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인간, 인간형, 그리고 직원들”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78회) 『디 임플로이』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2024.02.01)
불현듯(오은): 오늘의 특별 게스트는 이수현 번역가님입니다. 안녕하세요, 인사 말씀 부탁드려요.
이수현: 안녕하세요. SF와 판타지를 주로 번역하고요. 가끔 소설도 쓰는 이수현이라고 합니다.
불현듯(오은): 오늘 함께 이야기 나눌 책은 다람 출판사에서 출간된, 올가 라븐 작가가 쓴 소설 『디 임플로이』입니다.
올가 라븐 저 / 이수현 역 | 다람
불현듯(오은): 작가님은 SF와 판타지를 번역하시고, 소설도 쓴다고 하셨는데요. 소설도 SF장르일까요?
이수현: 소설은 주로 판타지를 쓰고 있어요.
불현듯(오은): SF와 판타지가 갖고 있는 매력은 뭐가 있을까요? 요새는 사실 장르를 굳이 나누지 않기도 하고요. 많은 영역에서 SF적인 요소나 판타지적 요소가 담긴 서사물들을 많이 보게 되잖아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아진 것 같기도 해요.
이수현: 사실 장르로서의 SF와 판타지는 각자 규칙이 확실히 있긴 있어요. SF의 매력을 말하자면 보통은 한계가 없다는 점을 많이 언급하죠. 뭐든 할 수 있다는 것 말이에요. 요새는 특히나 현실하고 되게 가까워지면서 더 많이들 보시는 것 같긴 하고요. 판타지의 매력도, 저는 개인적으로밖에 대답을 할 수 없지만요. 제가 판타지를 좋아하는 건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기는 해요. 확실하게 다른 곳의 이야기라는 것이 좋아요. 물론 오히려 거리를 두기 때문에 더 현실이 잘 보일 때도 있고요.
불현듯(오은): 오늘 이야기할 『디 임플로이』에 대해 번역가님께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소개를 부탁드려야 될 것 같아요.
이수현: 원래 번역하면서 제목을 ‘직원들’이라고 했었는데요. ‘고용된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이 소설 안에 사람과 사람 아닌 존재가 같이 나오기 때문이었어요. 그런 이유로 사람이라는 말을 번역 전반적으로 피했어요. 이 소설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요. 우주선 회사에서 우주선을 운영을 하고, 그 우주선에 직원들을 태워서 무언가 일을 하러 우주로 보낸 상황이에요. 그런데 이 우주선이 다른 행성에서 무언가를 찾아내죠. 되게 특이한, 외계 생명체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물체’를 발견해서 우주선에 싣는데요. 그 물체 때문에 직원들 사이에 이상한 일이 자꾸 벌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회사에서는 생산성이 떨어지는데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우주선으로 조사위원회를 보내고, 직원들을 인터뷰합니다. 소설은 그 인터뷰 내용만으로 시작을 하거든요. 지금 말씀드린 얘기들은 배경이고요. 사실은 읽어 나가면서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게 되는 식이에요. 그래서 인터뷰를 통해 독자가 이 우주선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고 어떻게 되어 가는지를 알 수 있는 거죠.
불현듯(오은): 말씀처럼 진술로만 이루어진 소설이잖아요. 심지어 무슨 직원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도 아니고요. 넘버링만 되어 있어요. 넘버링 역시 순차적이지도 않고, 중간에 비어 있는 것도 있고 그렇죠. 저도 처음에는 바로 이야기가 펼쳐질 줄 알았는데 보니까 전부 다 진술이더라고요. 결국 이 소설은 독자인 내가 퍼즐을 짜 맞추어서 이야기를 완성해 나가야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자의 참여가 조금 더 능동적일 수밖에 없게 되더라고요. 캘리 님은 어떻게 읽으셨나요?
캘리: 저도 계속 앞뒤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읽게 되더라고요. 분명히 내가 놓친 게 있을 텐데, 싶어서요. 왜냐하면 줄거리를 모르고 시작을 하니까 어떤 진술이 중요한 얘기인지, 어떤 것이 안 중요한 얘기인지, 이 얘기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미리 알 수 없잖아요. 제가 놓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서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읽었어요. 그리고 내가 이 서사를 읽어가면서 구성하는 재미가 있기도 해서요. 굉장히 독특한 책 읽기를 했던 것 같아요.
