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STORY] 아시아를 넘어 프랑스에 자리잡은 ‘이우환’
이우환(Lee Ufan)
팬데믹 이후 호황기를 맞이했던 한국 미술시장. 세계 경기 침체로 인해 조정기에 국면한 현재의 미술시장임에도 그 기세가 꺾이지 않는 작가가 있습니다. 바로 ‘이우환(Lee Ufan, b.1936)’이죠.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이우환의 단독 전시공간을 방문할 수 있을 만큼, 그는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현대미술의 거장입니다. 프랑스 아를 또는 일본 나오시마, 한국의 부산을 방문한다면, 한 번쯤 이우환의 작품이 숨 쉬는 공간에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요? (2024.02.01)
YES24의 새로운 아트 커뮤니티 ARTiPIO가 들려주는 ART STORY.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팬데믹 이후 호황기를 맞이했던 한국 미술시장. 세계 경기 침체로 인해 조정기에 국면한 현재의 미술시장임에도 그 기세가 꺾이지 않는 작가가 있습니다. 바로 ‘이우환(Lee Ufan, b.1936)’이죠.
국내외 미술시장의 흐름과 전망을 분석한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의 ‘2022년 미술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조정기 시장에서도 독보적인 힘을 발휘하는 작가는 바로 이우환”이라고 지목했는데요.
점.선.면의 대가인 이우환은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단색화의 살아있는 거장 중 한 명으로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서울대 미술학부 진학을 하며 미술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나, 도중 일본으로 넘어가 니혼 대학 문학부 철학과로 졸업하며 자신의 철학적 관점을 작품에 투영합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60년대 일본의 전위적인 예술 운동인 *모노하(もの派)의 이론에 근간을 두며, 국제적 명성을 얻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데요.
19050-60년대 서양 미술계에서 등장한 미니멀리즘은 사물과 미술의 경계를 실험하며 대세를 이루게 됩니다. 당시 이우환은 이러한 미니멀리즘을 수용하면서도 결점을 보완하기 위한 시도로서 모노하 이론을 정립하게 됩니다. 그는 당시 동시대 서구 미술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에 정면 도전하는 것을 자기 예술의 당면 과제로 삼은 것이죠.
모노하 운동에 근간을 둔 작가들은 가공하지 않은 자연물, 물질 그 자체를 예술 언어로 활용하고자 했는데요. 이미 존재하는 사물을 재배치하고 진열하며 재료와 공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컨셉에 대한 인식까지도 중요하게 여기게 됩니다. 이는 1970년대까지 일본 미술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았고, 당시 한국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이러한 바탕으로 제작된 <관계항(Relatum)>시리즈는 이우환의 철학이 반영된 초기 대표 작업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해당 시리즈에서 사물에 근본적인 존재성을 부여하고, 사물-사물, 더 나아가 사물-인간의 관계를 강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작가들의 경우, 작업실에서 작업한 후 임의적인 공간에 배치하는 일반적 사례와 달리, 공간이나 장소와의 조화를 중시하는 이우환은 현장에서 직접 작업할 갤러리와 배치되는 공간을 결정함에 있어서도 매우 신중합니다.
“서구의 미니멀리즘은 시선이 작품에서 주변으로 확장되어 지지 않으며,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서 자기 완결적인 특성을 지닌다.
그러나 모노하는 작품과 그 주변을 포함하는 ‘구조에의 지각’을 의도하면서
사물과 장소의 결합을 경험한다.”
- 이우환 -
이우환의 주요 작품 중, <관계항>시리즈 외에도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획’과 ‘점’이 주를 이루는 <점으로부터(From Point)>, <선으로부터(From Line)>시리즈를 선보입니다. 본격적으로 회화 작업에 돌입한 작가는 해당 시리즈를 통해 ‘여백’과 함께 어우러진 ‘점’, ‘선’, ‘면’을 토대로 동양화의 기본 획을 연상시키는 작업을 지속해 나갑니다. 그의 작업은 마치 무한한 순간 속 정지한 듯 고요한 가운데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을 느껴볼 수 있는데요.
해를 거듭할수록 변화해가는 이우환의 시리즈는 꽤나 흥미롭습니다. 1980년대 <바람(With Wind)>시리즈에서는 자유분방한 붓의 움직임이 돋보였다면, 1990년대 <조응(Correspondance)>시리즈와 그의 연장선인 <Dialogue>시리즈에서는 보다 최소화되고 여백의 표현을 극대화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간결한 터치를 통해 여백의 존재를 증폭시키고, 붓으로부터 비롯된 획과의 관계성에 보다 집중한 것이죠.
