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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완선의 살다보니 SF] 책을 또 샀어? 미친 거 아냐?
책을 쌓아둔다고 곧 서재가 되지는 않는다
사실 얼마 전에 책장이 꽉 찼다. 정확히는, ‘새로 생긴 책 & 당장 읽을 책’을 꽂아두는 두 칸이 완전히 차버렸다. 나는 위기감을 느끼고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책 좀 그만 사, 미친 거 아냐?'
심완선 SF 칼럼니스트가 일상에서 벗어난 딴생각을 풀어내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격주 화요일 연재. |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 갑자기 질문이 올라왔다. “다들 집에 책 몇 권 있어요?” 질문자는 책에 대한 팟캐스트 ‘페어북’을 진행하고 있는 정한새였는데, 문득 남들의 책장 사정이 궁금해졌다고 했다. 나는 허허로이 웃으면서 메시지를 올렸다. “많아요…….” 나로선 상당히 솔직하고 성실하게 답한 말이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책을 많이 갖고 있다. 인정하기 싫으니까 나를 채찍질하는 마음으로 두 번 써야겠다. 나는, 책이, 많다.
대체 몇 권이길래? 한새는 내게 더욱 정확한 답을 요구했다. 추정치라도 좋다는 거였다. 마침 나는 본가에 머무르는 중이었다. 당장 가까이 있는 책장을 확인했다. 일일이 권수를 세어보긴 부담스러우니 페르미 추정을 활용하기로 했다. 원자폭탄의 설계자로 불리는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여러 곳에 자기 이름을 남겼다. 통계역학, 이론물리학, 실험물리학, 입자물리학, 그리고 면접 질문. 페르미 추정은 복잡한 계산을 여러 부분으로 쪼개 간단하게 어림하는 방법이다. 이를 활용하면 면접관이 “심완선의 책장에 책이 총 몇 권 있는가?” 같은 어려운 질문을 하더라도 자신만만하게 답변할 수 있다. 우선 책장 한 칸에 약 30권 정도 꽂혀 있다고 가정하자. 책장은 하나당 15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책장이 6개 있다. 그렇다면 30 × 15 × 6 = 2,700, 책은 약 2천 권 있다. 나는 이런 계산 내용을 책장 사진과 함께 메시지로 전송했다. 그랬더니 답변이 돌아왔다. “한 칸에 30권이 아니라 50권이 있는데요?”
지금은 바닥에 책기둥이 3개쯤 쌓여 있다. 정리하려고 꺼내두었는데 아직 버리지도 팔지도 못했다. 만화책은 상자에 한가득 담아 봉해두었다. 몇 상자인지는 잊어버렸다. 책이 몇 권인지는 답하기가 솔직히 불가능한 질문이었다. 나는 절대로 정답을 모른다. 저 추정치도 터무니없다. 한 사람이 책을 4천 권씩 갖고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럴 수는 없다. 아무리 가족 중에서 나만 책을 구매하는 사람이라 본가의 책장을 모조리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책을 삼중 사중으로 빽빽하게 꽂아두었다고 해도, 작가가 된 후로 사는 책과 받는 책이 훌쩍 늘었다고 해도, 사람이 양심이 있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과 공간을 책에 내어준단 말인가. 어떻게… 아니, 대체 어떻게…?
사실 얼마 전에 책장이 꽉 찼다. 정확히는, ‘새로 생긴 책 & 당장 읽을 책’을 꽂아두는 두 칸이 완전히 차버렸다. 나는 위기감을 느끼고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책 좀 그만 사, 미친 거 아냐?’ 마침 나는 「미쳤지, 미쳤어」라는 에세이를 쓴 적이 있다. 클라이브 제임스가 쓴 『죽음을 이기는 독서』에 나오는 구절에서 제목을 따왔다. 그는 백혈병 진단을 받고서도 꾸준히 책을 읽는다. 그만큼 꾸준히 책을 사들인다. 나는 그가 읊조리는 대목에 눈물 나게 공감했다.
“실제로 당신은 책을 집어 들 때 그 힘을 느낄 수 있다. 짐작컨대 내가 집에 소장하고 있는 책들은 내가 그 책들을 살까 말까 고민할 때 자신들이 지닌 힘을 내뿜었을 것이다. 그 책들이 이제 내 서재에 있다. 최근에 팔고 걸러 냈지만 아직도 수천 권에 달하는 책들 사이를 나는 천천히 어슬렁거렸다. 오래전에 구입한 책들이 다시 읽어 달라고 애원하는 와중에도 나는 매주 새로운 책들을 쇼핑용 비닐봉지에 한 가득씩 사 들고 왔다. 미쳤지, 미쳤어.”
미쳤어, 라고 중얼거려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구절에도 공감할지 모른다.
“나는 이미 잭 오브리의 대하소설 전작을 읽은 상태였지만 휴의 헌책방에서 오브리의 소설들을 낱권 묶음으로 발견했을 때 내가 직접 전작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쳤어. 부엌의 그 작은 사물함 위에는 헤밍웨이 전기 몇 권도 차곡차곡 쌓여 있다. 두 배로 미쳤어.”
