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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미의 혼자 영화관에 갔어] 냉소와 사랑 사이의 칸 출장기 - <슬픔의 삼각형>
김소미의 혼자 영화관에 갔어 15화
<슬픔의 삼각형>은 전형적으로 영화 속에서 '나 자신'을 찾기가 힘이 드는 영화다. 그런 식의 이입과 독해를 요구하지 않고 외려 극렬히 거부하는 영화에 가깝다. 그럼에도 나는 어쩔 수 없이 나와 그나마 닮은 사람은 누구인지, 혹여나 나의 자리를 찾는다면 어디인지 묻고 싶었다. (2023.06.05)
영화 평론가 김소미가 극장에서 만난 일상의 기술을 소개합니다. 서울을 살아가는 30대로서 체감한 영화 속 삶의 지혜, 격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
칸 영화제에 다녀왔다. 그동안 <혼자 영화관에 갔어>는 실천 불가능했다. 아니, 혼자가 아니었던 정도가 아니라 매일 2300석 규모의 뤼미에르 대극장과 드뷔시, 바쟁, 브뉴엘, 바르다 같은 화려한 이름들의 극장에 가서 상영관을 가득 채운 사람들과 3~5편의 영화를 보았다. 통신으로만 접할 때는 시큰둥했던 칸의 의례적인 기립 박수 문화는, 영화에 고양된 정신을 금세 경도시켜 이미 칸의 분위기를 몇 번 경험한 선배들이 커피를 찾아 서둘러 상영관을 빠져나갈 때에도 나 혼자 남아 신나게 기립 박수를 치거나 호응하게 했다. 나는 그곳에서 새삼 들뜬 초심자였기 때문에 인터뷰라도 들어갈라치면 거울을 보고 다시 전문가적인 표정을 찾기 위해 애써야 할 정도였다. 전 세계에서 처음 공개되는 거장들의 신작을 포식에 가깝게 허겁지겁 삼키다보면 체력적으로는 물론 지치기 마련이다. 영화를 잘 소화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회의하게 되는 상태도 심심찮다. 하지만 프랑스도 아니고 칸도 아니고, 사실상 매우 희귀하게 보존된 '영화 구역'이라 불러 마땅할 이 좁은 크루아제트 거리 인근에서는, 언제나 그림자보다 햇살이 이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폴른 리브즈>, 트란 안 홍의 <포토푀> 등 뜻밖에도 연달아 '사랑'을 말하는 영화들을 수혈받으면서 어쩔 수 없이 낙관에 차오른 얼굴들 사이를 걸어다닐 수 있었던 이유다. 긍정할 수 없는 세계를 살아가면서도 예술가들이 안간힘을 써서 발굴해 낸 사랑의 위력은 힘이 셌다.
지난해 황금종려상을 받은 <슬픔의 삼각형>의 감독이자 올해 심사 위원장인 루벤 외스틀룬드의 취향은 그보다 냉정했다. 인간 본성과 사회의 부조리를 향해 거센 펀치를 날려 무엇이든 더러운 것을 토해내게 하고야 마는 그의 창작력은, 올해 집요한 법정극 속에서 결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부부 관계의 복잡성을 해부하는 <아나토미 오브 어 폴>에 황금종려상을, 아우슈비츠 수용소 옆에서 꿈의 집을 짓고 살아가는 나치 지휘관 가족의 위선을 형식 실험으로 파헤치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게 심사위원 대상을 전달했다. 화제가 될만한 이변은 없었지만 대체로 훌륭한 수상 결과였다. 밤 11시, 폐막작인 디즈니 애니메이션 <엘리멘탈>까지 끝나자 카트린느 드뇌브의 아름다운 포스터가 걸린 팔레 드 페스티벌 거리가 마침내 한산해졌다. 자,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14시간의 비행 시간 동안 뒤늦은 시차 공격으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칸에서 다진 혼자만의 내적 친밀도에 의지해 외스틀룬드의 <슬픔의 삼각형>을 기내 영화로 다시 보았다. 작품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초호화 요트 위에서 슈퍼 리치들이 위장에 든 만찬을 게워내고 아래로도 배설을 멈추지 않는 폭풍우 장면이 펼쳐질 때 나는 그 요지경에도 불구하고 속절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가수면 상태에서도 똥물이 역류하는 변기 옆에서 구토하는 사람의 형상이 여전히 재생되고 있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할 무렵엔 꼭 무슨 사고라도 난 것처럼 옆자리의 선배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바깥을 봐봐! 저 공기 좀 봐!"
미세 먼지의 도시, 서울에 도착한 것이 틀림없었다. 공항 철도에 몸을 싣고 다시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겨우 눈을 뜬 것은 내 옆자리에서 벌어진 작은 소란 때문이었다. 임산부석 앞에서 장애인 승객과 임산부 승객이 약간의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 내용의 세부를 이곳에 옮기고 싶진 않다. 나를 포함해 아무도 개입하지 못했다. 몇 분 후 한 사람이 옆칸으로 떠났다. 비임산부, 비장애인 승객 중 아무도 일어서지 않았다. 그 사실을 나는 한참 뒤에야, 잠에서 깨고 난 뒤 깨달았다. 영화 구역을 떠나 백 퍼센트의 현실에 도착한 것이 그제야 자책과 함께 선명해졌다. 퍽 우울하고 부끄러운 실감이었다.
