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상처받고 흔들리는 마음을 단단하게 지켜내는 법
『어른의 감정 수업』 인현진 저자 인터뷰
내담자와 저자가 나쁜 심리 습관에서 벗어나 문제를 해결해나간 다양한 방법들을 배우고, 저자가 던진 질문에 답을 쓰다 보면 자신이 반복하고 있던 심리 문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찾게 될 것이다. (2023.04.27)
『어른의 감정 수업』은 생각, 감정, 행동 영역에서 무의식적이고 부정적인 자동 반응에 덜 휘둘림으로써 마음의 중심을 단단히 잡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심리학적 이론뿐만 아니라, 그동안 저자가 상담 현장에서 만난 내담자의 이야기와 저자 자신의 경험을 사례로 덧붙였다. 그리고 매 이야기를 마칠 때마다 자신이 가진 패턴을 발견하고 자동반응을 멈추는 데 도움이 되는 질문을 더하였다. 내담자와 저자가 나쁜 심리 습관에서 벗어나 문제를 해결해나간 다양한 방법들을 배우고, 저자가 던진 질문에 답을 쓰다 보면 자신이 반복하고 있던 심리 문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찾게 될 것이다.
오랜 기간 심리 상담가이자 작가로 활동해오셨는데 단독 저서는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냥 감정이 아니라 '어른의 감정'이라고 되어 있는 게 인상적인데요. '어른의 감정'은 어때야 하는 건지, 제목을 이렇게 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이의 감정, 어른의 감정이 따로 있는 건 아닙니다만, 굳이 '어른의 감정'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자신의 감정은 자신이 책임지는 사람이 성숙한 어른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자극에 대한 반응이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흔히 긍정적 감정, 부정적 감정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감정 그 자체는 좋거나 나쁜 게 아니라 '필요한' 것이지요. 중요한 점은 상황에 따라 감정을 적절하게 느끼고 표현하는 것인데, 상담을 하다 보면 감정 조절이 잘되지 않아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감정을 절제하며 참아야 하는 순간에 일방적으로 터뜨리거나 진솔하게 표현해야 할 때 회피하는 경우죠. 감정을 회피하거나 억누르기보다 자연스럽게 느끼고 수용하면서 상대를 비난하지 않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 그것을 바로 '어른의 감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롤로그를 동화 <빨간 구두> 이야기로 시작하셔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잔혹 동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빨간 구두'가 심리학적으로 '자기답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 심리 상담에서 꿈 분석을 할 때 신발 꿈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는데요. 심리적인 면에서 살펴봐야 할 신발 꿈은 또 어떤 것들이 있나요?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는 다층적으로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풍부한 상징을 담고 있는 텍스트인 만큼 '자신답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단정하기보다 하나의 관점으로 받아들여주면 좋겠습니다. 상담 장면에서 의미 있는 꿈을 다룰 때가 있는데요, 특히 독립과 관련된 이슈를 다루 때 꿈 이야기가 자주 나왔습니다. 심리적인 측면에서 신발 꿈을 살펴볼 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내 신발을 신고 있는가'라는 점입니다. 남의 신발을 신고 있거나, 마음에 안 드는데 억지로 신고 있거나, 잃어버렸거나, 남의 신발을 뺏었거나 혹은 남에게 뺏겼거나 등 다양한 내용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공통점은 '내 신발을 자연스럽게 신고 있지 않다'는 점이죠.
이럴 땐 현실에서 주체적으로 살고 있지 못하는 영역은 무엇인지 탐색해 보면 도움이 됩니다. 너무 작은 신발을 신고 있는 경우라면 성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꿈을 다룰 때 조심해야 하는 점은, 꿈 작업은 해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꿈은 우리의 소망, 건강, 관계, 일, 불안, 과거, 현재, 미래 등을 다양하게 포함하고 있으며 꿈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내 인격의 일부이기도 하기에 하나의 꿈조차 그 의미를 완벽하게 다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신발 꿈을 유난히 자주 꾼다면 현재의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차분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걱정, 불안, 우울, 완벽주의, 자기 비난 등의 나쁜 심리 습관을 반복하는 이유가 패턴화된 자동 반응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으신데요.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해 '자동 반응'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시겠어요?
'자동 반응'은 어떤 자극에 대해 의식적으로 선택하기보다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처음엔 어떤 이유가 있었겠지만 오래 반복하는 동안 자동적인 습관이 되어버린 거죠. 우리가 자신의 감정, 생각, 행동을 잘 관찰해 보면 특정 자극에 대해 자동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특히 부정적인 상황에서 그럴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일에 대해 안 좋은 피드백을 들었을 때 '이 부분이 아직 부족하구나.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뭐지?'라고 생각하기보다 '나를 싫어하나?'라고 생각될 때가 있지요.
객관적인 피드백을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습관이 있다면 이 또한 자동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자동 반응이 많으면 삶의 영역이 협소해집니다. 타인과 편안한 관계를 맺기 힘들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어려움을 느끼지요. 내가 어떤 상황에서 자동적인 반응을 보이는지 패턴 몇 가지만 성찰해도 삶이 한결 가볍고 즐겁게 느껴집니다. 내가 습관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감정, 생각, 행동이 있는지 꼭 한 번 탐색해보세요.
요즘 주변에도 불안 장애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아요. 심리 상담이나 정신과 진료를 받는 분들도 많아졌고요. 책에서 작가님은 불안을 느끼는 건 당연하지만, 여기 휩쓸리지 않는 건 자신의 책임이라고 하셨는데요. 이게 참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작가님도 불안을 느끼는 순간이 있으실 텐데요. 어떻게 그 불안을 다루시나요?
