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상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당근마켓" (G. 이훤 시인)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72회)
“분리와 단절 그리고 고립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에 주목한다”고 말씀하시는, 책 『아무튼, 당근마켓』을 쓰신 이훤 시인님 나오셨습니다. (2023.12.21)
경험과 시간이 제한된 세계에서 물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매개가 된다. 엎질러진 시절을 다시 통과하게 되고 먼 타인과 나의 생활이 포개어진다. 아주 작은 물건을 손에 쥐면서.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도 있다. 애호의 역사를 나누며 유대감이 시작되기도 한다. 여러 공동체가 그런 방식으로 태어났다. 어쩌면 다른 나라에서 출발했을 전통 같은 데까지 함께 가면서. 재화 가치에 관계없이 유효한 이야기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이훤 시인님의 책 『아무튼, 당근마켓』의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스스로 물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밝히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이훤 시인님은 아름다운 물건을 중고 거래 현장에서 마주했을 때의 설렘과 긴장, 끝내 그 물건과 만나지 못했을 때의 안타까움과 허전함을 이 책에서 솔직하게 전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있다는 당연하지만 잊기 쉬운 사실을 짚어내는데요.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아무튼, 당근마켓』을 쓰신 이훤 시인님을 모시고 아름다움과, 돌이킬 수 없는 순간과, 그 모두를 붙잡아두기 위해 노력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오은: 이훤이라는 이름이 필명이잖아요.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든 이름이기도 하고요. 어떻게 이 이름을 짓게 됐는지 들려주세요.
이훤: 실은 한 번 듣고도 많이 잊으시더라고요. 이환, 이훈 등으로 잘못 들으시는 분도 계시고요. 제가 필명을 고민할 때 ‘말하다’에 가까운 동사를 찾고 있었는데요. 그중 하나가 ‘훤’자였어요. 시끄럽게 말할 훤(喧)인데요. 또 다른 의미가 따뜻할 훤(煖)도 있더라고요. 동사일 때와 형용사일 때 온도 차이가 재미있어서 골라봤습니다.
오은: 요즘 많이 바쁘실 것 같은데요. 이렇게 바쁠 때면 왠지 중심을 잘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저도 꼭 그럴 때마다 하게 되는 생각이 있어요. 어디에 가면 고립될 수 있을까, 인데요. 그 생각만으로도 약간 열리는 느낌이 있어요. 늘 둘러싸여 있고, 늘 어딘가에서 발언해야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고립된 감각을 한번 떠올려 보는 것 같거든요. 이훤 시인님은 그럴 때 어떤 생각을 하실지도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워낙 고립된 시기가 길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생각은 안 하실 것 같거든요.
이훤: 맞아요. 이 질문을 해주시는 게 진짜 좋은 게, 제가 한국으로 이주하기 전에 타국 생활을 거의 17년 정도 했으니까 굉장히 오랫동안 고립감과 단절감을 계속 느꼈거든요. 그래서 그것이 저의 사진 시리즈 안에서의 화두이기도 했는데요. 한국에 오고 나니 오은 시인님이 예전에 저에게 했던 말들이 조금 새롭게 다가오더라고요. 모두와 가까워지고 나면 가끔은 고립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셨었는데요. 지금은 그 말을 조금 다시 생각해 보게 돼요.
어쨌든 물리적으로 한국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지고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 같은 것이 많아지니까요. 글 쓰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떼어 두지 않으면 매일 쓰는 것이 어려워지더라고요. 긴 호흡으로 몰입해서 작업을 하는 시간을 마음을 써가면서 잘 만들고 싶어져요.
제가 요즘 고민하는 또 다른 중심은 ‘누구를 향해 말하고 싶은가’인데요. 첫 시집을 출간할 때는 시를 잘 모르는, 그리고 시가 별로 궁금하지 않은 독자분들도 호기심을 가질 만한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비(非)시 독자들을 향한 시집을 썼던 건데요. 이후에는 제 안의 화자들을 잘 받아 적는 책을 쓰고 싶어서 그렇게 쭉 작업을 해왔거든요. 그러다가 지금은 물리적으로 독자들과 가까워지니까 다시 마음이 바뀌어서요. 내 안의 말을 받아 적는 만큼 비시 독자들, 그리고 비사진 독자들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다는 마음이 짙어져요.
오은: 지난 10월이었죠, 아주 좋은 날에 결혼식을 올리셨습니다. 이훤 시인님과 이슬아 작가님의 결혼식이 있었어요. 초대를 받아서 저도 참여를 했는데요.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남기셨습니다. “한 사람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살면서 저를 가장 기쁘게 한 결정이었다는 걸 매일 알게 됩니다.” 한국으로의 이주와 결혼, 인생의 큰 변화잖아요. 이게 최근 몇 년 동안 사이에 벌어진 일인데요. 이 시간이 후에 어떻게 기억될지 상상해 보셨나요?
