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자본과 미학의 관점으로 다시 쓴 『영화의 역사』
『영화의 역사』 김성태 저자 서면 인터뷰
시네마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역사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우리가 훌륭하게 여기는 모든 구조가 들어있지 않은가요? (2024.01.17)
『영화의 역사』는 영화의 역사적 사실만을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영화사를 뒤집어 새롭게 읽어내며 영화에 대한 시선을 확장하고, 기존의 영화사가 왜 그렇게 쓰여야 했는지를 이해함으로써 자신만의 영화사를 구축해나가도록 돕는다. 영화학자 김성태가 새롭게 쓴 영화사는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다’를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더 ‘잘’ 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줄 것이다.
이번에 나온 『영화의 역사』는, 작품으로서의 영화를 연대별로 다룬 많은 책과 달리, 영화가 출현하는 순간부터 시장에 파고들어 대중을 사로잡고 산업을 형성하는 과정, 세계를 장악하는 과정을 그려냈어요. 다른 사람들이 다 작품으로서의 영화를 다룰 때, 선생님은 ‘영화‘의 시간을 다뤘습니다. 영화들보다 영화 자체의 개념에 파고든 계기가 있을까요?
영화들은 각각 클로우즈된 완성품들입니다. 비유한다면 디자인이 완결된 하나의 제품이라는 말이지요. 우리가 그것을 보고 즐기며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당연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개별 작품 하나하나에 매달리면 결국엔 이 영화란 것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인간의 삶, 우리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영화를 창출하고 존속시키는 방법으로서의 영화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언제나 어느 감독, 어느 작품에 대한 찬미만이 가능해질 뿐, 우리와 긴밀하게 대화하는 영화는 점점 멀어지게 되지요. 작품들도 아름답지만, 정작 아름다운 것은 ‘영화’라는 방식이 우리를 새로운 생각들로 이끌고, 새로운 의식들을 낳는다는 사실이지요. 예술에 있어서 우리가 오늘날 잃어버린 것은 바로 이 ‘틀’, 혹은 ‘방법’에 대한 사유입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지나치게 비좁은 작가, 작품에 대한 시시비비, 가치평가에 매달리면서 스스로 사유의 패러다임을 좁히고 있고, 사실 그런 줄도 모르고 거기에 몰두하지요. 지식인이란 바로 그런 문제들을 다시금 원래의 상태로 돌려서 더 넓은 사고를 하도록 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영화의 역사(세계영화사)’는 곧 ‘서양 영화사’와 같은 의미였는데, 『영화의 역사』는 한국 저자로서는 드문 작업입니다. 외국에서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진 영화사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고 인지한 영화사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사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제까지는 서양인이 본 영화사일 테고, 그 사실은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정작 문제는 서양인이고 한국인이고를 떠나서 이미 수십 년 전에 정착한 사고방식, 역사를 판단하고 보는 관점이 이미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프랑스에서 조르쥬 사둘의 영화사를 보면서 의아했던 것이 그것입니다. 1949년의 의식,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5, 60년대의 관점이 지금까지 철저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지요. 우리는 그때와 다른 이들입니다. 그때의 소중함을 받아들이고 사색해야 하지만 그와 다른 토양 위에 서 있으므로 새로운 관점으로 전체를 다시 되돌아봐야겠지요. 그것이 역사를 다시 쓰게 했던 것입니다. 물론 한국인이라는 한정이 이제까지 세계영화사를 쓴다는 지점으로 이끌지 않고 있는 환경도 의아했습니다. 기존의 책들은 역사적 고찰을 다루기엔 좀 부족한 면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저는 한국 혹은 아시아의 누구라도 깊이 있게 공부하고 사색한다면 얼마든지 세상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고 여겼고, 부족하지만 이 책은 그 시도입니다. 이 책 자체의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그런 새로운 작업으로 이끌려는 목적입니다. 우리가 세계를 재해석 할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저는 가능하다면 프랑스어로도 이 책을 내고 싶습니다. 대단하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시각에 대한 논의는 줄 수 있다고 여기니까요.
