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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의 어린 개가 왔다] 나무가 되는 꿈
정이현의 어린 개가 왔다 - 6화
"나무가 되십시오. 그 자리에서." 그냥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처럼 가만히, 우뚝 서 있으라고 했다. 개는, 누가 어떻게 키우는지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는 말을 남긴 채 훈련사는 떠났다. (2023.03.13)
소설가가 얼룩 개를 기른다고요? 정이현 소설가에게 어느 날 찾아온 강아지, 그 작은 돌봄과 애쓰는 마음을 연재합니다.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강아지, 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서로 적응해가는 이야기, <채널예스> 격주 월요일을 기대해주세요. |
쉽게 설명해보겠다고 훈련사는 말했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가 쉬운 것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개들에게도 사회성이라는 게 있다고 그는 운을 뗐다. 같은 개끼리,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에서의 사회성.
"이 아이의 경우, 사람에 대해서는 그냥 백지상태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사람 손을 탄 적 없는 개. 그러므로 사람의 모든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잔뜩 겁을 먹은. 그것이 우리 집 바둑이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이었다. 무엇보다 강아지의 눈빛이 그것을 증명한다고 했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몇 달간, 바둑이가 살아온 생을 복기해보았다.
그는 산이 아니면 들, 어쨌든 길 위에서 태어났다. 쫓기고 배고픈 순간들이 자주 있었겠지만, 엄마의 보호 밑에서 형제들과 함께 컸다. 태어난 지 3개월 무렵, 엄마와 형제들과 함께 포획되어 보호소에 들어갔다. 넷이 한 울타리 안에 있었다. 그때 사진을 보면 엄마를 중심으로 강아지 세 마리가 꼭 붙어 있다. 어미는 무표정한 데 비해 어린 강아지들의 눈빛에서는 장난꾸러기 같은, 작은 활력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바둑이는 거기가 어떤 곳이라고 생각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형제들이 하나씩 그곳을 떠났다. 바둑이는 엄마와 맨 마지막까지 남겨진 아이였다.
서울로 떠나오기 전날 임시보호처에서 자기는 했지만 하룻밤일 뿐이었다. 그날 찍힌 동영상을 보면, 처음 들어가 보는 가정집의 환경이 신기한지 여기저기 냄새를 맡으며 빨빨거리고 있었다. 임보처의 다른 개들에게 겁도 없이 들이댄다는, 자원봉사자의 코멘트도 있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딱 그거라며 우리 아이들이 웃던 기억이 났다. 당시엔 그저 들어 넘겼던 바둑이의 생애에 인간과 유의미한 교감을 나눈 경험은 없었다.
"백지상태라면, 그러니까 그게 어느 정도인가요?"
내 목소리의 떨림을 숨길 수 없었을 것이다.
"제가 보기에는 0인데요.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예요. 인간과 교감한 적도 없고, 하는 방법도 몰라요. 이 녀석에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한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겁니다. 그냥 모르는 거예요."
"그러면 야생의 상태라는 말씀일까요?"
E가 물었다.
"이대로 쭉 자연에서 살았으면 당연히 그렇게 되었겠죠."
침묵만이 몇 명의 인간과 한 마리의 어린 개를 감쌌다. 훈련사가 침묵을 깼다.
"보호자님, 그러니까 얘는 지금 얼마나 당황스럽고 무섭겠어요. 어미와도 떨어지고 살던 곳에서도 떠나고 자기가 유일하게 알던 세계와 갑자기 딱 단절되어 버린 거예요. 그리고 갑자기 이렇게 전혀 낯선 곳에, 모르는 사람들 속에..."
우리 아이들은 이미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귓속이 먹먹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떤 것이 변했음을 알았다. 사물에는 중심축이 있다. 정가운데나 한복판에 위치한 축. 회전판은 그 축을 중심으로 돈다. 나의 중심축은 나. 인간의 중심축은 인간. 그러므로 인간인 나는 당연히 인간이 당황스럽고 무서운 것만을 생각했다. 어린 개의 당황과 무서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기껏해야 이런 정도.
바둑아, 머나먼 길을 덜컹거리며 실려 왔으니 너도 꽤 피곤하겠다. 아직 어색하지? 그런데 우리는 너를 구조해주었고 이렇게 (25퍼센트의 희생까지 감수하며) 잘해주려고 힘들게 노력하는 가족이자 너의 주인이야. 우리는 '착한 사람들'인데 너는 왜 그렇게 계속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거니? 너는 대체 여기서 잘 적응해 볼 생각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좀 잘 해보자.
인간으로서 나는 이렇게나 건방지고 오만했다. 강아지의 중심축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날 밤, 바둑이가 제 발로 울타리 바깥으로 걸어 나오게 하려고 치즈 간식 수십 개가 소요되었다. 훈련사는, 바둑이가 먹을 것을 '매우 많이 몹시' 좋아하는 강아지라는 사실에 희망을 걸어보자고 했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훈련사는 우리 가족에게, 강아지와의 관계에서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시간이 많지 않지만 그거 하나만은 확실하게 해결해주겠다고 했다. 이제 나는 그가 우리가 아니라 바둑이를 위해 그 말을 했다고 확신한다.
"'앉아'요."
아이들은 과연 어른보다 현명하고 과단성이 있다. 그리고 솔직하다. 우리는 아직 '앉아'조차 못하는 보호자인 것이다. 한 시간의 맹훈련 끝에 바둑이는 '앉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고, 하고, 또 하니까 되었다. 내심 '기다려'까지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훈련사는 고개를 저었다. 글자 몇 개 읽을 줄 아는 아이에게 대뜸 국어책을 들이밀고 가르쳐달라는 학부모를 만난 심경이었는지도 모른다. 훈련 말미에 질의응답 시간도 있었다.
"사람이 걸어가는데 강아지가 뛰어오르거나, 몸에 입을 대면 어떻게 해요?"
"Be a tree."
"네?"
"나무가 되십시오. 그 자리에서."
그냥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처럼 가만히, 우뚝 서 있으라고 했다. 개는, 누가 어떻게 키우는지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는 말을 남긴 채 훈련사는 떠났다. 다음 날, 내가 깨어나서 처음 한 일은 바둑이가 (울타리 안이 아니라) 화장실 앞에 펼쳐 둔 배변 패드에 곱게 싸둔 배설물을 치우는 것이었다. 역시 배변 천재가 틀림없었다. 어제 훈련의 여파 때문인지 바둑이는 평소와 달리 아주 얌전한 자세로 울타리 안에 엎드려 있었다. 체육 대회 다음날 침대에서 못 일어나는 유치원생 같아서 내심 귀엽다고 생각했다.
잠시 뒤, 아주 급한 몸짓으로 바둑이가 화장실로 달려갔다. 두 번째 배변을 했다. 피가 섞인 설사였다. 그러니까 녀석은 훈련에 지쳐서 얌전해진 게 아니라 몸이 아팠던 것이다. 정말로 나는 아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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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서울 출생으로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오늘의 거짓말』『풍선』『작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