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한국도 안전할 수 없습니다!
『나는 왜 마약 변호사를 하는가』 작가 안준형 서면 인터뷰
부디 마약 투약자를 그저 악인이자 범죄자로만 보지 말고, 죽음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라고 한 번쯤 생각해보셨으면 하는 바람을 전합니다. (2023.12.05)
대검찰청이 발간하는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국내 마약류 사범은 2017년 1만 4,123명에서 2022년 1만 8,395명까지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 가운데 60%가 30대 이하다. 매년 1만 명 이상의 젊은이와 아이들이 마약 범죄로 구속될 만큼 마약은 일상 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좀먹어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변호사 안준형은 10여 년 전 어느 마약 투약자의 변호를 맡은 것을 계기로 마약 사건과 처음 연을 맺었다. 그는 요즈음 1년에 100여 건의 마약 사건을 수임하는 마약 전문 변호사다. 지금껏 그가 목격한, 마약 사범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수사기관, 사법부, 언론, 일반 대중에게 마약 사범은 ‘불가촉천민’ 그 이상이었고, 그들을 다시 사회로 복귀시키려는 시도는 사실상 고려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이제 그는 투약자들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그들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단지 그들을 처벌하고 격리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단약과 재활을 도모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죽음에 다가서는 그들의 발을 우리가 함께 돌려세워야 한다고, 『나는 왜 마약 변호사를 하는가』를 통해 이야기한다.
안준형 변호사님은 '마약 사건 전문 변호사'로 업계에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변호사님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사실 저는 학부 시절에는 신학을 전공했습니다. 이후 변호사로 진로를 정했지만, 사람에 대한 관심이 깊어서였는지 아무래도 민사사건보다는 사람을 상대하는 형사사건이 적성에 맞았습니다. 경찰, 검찰, 법원이 모두 강력 전담을 따로 둘 정도로 강력사건은 의뢰인들도 매우 거칠고, 구속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들의 가족까지도 함께 케어해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사람에 대해 호기심이 많고 직접 사람들을 대면하는 일을 즐거워하는 편이라 형사사건을 주로 맡는 편입니다.
마약 사건은 강력사건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축에 속합니다. 의뢰인이 갑작스럽게 체포되거나 구속되는 경우가 많고, 변호인은 주말이나 야간을 가리지 않고 사건에 대응해야 합니다. 그래서 변호인들도 마약 사건은 아무래도 기피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만큼 더욱 변호인의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어 줄 수 있다는 것을 나름의 보람으로 삼고 있습니다.
마약 사건으로만 1년에 100건 정도를 맡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바쁜 중에도 첫 책 『나는 왜 마약 변호사를 하는가』를 내셨는데요. 이 책을 꼭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이유나 계기가 있을까요?
예전에 어떤 의뢰인의 부모님을 만나면서, 보통 사람들은 마약에 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분들은 자기 자식이 마약 범죄에 연루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으셨고, 그래서 혼비백산한 채 저에게 자식이 투약한 마약에 관해, 자식의 건강과 형량에 관해 수많은 질문들을 쏟아내셨습니다. 그때 마약 사건의 의뢰인과 그 가족들이 만약의 경우에 참고할 만한 책이 세상에 한 권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마약 사범을 보는 우리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바꿔 보고 싶어서입니다. 한국 사회는 마약 투약자를 반드시 처벌해야 하는 악인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약은 사실 질병입니다. 필로폰 같은 경우는 한 번만 투약해도 뇌의 도파민 체계가 바뀌어 다시는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몸이 될 수 있습니다. 마약 중독자는 이미 신체가 망가진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마약은 약의 일종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병원에서 필수적으로 처방하는 마취제나 진통제 가운데는 마약 성분이 포함된 것들이 꽤 있습니다. 극심한 고통 때문에 그런 약을 계속해서 써야만 하거나, 자신도 모르는 채 처방된 약을 복용하다 중독자가 되는 이들도 존재합니다.
제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마약 사범을 그저 용서하고 이해해주어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마약과 마약 사범에 관해 정확히 잘 이해해야 올바른 결론과 대응 방법을 도출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은 2016년에 마약 청정국 지위를 상실했습니다. 이후 국내에서 마약 사범은 점점 더 늘어가고 있고, 한국 정부는 마약 범죄에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국민 정서 또한 "마약 사범은 엄히 처벌해야 한다"는 쪽에 가까운데요. 마약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단속을 철저히 하고 처벌도 엄하게 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지 않을까요?
