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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의 짧은 소설] 삼두 고양이

<월간 채널예스> 2023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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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가 마지막으로 하려던 말은 뭐였을까 하고. 원망이나 저주였을까? 아니면 너라도 어서 안전한 곳으로 피하라는 말이었을까? (2023.04.04)


뭐 누구에게나 자기 집 고양이가 제일 사랑스러운 법이겠지만, 우리 집 루루는 정말 똑똑하고 특별한 녀석이란 말이지.

루루는 겉보기엔 보통의 삼두 고양이랑 비슷해. 세 개의 머리가 각각 푸른색, 호박색, 초록색의 눈동자를 갖고 있다는 점이 조금 특이하려나. 대부분의 삼두 고양이들이 그렇듯 세 개의 머리는 각각 성격이 약간씩 달라. 왼쪽 머리는 성격이 급하고 간식을 주면 제일 먼저 달려드는 데 비해 오른쪽 머리는 뭐든 느릿한 데다 양치질이나 귀 청소도 싫어하지 않아. 가운데 머리는 글쎄, 중간이라고 해야 되나. 뭐든지 그저 그래 하는 녀석인데, 또 가끔 보면 호불호가 확실한 면도 있고.

루루를 처음 만난 건 재작년 겨울 아침이었어. 여느 때처럼 출근을 하려고 스페이스셔틀을 타러 가는 길이었는데, 골목 귀퉁이에 무슨 더러운 천 조각 같은 게 놓여 있는 거야. 다른 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그날따라 왜 그게 뭔지 궁금했을까. 발로 툭 건드렸는데 움찔 움직이더라고. 어미가 버리고 간 아기 삼두 고양이였던 거야. 어쩌겠어, 그대로 두면 얼어 죽을 텐데. 그대로 오전 반차를 쓰고 녀석을 우주생물병원에 데리고 갔어. 그날부터 루루는 내 가족이 되었지.

루루의 털은 눈처럼 희고 세 머리의 울음소리는 속삭이는 것처럼 부드러워. 쓰다듬고만 있어도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진다니까. 하지만 우리 루루가 다른 삼두 고양이들보다 뛰어난 건 바로... 루루에게는 혜안이 있다는 점이야. 왜, 삼두 고양이들은 머리 세 개만큼 현명하다는 옛말도 있잖아. 그게 정말이라면 우리 루루는 머리 삼십 개만큼은 똑똑한 것 같아. 루루는 모든 것의 답을 알고 있다니까!

 예를 들자면 음, 지난주엔 회사에서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 있었어. 까다로운 바이어들 앞에서 우리 회사 물건을 좀 사달라고 어필하는 그런 거 말야. 개발에만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인 제품이었고, 그날 온 바이어들은 그 개발비를 상회하는 지불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어. 내가 얼마나 열심히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날을 위해 지구에서 제일 고급스러운 정장을 준비했는데, 문제는 거기에 무슨 넥타이를 매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였어. 우리 회사의 열정을 보여줄 빨강? 요즘 유행하는 지속 가능한 우주 개발의 모토에 따라 초록? 아니면 그냥 무난하고 럭셔리한 파랑? 출발 시간이 임박하도록 이것저것 매어봤지만 도저히 결정할 수가 없었어. 그럴 때 도와주는 게 바로 루루야. 나는 루루에게 넥타이 세 개를 하나씩 보여줬어. 루루는 세 개의 머리를 갸웃거리면서 그것들을 똑바로 바라보다가, 빨간색을 앞발로 움켜잡았어. 그 빨간 넥타이를 매고 한 프레젠테이션은 당연히 최고였고. 천왕성에서 온 한 바이어에게서 넥타이 색깔이 인상적이라는 말까지 들었다니까. 천왕성인들은 패션에 민감하기로 유명하잖아.

아무튼 루루의 똑똑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 지금 내가 무사히 직장에 다니고 있는 것도 루루 덕분이야. 두 회사의 면접에 동시에 합격했는데, 루루가 지금 회사의 합격 통보서를 골랐거든. 다른 회사는 그로부터 세 달도 지나지 않아서 주가 조작 사실이 밝혀졌고 뭐, 폭삭 망했지. 거기 대표는 아직도 우주 수배자 신세야. 참, 여름휴가를 수성의 워터파크 대신 목성의 대초원으로 선택한 것도 루루 덕분이었어. 그해가 바로 수성 워터파크 해파리 테러 사건이 있었던 때거든. 꼼짝없이 해파리 독에 쏘이는 대신 목성에서 페르세우스를 탈 수 있었지.

그래, 목성 얘기가 나온 김에 그 휴가 얘기를 좀 해볼까. 