『영화의 역사』를 알고 영화를 만들고 보는 것과, 모르고서 영화를 대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영화학도나 영화애호가, 일반 대중들이 ‘영화’사를 꼭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무조건 시네마를 알아야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시네마가 필름들을 가능케 했습니다. 예를 들도록 하지요. 여러분이 시네마를 모른다면, 새로운 작품을 볼 때, 그것을 어떻게 보고, 무엇을 말하며, 평가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게 됩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가능하지만, 간혹, 독특한 작품들이 이제까지의 필름들을 논한 언표를 부정하곤 하지요. 실제 있었던 일인데, 아주 오래전 지금은 사라진 서울의 할리우드 극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독특한 예술영화 시사회였는데(일단 예술영화라 칭합시다) 엄청 화제를 모은 영화여서 평론가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끝나고 근처 다방에 모였는데, 저마다 그 영화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아요. 무엇을 말해야 할까를 궁리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필름들을, 그것도 자신의 기호 아래 드는 작품들을 자신의 지식구조대로 이해해왔구나. 그러니, 필름을 통해 말을 건네는 시네마의 방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요. 시네마를 안다면 어떤 작품이든, 즐기는 가운데, 모든 것을 파악하게 됩니다. 진짜입니다. 즐기면서도 그 이미지가 지니는 의미와 가치, 형편없지만 재밌음 등등을 죄다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 시네마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역사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우리가 훌륭하게 여기는 모든 구조가 들어있지 않은가요? 훌륭한 감독은 그저 영화를 잘 만든 이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필름을 잘 만들기 위해 먼저 손에 쥐고 있는 도구인 영화를 잘 이해하려 애를 쓴 자입니다. 만일 그러한 감독이 되고자 한다면 따라서 그 감독처럼 도구를 이해해야 하는 거지요.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세상에 없는 문제를 발굴하고 새로운 안목을 개진하는 학자로서의 본분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자로서 견해를 밝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면서 또 각오가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이야기로서의 영화들을 다루느라 우리가 놓치고 있던 ‘영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영화나 연기를 예술이라 인지하는 것은 꽤 당연하고 오래된 사실인데요. 저도 당연히 영화가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영화는 과연 무엇일까요?
예술과 오락, 상품이라는 상충하는 가치 속에서 선생님의 창작활동은 어디에 속하나요? 치열한 고민도 했을 것 같고요.
영화를 예술이라 하는 것에 딱히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저는 ‘예술’이라는 개념으로만 영화를 묶어버리는 것에 불편했을 따름이지요. 제가 프랑스에서 깨닫게 된 영화는 한갓(일부러 이 표현을 쓰곤 하는데 그만큼 다른 면을 중요하게 부각하려는 의도입니다) 작품으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저도 필름이 지니는 완성도에 끌려다니던 사람이었지만 시네마에 관한 생각을 하고 나자 더 깊은 이해를 지니게 되었거든요. 시네마는 우리의 도구입니다. 고다르는 멋지게 그런 말을 했지요. 딱 그다운 표현인데, 영화는 생각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고다르가 진짜 영화의 가치를 치장하려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 진의는 영화는 우리 인간에게 말을 하는 도구이고, 따라서 대상을 두고 생각하며, 따져보는 도구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 의식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그중의 한 표현 방법이 극장에서 보는 영화들이고요. 지금 우리를 에워싼 것들을 생각해보세요. tv? 움직이는 이미지입니다. 인터넷? 역시 움직이는 이미지들로 채워집니다. 달리 말해볼까요? tv? 시네마입니다. 인터넷, 역시 시네마입니다. 시네마라는 영화는 그러니까, 이 모든 현대의 문명을 만들어낸 질료의 밭인 셈이지요. 이것이야말로 영화의 가장 중요한 의의임을 밝히고 이해시키고 싶었습니다.
저는 사실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생각해본 일이 없어요. 우연히 시나리오 쓰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시나리오를 쓰는 일은 이론서를 쓰는 일과 마찬가지로 제게는 그저 즐거운 습관이지요. 갑자기 시작되었죠. 독립영화, 상업영화 가리지 않고 글을 쓰면서 저의 이론적 가치나 제 관점과 다른 작업이 있어도 별 상관하지 않습니다. 창작은 그런 일이니까요. 그러니까 이 두 가지 일을 생각한다면 저는 이중인격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작으로 이론에서 깨달은 것들을 주장하려는 생각도 없고, 그것은 그것대로, 이것은 이것대로 가는 것이지요. 창작은 의식의 장애가 없어야 하니까요. 오히려 이론을 통해서 영화를 잘 깨닫고 있는 점이 창작에 엄청나게 도움을 줍니다. 장면과 사건들이 한 편의 영화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습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수도 없이 본 수많은 영화가 머릿속, 가슴 속에 쌓여있으니까요. 물론, 전적으로 상업적인 것은 잘 못 씁니다.
