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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현, ‘웹 시집’이라는 펑크

『현 가의 몰락』(The Fall of the Hyuns) 계미현 시인 서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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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며 저의 질문은 늘 이것이에요. 너는 놀 수 있을까? 너는 일할 수 있을까? 나는 너와 함께 노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그렇게 관계 속으로 들어가요. 공부가 끝나지 않는 한 계속 시를 쓸 것 같아요. (2024.1.10)

© 우에타 지로


계미현의 첫 시집 『현 가의 몰락』(The Fall of the Hyuns)은 국내 최초 웹 시집이다. 하지만 이 한 줄로 시집의 특별함을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 가의 몰락』은 읽는 사람에게 계속 몸을 바꾸기를 요청하는 시집이다. 전통적인 시에서 인간의 감정을 빗대는 대상이었던 동물들은, 계미현의 세계에서 시의 주체가 된다. 은주, 민주, 경희 등 고유의 이름을 가진 개미들은 “나는 개미 이름만 부름. 인간 이름은 안 부름”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취약한 존재들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기도 한다. “시를 쓸 때 아시아인의 정체성을 잊지 않는다”고 밝힌 시인은 한글시와 더불어, 공민의 번역시를 배치했다. 독자들은 언어를 넘나들고, 경계를 넘나들며, 게임처럼 이 공간을 탐사할 수 있다. 웹 시집을 내기까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계미현 시인에게 물었다.

시집 링크: thefallofthehyuns.net


 

웹 형태의 시집을 구상한 과정이 궁금했습니다.

등단을 목표로 시를 쓴 적이 없었어요. 등단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해당 제도에서 동의할 수 없는 지점들이 있었어요. 이를 테면, 등단을 하기 전에는 ‘습작생’이고, 등단을 한 순간부터 ‘시인’이 된다든가 하는 거요. 저의 정체성을 타인이 규정 짓게 내버려 두는 건 제가 쓰는 시와도 전혀 맞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시를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줄곧 제가 시인이라고 여겨 왔거든요. 제도 밖에서 삶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은 늘 저에게 중요한 과제에요. 시 쓰기도 그중 하나일 뿐이죠.

비등단 작가가 활동하는 길이 여럿 생겨나고 있지만, 저는 또 새로운 길을 만들어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게 웹이 된 것이고요. 저는 평소에 웹진을 자주 챙겨보는데요. 어느 날 사과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웹진을 읽다가 문득 ‘왜 웹 시집은 없지?’라는 질문을 하게 됐어요. 웹진에서도 시보다는 소설과 에세이의 비중이 큰 게 늘 아쉬웠거든요. 사과 샌드위치를 먹다 말고 번역가 공민에게 전화해서 말했죠. 우리 웹 시집을 만들 거라고. 되게 재밌을 거라고.

전통적인 책으로는 종이를 손으로 넘기는 행위가, 웹시집 안에서는 이미지를 클릭하고 페이지들을 돌아다니는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이번 웹 시집의 개발 영역을 포함한 전반적인 기획/디렉팅을 맡으셨는데요. 어떤 것을 고려하며 이 공간을 만드셨나요? 

시집이 꼭 게임 같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만들었어요. 번역가이자 공동 편집자인 공민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공민은 게임 번역가이고,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걸 넘어서 자신만의 유의미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에요. 공민은 저에게 아름다운 게임을 많이 소개해주는데, 그중 <아이작의 번제(Binding of Isaac)>이라는 인디 게임이 있어요. 저는 기차에서 이 게임을 처음 플레이해보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울었어요. 그만큼 거칠고 우울한데 위로와 영감을 주는 게임이에요. 제 시집도 누군가에게 그런 경험이 되었으면 했어요. 디자이너이자 개발자인 태희와의 첫 미팅에서도 이 점을 거듭 강조했고요. 태희는 제 의도를 바로 이해하고, 저보다도 더 과감하게 접근해주었어요.