이렇듯 작가가 중시하는 ‘관계성’은 평면 회화 작업의 붓과 여백의 소통 혹은 설치 작업인 행위와 공간과의 상호작용으로 작품에 나타납니다. 관람객과 작품 간의 ‘관계’, 즉 조응(照應)에 집중한 그의 작업은 나아가 작품을 보는 관람객 역시 작품의 연장선으로 참여하도록 이끕니다.
이러한 이우환의 철학 사상은 작품 속 고스란히 반영됩니다. 그만의 사상을 토대로 작품을 통해 세상의 구조를 사유하는 것이죠. 이런 이유 때문인지 철학의 나라 프랑스에서 유독 인기가 많은데요. 그는 2007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2014년에는 파리 인근의 베르사유 궁전의 초청으로 야외정원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생존 작가에게 최고의 영예인 베르사유 궁전의 전시는 2008년 포스트모던 키치의 왕, 가장 비싼 현대미술가로 불리는 미국의 제프 쿤스(Jeff Koons)를 시작으로 매년 세계적 작가를 선정해 선보이고 있는데요.
작가는 “이만한 규모로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는 기회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라고 말할 만큼 규모부터 퀄리티까지 모든 면에 대해 전시에 총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50번이 넘게 현장을 오가고, 작품의 주 소재인 돌을 구하기 위해 프랑스 전역부터 독일과 이탈리아, 알프스를 넘나들며 재료를 공수해왔기에 그 의미가 더욱 깊은 전시였습니다.
이렇듯 프랑스와 인연이 깊은 이우환은 2022년 4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도시인 ‘아를’에 이우환 미술관’을 개관했는데요. 일본 ‘나오시마’과 한국 ‘부산’에 이어 세 번째로 개관한 상설 작품 전시 공간인 이곳 ‘아를’은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했던 도시로 ‘밤의 테라스’, ‘해바라기’ 작품 등 무려 200여 점의 작품을 남긴 도시로 유명하죠. 동양의 기반을 둔 철학을 담은 이우환의 단독 미술관이 유럽에 자리 잡았다는 것은 그 의미가 보다 크게 전해집니다.
아를의 이우환 미술관이 자리 잡은 ‘오텔 베르농(Hotel de Vernon)’저택은 16-18세기 건축되어 유럽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공간으로,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이우환의 절친으로 유명한 안도 다다오가 저택 개조에 힘을 쏟아 더욱 주목받았습니다. 정제된 공간에 자리 잡은 이우환의 단색화 평면 작품과 설치 작품들은 고요하면서도 아시아와 유럽의 만남이 이루어져 또 다른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냅니다.
이보다 앞서 가장 처음 지어진 이우환의 첫 개인 미술관으로는 2010년 6월 개관한 ‘이우환 미술관(Lee Ufan Art Museum)’이 있죠. 안도 다다오의 아트 프로젝트를 통해 섬 전체가 하나의 미술관으로 재탄생 된 일본 가가와현 나오시마(直島)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은 이우환과 안도 다다오가 공동 설계해 그 의미가 깊습니다.
“동굴과 같은 미술관.
반쯤 열려있는 하늘이 보이고,
태반으로 돌아가는 듯한 공간임과 동시에
죽음을 맞이하는 공간”
- 나오시마 <이우환 미술관> 설계 中 -
이어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 4월, 부산시립미술관 별관 ‘이우환 공간(Space Lee Ufan)’이 두 번째로 개인 미술관이 설립되었는데요. 마찬가지로 해당 공간 또한 부산시와 이우환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직접 기본 설계까지 진행하며 공간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하고 있답니다.
이처럼 아시아, 유럽까지 이우환의 단독 전시공간을 방문할 수 있을 만큼, 그는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현대미술의 거장입니다. 프랑스 아를 또는 일본 나오시마, 한국의 부산을 방문한다면, 한 번쯤 이우환의 작품이 숨 쉬는 공간에서 그가 말하는 ‘관계항’에 집중해 보는 건 어떨까요?
추천 기사
YES24의 자회사로 출범한 아티피오는 미술품 수집의 대중화를 위한 아트 커뮤니티입니다. 국내 다양한 예술 애호가들과 함께 아트 컬렉팅을 시작해 볼 수 있는 미술품 분할 소유 플랫폼과 관련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