학자로서 공부하며 동시에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꾸준히 시나리오 작업도 해오셨어요. 영화적인 삶을 살고 계십니다. 이번에 개봉된 <서울의 봄>에도 참여하셨고요. 이론가로서 영화에 대한 남다른 관점이 있는 만큼, 현장 활동에서의 에피소드, 인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까요?
운 좋게도 장률 감독이라는 좋은 감독을 만난 것 자체가 특별한 인연이었습니다. 장률 감독님의 ‘망종’을 제작한 분이 제 친구였는데, 그 영화를 보는 순간 장률 감독에게 반했었습니다. 정말 잘 만든 영화니까요. 그래서 그분을 뵙고 친하게 되었는데, 아주 우연히 제가 쓴 ‘이리’ 이야기를 해드렸어요. 그게 함께 영화를 하게 된 인연이 되었지요. 변혁 감독과는 프랑스에서부터 친구인데, 제가 창작을 한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저는 주업이 이론이라고 여기지, 시나리오 작가로 스스로를 생각해본 일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변혁 감독이 나중에 제가 시나리오도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처음으로 상업영화를 맡게 된 것입니다.
이후에 같은 영화사에서 생각지도 않게 ‘천문’을 의뢰해왔고, 그때에서야 제가 본격적으로 상업영화를 하게 된 것입니다. <서울의 봄>은 제게도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온 이로써,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니까요. 하이브 미디어코프 대표님께서 연락을 주셨는데, ‘1212’를 다뤄보고 싶은데 써보지 않겠냐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기획하고, 스스로 쓴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 시대를 고발하는 것을 쓰는 일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시대에 대해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쓸 생각 자체를 안 할 정도로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불쑥 제게 그것에 관해 써보자는 의뢰가 들어온 겁니다. 그러니 정말 행운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 내가, 우리 친구들과 살았던 그 시대를 말할 기회를 얻었구나, 생각지도 않게 시대에 대한 채무를 이행할 기회가 주어졌다고나 할까요? 영화의 완성도 여부를 떠나, 시사회에서 만들어진 것을 보았을 때, 그 저만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시대를 함께 지나왔던 많은 이들 생각이 나더군요.
참고로 시나리오 창작과 관련해서 말씀드리자면 시나리오 작가는 이야기를 만들고 개발하는 존재라면, 제작자나 감독은 그것을 실제 작품으로 현실화시키는 존재지요. 시나리오는 그들에게 영감을 주는 밑그림입니다. 간혹 만들어진 영화에 대한 아쉬움은 있겠지만 그것은 시나리오를, 그러니까 이야기를 생각한 사람으로서 갖는 개인적인 아쉬움일 뿐입니다. 영화는 감독이 만듭니다. 따라서 그가 어떤 변화를 주든 전혀 개의치 않으며 큰 불만 또한 없습니다. 영화 제작의 메커니즘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만일 자신이 고안한 이야기가 중요하다면 그만큼 감독을 설득해야지, 그가 변화를 주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을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사실, 이론가로서 저처럼 독립영화, 상업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은 드물 거 같아요. 하지만 그 희소성이 저를 즐겁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영화에 온갖 방식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즐거움이지요. 독립영화에 배우로 참여한 일도 있습니다. 영화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두루 관여했다는 점은 진짜 신기한 즐거움입니다.
계약하고 쓰는 시나리오 말고요.
『영화의 역사』는 19세기 영화의 출현부터 유성영화가 등장하던 1927년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어요. 물론 무성영화 시대를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영화의 본질, 그 의미를 탐색하기 위해 그 시간으로 돌아갔다면 이제 그 이후로 풀어낼 ‘역사’가 많이 남은 셈이에요. 책에서 앞으로 두 권 정도를 더 쓰실 예정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시대를 구분하신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나올 『영화의 역사2』에 대해서 짧게 소개해 주세요.