동시에 종이 시집을 읽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주려고 노력했어요. 아이러니로 들릴 수는 있지만, 웹 시집을 만들며 10개가 넘는 국내외 출판사의 종이 시집들을 참고했어요. 출판사마다 시집의 구성, 서체, 디자인이 다르잖아요. 특히 구성 면에서, 종이 시집의 어떤 것을 가져오거나 가져오지 않을지 고민했던 것 같아요.

계미현의 한글시와 공민의 번역시가 나란히 배치되었습니다. 두 언어를 오가며 읽는 경험 자체가 언어의 경계와 독자의 범위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는데요. 번역을 의뢰하신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저의 중요한 정체성 중에 하나는 아시아인이라는 거예요. 제가 아시아인이라는 점을 견지하며 시를 쓰려고 노력해요. 표제작 「현 가의 몰락」에는 49개의 이름이 등장하는데요. 누가 봐도 한국 이름으로 읽힐 수 있도록 이름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제가 시로 초대하고 싶은 이름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는 개미들이 아니라 지금을 살고 있는 한국의 개미들이니까요. 그들이 구사하는 한국어가 다양한 언어권에서 어떻게 읽힐지를 기대하며 썼어요. 특히 영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문화권에서 읽혔으면 하는 바람에 한영 번역을 의뢰하게 되었습니다.

시집의 번역은 ‘번역이 창작’임을 일깨워줄 정도로, 수많은 고민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고유명사를 지칭하는 대명사나 혐오 표현의 번역 등 번역 과정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궁금합니다. 

공민이 번역가의 말 「일곱 노트」에도 썼듯이, 한글은 여성명사와 남성명사를 사용하지 않고도 의미를 전달합니다. 반면에 영어는 she/her 또는 he/him 대명사를 사용해야 하고, 비인간은 it을 사용하죠. 공민은 시집에 등장하는 개미들의 젠더를 자신이 지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보류의 의미로 논바이너리(nonbinary) 대명사인 they/them을 사용했어요.

혐오 표현의 번역에 관해서는 재밌는 일화가 있어요. 공민은 평소에 흔한 비속어조차 사용하지 않는 사람인데요. 카페에서 「승은의 인사」 번역을 하는데 “맘충” “똥꼬충” 같은 단어가 화면에 너무 크게 떠서 곤란했대요. “똥꼬충” 번역에 관해서 특히 고민이 많았다고 들었는데요. 최종적으로 선택된 “Faggot-bug”는 정말 훌륭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이 모든 과정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어요. 대신 공민이 번역본을 보여주면 독자로서 그저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현 가의 몰락」은 독특한 부고입니다. 동물권 활동가로 활동하시면서 ‘죽음’을 바라본 경험이 이 시를 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그 이야기가 더 듣고 싶었고, 인간 이외의 존재(개미)의 죽음을 시로 쓴다는 것은 어떤 시도였는지도 궁금합니다. 

동물권 활동가로서 직면했던 죽음을 짧은 인터뷰 지면에서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제가 본 장면들은 인간에 의한 살해 현장이었으니까요. 그것을 ‘경험’이나 ‘계기’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인간의 죽음과 다르지 않은 죽음이었습니다.

「현 가의 몰락」에 등장하는 개미 존재들 각각의 비하인드 파일이 있다고요. 시집 전체에서 이름들이 그저 언급이 아니라, 존재감을 갖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 이름들은 개미의 이름이자 여성을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인간과 부계만이 이름을 얻는 이 세계를 뒤집은 듯한 시 속 세계를 만든 비하인드가 궁금했습니다. 

현 씨 성을 지닌 49명의 개미는 가상의 존재들이지만, 이 시집이 쓰여지기 전에 이미 살아가고 있었다고 느낍니다. 그렇기에 이 시집에 실린 시들 역시 제가 첫 문장을 쓰기 전에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고도 느낍니다. 단 몇 편의 시로 말하기엔 그들의 삶이 제 안에서 너무 크게 웅성거려서 시가 아닌 글로도 그들의 삶을 받아 적었어야 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비하인드 파일이에요.