저도 '불안의 여왕'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불안이 높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불안은 불안일 뿐 현실에서 사실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 조금씩 내면의 불안을 다루는 힘이 생긴 것 같아요. 재미있는 것은 불안 때문에 방어적인 행동을 하면 할수록 더 불안해지고, 두려워하는 일이 생기더라는 점이었습니다. 우선 제가 불안을 다루는 방법 중의 하나는 불안감을 느낄 때 자신에게 더욱 관대해지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어떤 상황에서 자극을 받았는지 객관적으로 탐색해 보지요. 대부분 불안은 마음속 극장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누가 나를 싫어할까 봐 불안하고, 일이 끊어질까 봐 불안하고, 글이 안 써질까 봐 불안하지요.
제 경우, 내 안의 불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대부분의 불안은 통제와 연관이 있었습니다. 통제에 대한 강력한 욕구는 일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졌는데, 이런 성향은 불안을 더 부추겼죠. 결과적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불안이 높아지는 것을 알고 난 후, 조금 더 깊은 내면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제가 배운 것은 '포기'입니다. 상황을 통제하려는 마음을 포기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고 덜 불안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여전히 불안합니다. 그러나 예전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참을 경우 그게 신체적 통증으로 나타나게 되니 말로 풀어주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책에 있는 '돌보지 못한 감정이 보내는 신호' 체크 리스트에 저도 2/3 이상이 해당되어 살짝 충격을 받았는데요.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면 관계가 망가질 수도 있기에 참는 건데,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요?
우리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은 나 자신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빛과 그림자까지 포함해서 받아들이는 일인 듯합니다. 좋은 관계는 나의 좋은 면과 그 사람의 좋은 면이 만날 때 형성되지만, 그렇다고 서로에게 불편한 점이 전혀 안 생기는가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라고 답하긴 어렵지요. 특히 애착이 형성되어 친밀하게 오래 만나는 사이에선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실망도 하게 되고 갈등도 생깁니다. 그래서 어떤 한 사람을 전면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통합적인 관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타인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면 관계가 망가질까 봐 두렵다면 우선, 자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부터 살펴볼 것을 권합니다. 내가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다루고 표현하며 소화시키고 있는지 탐색해 보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떤 식으로 드러내야 할지 통찰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일체 표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관점을 바꿔 상대의 입장에 서보거나, 내가 상대에게 무엇을 투사하고 있는지 살펴보거나, 관계에서 어떤 기대가 있었고 무엇이 좌절되었는지, 그것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먼저 작업을 한 후에 진솔하게 마음을 표현해 보면 어떨까요?
내담자의 사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생각, 예를 들어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해',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해' 같은 생각이 '나는 부족해', '잘 해내지 못하면 사람들이 실망할 거야'로 이어져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주셨어요. 그 생각이 어디서 비롯된 건지 뿌리가 되는 핵심 신념을 찾아봐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핵심 신념'이란 게 무엇인가요?
우리는 저마다 생각의 틀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일을 겪어도 다른 생각을 갖게 되지요. 핵심 신념은 수많은 생각의 뿌리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핵심 신념이 부정적일 경우 생각의 틀은 부정적인 성향을 강하게 갖게 됩니다. 자신, 타인, 세상, 삶에 대해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바라보지요. 핵심 신념은 어릴 때 주 양육자와의 상호 작용을 통해 형성됩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실수를 해도 너그럽게 수용 받으며 다시 한번 해볼 기회를 가진다면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자아상을 갖게 되지요.
반면, 한 번의 실수에도 가혹하게 야단을 맞거나 놀림을 당하거나, 지나친 책임과 의무를 짊어지거나, 억압적이고 통제적인 상황에서 양육된다면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긴 어려울 겁니다. 핵심 신념은 자신이 끼고 있는지도 모른 채 끼고 있는 '안경'과 같습니다. 내가 어떤 핵심 신념을 갖고 있는지 찾고 싶다면 '그건 당연하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해 보세요. 너무나 당연해서 의심조차 하지 않은 것, 그것이 핵심 신념입니다.
마지막으로 '삶을 결정하는 건 행동'이라고 하시면서 "원하는 걸 해내기 위해선 매일 하는 작은 행동 습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하셨어요. 특히 '리추얼'을 강조하셨는데요. 리추얼이 중요한 이유와 작가님이 하고 계신 리추얼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리추얼은 원래 종교 용어로 '의례', '의식'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요, 매일 반복하는 '의도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를 해롭게 하는 부정적인 자동 반응을 멈추고 자신에게 이로운 습관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요. 제가 매일 하고 있으면서, 많은 분들에게 추천하는 것은 글쓰기입니다. 글쓰기를 권하면 지레 겁을 먹는 분들도 있는데 리추얼 글쓰기는 '잘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냥 쓰는 것'입니다. 감정 일기나 감사 일기도 좋고, 마음에 와닿는 좋은 문장을 필사하는 것도 좋고, 쓰고 싶은 대로 형식에 상관없이 써도 좋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삶의 희망을 믿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듯이, 글을 쓰는 시간은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다양하게 글을 쓰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그런데 처음 글을 쓰는 분이라면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글보다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써보길 권합니다.
*인현진 심리 상담 센터 '마인드페이지' 공동 대표. 대학에서 문학을, 대학원에서 상담 심리학을 전공하고 작가이자 심리 상담가로서의 삶을 병행하고 있다. 무한 경쟁에 지치고 상처 입은 현대인에게 치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치유 협동조합 '마음애터'를 공동으로 설립했다. 심리상담과 인문학 강의를 진행해왔으며 서울시감정노동종사자권리보호센터, 서울디지털성범죄안심지원센터,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 서울시요양보호사협회,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부평문화재단, 중구문화재단 등 여러 기관과 협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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