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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독서 프로젝트] 세계문학, 이 작가를 주목해야 - 박혜진 편집자

세계 문학 어드바이저 - 박혜진 민음사 해외문학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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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 민음사 세계문학 편집자가 주목하는 작가 셋. (2024.01.25)

#생태 #여성 #글쓰기 

세계 문학 트렌드를 이끄는 작가를 꼽기 전에 먼저 떠오르는 키워드를 생각해 보았어요. ‘생태’, ‘여성’ 그리고 ‘글쓰기’ 자체입니다. 이 키워드와 관계되는 작가들로 올가 토카르추크, 츠쯔젠, 클로디 윈징게르가 떠올랐습니다. 이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더 이상 지구는 휴먼 드라마의 배경이 아니라고, 새로운 장르에서 우리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라 인간 아닌 것들의 언어를 대변하는 친절한 화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올가 토카르추크, ©Jacek Kolodziejski 제공

올가 토카르추크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올가 토카르추크는 『방랑자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다정한 서술자』 등의 작품을 통해 대안적 삶, 동물권, 전 생명체를 연결하는 글로벌 휴머니즘 연대에 대해 꾸준하게 목소리를 내 왔는데요. 특히 입문작으로 추천해 드리는 『다정한 서술자』는 ‘과연 타인의 고통은 존재하는가’ 하는 의구심에서 출발해 ‘인간의 고통이 동물의 고통보다 견디기 쉽다’라는 선언까지, 머리를 한 대씩 쥐어박히는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토카르추크는 이 책에서 21세기가 요구하는 삶의 태도로 ‘다정한 서술자’라는 혁신적인 개념을 내놓는데요. 여기서 다정함이란 대상을 의인화해서 바라보고, 감정을 공유하고, 끊임없이 나와 닮은 점을 찾아내 연결 짓는 자세입니다. 이렇게 탄생한 이야기는 ‘다인칭 시점’ 혹은 ‘무인칭 시점’을 사용하는데, 마치 어린아이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을 떠올리게 해요. 국민 동요 ‘아기 상어’를 보면 노래를 부르는 화자가 상어였다가 도망치는 물고기였다가 다시 신나게 노래하는 자신(어린아이)으로 변하는데 어른들은 이 전개가 어색하지만 아이들은 의심 없이 따라 부르는 것처럼요. 우리 안의 어린아이, 다정한 서술자를 찾고 계신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작가입니다.


츠쯔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홈페이지 캡처

츠쯔졘

대학교 1학년 때 츠쯔졘의 『어얼구나 강의 오른쪽』이라는 작품을 읽고 오랫동안 멍했던 기억이 납니다. 중국 최고의 문학상인 ‘마오둔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중국 최후의 수렵 민족이라고 불리는 소수 민족 ‘어원커족’의 마지막 추장의 여인이 들려주는 4대 100년에 걸친 가족사를 담고 있어요. 제가 이 작품을 놀랍게 읽은 것은 작가가 대자연에 의지해 살아가는 어원커족의 삶과 사랑, 죽음에 대한 독특한 세계관을 글쓰기 방식으로 완전히 체현해 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어원커족은 혹한과 맹수, 전쟁 등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소설 속에도 죽음의 장면이 자주 그려지는데요. 인물이 죽기 전에, 작가가 복선을 까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이 운명을 스스로 예감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으로 그렸어요.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완성도 측면에서는 갑작스럽고 촌스럽게 느껴지지만 이렇게 작가가 이야기 뒤로 몸을 감출 때, 독자는 자신이 허구가 아닌 누군가의 삶을 대면하고 있다는 믿음을 얻죠. 사냥에 나서는 남편에게, 아내가 불현듯 사고를 예감하고 ‘나는 당신의 마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몸도 필요하’다며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대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집을 떠나는 장면은 ‘운명’이라는 단어의 뜻과 함께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어요. 이 책으로 중국 문학에 입문하지 않았더라면 중국 문학에 대해 전혀 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참 다행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클로디 윈징게르, claudie-hunzinger.com 캡처

클로디 윈징게르

클로디 윈징게르는 『내 식탁 위의 개』가 2022년 페미나상을 수상하며 세계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사실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작품인데, 일단 이 책을 끝까지 읽으시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릴게요. 줄거리를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숲속에서 단둘이 살아가는 노부부 앞에 어느 날 잔인하게 학대당한 개 한 마리가 나타난 후 두 사람의 일상에 일어나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예요. 이 책의 무기는 실제 ‘자연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80대 여성 작가가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았다는 것입니다.

클로디 윈징게르는 히피 문화가 꽃피던 1960년대 소비 사회를 떠나 남편과 숲으로 들어갔고 6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숲에 살고 있어요. 작가는 이곳에서 자급자족에 가까운 생활을 하며 조형예술가로 살아오다가 일흔 살에 첫 작품을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했어요. 여든두 살에 발표한 『내 식탁 위의 개』에서 그는 ‘동물권’이라고도 말하기 민망한, 생명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마저 무너지고 나날이 기후 위기가 심화되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 노년의 ‘오늘’을 당장 가능한 최선의 사랑으로 채워 가는 놀라운 용기를 보여 줍니다.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로도 나는 끄떡없이 글을 쓴다.”라는 작가의 용기에 기대 저도 봄이 오기 전에 끝까지 읽을 용기를 내 보려고요.


다정한 서술자
다정한 서술자
올가 토카르추크 저 | 최성은 역
민음사
어얼구나강의 오른쪽
어얼구나강의 오른쪽
츠쯔젠 저 | 김윤진 역
들녘
내 식탁 위의 개
내 식탁 위의 개
클로디 윈징게르 저 | 김미정 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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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혜진(문학편집자)

민음사 해외문학 편집자.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에서 '세문전 월드컵'을 진행 중이며 SBS 라디오 <김선재의 책하고 놀자> 속 작은 코너 '박혜진의 클래식은 영원하다'에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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