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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의 반짝이는 진열장] 함께 보는 즐거움

<월간 채널예스> 2023년 7월호 (마지막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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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정한 시간 동안 우리가 같은 걸 보고 있다는 감각이 좋다. 그로부터 도출된 각기 다른 감상을 공유하는 순간을 사랑한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OTT 사이트에 빠른 다시 보기가 제공되고 있음에도, 굳이 시간을 맞춰 텔레비전을 켜는 까닭이다. (2023.07.04)

일러스트_이유진 

얼마 전, 왓챠의 '파티'라는 기능으로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보았다. 유저들끼리 한 영화를 동시 재생하면서 채팅 창에 실시간으로 감상을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이다. 각각 서울, 안양, 군산, 예천에 뿔뿔이 흩어진 친구들이 그 공간에 모여 원격으로 파티를 벌였다. 영화 선정 주제가 '네 명 다 절대 취향이 아닐 것 같은 작품'이라, 심혈을 기울여 당시 새롭게 업로드된 작품 중 가장 못생기고 지루해 보이는 포스터를 골랐다.(왜 주제가 그 모양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누구 한 명만 재밌는 작품을 보느니 모두가 재미없는 걸 보아야 한다는 못돼 먹은 심보였을 것이다) 모두가 기대치 0을 넘어 마이너스의 상태로 감상을 시작했다. 사실상 제대로 된 감상보다는 누가누가 얼마나 더 재밌는 헛소리를 하는지에 더 큰 관심이 쏠려 있었다. 역시나 주인공이 진지한 대사를 내뱉고, 스토리가 심각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동안에도 채팅 창에는 끊임없이 농담이 쏟아졌다. 그렇게 두 시간의 파티 후 우리에게 남은 감상. 

뭐야, 이 영화 생각보다 재밌는데?

파티 후에는 카톡 창으로 넘어와 한참 대화했다. 후기를 남긴 후에는 모두가 한결같이 같은 말을 했다. 영화는 혼자 보았다면 중간에 껐을 정도로 취향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다를 떨며 보았던 두 시간이 무척 즐거웠다는 것이다. 게다가 더 절묘한 농담을 위해 몰입해서 보다 보니, 캐릭터의 묘한 매력까지 발견하게 되었다며 파티 기능을 찬양했다. 혼자는 힘든 걸 가능하게 하는 함께 보기의 힘이란. 우리는 다음에 넷이 만날 때에는 꼭 왓챠가 아닌 진짜 파티를 하자고 약속하고서 헤어졌다.(각자 할 일을 하기 위해 온라인 세상을 나왔다) 그때에도 영화는 넷 다 절대 취향이 아닐 작품으로 고를 것이다.

함께 봐야 유독 재밌는 콘텐츠들이 있다. 나에게는 주말 드라마와 연애 리얼리티 쇼, 호러 영화가 그렇다. 본가에 내려가면 엄마와 함께 주말 드라마를 시청한다. 분명 30회 차가 넘었고, 난 오늘 처음 접하는 제목임에도 엄마의 초고속 요약과 함께라면 얼마든지 내용을 따라갈 수 있다. 이해를 넘어선 몰입까지도 가능하다. 나는 어느새 "저런 나쁜...!"이나, "아니, 그러면 안 되지! 저게 말이 돼?"를 중얼거리며 다음 장면을 예상한다. 엄마는 말한다. 혼자 볼 때는 그냥 그랬는데 오늘 너랑 같이 보니까 왜 이렇게 재밌는지 모르겠다고. 본가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날이면 엄마와 함께 이번 주 주말 드라마를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서울에서 혼자 본 주말 드라마는 나도 그리 재밌지 않았다.

이상했다. 바뀐 건 단순히 내 중얼거림에 맞장구치거나 함께 중얼거리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뿐인데, 그것이 왜 감상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 그 차이가 가리키는 건 하나다. 어떤 감상에는 그것을 나눌 목소리가 필요하다. 부모님 세대에는 텔레비전이 있는 가구가 많이 없어서, 인기 있는 드라마가 방영하는 시간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텔레비전이 있는 집의 앞마당에 모여 함께 드라마를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가 사람들을 한데 끌어모으고, 또 다른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현장이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때와는 많은 게 달라졌지만, 여전히 화제가 되는 콘텐츠는 공동의 화제가 된다. 더 큰 집중력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평소엔 꺼낼 일 없는 대화 주제가 나오기도 한다. 나는 일정한 시간 동안 우리가 같은 걸 보고 있다는 감각이 좋다. 그로부터 도출된 각기 다른 감상을 공유하는 순간을 사랑한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OTT 사이트에 빠른 다시 보기가 제공되고 있음에도, 굳이 시간을 맞춰 텔레비전을 켜는 까닭이다.


