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잊었던 고향의 맛 - SF9 ‘비보라’, NMIXX ‘DASH’

SF9 ‘비보라’, NMIXX ‘DASH’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거부하기 어려운 대의와 대세의 커다란 물결을 헤치고 SF9 ‘비보라’와 엔믹스의 ‘DASH’가 새해의 문을 열었다. 한때 케이팝의 구태로 불리던 것들이 이제는 색다른 재미가 되었다. (2024.01.24)

SF9 미니앨범 <Sequence> 티저 이미지 


지난 1월 8일 발표된 SF9의 열세 번째 미니앨범 [Sequence] 타이틀 곡 ‘비보라 (BIBORA)’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슬쩍 웃었다. ‘이거지’라는 말도 같이 나왔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다가와 ‘앞 문장에서 서술한 ‘이거’를 논리적으로 정확히 서술하시오’라고 따져 묻는다면 잠시 주춤할 수밖에 없다. ‘비보라’를 들으며 느낀 감정은 구체적이기보다는 추상적으로 떠오른 이미지에 가까웠다. 이미 멸종된 걸로 알려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진다는 ‘우리의 소리’를 케이팝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 같은 반가움이었다.

곡의 시작과 동시에 흐르는 높은 점도의 끈적한 멜로디, 비트 질감으로 보나 사운드로 보나 충분히 딥 하우스인데도 자꾸만 한국 고유의 얼을 떠올리게 만드는 묘한 리듬, 애수 어린 서사를 서서히 고조시켜 나가다 곡 제목인 ‘비보라!’를 구호처럼 외치며 비로소 휘몰아치는 회심의 후렴구. 노래 ‘비보라’는 ‘질렀어’(2018)와 여름 향기가 날 춤추게 해 (Summer Breeze)’(2020)로 이어온 SF9만의 고유한 흥과 뽕에 시크한 올 블랙 착장을 입힌, 케이팝 나아가 한국 대중음악의 정석 한 챕터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 같은 존재감을 자랑했다.


엔믹스 'DASH' 퍼포먼스 영상의 한 장면 


일주일 뒤 추상적 ‘이거지’를 다시 한번 끌어낸 노래가 나왔다. NMIXX(엔믹스)의 ‘DASH’였다. ‘두 개 이상의 장르를 한 곡에 섞어 다양한 매력을 전하는 음악’을 뜻하는 ‘믹스팝(Mixx Pop)’은 이들이 2020년 데뷔 당시부터 줄곧 주창해 온 엔믹스 음악의 핵심이었다. 막 데뷔한 그룹의 이름을 장르명으로 치환해 버린 과감함은 예상대로 다수의 대중을 쉽게 설득하기 어려웠다. 너무 많은 것이 섞여 혼란스럽다는 감상이 앞서는 노래 안에 놓인 수십 갈래의 길 위에서 2023년 ‘Love Me Like This’와 ‘Party O'Clock’으로 꼭 필요했던 헤맴을 겪은 이들이 비로소 ‘DASH’라는 뚜렷한 키를 잡았다.

‘꼭 필요했던 헤맴’이라는 마음 편히 말을 할 수 있는 건 ‘DASH’가 그만큼 엔믹스라는 그룹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데 성공한 곡이라서다. 묵직하게 떨어지는 레트로한 베이스 리프 위로 전작들에 비해 심플하고 친숙하게 정리된 곡의 레이어와 멜로디가 돋보인다. 곡을 구성하는 요소가 익숙하게 자리를 잡자, 멤버들이 돋보였다. 곡의 문을 여는 릴리는 ‘I wanna dash’라는 가사를 반복할 뿐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히 자신만이 가진 카리스마와 스웨그를 보여준다. 아는 사람은 아는 뛰어난 보컬이지만 인터넷 밈으로 더 자주 소비되던 해원의 목소리도 시원하게 터진다. 깔끔한 구획 정리 속 설 자리를 잃은 ‘믹스’는 곡 구조로 자리를 옮긴다. 노래는 90년대 힙합이었다가, 세기말 R&B 팝이었다가, 디스토션 잔뜩 걸린 기타 사운드로 어느 시절의 팝 펑크를 거칠게 소환하며 충돌하기도 한다. 혼이 쏙 빠지기 직전,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안락함이 밀려든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이게 케이팝이 가장 잘하던 거였구나.

코로나를 기점으로 해외 시장 비중을 부쩍 높인 케이팝의 지금 대세는 누가 뭐래도 글로벌이다. 자유롭게 탈부착이 가능한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K를 붙였다 떼는 상황에서 관념적 ‘팝’에 가까운 멜로디, 사운드, 감성에 대한 추구도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뉴진스의 성공을 시발점으로 한 케이팝 이지리스닝 붐도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산업의 몸집이 커진 만큼 감당해야 할 영역도 넓어졌고, 도전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게 된 것도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변화다. 거부하기 어려운 대의와 대세의 커다란 물결을 헤치고 SF9 ‘비보라’와 엔믹스의 ‘DASH’가 새해의 문을 열었다. 한때 케이팝의 구태로 불리던 것들이 이제는 색다른 재미가 되었다. 지루할 만하면 새로운 자극을 찾아 눈앞에 던져 놓는, 끝없이 정반합을 반복하며 성장해 온 좌충우돌 케이팝다운 지금이다. 잊고 있던 케이팝 고향의 맛이 겨울 홍시만큼 달다.



추천 기사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 등 각종 온·오프라인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KBS, TBS, EBS, 네이버 NOW 등의 미디어에서 음악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네이버 온스테이지와 EBS 스페이스공감 기획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TBS FM 포크음악 전문방송 <함춘호의 포크송> 메인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한마디로 음악 좋아하고요, 시키는 일 다 합니다.

오늘의 책

수학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엄마표 유아수학 공부

국내 최대 유아수학 커뮤니티 '달콤수학 프로젝트'를 이끄는 꿀쌤의 첫 책! '보고 만지는 경험'과 '엄마의 발문'을 통해 체계적인 유아수학 로드맵을 제시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수학 활동을 따라하다보면 어느새 우리 아이도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나를 바꾸는 사소함의 힘

멈추면 뒤처질 것 같고 열심히 살아도 제자리인 시대. 불안과 번아웃이 일상인 이들에게 사소한 습관으로 회복하는 21가지 방법을 담았다. 100미터 구간을 2-3분 이내로 걷는 마이크로 산책부터 하루 한 장 필사, 독서 등 간단한 습관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내 모습을 느끼시길.

지금이 바로, 경제 교육 골든타임

80만 독자들이 선택한 『돈의 속성』이 어린이들을 위한 경제 금융 동화로 돌아왔다. 돈의 기본적인 ‘쓰임’과 ‘역할’부터 책상 서랍 정리하기, 용돈 기입장 쓰기까지, 어린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로 자연스럽게 올바른 경제관념을 키울 수 있다.

삶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야

저마다 삶의 궤적이 조금씩 다르지만 인간은 비슷한 생애 주기를 거친다. 미숙한 유아동기와 질풍노동의 청년기를 거쳐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하고 늙어간다. 이를 관장하는 건 호르몬. 이 책은 시기별 중요한 호르몬을 설명하고 비만과 우울, 노화에 맞서는 법도 함께 공개한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