최근 한국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마약 범죄 적발 및 처벌 건수가 늘어난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대검찰청이 발간하는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한 해에 검거되는 마약류 사범은 2017년 1만 4,123명에서 2022년 1만 8,395명까지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마약이 문제가 되고 있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은 여전히 마약류 단속이 매우 철저한 편인데다, 마약 투약이 만연한 사회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마약을 주의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종소리가 크다고 해서 더 큰 늑대가 오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약 범죄의 단속과 처벌에만 집중했을 때 나타나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회적 비용의 증가입니다. 1980년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범죄자와 마약 사범 소탕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습니다. 그 결과 재소자가 폭증했고 그들을 먹여살리는 비용은 고스란히 세금으로 전가됐습니다. 마침내는 교도소 수용 인원 초과를 이유로 중범죄자를 가석방하는 일조차 일어났습니다. 같은 상황이 한국에서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수요와 공급의 문제입니다. 마약 범죄는 다른 강력 범죄와 달리 수요와 공급의 원칙을 따릅니다. 공급을 철저히 단속하고 처벌하면 희소성과 리스크로 인해 마약의 유통가가 높아집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필로폰의 유통가는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들의 10배에서 20배에 달합니다. 이는 더 많은 이들이 돈을 노리고 새롭게 마약 사업에 뛰어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수요 자체를 점차적으로 줄어들게 만드는 방법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의미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마약 문제는 적발 건수의 증가보다는 타 국가에 비해 재범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입니다. 오직 단속과 처벌에만 초점이 맞춰진 탓에 마약 사범들을 치료하고 교화하는 데는 그 노력이나 예산이 현저히 부족합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마약 사범들을 그저 구치소의 한 구역에 몰아 두고 방치한 탓에 마약 초범이 구치소 안에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전문가가 되어 출소한 경우도 있습니다. 구치소가 소위 '학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결국 마약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현재 진행 중인 '마약과의 전쟁' 전략을 재검토하고, 마약 예방 캠페인과 함께 중독자의 치료와 재활 문제도 무게 있게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변호사님께서 지난 10년간 맡아 왔던 여러 케이스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과 의뢰인이 있으실까요?
필로폰을 투약했던 두 사람의 의뢰인이 있습니다. 필로폰은 정말 끊기가 어려운 마약입니다. 중독전문의조차 "필로폰은 끊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언급한 적이 있고, 저 역시 단약의 가능성에 무척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동안 겪어 온 수많은 의뢰인 가운데 단약에 실패한 대다수가 필로폰을 투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다 한 의뢰인을 만났는데, 첫눈에 이미 약에 찌들어 단약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담을 마치며 정중히 수임을 거절하자, 함께 오신 부모님이 표지가 날강날강해진 노트 한 권을 건넸습니다. 그것은 의뢰인과 부모님이 함께 작성한 '단약 일기'였습니다. 그 안에는 그들이 단약을 위해 겪어 온 치열한 싸움이 있는 그대로 적혀 있었습니다. 그 일기를 다 읽고서 저는 의뢰인과 부모님의 강력한 의지를 확신했고, 의뢰를 수임했습니다. 다행히 재판 결과는 긍정적이었습니다. 그 의뢰인은 치료를 이어간 끝에, 수 년이 지난 지금은 마약과 멀리 떨어져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열심히 생활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 분은 투약 사실이 적발되며 그동안 쌓아왔던 커리어와 연인까지 모두 잃은 어느 연예인이었습니다. 그분은 구치소에서 절치부심하며 단약과 재기를 다짐했고, 출소한 이후 술도 끊고 자신을 중독시킬 만한 것들을 모두 멀리하며 치료를 이어갔습니다. 그분과는 요즘도 가끔 연락을 나눕니다. 필로폰 생각이 나지 않느냐고 묻자 "갈망은 있지만, 바쁘게 살며 잊고 평생 참는 거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이렇듯 가족의 도움과 강력한 의지 그리고 치료 덕분에 약을 끊고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의뢰인들을 보면, '마약에 정말로 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최근 검거되는 마약 사범 가운데 60% 정도가 30대 이하라고 합니다. 그 가운데 10대 또한 적지 않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마약 범죄에 가담하는 연령층이 낮아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청소년의 마약 범죄를 예방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마약을 유통시켜 돈을 버는 이들은 철저한 단속을 피하기 위해 더욱 교묘하고 획기적인 방식을 고안해내곤 합니다. 