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그리핀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이는 누구인가요?"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 작가 앤 그리핀 서면 인터뷰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은 아일랜드 소설가 앤 그리핀의 데뷔작으로, 출간된 2019년에 아이리시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으며, 작가는 이 작품으로 아일랜드 북 어워드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다.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은 아일랜드 소설가 앤 그리핀의 데뷔작으로, 출간된 2019년에 아이리시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으며, 작가는 이 작품으로 아일랜드 북 어워드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다. 2021년 더블린 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던 앤 그리핀은 현재 영미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그의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은 주인공 84세 모리스 해니건이 더블린 근교 호텔 바에 홀로 앉아 인생에서 가장 특별했던 다섯 명에 대해 하룻밤 독백으로 풀어내는 작품이다. 평생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몰랐던 모리스 씨가 애써 덤덤하게 털어놓는 사랑과 그리움은,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 가슴 시린 여운으로 남는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이별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끝내 꺼내지 못하는 마음도 있다는 것을.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은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품입니다. 소감이 어떠신지요? 한국 독자들에게도 인사 부탁드립니다.
제 소설이 한국에서 출간되어 정말로 자랑스럽습니다. 제 아들이 한국 문화, 특히 한국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데요. 얼마 전에 영화 <버닝>을 함께 봤습니다. 정말 멋진 영화였어요. 한동안 영화가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는데요, 원래 제가 영화 줄거리를 기억하는 데 영 소질이 없는데도 그랬습니다. 연출, 연기, 촬영의 수준이 정말 뛰어났어요. 제 소설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도 영화 <버닝>이 제게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는데도 주인공 모리스 해니건을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국 독자들로부터 듣게 된다면 정말로 기쁠 것 같아요.
꽤 오랜 시간 워터스톤스 서점에서 서점원으로 일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점원으로 독자들을 만났을 때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독자들을 만났을 때 느낌이 또다를 것 같습니다.
아아, 좋은 질문이네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워터스톤스 서점 문을 열고 들어올 때 굉장히 부끄러워했어요. 예를 들자면, 아일랜드 소설가상 수상자인 콜럼 토빈은 작가 활동 초기에 제가 일하던 서점에 자주 왔었는데, 저는 작가님과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 없었어요. 제게 콜럼 토빈은 신과도 같은 존재였거든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작가님도 제가 당신의 책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판매했는지 알았다면 무척 기뻐하셨을 것 같습니다. 작가가 된 후로 저는 서점원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이 일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열정과 헌신에 감사합니다. 제 책의 존재조차 모르던 사람들에게 제 책을 열성적으로 소개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입니다.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모리스 해니건의 모습은 한국의 아버지들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작가님께서 모리스 해니건의 모습을 그릴 때 모델이 되거나 참고가 된 인물이 있나요?
모리스 씨를 바라보면서 한국의 아버지상을 떠올리신다는 말씀이 재미있게 들립니다. 그만큼 보편성을 가진다는 이야기일 수 있겠어요.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을 포함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취약하고 자주 불안해하지만, 그런 자신을 들키지 않기 위해 감추려 한다는 점은 제게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제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아버지가 모리스 씨처럼 여든넷이었습니다. 제겐 삼촌도 두 분 계시는데요, 세 사람 모두 저에게 무척이나 의미 있고 소중한 이들입니다. 그리고 남자들은 저에게 늘 흥미로운 대상입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저는 여자 인물보다 남자 인물에 대해 쓰기가 편한데요, 심리 상담을 받아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웃음) 그렇다고 제가 남자 인물에 대해 온전히 이해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관찰자로서 흥미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위스키와 흑맥주로 다섯 번의 건배를 하면서 일생을 이야기하는 플롯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일종의 건배사를 통해 이야기를 구성하게 된 계기가 있을지요? 또 작가님이 특별한 날 마시는 술이 있다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재밌게 들리실 수 있지만, 저는 더이상 술을 마시지 않아요. 어쩌면 아일랜드 사람으로서는 조금 특이한 면이겠죠. 제가 다섯 번 건배사로 이야기를 풀어간 이유는, 처음 소설을 쓰는 작가에게 이러한 이야기 형식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섯 번의 건배사라는 형식을 든든한 발판 삼아 한 남자의 일생을 탐색할 수 있었어요. 게다가 혼자 술집에 앉아 위스키나 흑맥주를 마시는 나이든 남자는 아일랜드 사회에서는 매우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에요. 저는 종종 그런 이들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궁금해하곤 했습니다. 소설에서는 물론 그런 풍경을 둘러싼 모든 것을 탐구해야 했지만요.
저는 특별한 날에는 블랙부시 위스키를 마시곤 해요. 하지만 정말 정말 특별한 날이라면 미들턴 위스키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비싼 아일랜드 위스키이고요, 책의 마지막 건배에 등장하기도 하죠. 깜짝 놀랄 만큼 부드럽고 매력적인 맛을 가진 위스키입니다. 하지만 요즘 제가 마시는 술은 3스퀘어마일이라는 아름다운 진입니다. 이 술은 아일랜드 가장 남쪽에 있는 케이프클리어섬에서 만들어요. 섬의 토종 꽃에서 풍미를 이끌어낸 절묘한 술입니다. 강력히 추천합니다.
이 작품은 작가님의 첫번째 장편소설인데요. 깊은 상실감을 겪는 나이든 남자를 주인공으로 구상하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있나요?