지금은 시간이 지났으니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우린 사귀는 사이였어. 음, 꽤 오래된 사이였고. 그 친구도 직장인이었는데, 어찌어찌 여름휴가를 겹칠 수 있게 돼서 같이 목성에 가게 된 거야. 가기 전까진 즐거웠지. 우린 지구 시간으로 열흘 정도 머무를 계획이었어. 패키지여행 대신 배낭여행을 선택한 게 어쩌면 잘못이었을지도 모르겠네. 2인승 캡슐 우주선을 렌트해서, 마음껏 대초원을 누비면서 야생 우주 생물들을 구경하고 캠핑을 하기로 했었어. 우리 둘 다 그런 걸 좋아했거든. 문제는 없을 줄 알았어. 별일이라고 해봤자 대초원의 붉은 먼지 폭풍 속에서 우주 벼룩에게 쏘이는 정도겠거니 생각하곤 살충제나 열심히 챙겼으니까.

온 우주인이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었던 시기라 목성 입성 심사 줄은 바글바글했지만, 알다시피 목성이 워낙 넓잖아. 공항에서 나와 렌트한 캡슐 우주선의 키를 건네받은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니 우린 곧 단둘이 남게 됐어. 그땐 다들 수성이나 금성으로 여름휴가를 가는 분위기였거든. 그때까지만 해도 뭐, 좋았지. 우리는 공항 주변에 형성된 번화가를 빠르게 빠져나와서 대초원을 향해 우주선을 몰았어. 트렁크에는 지구형 중력 처리가 된 텐트랑 우주 식량 열흘 치가 들어 있었고. 우주선 바깥에서 산책하거나 페르세우스를 탈 때 입으려고 챙겨 온 간편한 우주복도 두 벌 있었어.

며칠간은 즐거웠어. 목성의 여러 위성에서 온 특산물 요리를 먹어보고, 소원하던 페르세우스도 한 마리씩 타봤어. 역시 날개 달린 말이라 그런지 캡슐 카랑은 비교도 안 될 만큼 빠르더라. 초속 수백 미터의 붉은 태풍 속에 번개가 번쩍거리는 풍경은 또 어떻고. 우주선을 아무 데나 세워놓아도 창밖으론 절경을 볼 수 있었어.

그렇게 목성에서 즐길 만한 것들을 다 즐기고 났는데도 사흘이나 휴가가 남았을 때야. 점점 지루해진 우리는 미친 짓을 한번 해보기로 했어.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탐험해 보기로 한 거야. 그때까지만 해도 목성에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자연 지역이 많이 남아 있었어. 혹시 알아? 우리가 전혀 새로운 뭔가를 발견할지도 모르잖아.

그 계획에 대해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어. 지구도 아닌 목성의 미개발 지역에 가는 건 확실히 위험한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우린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어. 부랑자들이나 야생 우주 생물 떼를 만나면 캡슐 우주선을 타고 도망치면 되고, 고립된다면 구조 요청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연료도 식량도 넉넉하겠다, 시간도 많이 남았겠다 두려울 게 없었지.

즉흥적으로 결정한 뒤 우린 바로 행동에 옮겼어. 내비게이션을 꺼버리고, 대로를 은근슬쩍 벗어나서 무조건 목성 북쪽으로 우주선을 몰았어. 남쪽보단 북쪽이 덜 험난하다는 말을 들었거든. 중심지를 벗어나니까 순식간에 주변은 황량해졌고 생물은 찾아볼 수 없어졌어. 그냥 완전한 붉은 폭풍뿐이었지. 우리는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과자를 마구 먹으면서 아무렇게나 우주선을 달렸어. 그래, 거기까지는 꽤 재미있었어.

얼마나 달렸을까, 슬슬 좁아터진 캡슐 우주선에 질린 우리는 그냥 아무렇게나 우주선을 세웠어. 내려서 주변을 좀 둘러볼 생각이었지. 우주복을 갈아입은 뒤엔 내 로프를 우주선에 연결하고, 내 우주복과 그 애의 우주복을 로프로 연결했어. 그 애랑 나 사이의 로프는 1km, 나와 우주선까지의 로프는 2km. 마음껏 돌아다니다가 돌아올 땐 로프를 그대로 감으면서 돌아오면 될 거라는 계산이었지.

처음에는 둘이 손을 잡고 함께 움직였어.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각자 떨어지게 됐지. 나는 SNS에 올릴 사진을 찍고 싶었고, 그 애는 야생 우주 생물이 있는지 보고 싶어 했거든.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자 우주복끼리 연결된 워키토키가 끊어졌어. 하지만 말했듯이 우리 사이의 로프는 1km나 됐지만 잘 연결돼 있었으니 서로를 잃어버릴 걱정은 하지 않았어. 난 멋진 절벽을 발견했고 그쪽으로 걸어갔어. 셀프 카메라를 실컷 찍었는데, 그제야 휴대폰을 봤더니 거긴 통신이 불가한 지역이라고 뜨더라. 그제야 우리가 멀리 나오긴 했구나 싶었어. 겁도 좀 났고. 그래서 그 애 쪽으로 가려고 로프를 잡아당기면서 되돌아갔지. 이윽고 붉은 폭풍 사이에서 그 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워키토키도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어.

동시에, 내 우주복 안에 달린 스피커에서 그 애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어. 