텔레그램에서의 판매와 비트코인 결제 방법이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그들은 경찰의 전통적인 수사망을 피하면서, 온라인 생태계에 익숙한 젊은 층을 새롭게 판매처로 끌어들였습니다. 지금 마약 사범의 연령대가 낮아지는 현상은 이러한 과정이 낳은 결과입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마약에 대한 호기심은 크고 경각심은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마약은 나쁜 것이니 그 이상 알 필요 없다'는 식으로 쉬쉬할 것이 아니라, 마약의 유해성과 그에 따르는 지독한 결과를, 마약 범죄의 성립 요건과 형량을 충분히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마약에 손대는 것이 앞으로 창창할 자기 인생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일이라는 판단을 이끌어냄으로써 청소년들이 스스로 마약을 멀리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마약 범죄를 남의 일이라 여기고 아무 대비도 하지 않는다면 만약의 경우에 무척 당황하고 우왕좌왕하게 될 것 같은데요. 혹시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이 마약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가 무엇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가까운 사람이 마약을 투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비난을 앞세우기보다는 그대로 침착하게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투약하고 있는 약이 무엇인지, 투약한지 얼마나 됐는지, 투약하게 된 동기와 과정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끝까지 지지할 것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합니다.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눈 다음, 중독에 이른 상황이라면 하루 빨리 중독 전문의를 만나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치료나 상담 과정에서 이야기하는 투약 등의 비밀은 수사기관이 열람할 수 없으므로 치료가 검거로 이어질 것이라는 걱정은 접어두셔도 됩니다. 주변의 지지와 전문적인 치료만이 마약 투약자들을 단약의 길로 안내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손에 집어든 독자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혹시나 마약에 관심이나 호기심을 두고 있는 분이 있다면, 결코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한 번쯤이야'가 불가능한 것이 마약입니다. 단 한 번이라도 마약을 투약하고 나면 그 사람의 몸은 다시 마약을 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단약을 하더라도 참고 견디는 것일 뿐, 그것을 평생 이어가야 하고 그 과정은 험난하기 그지없습니다. 마약을 투약하는 것은 법을 어기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가시 가득한 미로 속에 빠뜨리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나는 왜 마약 변호사를 하는가』에는 마약의 미로 속에 빠진 사람들, 미로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는 이들과 그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고, 우리의 이웃입니다. 부디 마약 투약자를 그저 악인이자 범죄자로만 보지 말고, 죽음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라고 한 번쯤 생각해보셨으면 하는 바람을 전합니다.
*안준형 한국과 미국에서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국제변호사다. 법무법인 지혁의 대표변호사이며,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관 자문 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민사, 형사, 가사를 가리지 않고 의뢰받은 모든 사건을 처리하지만 형사사건, 그중에서도 강력사건을 변론할 때 가장 가슴이 뛴다. 최근 15년 구형을 받은 마약 밀수 사건에서 무죄를 이끌어내며, ‘변호사의 꽃은 형사 변호인’이라던 지도교수의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10년 전 마약 사건을 처음 맡은 이래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어느덧 마약 전문 변호사가 되었다. 요즘은 1년에 100건가량의 마약 사건을 처리한다. 한 번 실수를 저지른 후 단약을 다짐했지만 소위 ‘뽕방’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나온 후 본격적인 ‘약쟁이’가 되어 또다시 감방에 갈 수밖에 없었던 의뢰인, 마약을 끊지 못해 결국 죽음에 이른 의뢰인, 마약을 끊었지만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의뢰인 등을 만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제는 마약 투약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처벌’에서 ‘치료’로 바뀌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이 책이, 마약 투약자와 그 가족들이 기댈 수 있는 작은 언덕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우리 곁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마약과 마약 사범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바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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