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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다루는 산업 : HYBE T&D Stories
HYBE T&D Stories
한 해를 마무리하며 다시 한번 케이팝과 사람을 생각한다. 둘 사이가 가까우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더 오래 케이팝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2023.12.28)
케이팝과 사람을 가까이 두기 시작한 건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두 개념 사이의 틈이 급격하게 좁혀진 계기가 케이팝이 세계로 뻗어나가면서부터 라는 건 상당히 그럴싸하면서도 뼈아픈 현실이다. 케이팝이 수요와 공급 모두에서 여전히 10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해당 대상 전반에 유구히 무심해 온 한국에서 태어난 문화라는 걸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무지이기도 외면이기도 했던 오랜 과거는 케이팝이 아이들의 꿈과 사랑을 볼모로 한 부적절하고 비상식적인 시스템을 동력으로 하고 있다는 날 선 비난에 자주 직면하게 했다. 한국의 역사나 개발 도상국 특성에 대한 이해가 아쉬워 울컥한 마음도 들기도 했지만, 우려의 시선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었다. 사람을, 나아가 10대를 주요 동력으로 삼는 산업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논의는 다층적일수록, 조심스러울수록 옳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많은 이들의 시선이 닿은 건 연습생들의 처우였다. 연습생은 케이팝 산업의 대표적인 사각지대다. 대부분이 10대고, 데뷔라는 과정을 거쳐 새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누구의 눈길도 닿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닿아선 안 된다. 이들은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데뷔를 위한 신비감 유지를 위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기본적으로 금지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인고의 시간이 데뷔라는 확실한 보상으로 이어졌다면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들에게는 무엇도 보장되어 있지 않았다.
짧게는 1~2년, 길게는 10년씩 연습생 생활을 해도 데뷔는 마치 하늘이 내리는 것처럼 누가 점지해야만 맞이할 수 있는 미래였다. 실제로 연습생 생활 경험이 있는 이들 가운데 연습 자체가 힘들었다기보다는 기약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부담과 압박감 때문에 꿈을 포기했다는 후일담이 다수인 이유다. 더구나 어린 시절은 누구에게나 크기만 다를 뿐 그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는 일이 많은 중요한 시기다. 단지 연습생 생활을 그만두는 것만으로 깔끔하게 새 출발을 할 수 있다면 그건 나름의 해피엔딩일 것이다. 쉽지 않은 시간을 거쳐 데뷔해도 하지 않아도, 때마다 형태를 달리해 찾아오는 불확실의 늪 속에서 매 순간 평가 받고 경쟁하는 10대들의 마음은 각자의 방식으로 곪아갔다. 직업적 특수성에 따른, 너무나 폐쇄적인 시공간에서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다.
깊이 있게 파고들자면 한도 끝도 없을 이 기나긴 이야기에서 가장 필요한 건 결국 ‘제대로 된 어른’이다. 성인군자를 바라는 게 아니다. 옳은 것과 그른 것, 해야 하는 것과 해야 하지 않아야 하는 것, 예상치 못한 좌절과 성공에 대처하는 능동적 주체성을 길러줄, 진짜 어른 말이다. 지난 12월 19일 하이브가 공개한 T&D(Training & Development) 다큐멘터리 ‘HYBE T&D Stories’는 케이팝과 사람 사이의 상관관계를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무척 흥미로운 콘텐츠다. T&D는 연습생이 아티스트로 성장하기까지 필요한 모든 트레이닝을 담당하는 곳으로 쉽게 말해 흔히 신인 개발팀이라고 불리던 부서의 역할에 가깝다.
길이가 너무 짧아 부서 홍보 영상처럼 보이는 점이 못내 아쉽지만, 지금까지 어딜 가도 베일에 가려져 있던 케이팝 아티스트 탄생의 순간을 관련자들의 육성으로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반갑다. 영상은 방탄소년단 RM,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수빈과 태현, 르세라핌 은채, 앤팀의 타키 등 하이브에서 연습생 시절을 보낸 다양한 아티스트과 신선정 헤드를 비롯한 다양한 T&D 직원들의 인터뷰로 구성된다. 그곳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느슨하게 ‘이럴 것이다’ 추측해왔던 곳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화학작용이 조각조각 드러난다. 같이 연습하는 친구들이 자신이 하는 음악을 싫어하지 않았으면 했던 RM의 마음에서 착안한 연습생을 위한 플레이리스트 제공, 엄마처럼 누나처럼 따뜻하게 아들을 돌봐주는 마음에 감사를 전하는 타키 어머니의 손 편지, 자율과 책임을 중심으로 아티스트로서는 물론 한 사람의 사회구성원으로서도 바로 설 수 있게 진행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들. 모든 게 완벽하진 못해도 적어도 사람을 중심에 두고 고민한 시간이 흘러 이곳에 닿았다는 데 작은 안도를 느낀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다시 한번 케이팝과 사람을 생각한다. 둘 사이가 가까우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더 오래 케이팝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무엇 하나 장담할 수 없는 요지경 케이팝 세상 속에서,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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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