자이자 이 환자의 보호자인 국민이 직접 판단할 문제라서요.
예를 들어서 저출산 증상만 해도 그렇습니다. 흔히 백약이 무효라는 탄식이 나오곤 하잖아요. 제가 책에도 썼는데(314~315쪽), 사실 우리나라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직 ‘백약’을 제대로 써보지도 않았습니다. 300조원 넘는다는 ‘저출산 예산’이 그 막대한 규모에 비해 별 효과가 없는 이유는 그 정책들이 애초에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된 산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각자 고유의 배경과 목표를 지닌 여러 사업 가운데, 돌고돌아 간접적으로나마 저출산 완화에 조금이나마 기여해볼 수 있다면 일단 모아서 저출산 예산이라고 통합해서 부르고 봐요. 관료 사회의 실무 관례이기도 한데, 이건 제가 잘 알지요. 이걸 무작정 비난하자는 건 아니고, 어쨌든 의미있는 결과가 나오기는커녕 증상이 더 악화되고 있으니까요.
공무원으로서 이런 책을 내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으셨는지?
왜 부담스럽지 않겠어요. 저도 사람인데. 제 아내는 그냥 평범하게 살자고, 제발 너무 나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웃음)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책 쓰시는 공무원들은 생각보다 흔해요. 저작 활동을 특별히 말리는 분위기도 딱히 아니고요. 그런데도 만약에 제가 이 책 때문에 부담을 느낄 정도라면, 그 이유가 책을 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는, 이 책이 어느 정도 읽히기 때문일 것이고, 그렇다면 이런 진단과 처방에 주목하는 보호자들이 그만큼 적지 않다는 뜻이겠지요. 반대로 말하면, 환자 대한민국이 계속 이렇게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그만큼 크다는 뜻일 겁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설계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어서 국가공무원이 되었고, 이 환자 대한민국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도 항상 있습니다. 이 책은 그 책임감을 다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퇴직할 때 후회는 남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됐습니다.
작가님의 다음 스텝이 궁금합니다.
이 인터뷰가 서면 인터뷰라서 질문을 미리 받았거든요. 아내가 옆에서 이 질문을 보더니 다음 스텝으로는 거실로 나와서 청소를 하라던데... (웃음)
제가 책을 내는 게 이번이 처음인데,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너무 힘들더라구요. 퇴근 후에, 출근 전에, 주말에, 휴일에 작업하다 보면 혼자 사서 고생이라는 현타도 많이 왔고... (웃음) 그래서 당분간은 마음 편하게 ‘현생’을 살고 싶습니다. 쉴 때는 다른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유튜브도 보고... 오히려 그 과정에서 세상의 흐름도 읽을 수 있을 것 같고. 그렇게 재충전하고 나면, 정확히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긴 합니다. 책을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제 생각이나 관련 인용문들을 두서없이 끄적여둔 한글 파일이 있는데, 분량이 천 페이지가 넘어가더라구요. 쓸거리는 아직 많습니다. (웃음)
송하늘 작가님의 책을 읽게 될, 혹은 읽은 독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과 인사 부탁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 책을 읽으시는 독자분이라면, 아마 기본적으로 이 환자에 대한 애정이 있는 보호자이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독자 한 분 한 분 덕분에 이 환자가 그나마 여기까지 와있지 않나 싶네요.
제 진단과 처방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환자 대한민국이 앓고 있는 증상들에 대해 ‘이런 관점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정도로 받아들여 주시고, 그만큼 비판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 나은 처방전을 같이 만들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송하늘 1990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2학년에 재학하던 중 5급 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구 행정고등고시) 재경직에 합격했습니다. 2015년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제60기 신임관리자 과정을 수료한 뒤 현재까지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행정사무관으로 근무 중인 현직 국가공무원입니다. 이름을 따라 ‘대한민국을 지키는 가장 높은 힘’ 공군 장교에 자원 입대했고, 대위로 만기 전역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땅과 바다, 하늘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임무 수행 중인 국군 장병들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나라를 지키는 일과 지킬 가치가 있는 나라를 만드는 일 모두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한때는 행정고시만 끝나면 다시는 공부를 하지 않으리라 결심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삶은 역시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아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도중 홀연히 휴직을 내고 갈등관리(Conflict Analysis and Resolution) 전공으로 미국 조지메이슨대학교(George Mason University) 석사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관심 분야를 젊은 시절에 배워두면 다방면에서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은행 빼고 모두가 말리던 자비 유학이라 고생은 좀 했지만,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면서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조금은 쑥스럽기도 하지만, 이 나라를 사랑합니다. 뜨거운 가슴은 젊은이의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뜨겁게 간직하기 위해서 정작 머리는 차갑게 유지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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