어떤 남자를 마주친 적이 있어요. 가족과 함께 아일랜드 서부에서 휴가를 보내던 어느 날 우연히 호텔 바에 들어갔는데, 머리가 하얗고 키가 아주 큰 노인이 그곳 바에 서 있었어요. 다른 손님은 없었고 저는 그분과 잠시 대화를 나눴습니다. 당시 제 아들이 꽤 어렸던 터라 거기 오래 머물지는 않았지만, 어렸을 적 이 호텔에서 일한 적 있는데 지금은 여기서 술을 마시는 입장이 되었다고 저에게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한 사람의 인생이 이런 식으로 뒤바뀔 수 있는지 궁금해하면서 바를 나섰습니다. 다음날부터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구체화되기 시작했어요. 오후 한나절 만에 어렴풋하게 이야기의 윤곽이 잡혔습니다. 첫 문장을 썼을 때부터 모리스 씨의 목소리가 제 머릿속과 가슴에 맴돌았죠. 나머지는 모리스 씨가 직접 썼어요. 아내를 잃은 그의 이야기는 그의 지시에 따라 이야기 속에서 은은하고도 확실하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소설 초반에 모리스가 아들 케빈에게 “중요한 건 사소한 것이란다, 아들아. 사소한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독자들이 알아보기를 바라는 부분이나 문장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이 소설에서 제가 탐구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얼마나 결점이 많은 존재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실수를 하죠. 저는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독자들이 모리스 씨의 인생을 자신의 인생 이야기로 여기고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직 제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건드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아기인 아들 케빈을 목욕시키면서 세이디가 케빈에게 건네는 말이 참 아름답습니다.
“케빈은 케빈을 사랑하니? 네가 이 귀여운 아이를 사랑하고 항상 다정하게 대하고 항상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케빈은 온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될 거거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에게 친절히 대하는 작가님만의 팁이 있을까요?
이 장면은 제 아들이 어렸을 때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어요. 바로 위와 같은 상황에서 아들에게 똑같은 말을 했거든요. 인간이 가장 잘하지 못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거짓말쟁이였을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제 자신도 잘하지 못하는 것을 아들에게 가르치려고 최선을 다했던 거예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잘해내고 있습니다. 제 시간과 에너지를 더 잘 관리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면서 제 자신을 좀더 사랑하게 됐어요. 예를 들어서 글이 잘 안 써지는 날에는 ‘넌 정말 끔찍한 작가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대신 '그만하면 잘했어'라고 해줘요. 저 자신에게 부정적으로 말하기를 멈췄습니다. ‘오늘 정말 힘든 고비를 잘 넘겼어,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라고 말하죠. 효과 있어요. 머릿속의 언어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모리스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합니다.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이슈와 관심이 늘고 있는데요. 작가님의 의견도 궁금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작품은 제 아버지가 병마와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쓰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 때마다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몰라요.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신 적은 없지만, 모리스 씨를 통해 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드러내려 했어요. 제가 제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하고 싶은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저는 노인 자살과 조력 죽음에 대해 꽤 많은 조사를 했습니다. 특히 다발성 경화증을 앓던 마리 플레밍Marie Fleming이라는 아일랜드의 조력 죽음 운동가에 대해 열심히 파고들었습니다. 그녀가 제기한 죽을 권리에 관한 소송은 아일랜드에서 매우 큰 화제였어요. 용감하게 싸웠지만 결국 그녀와 그녀의 파트너는 패소했습니다. 존엄사나 조력 죽음은 매우 조심스럽고 풀기 어려운 문제고 제가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도 않아요. 작품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시도하긴 했지만 여전히 당혹스러운 문제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이 책을 읽어주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떤 이들일지요.
많은 분들이 제 소설을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소설이 출간된 뒤 제가 크게 감동한 점 중 하나는, 다양한 배경과 연령을 가진 수많은 사람이 소설의 주제에 호응해주었고, 또 해외에도 널리 소개되어 보편적인 공감을 얻었다는 점입니다. 제 소설은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결점투성이의 취약한 인간인지에 관한 이야기이니까요.
곧 2024년입니다. 미리 새해 인사를 부탁드려요.
서로가 서로를 돌보면서도 우리에게 자양분을 제공해주는 우리의 가장 큰 선물인 지구를 함께 돌보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돌보듯 자연을 돌보면서 다음 세대가 이 놀라운 지구에서 계속 살아가고 번영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보아요.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자기 자신을 친절히 대하고, 그렇게 타인들과 자연에 더 큰 친절을 베푸는 법을 배우는 우리가 되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앤 그리핀 소설가. 1969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태어나 역사학을 전공한 후 8년 동안 더블린과 런던의 워터스톤스 서점에서 일했다. 2013년부터 글쓰기를 시작하여 2017년 단편소설로 존 맥가헌 문학상을 받았고 헤네시 뉴 아이리시 라이팅 어워드의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첫번째 장편소설인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은 2019년 출간되자마자 놀라운 데뷔작이라는 호평 속에 아이리시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아일랜드 북 어워드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피플>, 굿리즈, 인디넥스트 선정 도서에 이름을 올렸다. 이 소설의 큰 성공에 힘입어 앤 그리핀은 드물게 보는 스토리텔링 장인,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비범한 재능이라는 평가 속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앤 그리핀의 또다른 작품으로는 두번째 장편소설인 『Listening Still』, 2023년 5월 출간된 『The Island of Longing』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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