개미 사회는 여왕과 그 딸들이 주로 활개치고 다니는 모계사회입니다. 이는 꿀벌 사회도 마찬가지이지요. 벌목(Hymenoptera)의 특징을 시에서도 반영하다 보니 지정 성별 여성의 이름을 많이 사용했어요. 하지만 개미들이 여자 이름을 가졌다고 해서 전부 여자인 것은 아닙니다.

‘맘충’, ‘똥꼬충’ 등 ‘충’이 들어가는 말이 혐오표현으로 쓰이잖아요. 작가님은 곤충을 너무 좋아하기에 이 표현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고 하셨어요. 「승은의 인사」에서 시적 화자가 자신을 ‘맘충’, ‘똥꼬충’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요. 

저는 처음에 ‘맘충’이 나쁜 말이라는 게 잘 와닿지 않았어요. 저에겐 엄마도 좋은 거고, 곤충도 좋은 거라서요. ‘충’이 들어가는 말에서 곤충은 언제나 불쾌한 비유로 사용되는 데에 그치죠. 해당 표현을 비판하는 사람들조차도 곤충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이 말들을 곤충의 입, 승은의 입으로 직접 뱉게 해보고 싶었습니다. 같은 말도 누가 뱉느냐에 따라 다르게 들리잖아요. 승은은 개미이고, 엄마이고, 퀴어인 동물이에요. 승은은 자칫 충돌할 수도 있는 여러 정체성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데, 저는 승은의 그런 태도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져요.


© 우에타 지로


시 형태의 실험을 지켜보는 것도 큰 재미였습니다. 유전자의 계통도나 번역기, 점이나 이미지로 된 시들이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출근길」은 개미의 행렬(혹은 눌려 죽은 개미들)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시인님은 이 시들을 쓰실 때 어떤 재미를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실제 개미들을 관찰해보면, 일렬로 줄지어 다닙니다. 「출근길」에 나타난 것처럼 직선을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요. 앞서 가는 동료가 남긴 페로몬을 쫓아가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개미들의 모습을 설명하지 않고 그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제 머릿속에 떠오른 그림을 동료들과 함께 컴퓨터 화면 위에 구현해내는 과정이 재밌었어요. 「출근길」은 동료들을 유난히 괴롭혔던 시이기도 한데요. 개발자 태희는 “이 시의 코딩은 거의 불가능하다”라고, 번역가 공민은 “이 시의 작업 난이도는 한마디로 극악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저와 동료들 역시 개미들처럼 서로에게 건네는 힌트에 의지하며 작업했던 것 같습니다.

“시를 쓸 때마다 다른 몸이 된다”(류한경 『가장 밝은 검정으로』 수록 인터뷰 중)고 하신 적이 있어요. 시인님께 시쓰기는 어떤 행위인지, 앞으로 어떤 시를 써나가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저의 시 쓰기는 주로 동물을 공부하다가 그들의 삶이 나의 삶과 너무 같거나 달라서 감탄하다가…… 무언가를 쓰고 그것이 시라고 믿는 과정입니다. 『현 가의 몰락』(The Fall of the Hyuns)는 개미라는 하나의 종 그리고 그 종에 속한 개별 유기체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나오게 된 결과물이에요. 한 명 한 명 떠올리며 이름을 지어주고 그 이름이 한 말과 몸짓을 따라가며 정말 그 이름을 가진 몸이 될 수 있었고 그것이 저에게는 애도였습니다. 이 시집을 쓰며 애도는 곧 공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공부를 하며 저의 질문은 늘 이것이에요. 너는 놀 수 있을까? 너는 일할 수 있을까? 나는 너와 함께 노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그렇게 관계 속으로 들어가요. 공부가 끝나지 않는 한 계속 시를 쓸 것 같아요. 어떤 시를 써야겠다 이런 건 없고 그냥 매일 쓰고 싶어요. 다행히도 현재로서 저의 공부는 매우 초기 단계에 있고 끝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기사의 제목은 시집 내 번역가 소제의 리뷰에서 빌려온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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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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