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안 “멀리서 날아오는 빛으로 평온함을 주는 이야기”
『먼 빛들』 최유안 작가 서면 인터뷰
세 인물이 겪는 공통적인 사회 현상을 조망하는 연작 소설 (2024.01.25)
사회적인 관계망과 일의 의미를 조망하며, 그 안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촘촘하게 엮어온 작가 최유안 작가가 신작으로 돌아왔다. 연작 소설 『먼 빛들』은 서로 다른 세 여성의 ‘자리’와 삶에 대한 고민과 그들이 몰두하고 어쩌면 목표하는 것에 대한 태도,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연결의 이야기다. 소설 속 세 명의 인물은 각자의 자리에서의 쉼 없는 노력으로 지금의 여성을, 사람을, 관계를 그리고 일과 사회를 연대한다.
『먼 빛들』은 어떤 내용의 책인지 간략하게 소개해 주세요.
법대 교수인 여은경, 문화계 행정 기관의 중간 관리자 최민선, 비엔날레 예술감독인 표초희를 중심으로 꾸려진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경력도 어느 정도 있고 지위도 갖춘 여성들이 자신들의 일과 삶을 지켜가는, 힘들고 지난해도 꿋꿋하게 여정을 이어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이번 작품은 이전에 집필하신 책들과는 다르게 연작 소설입니다. 연작으로 소설을 구성하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이 소설 속 세 인물은 서로 다른 상황과 배경에 놓여있어요. 각자의 자리에서 또렷하게 할 말도 있죠. 그 퍼즐들이 모이면 책의 주제가 완성되고요. 그래서 마치 전혀 다른 악기 몇몇이 모여 같은 주제 선율을 만드는 피아노 3중주처럼 책 전체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이 인물들이 변주하면서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면에서 인물과 배경이 한 가지 큰 사건으로 수렴되는 이야기를 생각했다면 장편소설을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너무 다른 세 인물이 겪는 어떤 공통적인 사회 현상 같은 것을 조망하는 데는 연작 소설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삼부작의 소설은 ‘부’마다 다른 인물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각 부의 마지막이 다음 이야기와 유연하게 연결되는 지점이 흥미롭습니다. 주인공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가끔 저는 제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사람의 삶을 상상하기도 하는데요. 한 인물의 이야기를 매듭짓고 다음 인물의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둘을 이어주는 부분을 쓸 때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인물들을 연결해 주면서 사회의 익명성과 조직화된 무질서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연대의 의미를 작품의 중심에 두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연대는 제가 쓰는 많은 글의 주제이기도 해요. 혼자서 잘 살기도 힘든 시대에, 우리는 어째서 사회적 연대를 가져야 하는가, 우리는 왜 서로 책임져야 하는가, 라는 고민과 연결되어 있어요. 다른 칼럼에서도 쓴 적이 있는데, 십수 년 전에 독일의 한 어린이집에서 달리기 시합하는 걸 지켜본 적이 있는데요. 한 아이가 돌부리에 넘어지자 선생님이 앞서가던 친구들을 세우고 물어보더군요. 그냥 가도 좋지만, 넘어진 친구를 어떻게 해주는 게 좋을까? 그때 1, 2등 하던 친구들이 다친 친구를 일으켜 주고 다시 뛰어가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저는 그것이 사회의 질서를 지키는 자유주의적 사고의 발로라고 생각해요. 건강한 개인들이 연대하는 사회 공동체 말이에요. 저는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을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나름의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인간의 공동체성, 제가 늘 관심을 두는 주제랍니다.
덧붙이자면 거창하지만, 저는 동시대를 사는 80억 명의 인구가 이런저런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에 한 사회학자의 연구에서 전 세계 사람들이 열 다리 정도면 다 이어져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어요. ‘내 주변’을 결코 좁은 범위로 한정 지을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세 주인공의 일과 삶에 대한 태도, 성격에서 각각의 개성이 돋보입니다. 작가님께서는 어떤 인물에게 가장 공감하시거나 애정을 지니고 있으실까요?
각각의 인물,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에게 각각 다른 색의 애정을 느껴요. 그 인물들에게 저 자신을 투사하지는 않지만요. 사실 세 인물에게 준 이름은 모두 제 지인의 이름입니다. 최민선은 제 친동생 이름이에요. 몇 년 전에 저녁을 먹다가 이런 캐릭터가 등장하는 이야기라면 자기 이름을 써달라고 했는데, 정말 그런 인물을 만드는 김에 이름을 빌려 넣었거든요. 표초희는 전 직장 선배님 이름인데, 예술감독이랑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주인공 이름을 결정하던 시점에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선배님 이름을 가져다 쓰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쓰라고 했고요. 줄거리를 들으며 설렌다고 하던 기억이 나요. 그 밖에도 제 친구들과 가족들의 이름이 곳곳에 쓰여 있어요.
『먼 빛들』의 마무리가 인상적입니다. ‘먼 빛’이 주인공들을 비추면서 작품이 끝나는데요. ‘먼 빛’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먼 빛들”이라는 책 제목은 에드워드 호퍼 서울 전시에서 그림을 감상하다가, ‘멀리서 날아오는 빛’, 이라는 단어를 보고 그 자리에서 지었어요. 고군분투하며 사는 인물들에게 날아와, 모두가 한곳을 바라봐 주게 하는 평온하고 깊은 빛. 그들이 잡으려고 노력하는 저 멀리 어딘가에 보이는 아련한 빛. 프리즘을 통과해 저마다의 색을 내는 빛. 마지막에는 각자가 지키고 있던 자리를 해치거나 떠날 필요 없이, 그 자리에서 함께 느끼는 평온함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으로 『먼 빛들』을 읽게 될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먼저 보이는 여러 가지 때문에 일하는 여성의 이야기로 읽으실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성별과 무관하게 중간에 끼어 있는 중간 관리자들을 생각하면서 이 책을 시작했답니다. ‘실무자는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수장도 아닌, 어딘가 끼어져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에요. 굳이 이들이 여성인 이유는 아무래도 여성들이 놓인 사회적 위치까지도 해석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었어요.
이 책은 앞 시대에서 전달되어 온 질서를 계속해서 전복하며, 압박 속에서도 한 발 힘겹게 내디딜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것에 대한 의지를 말하고 있어요. 여은경은 전통에 대한 전복을, 최민선은 쉽게 변하는 마음의 작용을, 표초희는 자신의 의지를 시험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요. 그리고 저마다의 빛을 잡거나 잡으려고 하죠. 이 책을 잡은 여러분부터가 본인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라고 믿어요. 여은경, 최민선, 표초희처럼 멀리서 날아오는 빛으로 평온함을 느끼시길 바라요.
*최유안 201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보통 맛』, 『백 오피스』가 있고, 함께 지은 책으로 『집 짓는 사람』, 『페페』, 『우리의 비밀은 그곳에』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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