2권은 사운드가 나타난 이후부터 80년대까지를 다룹니다. 글쎄요. 너무나 분량이 많아지면 여기도 분권이 되겠지만, 그것은 아마도 60년대를 쓰면서 결정이 날 거예요. 50년대까지 이미 2백여 페이지인데, 60년대가 정말 할 말이 다양하고 많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1927년 이후의 영화 역사적 패러다임은 대략 세 부분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운드가 있는 상태의 영화들을 영화라고 부르지요. 그 이전의 무성인 상태를 특별히 무성영화라 부르고요. 말인즉슨, 이제 우리에게 영화는 사운드가 당연하게 간섭한 상태를 지칭한다는 말입니다. 바로 1927년 이후의 첫 번째 중요한 줄기는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영화라는 개념을 형성한 시기입니다. 대략 2차 세계대전 전까지인데, 이 시기에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의 할리우드 클래식과 일반적인 클래식이 성립되지요. 사실, 할리우드 클래식은 20년대를 거치면서 개념상 이미 형성되었지만, 그 특색을 완벽하게 드러내는 데는 사운드가 필요했습니다. 당시에는 누구도 사운드의 필요성 자체를 못 느꼈죠. 우연하게 나타나고 나서, 영화들에 입혀지면서 사운드의 역할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지요. 단지 들을 거리가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이전까지 이해하고 있던 서술 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끌어냈습니다. 이전까지 행동이 가장 핵심적인 서술이고 이미지의 구성이 의미의 집약이었다면, 행동은 말 뒤로 물러나 과도한 책임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서술의 방식이 달라질 것은 따라서 당연합니다. 게다가 영화 전체에 있어서 ‘드라마’가 서술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도 이 변화의 한 축입니다. 그전까지 드라마는 가급적 비사실적일 수밖에 없었거든요. 인간관계의 과정을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 없었으니 그것이 서술의 부분에서 중심부일 수는 없었지요. 아무튼, 이전과 비교하면 단순히 소리가 없다, 있다가 아닌, 그 때문에 서술의 맥락, 구조, 대상이 바뀝니다. 결국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영화의 얼개가 되었고요. 이 서술형식이 정착되고, 그 즐거움이 극대화되는 과정이 즉, 1950년대까지의 영화계입니다. 그런데, 1940년대가 여기 아주 특이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영화를 하나의 문화이면서, 예술, 나아가 중요한 의식의 표현으로 고찰해가는 동시에, 그 결과로 빚어진 앞서 말한 즐거움의 극대화가 지닌 부정적인 측면들이 새로운 세대에 의해서 반추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우리가 과거의 영화사에서 현대영화라 이름 지은 부분, 네, 그것이 두 번째 줄기가 됩니다. 하지만 현대영화라는 이 개념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침소봉대된 것들을 덜어내는 작업이 필수지요. 게다가 처음으로 영화를 개념적으로 고찰한 사건이기에, 예술에서 하나의 개념이 탄생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와 영향력을 지녔는지 파악해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시기입니다. 현대영화는 오늘날 사람들이 즐겨 익숙하게 보는 형식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영화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는 바로 오늘날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화의 여러 의미들을 가능케 한 아주 중요한 출현입니다. 말하자면 현대영화라는 개념은 결국에는 클래식에 영향을 주어서, 그것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는데, 정작 이 개념을 추인한 누벨바그보다도 뉴저먼 시네마, 뉴 아메리칸 시네마가 그 혜택을 보았습니다. 물론, 저는 이 명칭도 지울 생각이지만요. 당시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영미권의 평론가들이 경박하게 틀을 짜려 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영화에 대한 인식에서는 독일이나 미국에서 현대영화의 영향력을 받았지만, 실제 그들의 영화에게는 거의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화라는 덩어리로서 현대영화는 단지 기법이 아니거든요. 이후로 6, 70년대는 정말이지 영화에서 행복한 시기였습니다. 가만히 역사적 맥락을 보면, 상업영화들 안에서 그만큼 진지한 문제들이 재미있게 다뤄졌던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형제작물들에서조차 주제는 분명했고, 항상 인간이 다뤄졌습니다. 그런 면모가 80년대 후반부로 가면서 서서히 사그라들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갑자기 영화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완벽하게 자신이 고민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조건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70년대 후반이 그 시작이었지요. 77년, 스타워즈, 78년, 수퍼맨, 이 두 영화가 모든 것을 바꾸어버렸습니다.
