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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을 꾸준히 ‘파는 사람들(Digger)’ : SM A&R팀
SM A&R팀
딱히 장르가 아닌데도 기획사의 이름이 붙어 마치 업계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는 단어는 SMP밖에 없다. (2024.01.10)
새해 벽두부터 쏟아져 내리는 새 케이팝을 확인하다 노래 하나에 무심코 반복 버튼을 눌렀다. 샤이니 민호의 신곡 ‘Stay for a night’이었다. 느긋한 기타 리프를 중심으로 포근한 로우파이 감성을 건드리는 노래는 요즘 유행한다는 ‘나만의 Ditto’ 자리를 기꺼이 넘볼만한 준수한 겨울 넘버였다. 민호의 중저음 목소리와 자연스럽게 발을 맞추며 흐르는 리듬과 멜로디를 듣다가 이건 보통 꾼들의 솜씨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크레딧을 확인했다. 역시, 익숙한 이름들이 있었다. 넘치는 그루브로 흑인 음악 신을 경계 없이 종횡무진하고 있는 따마(THAMA) 그리고 프로듀서 그루비룸 레이블의 첫 아티스트로 감각적인 R&B를 선보이고 있는 제미나이(GEMINI)였다. 두 사람은 최근 한국 장르 음악 신에서 주목받고 있는 대표적인 이들이다.
음악을 듣자마자 부랴부랴 크레딧을 살펴 본 조합이 또 하나 있다. 지난해 첫 솔로 정규 앨범 <Sensory Flows>와 스페셜 앨범 [Floral Sense], EP [Unfading]까지 국내에서 앨범 단위만 세 장을 발표한 슈퍼주니어 예성이다. ‘아는 만큼 들리는 케이팝’이라는 칼럼을 통해 소개한 것처럼, 이 모두는 예성의 솔로 앨범이자 김다니엘의 합작이라 해도 좋을 작업이었다. 김다니엘은 밴드 웨이브 투 어스에서 보컬과 기타를 담당하는 핵심 멤버다. 최근 국경을 넘어선 마니아를 놀라운 속도로 늘려 나가고 있는 밴드의 음악적 방향성은 예성이 최근작에서 들려준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로우파이하고 낭만적인, 재즈와 R&B의 질감을 중심축으로 한없이 부드럽게 흘러가는 인디 팝.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젊은 층이 폭넓게 사랑하고 있는 대표 장르다. 공교롭게도 민호와 예성은 기획사가 같다. 바로 SM엔터테인먼트다.
SM엔터테인먼트의 음악은 흔히 SMP와 동일한 취급을 받는다. ‘SM Performance’를 줄였을 뿐인 단어 SMP의 정의는 어렵지 않다. 오히려 요즘 유행하는 어떤 신생 장르보다 쉽고 간단하게 구분할 수 있다. H.O.T.의 ‘전사의 후예’에서 에스파의 ‘DRAMA’까지 수십 년째 이어지는 강렬하고 파괴적이며 늘 어딘가의 누군가에 늘 크게 화가 나 있는 음악. 딱히 장르가 아닌데도 기획사의 이름이 붙어 마치 업계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는 단어는 SMP밖에 없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게 하나 있다. SM은 신에서 자생한 국내 젊은 음악가를 다양한 방식으로 섭외하고 활용해 온 대표적인 기획사라는 점이다.
최초 발생지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신에서 자생한’, ‘젊은 음악가’의 기준도 모호하다. 다만 케이팝과 한국 인디 음악을 두루두루 들어온 이라면 ‘이 사람이 이 앨범에?!’하고 놀란 경험이 적어도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뚜렷한 기억은 2011년 f(x)의 첫 정규 앨범 [피노키오]에서 페퍼톤스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였다. 당시만 해도 앨범 소개글 기준 ‘홍대 신의 인기 밴드’로 소개된 페퍼톤스의 신재평은 수록곡 ‘Stand up!’의 작사와 작곡을 맡았다. 특유의 아기자기하면서 장난스러운, 시원한 청춘의 결이 잘 맞아떨어진 좋은 만남이었다.
이제는 SM 작곡가 가운데 주요 라인업이 된 디즈(DEEZ)가 솔로 앨범 <Envy Me>(2009)와 [Get Real](2010)을 연속으로 발매하며 한국 R&B 신에 파란을 불러일으켰던 때가 생생하다. 한국 퓨쳐 베이스 계의 기린아로 떠오르던 임레이(IMLAY)나 완성도와 센스 두 마리 토끼를 너끈히 잡은 뉴트로의 아이콘 박문치의 이름을 가장 자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SM의 크레딧이었다. SM STATION과 NCT127의 노래에서 250의 이름을 기억해 둔 덕에 뉴진스 앨범에서 발견한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을 수 있었다.
이 모두는 부지런히 한국 음악 신을 모니터링하며 좋은 창작자를 찾아온 SM A&R 팀의 공이다. 덕분에 매해 한국 대중음악의 일부가 녹아든 역동적인 케이팝을 꾸준히 들을 수 있었다. 무수한 타 케이팝 기획사의 크레딧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그곳에서 또 재미있는 흐름을 많이 찾았다. ‘평론가들이 유독 SM 음악을 좋아한다’라는 유구한 오해의 일부도 어쩌면 이런 숨겨진 이들의 노력 덕이 클 것이다. 지난해 본의 아니게 많은 이들 입에 오르내린 ‘SM 레거시(Legacy)‘라는 단어에는 해당 팀을 스쳐 지나간 무수한 이들의 시간이 녹아 있었다. 지난 연말 빌보드가 선정한 ‘2023년 최고의 K팝 앨범’에 샤이니 온유의 <Circle>이 1위를 차지한 것도 그런 일관된 흐름이 낳은 좋은 성과다. 십수 명이 넘는 다수 및 해외 작곡가를 중심으로 한 창작이 너무나 당연해진 요즘, 공연히 오랜 기억을 한 번 끄집어내 보았다. 그 와중에 새로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2024년 에스파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을 다시 부르게 하는 말도 안 되는 과감함이라니, 긍정이든 부정이든 정말이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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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