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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사람들이 잘할 때 : 골든걸스 ‘One Last Time’
KBS <골든걸스>
방송으로 공개된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지난 12월 1일, 골든걸스의 첫 싱글 ‘One Last Time’이 발표됐다. 신인은 신인인데 ‘신(神)인’ 걸그룹이었다. (2023.12.14)
KBS에서 <골든걸스>를 방송한다고 했을 때 참 KBS에 어울리는 기획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아무런 판단도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의미의 ‘어울린다’는 감상이다. 국민 드라마나 국민 가수 탄생이 불가능해진 취향 지상주의 시대, 한국 가요계에서 손꼽는 여성 보컬리스트와 케이팝을 엮어 방송한다는 시대적 개념이 들어간 기획이라면 이제는 한국방송공사 정도를 제외하면 불가능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서다.
10월에 시작한 프로그램은 좋은 의미에서 기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순이, 박미경, 신효범, 이은미로 구성된 4인의 출연진 섭외가 탁월했다. 넷이 합해 155년 경력을 자랑하는 이들은 사회적으로나 업계 구조적으로 쉽게 살아남기 힘든 여성 솔로 가수로서 평생을 산 입지전적 인물들이다. 뛰어난 가창력은 물론 이름 석 자만으로 떠오르는 고유의 개성도 골고루 겸비하고 있다. 1970년대 후반 희자매로 활동한 적이 있는 걸그룹 경력자 인순이, 9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 댄스가요 붐을 대표하는 박미경, 휘트니 휴스턴을 비롯해 아무튼 노래 잘하는 해외 가수 이름은 죄다 수식어로 붙어본 신효범, 열정적인 라이브를 바탕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오른 이은미까지.
여기에 프로듀서로 선택한 카드 박진영도 좋았다. 댄스와 발라드, 훵크와 블루스 등 주목받은 분야는 각기 달라도 네 보컬리스트가 가진 목소리의 기반에는 늘 흑인 음악, 쏘울(Soul)이 있었다. 박진영이 누구던가. 스티비 원더와 마이클 잭슨, 프린스 같은 흑인 팝 스타를 자신의 롤모델로 삼은 것은 물론 한때 케이팝 계에서 걸그룹 기획 및 제작에는 적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던 가수이자 프로듀서다. 그는 골든걸스 멤버들을 누나라고 살갑게 부르며 케이팝 그룹으로서의 인식과 형태를 차곡차곡 잡아 나갔다. 뉴진스 ‘Hype Boy’를 부르는 인순이나 아이브 ‘I AM’을 부르는 박미경을 보며 짓던 표정을 보면 역할 만족도도 꽤 높아 보였다.
방송으로 공개된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지난 12월 1일, 골든걸스의 첫 싱글 ‘One Last Time’이 발표됐다. 신인은 신인인데 ‘신(神)인’ 걸그룹이었다. 신인 그룹이니만큼 음악 방송에도 출연했다. 발매일에 맞춰 KBS ‘뮤직뱅크’에 출연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짧은 준비 기간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완성도의 한계를 각자 수십 년씩 쌓아온 무대력으로 노련하게 채웠다. 단체 직캠과 멤버 별 개인캠도 알뜰하게 챙긴 건 물론이다. 노래는 멤버들의 가창력을 최대한 강조할 수 있는 심플한 구조로 복고적인 리듬이 곡의 전반적인 이미지를 이끌어 가는 박진영 특유의 댄스곡이었다. 조금 더 화려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끼어들려는 찰나, 곡의 하이라이트가 등장한다. 모든 소리가 사라진 자리 ‘지금 이 순간’이라는 가사와 함께 하나로 울려 퍼지는 보컬리스트 4인방의 화음이 전한 울림은 이들이기에 그리고 이들이 골든걸스라는 그룹으로 모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One Last Time’를 들으며 트와이스의 ‘Feel Special’ 자꾸 떠올랐다. 프로그램을 통해 신효범이 직접 커버하기도 한 노래는 트와이스를 대표하는 곡이자 데뷔 후 줄곧 흡사한 콘셉트로 활동을 이어오던 이들이 비로소 처음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대중에 들려주는 듯한 서사를 담고 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날 주저앉히고 아픈 말들이 날 찔러도 ‘네가 있어 다시 웃는다’는 ‘Feel Special’과 언제 마지막으로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는지 기억나지 않는 무딘 일상 속 ‘이게 마지막인 것처럼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다’고 노래하는 ‘One Last Time’. 안 된다는 부정적인 말들과 자신을 괴롭히는 한계를 떨쳐내고 다시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바라보며 나도 함께 힘을 얻는 경험은 세대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같은 온기로 다가갈 것이다. 프로그램 제작발표회에서 ‘우리가 못해서 안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인순이의 말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더 많은 잘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가는 지금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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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