도착 이튿날인 이른 아침. 영문도 알 수 없이 울려댄 재난 경보음에 잠이 깬 뒤 나는 황급이 인터넷 검색창을 열어 실시간 검색어를 살폈다. 잠시 후 오보라는 경보가 다시 울렸다. 심각하자면 한없이 분노스럽고 웃어 넘기자면 코미디가 따로 없는 헤프닝이 하루 종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 중 나를 자극한 것은 경보음이 울린 뒤 우선 대야에 물부터 받아두었다는 한 트위터리안의 고백이었다. <슬픔의 삼각형>이 스쳐 지나가며, 가라앉는 동시에 불타고 있는 배인 자본주의 호 위에서 자본도 권력도 없는 내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불 피우고 움막을 짓고 채집이라도 하는 최소한 생존 기술이 아닐까 하는 염려가 떠올랐다.
<슬픔의 삼각형>은 부자 손님과 선원들이 한 데 머무는 초호와 요트의 적나라한 계급도를 펼치다가 뜻밖의 사고로 인해 이들이 함께 무인도에서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일련의 무지막지한 소동극을 그린 영화다. 자본주의 풍속도를 적나라하게 그리는 작품의 중추는 요트 위에 일들을 다루는 2부이고, 위악을 불사할 정도로 성 역할과 계급의 전복을 시도한 무인도에서의 생존기가 3부를 견인한다. 이때 그 필요성이 흥미로운 것은 1부의 존재다. 협찬을 받아 요트 위에 승선하기 전, 인플루언서 모델 커플인 20대 청년 아야와 칼에게 일어난 일 말이다.
두 사람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친 뒤 누가 계산할 것인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인다. 웨이터가 계산서를 테이블의 가운데 내려놓자 둘 사이에 묘한 침묵이 오간다. 아야가 말한다.
"고마워, 자긴 항상 관대해."
이제 칼이 신용 카드를 꺼내놓아야 할 차례다. 하지만 남자는 이번에 참지 않기로 했다.
"자기가 늘 그렇게 말하니까 결국 내가 계산해야 하잖아."
아야는 슈퍼스타이, 칼은 패션업계의 백인 남성이라는 위치 때문에 박봉과 푸대접을 견딘다. 하지만 둘의 연애는 여전히 남성과 여성에게 요구되는 전통적인 성역할에 근거해 굴러간다. 둘의 싸움은 커져서 집에 도착해서도 서로에 대한 모욕을 멈추지 않는데, 밤새 각자 끙끙 앓던 커플은 놀랍게도 화해 지대에 도착한다. 솔직해지기로 택했기 때문이다. 아야가 다시 말한다.
"난 직업이 모델이잖아. 내가 일을 그만뒀을 때 먹고 사는 방법은 트로피 와이프가 되는 법 뿐이야. 난 네가 날 부양할 의사가 있는지 궁금했어."
계산서 한 장에 담긴 놀라운 속내다. 그런데 지금의 관계에서 트로피에 더 가까운 쪽은 칼이 아닌가? 더 놀랍게도 칼은 자신의 처지를 철저히 회피한다. 남자는 여자가 어떻게든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만들 것이라고 감동적으로 웅변한다. 커플은 곧 요트에 초대받아 호화로운 생활을 즐긴다.
이들의 대화가 얼마나 웃긴지 차치하고서, 내가 느낀 의외의 감상은 절박함이었다. <슬픔의 삼각형>에서 칼과 아야 커플이 왜 등장해야 했는지를 다시 질문해본다. 두 사람은 2부의 요트에 탄 부자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청년 세대'를 대변하기엔 꽤나 자본주의 첨탑의 상단에 합류한 이들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즉 둘에게 주어진 욕망과 기회가 이들을 더 우스꽝스럽고 절박하게 한다. 요트 위의 부자들은 할 필요가 없는 대화로 이골이 나도록 싸우게 한다. 말하자면 아야와 칼은 요트에 탄 이후에도 승객들 중 유일하게 노동(사진을 찍고 포스팅하는)하는 이들이다. 바로 이런 이중성 때문에 칼과 아야는 영화 내내 거의 보이지 않는 존재였던 청소부 아비게일이 3부 무인도에서 남다른 생활력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난 뒤에 그와 직접적으로 갈등 혹은 착취 관계를 맺는 주체가 된다.
<슬픔의 삼각형>은 전형적으로 영화 속에서 '나 자신'을 찾기가 힘이 드는 영화다. 그런 식의 이입과 독해를 요구하지 않고 외려 극렬히 거부하는 영화에 가깝다. 그럼에도 나는 어쩔 수 없이 나와 그나마 닮은 사람은 누구인지, 혹여나 나의 자리를 찾는다면 어디인지 묻고 싶었다. 그 전에, 낭만과 낙관을 거부한 외스틀룬드의 세계와 사랑을 믿는 세계 중 어느 쪽이 조금 더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지 답 없는 질문을 띄워보고 싶었다. 아마도, 공항 철도 위의 소란을 마주하고 이른 아침 잘못 울린 재난 경보음을 듣고 난 이후의 내가 그린 상상도는 외스틀룬드 쪽에 가까웠던 것 같다. 야생의 무인도에서 불을 피울 수 있게 된대도 결국 실랑이 끝에 서로가 서로에게 나뭇가지를 다 빼앗겨버리는 풍경 같은 것을 떠올렸다. 영화 앞에서 하염없이 박수치던 일들이 꿈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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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사람. 영화를 쓰고 말하는 기자. <씨네21>에서 매주 한 권의 잡지를 엮는 일에 가담 중이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독립 영화잡지 <아노>의 창간 에디터, CGV 아트하우스 큐레이터 등으로 일했다. 영화의 내면과 형식이 만나는 자리를 오래 서성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