처음엔 그 애가 돌아선 채로 우뚝 서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양쪽 종아리 아래가 전혀 보이지 않았어.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그 애가 소리쳤어. 늪에 빠졌다고, 도저히 다리를 빼낼 수가 없다고, 도와달라고. 늪? 그제야 생각이 나더라고. 목성에는 무거운 대기로 이루어져 중력이 강한 늪이 사방에 있으니 함부로 우주선에서 내리지 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는 걸. 나는 소리를 지르며 로프를 힘껏 잡아당겼지만 소용없었어. 그 애의 몸은 천천히 빨려 들어가고 있었고, 우주복끼리 연결된 로프 때문에 내 몸까지 그쪽으로 쏠리며 균형을 잃을 지경이었어. 몰아치는 붉은 먼지 폭풍우 사이에서 그 애의 모습이 잠깐씩 사라졌다 다시 나타날 때마다 그 애는 작아져 있었어. 어느덧 무릎 위까지 빠져 있었지. 양팔을 땅에 짚고 다리를 빼내려고 애썼지만 오히려 팔까지 빠지는 바람에 옴짝달싹 못 하는 상태가 되어버린 모습으로.

아직도 그 애의 목소리가 귀에 생생해. 내 이름을 부르면서 도와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건 아니야. 나는 정말 애썼어. 애썼다고. 죽을힘을 다해서 로프를 잡아당겼어. 태어나서 그렇게 힘을 써본 건 처음이었을 만큼. 그런데 아무 소용이 없더라. 오히려 당기면 당길수록 내 몸까지 그 늪 쪽으로 딸려 가는 거야. 처음엔 로프를 당기는 데 정신이 팔려서 몰랐는데, 어느 순간 내 발 밑이 약간 물렁해졌다는 걸 느끼자마자 소름이 쫙 돋더라.

글쎄, 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난 로프를 놓았어. 그리고 그 애와 나 사이의 로프를 풀어버렸어. 

로프를 당기는 힘이 사라졌다는 걸 안 그 애가 내 이름을 불렀어. 그 목소리는 화나지도, 심지어 절망하지도 않은 것처럼 들렸어. 그저 내 이름을.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났을 때 거실에 먼저 나와 있던 그 애가 나를 바라보며 내 이름을 부를 때처럼. 나는 대답하지 않았어. 그 애가 무슨 말을 할지 겁이 났으니까. 생각하기도 전에 내 손가락은 워키토키 버튼을 끄고 있었지. 그리고 난 도망쳤어. 방금 그 애와 연결된 로프를 당기던 것처럼,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센 힘으로, 우주선에 연결된 반대쪽 로프를 미친 듯이 끌어당기면서. 로프가 이끄는 대로 우주선 쪽으로 달리면서 난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어. 어떻게 돌아볼 수 있었겠어.

우주선으로 돌아가서 내비게이션을 켜고 대로 쪽으로 갔고, 통신 가능 구역에 접어들자마자 구조 요청을 보냈어. 하지만 목성 구조대는 늪에 빠졌다는 얘기를 듣더니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고개를 가로젓더라. 도대체 왜 그런 곳에 갔느냐는 힐난을 뒤로하고 난 혼자 지구로 돌아왔어. 그 애의 가족들에게는 우리가 로프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얘긴 하지 않았어. 그냥 그 애가 혼자 나가고 싶어 했고, 나는 혼자 우주선에 남아서 그 앨 기다렸다고 말했어. 그러다 늪에 빠졌다는 워키토키가 와서 나가 보았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고. 내 말을 다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지. 어쨌든 그 애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으니까.

그래, 그게 그 휴가의 전말이야.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가끔, 아니 사실은 자주 생각해. 내가 잘못한 걸까. 어떻게 했어야 옳은 걸까. 루루를 만나고 루루의 능력을 알게 된 이후 가장 처음 물어본 것도 그거였어. "내가 잘못한 거야?"라고. 그런데 말야, 말로도 물어보고, 종이에 써서 고르게도 하고, 온라인 사다리 게임을 만들어서 선택하게도 해봤는데 루루는 매번 같은 답을 골랐어. 네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넌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러고 나서 루루는 항상 부드럽게 울면서 세 개의 머리를 내 무릎에 비벼 와. 마치 나를 위로하듯이. 그런 루루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 하지만 한편으로 그런 생각을 해. 그 애가 마지막으로 하려던 말은 뭐였을까 하고. 원망이나 저주였을까? 아니면 너라도 어서 안전한 곳으로 피하라는 말이었을까? 알고 싶지만 그것만은 도무지 물어볼 수가 없어. 나는 그저 루루의 머리 세 개를 번갈아 한 번씩 쓰다듬을 뿐이야. 내가 잘못한 게 아니야 하고 되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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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유리(소설가)

소설가. 식물과 고양이를 사랑하고 싱그러운 기운이 가득한 소설을 쓴다. 문학 플랫폼 <던전>의 운영진으로 활동했고 『괴담』, 『인어의 걸음마』에 표제작을 수록하는 등 여러 SF 앤솔러지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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