그리고 책을 많이 거두는 사람, 책의 힘에 자주 패배하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난관이 있다. 집을 창고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책을 쌓아둔다고 곧 서재가 되지는 않는다. 과거에 샀던 책을 도저히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은 창고다. 서재에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 서가에서 책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는 책의 위치를 지정하는 규칙이 필요하다. 책꽂이의 역사를 서술하는 『서가에 꽂힌 책』의 저자 헨리 페트로스키는 「서가의 책 정리」를 부록으로 실었다. 여기에는 책을 정리하는 방법이 25가지 나온다. 22번인 ‘찬장 서재’에는 명언이 나온다. “찬장에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책들이 수백 권―수천 권은 아니라 해도―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있는 모습에서 나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 책장도 옷장과 비슷한 것 같다. 옷장은 아무리 꽉 차 보이더라도 늘 재킷 하나 정도는 더 걸 틈이 있다. 책장도 대개는 그런 것 같다.”
조금 더 모양새를 신경 쓰는 사람은 4번 ‘크기’ 혹은 6번 ‘색깔’을 기준으로 삼는다. 『작가의 책』의 홍보용으로 만들어졌던 소책자 『젊은 작가의 책』에 실린 문답에 따르면, 황정은 작가는 크기별로 책을 정리한다.
“특별한 것은 없고요. 문학은 문학 책꽂이에, 인문학은 인문학 책꽂이에. 각 선반엔 출판사나 작가와 상관없이, 높이가 같은 책을 꽂아 가지런한 윗 단면을 만들어둡니다. ‘가지런하게’가 중요합니다. 전집이거나 시리즈인데 한 권이나 두 권 정도가 모양이 다르게 출간되는 경우가 간혹 있죠. 이러면 저는 애처롭게 그 책을 들고 여기저기 꽂아보다가, 마지막엔 화냅니다. 나더러 어떡하라는 거야? 하고요…….”
나는 주로 13번 ‘듀이의 십진법’을 따른다. 정확히는 듀이십진분류법을 수정한 한국십진분류법을 활용한다. 듀이는 모든 지식을 열 가지로 분류해 0에서 9까지 번호를 붙였다. 총류(0), 철학(1), 종교(2), 사회과학(3), 자연과학(4), 기술과학(5), 예술(6), 언어(7), 문학(8), 역사(9). 대분류 다음으로는 중분류, 소분류에 따라 번호가 추가된다. 예를 들어 한국 도서관에서 문학이론은 801번대, 한국소설은 813번대, 영미소설은 843번대로 분류된다. 그다음으로는 작가명, 책 제목, 출간년도 등이 붙는다. 이렇게 정리하면 책을 가지런하게 꽂을 수는 없지만 애처로워지진 않는다. 손에 든 책이 어디에 들어가야 할지 상당히 명백해진다.
하지만 책장 정리란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반드시 피로한 육체노동이 된다. 빼고, 꽂고, 옮기고, 꺼내고, 쌓고, 바꾸고…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은 천국 같은 곳이다. 공간이 무한하고 세상의 모든 책이 존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책이 전부 정리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아름답다. 도서관의 사서는 정말 존경스러운 분들이다. 그분들은 아름다움을 담당한다. 책이 알맞은 자리에 자리하도록 질서를 집행한다. 참고로 한국에서 도서가 1천 권 이상이면 ‘작은도서관’ 요건을 충족한다. 나는 ‘조금은 큰 도서관’ 수준으로 책을 가진 셈이다. 나중에 부자가 되면 개인비서가 아니라 개인사서를 모시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주 나중에, 아주 부자가 되면.
올해 목표는 책을 정리하는 것이다. 창고화를 최대한 방지하고 아름다운 서가를 가꾸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책이 쌓이는 속도가 읽는 속도보다 빠르다. 그리고 산 책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먼저 읽어야 한다. 나는 2023년 동안 단행본 기준으로 231권의 책을 읽었다. 하지만 책장에는 아직 표지조차 펼쳐보지 않은 책이 수두룩하다. 안 읽은 책은 처분할 수 없다. 좋아하는 책도 버릴 수 없다. 나중에 참고자료로 볼 책도 꼭 갖고 있어야 한다. 내 서가는 나에게 정말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곳이다. 절판 도서, 궁금했던 책, 푹 빠졌던 책이 여기저기 널려 있기 때문이다. 나는 『책의 우주』에서 장 클로드 카리에르가 한 말을 신봉한다.
“서재는 반드시 우리가 읽은 책들로 구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언젠가 읽게 될 책들로 구성되는 것도 아니죠. 서재란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책들입니다. 혹은 그럴 가능성이 있는 책들이죠. 그것들을 영원히 못 읽는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죽음을 이기는 독서』의 뒷부분도 추가하고 싶다.
“우리는 종종 다음 세대의 지식인들에게는 서재가 없을 거라는 얘기를 듣는다. 모든 것이 컴퓨터 안에 들어 있을 테니까. 그것은 합리적인 결론이지만 어쩌면 합리적이라는 게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책에 미친다는 건 사랑의 행위고 사랑의 행위는 합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머니까.”
최근의 비합리적인 행위는 ‘책솔’을 산 것이다. 책등에 쌓이는 먼지를 떨어내는 용도의 솔이다. 각종 친환경 제품을 만드는 레데커에서 제작한 제품으로, 배나무 손잡이에 염소 털이 빽빽하게 달려 있다. 매끄러운 손잡이를 잡고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다. 사랑해, 우리 오래오래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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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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