일러스트_이유진 

지난주까지는 주말 드라마 <닥터 차정숙>을 부지런히 챙겨 봤다. 함께 사는 동생은 약속을 나갔다가도 방영 시간인 열 시 반 전에는 꼬박꼬박 집에 들어왔다. 본가에 내려갔을 때도 열 시 반에 온 가족이 각자의 일정을 끝내고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누가 나쁘니, 누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느니 이야기하다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휴대폰으로 같은 드라마를 보는 친구와 실시간으로 'ㅋㅋㅋㅋ'를 주고받았다. 아빠만 그 자리에 없었다. 드라마 보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아빠는 방에서 혼자 건강 유튜브를 봤다. 

우리는 화면을 통해 다른 세상을 본다. 숨소리 하나 없이 몰입해서 보든, 팝콘과 함께 시간 때우기로 보든 그 세상은 언젠가 끝난다. 영상이 종료되는 순간 우리는 현실로 튕겨져 나올 수밖에 없다. 알고도 속아주는 가짜의 세계다. 그렇기 때문에 가짜가 어째서 가짜인지, 가짜임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남았는지를 이야기 나눌 진짜가 필요한 것 아닐까? 세상에는 무수한 감상의 방법과 스타일이 있고, 매번 모든 감상을 진지하게만 할 필요는 없다. 상징을 해석하고 함의를 찾는 재미가 있는 작품도 있겠지만, 함께 웃고 욕하는 것으로 그날의 우울을 흘려보낼 수 있는 작품도 있다. 

그런가 하면 연애 리얼리티 쇼의 경우에는 비슷한 듯 조금 다르다. 드라마가 순순히 가짜임을 인정하고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되는 콘텐츠라면, 리얼리티 쇼는 대본이 있을지언정 자신들이 진짜라고 내세우기 때문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 안의 모든 건 실제 상황이다. 갑작스런 감정의 동요도, 의외의 선택과 이해 불가한 행동도 전부 진짜다.(진짜라고 주장한다) 적어도 내 주변의 도파민 중독자들은 학자에 버금가는 탐구욕을 가지고 리얼리티를 감상하는 것 같다. 다듬어지지 않은 일반인 출연자가 자신의 한 단면을 내보일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심장이 뛴다. 그 단면으로부터 시작된 사고는 스스로의 기억과 추리를 넘어 타인과 이어지고, 점점 범위를 넓혀간다. 한 마디로, 이야깃거리가 많은 콘텐츠다. 함께 과몰입하는 행위에는 분명한 즐거움이 있다. 

한 가지 고백하자면 난 모든 리얼리티 쇼의 중독자다. 연애 리얼리티, 생존 리얼리티, 아이돌 데뷔 리얼리티까지... 가장 최근엔 화제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사이렌: 불의 섬>을 봤다. 그간 본 적 없는 직업군별 서바이벌이라 무척 즐겁게 감상했다. 주변 사람들이 응원하는 최애 팀이 다 달라 마지막 화를 기다리는 시간이 설렜다. 내가 응원한 팀은 탈락했다. 리얼리티 중독자이지만 최후의 하나를 가리는 능력과 직감은 한참 모자란 듯하다. 나는 또 다음 콘텐츠를 찾아 이 도파민의 바다를 헤엄친다. 우리는 각자 헤엄치다가도 지치면 해변가로 나와 함께 간식을 먹을 수 있다. 바다에서 뭘 발견했는지, 오늘의 수영이 어땠는지 이야기함으로써 그 순간은 더욱 선명히 남는다.

이 꼭지를 쓰는 동안 오래전에 감상했던 작품들을 되새기고 그때의 기분을 이야기할 수 있어 기뻤다. 그러다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칼럼을 쓸 때면 작품과 함께 그 작품을 함께 보았던 친구들이나 당시의 기억들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잊었다는 걸 모를 만큼 완전히 잊고 있었던 아주 오래전의 기억까지도 말이다. 그러니까 내 안의 반짝이는 진열장에는 사실 콘텐츠의 한 컷, 한 컷도 들어 있지만, 그 신을 감상할 때의 기분과 날씨, 함께한 이의 얼굴과 대화, 그때 먹은 음식, 고민도 함께 놓여 있다. 토막 난 허구의 장면을 사라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액자 틀처럼 붙잡아 주는 건 바로 그런 잡다한 일상의 기억들이다. 기억의 저 밑에 묻힌 보물 같은 순간들을 다시 꺼내 볼 수 있어 내가 더 고마워지는 시간이었다. 꼭 대청소를 하다 그리운 물건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오랜만에 떠올린 이 기분을 다시 붙잡아야겠다. 쥘 수 있을 때까지 쥐고, 빠져나가려 하면 다시 이 진열장인지 창고인지 모를 공간을 들여다볼 것이다. 오래오래 기억하기 위해 더 많이 이야기하고 써야겠다. 끊임없이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연쇄 작용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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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예은(소설가)

소설가.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칵테일, 러브, 좀비』, 『트로피컬 나이트』 등을 썼다. 스릴러, SF, 호러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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