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잡지, 책, 영상 제작, 브랜딩의 공통점 (G. 박선아 작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40회) 『우아한 언어』
"좋은 이야기를, 제가 가진 아름다운 재능을 아낌없이 쓰며 살아내고 싶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산문집 『우아한 언어』를 출간하신 박선아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23.05.11)
요즈음은 숨을 고르며 발레나 필라테스 같은 운동을 꾸준히 한다. 이렇게 다양한 근육을 써본 것은 처음이라 신기하고 재미있다. 오늘과 내일의 근육이 다르게 변하는 기쁨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지. 내가 눈의 근육을 키울 때, 어딘가에서 이런 근육을 단련했을 선생님들을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그간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들이 보이는 순간이 생기기도 한다. 눈의 근육을 통해 이제는 밥을 사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일만 하며 늙고 싶진 않기에 다른 근육을 쓰는 법도 부지런히 배운다. 나와는 다른 근육을 쓰며 살아온 사람들은 언어의 운율도 다르고, 마음의 매무새도 다르지만 그들과도 다정하게 지내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나와 우리의 유년이 그랬던 것처럼.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박선아 작가님의 책 『우아한 언어』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좋아하는 전시를 찾아다니고, 사진 수업을 찾아 듣고, 부지런히 책을 읽는 사람에게 생긴 눈의 근육이란 어떤 것일까요. 아트 디렉터 박선아 작가님은 근육을 단련하듯 배우는 일을 멈추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름다움을 탐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눈의 근육이 있다."
박선아 작가님의 이 말이 봄의 설렘처럼 다가오는데요.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우아한 언어』를 쓰신 박선아 작가님을 모시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쪽을 응시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오은 : 전에 만나지 못했던 느낌을 가진 책의 물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지에 목차가 적혀 있기도 하고요. 작지만 오히려 작아서 감각적인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책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의 기분이 어떠셨어요?
박선아 : 제가 좋아하던 '신신'이라는 그래픽 스튜디오랑 작업을 한 건데요. 저는 항상 책을 출간하기 전에 '이번에는 이런 걸 해보고 싶다' 하는 니즈를 갖고 있거든요. 물론 디자이너분들의 역량에서 많이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요. 이 책 같은 경우 양장을 꼭 해보고 싶다, 그리고 조금 작은 판형이었으면 좋겠다, 또 그동안은 표지에 항상 사진을 넣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형태였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말끔하고 클래식하게 오래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그런 책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죠. 이걸 미팅하면서 말씀을 드렸고요. 완성된 책을 받았는데, 제가 그리던 느낌을 잘 구현해 주셨다는 느낌이 들어서 되게 반갑고 좋았어요. 자꾸 만지작거리게 되더라고요.
오은 : 박선아 작가님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학에서 문헌 정보학을 공부했다. <NYLON> 매거진 피처 어시스턴트를 시작으로 <AROUND> 매거진과 안그라픽스에서 에디터로 일했으며, 세 권의 책 『20킬로그램의 삶』, 『어떤 이름에게』, 『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는 거지』를 출간했다. 현재는 F&B 브랜드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명함에 적히는 직업이 바뀌고 다루는 매체와 소재가 달라져도 늘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고 여긴다. 언젠가는 작은 집에서, 넓은 사람과, 깊은 마음으로 살기를 꿈꾼다." 늘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고 여긴다는 말은 어떤 이야기일까요?
박선아 : 질문들을 받았고요, 그에 답을 달면서 발견하게 된 이야기 같아요. 잡지사를 시작으로 출판사에서도 일을 했고, 지금은 브랜드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요. 에디터였다가 영상을 촬영할 때는 PD로도 일을 하고 지금은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다 브랜드 관련된 것들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결국에는 직업이 바뀌어도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들을 사람들한테 들려주는 일을 한다는 걸 알았어요. 조금 차이가 있다면 책은 그냥 들려주는 것까지만 생각하고요. 브랜드에서는 설득을 시켜야 하니까 강도가 다르다고는 느끼는데요. 모든 것이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오은 : 이번에 나온 아름다운 책이죠. 『우아한 언어』가 어떤 책인지 직접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책이죠?
박선아 : 제가 오랫동안 좋아해온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책이에요. 단숨에 써 내리진 않았고요. 2016년 정도부터 2018년 정도까지 <어라운드>라는 매거진에 연재했던 글들을 재편집했어요. 그 당시에 제가 사진에 대해서 고민하고, 좋아했던 것들을 매달 한 꼭지씩 썼는데요. 그 이야기를 엮어서 만든 책입니다.