불현듯(오은): 각 진술을 발화하는 대상들이 자꾸 변하잖아요. 그때마다 번역의 톤앤매너가 조금씩 달라지거든요. 물론 여기에 등장하는 존재 가운데는 인간도 있고요. 인간형이라고 불리는 존재도 있잖아요. 이들의 화술, 화법에도 변화가 이루어지거든요. 어떤 사람은 좀 더 공격적으로 이야기를 하고요. 어떤 사람은 약간 조금 수긍하듯이 이야기하기도 해요. 이 같은 디테일을 어떻게 드러내야 되는지, 번역할 때 굉장히 고심이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번역하실 때 어떠셨나요?
이수현: 아무래도 그랬어요. 저는 일반 소설을 번역할 때도 말투를 다 똑같게 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긴 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특히나 오직 말밖에 없으니까요. 게다가 작가의 의도가 그랬어요. 우주선 안에 인간과 인간형이라고 불리는 휴머노이드 인조인간이 섞여서 살면서 함께 일을 하고 있는데요. 진술만 봐서는 이 화자가 인간인지 인간형인지를 약간 구별할 수 없게 만들어 놨거든요. 그러면서도 성격은 드러나야 하잖아요. 그래서 말투를 하나하나 읽으면서 고민했던 것 같아요.
저도 처음 번역하기 전에 영역본을 읽으면서 이게 같은 사람인가 다른 사람인가도 확인을 해야 했어요. 소설 전반적으로 각 화자의 특징이 조금은 드러나는데요. 그럼에도 작가가 완전히 인간인지 아닌지가 확실하지 않도록, 성별 같은 것도 확실하지 않도록 만들어 놓아서요. 그걸 번역하는 것에 제일 신경 쓰긴 했어요.
불현듯(오은): 보통 소설을 생각하면요. 주인공이 있고, 그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방식이 일반적이잖아요. 주인공을 중심에 놓고 그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를 쌓아 올려가면서 이야기가 흘러가게 마련인데요. 『디 임플로이』는 그런 게 아니라 일종의 단편들이 연쇄적으로 드러나는 식이에요. 게다가 이걸 발화하는 존재가 누구인지도 불명확하니까 더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수현: 그렇죠, 보통의 소설은 대사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설명이 어쨌든 따라오고, 그러면서 명확해지는 부분들이 있는데요. 안 그래도 그게 제일 신경 쓰이긴 했어요. 전부 말인데 그것도 희곡보다는 시 같기도 하거든요. 그 점을 번역하기가 제일 어렵더라고요. 작가가 되게 압축을 해서 전달을 많이 하니까요. 결국 저의 감각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지만요. 영어와 한국어 말투가 1대 1 대응이 안 되잖아요. 존대나 반말의 문제도 있고요. 편집자님과도 어떤 부분에서는 반말과 존대를 일부러 섞었는데 이걸 살리고 싶다는 식으로 의논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 고민을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캘리: 말씀대로 어떤 부분은 인간인지 인간형인지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진술도 있잖아요. 그 진술을 내가 어떻게 해석해서 읽을 것인가, 고민하게 됐어요. 인간으로 읽어도, 인간형으로 읽어도 무방한 대사들을 읽으면서는 과연 인간과 인간형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의 문제까지 나아가는 거예요.
이수현: 그게 되게 중요한 부분이기도 해요.
불현듯(오은): 인간과 인간형 번역에 대해서도 궁금하네요. 인간과 휴머노이드로 쓸 수도 있었을 것이고, 사람과 휴머노이드로 쓸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인간과 인간형이라는 단어를 선택하신 이유를 들려주세요.
이수현: 그것 역시 어떻게 할지 많이 고민한 부분이에요. 저도 어차피 영역본으로 본 거지만, 보면 ‘휴먼’과 ‘휴머노이드’란 말이에요. 근데 흔히 ‘휴머노이드’라는 단어를 우리가 그냥 쓰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피하려고 했고요. 이것이 휴먼에다가 그냥 휴먼 비슷한 것이라는 접미사만 붙인 단어라는 것을 살리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두 번째 안으로 생각했던 것이 인간과 인간형 기계였어요. 하지만 또 이들이 기계라고 하기에는 조금 다른 면이 있는 거죠. 물론 기계를 무엇으로 생각하느냐 나름이지만요. 보통 사람들은 기계라고 하면 금속으로 된 걸 상상을 하잖아요.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것도 아니란 말이에요. 명백히 생물이고 생체라서요. 그래서 아예 기계라는 뒤의 단어를 떼고 인간과 인간형으로 결정했어요.
저는 아마 ‘인형’이라는 말이 이미 이렇게 널리 쓰이고 있지 않았으면 인형도 고려를 했을 것 같아요. 인형도 되게 재미있는 단어잖아요. 원래 단어의 뜻은 인간 모습이라는 의미인데 한국어에서 인형은 동물 모양이든 아예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든 다 통칭되는 거죠. 그런 여러 고민들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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