CG의 시작인데, 사실상 더 이상 특수효과가 아니라 영화의 일반적 공정이 됩니다. 그렇게 디지털이 이미 침투한 것입니다. 디지털, 그 투입의 가장 큰 특징은 영화가 이제까지 지니고 있던 질료와 결별했다는 점입니다. 영화의 질료는 물질적인 세계였습니다. 그런데 디지털은 물질을 벗어나는 지점이지요. 이후는 어떤가요? 물질의 세상에서 이야기가 건져지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식 속에서 건져지고, 즉, 추상에서 시작하고, 추상적으로(디지털) 완성됩니다. 이 때문에, 영화들은 더 흥미진진 해졌지만, 정체로부터 더 멀어지게 되지요. 이것이 세 번째 줄기입니다. 이 줄기에 대한 마감, 지금 생각은 1989년으로 마치려 합니다. 그 해가 진짜 특별해서가 아니라 상징적인데, 그때 까이예 뒤 시네마의 특집호 제목 때문입니다. 영화의 죽음과 관련된 주제였지요. 진짜 영화가 죽는다는 말은 아니지만, 아무튼 한 세기의 의식이 마감되는 지점이기는 하니까요.
시간이 흐르는 한, 우리는 죽더라도 영화는 여태 했던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텐데요. 영화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어떤 영화를 꿈꾸시나요?
글쎄, 이점에 대해서는 저는 별로 나서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 생각이 있지만, 영화가 가는 길을 간섭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과거가 더 나은 면도 있고, 미래가 더 나은 면도 있고, 과거와 미래의 비교는 사실 별로 유용한 것이 아니거든요. 미래를 보기 위해서 역사를 캐지는 않습니다. 현재에 중요한 어떤 것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과거를 볼 뿐이지요. 미래는 학자나 감독이 만들지 않습니다. 미래는 언제나 사람들이 만들어가지요. 만일 미래에 대한 우려가 있다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영화가 어때야 한다고 떠들기보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태도와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 거지요. 하나는 예측해보겠습니다만, 이대로 가면 한국의 영화는 정말이지 별 볼 일 없어질 겁니다. 재미있게 만들고, 그 수준에서 완성도를 키워가고 있지만, 생각해보세요. 그런 것은 언제라도 다른 것에 의해서 대체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과연 지금 한국 영화에게, 한국의 문화에게, 대체될 수 없는 깊은 지점이 있을까요? 시장과 소비의식이 그것을 점점 더 힘들게 하고 있어서 염려입니다. 발전은 하겠지만, 산업과 시장의 발전에 발맞추는 데서 끝나버릴 우려가 있습니다.
어떤 영화를 꿈꾸는가는 글쎄, 추상적이긴 하겠지만, 언제나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우리가 놓친 것들에 대해 말하고, 우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 더 나을 수 있는 것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제가 쓰는 이야기니까요. 아, 계약해서 쓰는 시나리오 말고요.
*김성태 영화학자. 프랑스 파리 3대학 영화학과 박사. 12년간 대학원부터 박사 과정까지 리용 2대학과 파리 3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자크 오몽 교수의 지도하에 장-뤽 고다르 연구(Le Cinema de JEAN-LUC GODARD, 1999)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씨네21, 필름2.0 등에 글을 쓰고, KBS 미디어를 통해 다수의 프랑스 영화를 번역했다. 지금까지 중앙대, 한예종, 서강대 영상대학원 등에서 학생들과 만났고 현재 성균관대에 출강하고 있다. 영화 연구뿐 아니라 영화 <상류사회>, <이리>, <검은 갈매기>의 시나리오를 썼으며, <천문>의 시나리오 각색, <서울의 봄> 원안 작업에 참여하며 창작활동 또한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세계영화사 강의』(공저, 연세대 출판부, 2001), 『필름 컬쳐 5(알랭 레네)』(공저, 한나래, 1999), 『네 정신에 새로운 창을 열어라』(공저, 민음사, 2002), 『영화-존재의 이해를 위하여』(은행나무, 2003 / 전자책, 불란서책방, 2023)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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