오은 : '우아하다'는 단어를 가끔 사용하기도 하고, 활자로도 종종 접하기는데 책의 제목에 들어가니까 좀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책에서는 사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 늘 우아함이라는 단어가 함께 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작가님께 우아함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박선아 : 저의 책상 모니터에 '예쁘고 아름답고 우아하게'라고 붙여놨어요. 이것이 제가 되게 중요하게 여기는 말인 것 같아요. 언제나 그런 태도로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죠. 제목을 고를 때 고민했던 지점은 어떤 외형적인 것보다는 우아함이라는 말이 가지는 힘이었어요. 예전에 친구가 추천해 준 다큐멘터리에서 건축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건축물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노력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아요"라고 말하는데 무릎을 탁 쳤던 순간이 있었거든요. 일을 하거나 생활을 살아갈 때 내가 바라는 태도가 항상 저 지점에 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원래도 우아함이라는 단어를 좋아했지만 그때 조금 더 좋아하게 됐어요. 우아함을 정의 내린다면 이런 말이 좋겠구나,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오은 : 저는 시를 쓰기도 하고요. 단어를 보면 뜯어보는 습관이 있는데요. 말씀을 들어보니까 우아함은 일종의 힘일 수도 있고 가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장 최근에 만난 우아함이 있다면 어떤 게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박선아 : 한 팟캐스트에서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일에 지치는 그런 날이었는데요. 나무들은 뿌리로 대화하고, 가지로 연락한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에 산불이 한참 심했을 때도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요. 나무들은 불이 났거나 어떤 상황이 생겼을 때 서로 알려주는 신호들이 있고, 그게 되게 조용히 전달된다고 해요. 그 뒤로 한동안 거리에 있는 나무들을 보게 되었어요. 보면서 나무라는 생명체는 참 우아하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원래도 아름답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런 방식으로 무언가를 전달하고 연결된다는 게, 우아하죠.
오은 : 각 챕터의 마지막이 「김점선」, 「고레에다 히로카즈」, 「아녜스 바르다」예요. 이 아티스트들에게 쓴 편지로 채워졌는데요. 세상에 많은 아티스트들이 있고 개중에는 또 사진과 관련된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들도 많았을 텐데요. 특별히 이 세 명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었나요?
박선아 : 이 책의 원고들이 4~5년 전에 쓰여진 원고라 다시 모아서 읽었을 때 너무 중구난방이라고 느꼈어요. 연재 당시에는 그냥 매달 원고를 썼던 거니까요. 그걸 정리하는 과정에서 챕터를 세 개로 나누게 되었고요. 그러면서 세 묶음을 매듭 지어주는 장치가 필요하겠다 생각했어요. 한 챕터를 마무리하는 용도로 편지를 쓰기로 한 거죠. 편지로 뭔가를 쓸 때에 훨씬 생각을 더 넓게, 재밌게 해볼 수 있는 지점이 있잖아요. 그렇다면 나한테 영향을 준 작가들에게 편지를 써보자 생각하면서 세 작가를 생각했어요.
오은 : 책을 읽으면서 제일 좋아했던 글은 '이미 정해진 환갑 선물'이라는 글이었어요. 친구들을 위해서 환갑 선물이라는 폴더를 만드는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친구들을 위해서 환갑 선물을 만들고 있는 거잖아요.
박선아 : 제가 다니던 잡지사에서는 에디터가 사진까지 찍어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기사에는 '에디터/포토그래퍼: 박선아' 이런 식으로 쓰곤 했는데요. 사실 사진을 전공하고 업으로 삼고 있는 포토그래퍼 분들한테는 실례되는 부분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전향을 해볼까 고민을 했던 적이 있어요. 사진 찍는 건 오랫동안 좋아했던 거니까요. 실제로 사진 작업을 받아서 몇 개 해보기도 했는데요. 막상 그러니까 제가 원래 알았던 즐거움이 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사진 찍는 건 여전히 좋고, 직업으로 삼고 싶지는 않다면 내가 사진 찍는 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 시기에 『윤미네 집』이라는 사진집을 보면서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게 이런 형태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죠.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을 오래도록 기록해주고 기억해주는 게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이고 의미일 수 있겠다고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계획했던 일이었어요.
오은 : 이제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책읽아웃> 청취자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해 주세요.
박선아 : 소개하고 싶은 책을 몇 권 살펴봤는데 다 절판이 되었더라고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책에도 나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에세이를 골랐어요.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이에요. 두 권 다 제게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나와는 다른 분야이지만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점에 깊이 공감했고요. 또 그분이 아직 살아 계시고, 계속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걸 더 기대하게 만드는 책이거든요. 『우아한 언어』를 읽은 분들이라면 이 두 권의 책을 더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선아 대학에서 문헌 정보학을 공부했다. <NYLON> 매거진 피처 어시스턴트를 시작으로 <AROUND> 매거진과 안그라픽스에서 에디터로 일했다. 현재는 F&B 브랜드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명함에 적히는 직업이 바뀌고 다루는 매체와 소재가 달라져도 늘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고 여긴다. 언젠가는 작은 집에서, 넓은 사람과, 깊은 마음으로 살기를 꿈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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