이훤: 저도 미래 시점에서 생각을 자주 해보게 되는데요. 사실 꽤나 큰 용기를 내야 했던 결정이었거든요. 17년 동안의 제 모든 짐과 생활의 리듬과 삶의 기반이 미국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이사를 결심하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아마 돌아본다면 용기 내기를 잘했다고, 너무 잘했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이슬아 작가와 함께 있으면 사는 일이 너무 수월해져서 좋아요. 보통은 타인이 좀 부대끼잖아요. 파트너일지라도 그런 경우가 많은데요. 슬아 작가와 함께 있으면 달라요. 서로 강요나 눈치 같은 것은 주지 않고요. 그냥 서로가 할 일을 찾아서 하죠. 삶이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잘 굴러간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리고 마감할 때 외롭지 않아서 너무 좋습니다.(웃음)
오은: 이훤 시인님 소개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인, 사진가. 텍스트와 이미지로 이야기를 만든다. 시카고예술대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했고 미국, 중국, 캐나다, 스코틀랜드에서 〈Tell Them I Said Hello〉 등의 사진전을 열었다. 2019년에는 큐레이터 메리 스탠리가 선정한 주목해야 할 젊은 사진가에 선정되었다. 『양눈잡이』 『당신의 정면과 나의 정면이 반대로 움직일 때』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 등의 시집과 산문집을 썼고 『끝내주는 인생』 『벨 자』 『정확한 사랑의 실험』 등의 책에 사진으로 참여했다. 정릉에서 사진 스튜디오 겸 교습소 '작업실 두 눈'을 운영 중이다.”
미국에서는 전공이 공학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인터뷰에서 공학과 문학이 맞닿아 있는 지점을 발견했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어요. 문학과 공학, 어찌 보면 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고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데요. 이 두 가지에서 발견한 비밀한 공통점이 대체 무엇이던가요?
이훤: 공학도 문학도 기존에 있었던 질서나 체계를 전복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 같아요. 새로운 문법을 제시하는 것이 창작자들이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요. 공학자들 역시 제한된 자원 안에서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거든요. 그 점이, 재료만 달라졌을 뿐 사실은 비슷한 성격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던 것 같아요.
오은: 『아무튼, 당근마켓』이 어떤 책인지 직접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이 책 어떤 책이죠?
이훤: 다양한 물성의 물건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 분들 그리고 관계와 생활, 만남이 화두이신 분들에게 추천해 드리고 싶은 책이고요. 창작에 관심 있으신 분들에게도 사실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근래 가장 중요한 화두가 창작인 만큼, ‘당근’에서 시작하지만 그것을 거쳐서 도착하는 키워드 중에는 시나 사진 창작 전반에 대한 이야기들이거든요.
오은: 저도 놀랐던 게 그 부분이었어요. ‘당근’에서 시작한다고 하면 뭔가 중고거래의 깨알 같은 에피소드가 주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할 텐데요. 이 책의 중심에는 시 쓰기가 있고, 사진 찍기가 있고, 그리고 사람이 있었어요. 그것이 『아무튼, 당근마켓』의 굉장히 중요한 부분 같았습니다.
또 지금까지 이훤 시인님이 내신 책들을 다 읽어본 사람으로서 감상을 말씀드리자면요. 산문집, 그리고 첫 시집에 도저했던 빽빽한 감정 같은 게 있었어요. 성냥으로 따지자면 그어지기 직전인, 불안하면서도 타오를 수 있다는 열망이 가득한 빽빽함인데요. 이번에는 이런 것들이 다 빠지고 무게가 가벼워졌어요. 그 가벼워진 자리에 유머가 재치가 깃들어 있다고 느꼈거든요. 대체 어떤 계기가 있었기에 이훤의 글쓰기 스타일이 이렇게 달라졌나, 생각했습니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죠?
이훤: 지금 건네주신 질문이 너무나 저에게 상찬이고요. 그걸 알아봐 주신 게 너무 반갑고 감사한데요. 원래 쓰는 사람인 이훤은 불안과 불안정한 것들, 그리고 위태로운 것들에 주목을 했었어요. 그러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는 제가 사실 웃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걸 알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요. 한국으로 이주한 뒤 굉장히 초반에 이슬아 작가가 저에게 물어봤어요. 우리 둘이 있을 때 너는 이렇게 웃긴데 왜 글에서는 웃기려고 하지 않느냐고요. 그때 대답을 못했어요. 그리고 생각을 해 보니 저도 모르게 문학뿐만 아니라 사진이라는 매개를 너무 무겁게 여겼던 것 같은 거예요. 문학이라는 것 안에 사실은 생활과 유머와 위트와 슬픔이 고루 녹여져 있는 것인데 어느 한쪽으로만 써왔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 이후에는 웃기는 걸 쓰고 싶다, 유머가 있는 사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런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입니다.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해주세요.
이훤: 근래에 너무 감명 깊게 다시 읽은 『친애하는 미스터 최』라는 사노 요코와 최정호 님이 쓰신 서간집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제가 이 책을 다시 읽은 이유가 내년에 출간할, 좋아하는 동료이자 친구인 김사월과 함께 하는 서간문 때문이에요. 좋은 서간문을 쓰고 싶어서 그리고 가능하다면 조금 다르게 쓸 수 있는 부분을 만들면 좋을 것 같아서 여러 종류의 서간집들을 사서 읽고 있는데요. 이 책은 정말 매콤하거든요. 매콤하고 서로의 눈치를 보지 않고 쓰는 느낌인데 그 속에 있는 이야기들이 너무 진짜라서요. 이것들은 진짜 편지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감탄을 하면서 읽었어요.
편지를 문학의 형태로 잘 구현하는 것이 어렵잖아요. 그러니까 내 안에 있는 진짜 중요한 이야기, 진짜인 무언가를 내놓아야 하지만 그것을 마냥 사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면 굉장히 지루해지고요. 언제나 모두가 사실은 이 지면이 무대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듯 긴장감을 잘 줘야 하는데요. 때문에 그것을 리마인드 하고자 다시 읽었고, 너무 좋아서 추천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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