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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는 여자들] 이주혜, 불가능한 이해로 다가가는 일

번역하는 여자들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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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이주혜에게 번역은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한 걸음 다가가는 일'이다. (2023.03.24)


동시대 여성에게 필요한 말을 가장 뜨겁게 전하는 여성 번역가들의 이야기.
인터뷰 시리즈 '번역하는 여자들'은 매달 마지막주에 연재됩니다.



여성의 목소리는 종종 뒤늦게 도착한다. 스스로의 삶을 말하기까지 수많은 여성 작가들은 결혼과 '엄마됨'이라는 지난하고 사회적인 시간을 거친다. 그러나 "어머니가 됨으로써 나는 급진적인 사람이 되었다"라는 에이드리언 리치의 말처럼 그 말들은 얼마나 강력하고 현재적인 힘을 갖는가. 얼마나 정확하게 우리에게 도달하는가. 그것을 이주혜의 소설들을 읽으며 배웠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이주혜에게 번역은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한 걸음 다가가는 일'이다. 이주혜의 소설 속 여성들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서로 다른 계층으로(『자두』), 서로 다른 국적으로(「소금의 맛」) 만나지만, 그럼에도 상대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애쓴다. 늘 엇갈리지만 치열하게 사랑하는 일. 그것이 번역하는 일과 닮았다고 이주혜는 말한다.



번역,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작업

삶의 돌파구를 찾는 과정에서 '번역'과 '소설 쓰기'를 만났다고요. 번역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스물아홉 살에 첫아이를 낳았어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도시에서 어린아이를 키우려니 굉장히 막막하더라고요. 마침 인터넷 서점이 생기기 시작할 때였는데요. 고립된 공간에서도 책을 검색하고 주문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고마운 일이었어요. 틈틈이 책을 읽다 보니 원서가 궁금해지고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까 저도 모르게 고민하게 됐죠. '아, 번역이야말로 내가 세상과 접점을 만들 수 있는 일이겠다. 출퇴근이 필요하지도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읽기로부터 출발하는 일이니까.' 그런 생각으로 번역을 시작했어요.

여성 번역가들 중에는 결혼과 육아 등으로 경력 단절을 겪다가 전업을 하게 된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요. 번역하는 일에도 젠더적인 특성이 있는 것 같아요. 

인정하기 가슴 아프지만 그런 것 같아요. 육아와 살림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어엿한 노동이에요. 그래서 여성들에게는 선택지가 제한될 수밖에 없죠. 번역은 집에서 할 수 있으니 기혼 여성에게 비교적 문턱이 낮은 일 같아요.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젠더적인 특성이 있다는 건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죠.

소설은 집의 거실에서 주로 쓴다고 하셨는데요. 번역 작업은 어디서 하시나요? 

소설은 카페에서도 쓰지만, 번역은 집에서만 해요. 한쪽 모니터에는 영어 원서를, 다른 노트북에는 워드 화면을 띄워 둬야 하니까요. 원서가 종이책이면 독서대도 필요하죠. 그래서 웬만하면 모든 것이 갖춰진 집에서 작업해요.

한 인터뷰에서 "번역은 읽기로 시작해서 쓰기로 완성되는 스펙트럼이 긴 작업"이라고 하셨어요. 주로 어떤 과정을 거쳐 번역을 하시나요?

처음에는 원서를 순수한 독자로서 읽어요. 누워서 편하게 읽지는 못하고 다른 언어로 쓰인 낯선 문장을 더듬더듬 읽어요. 그런 다음, 워드 파일을 열고 문장으로 옮기기 시작해요. 초역 단계라 굉장히 거친 문장으로 막 옮겨요. 어디에 보여주기 부끄러울 정도로, 집에 불이 나면 제일 먼저 그것부터 폐기해야 할 정도로.(웃음) 초역을 마치면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돼요. 읽기 단계에서 쓰기 단계로 꽤 많이 진입한 거죠. 2차 번역은 한국 독자들이 이해하기 편하도록 제대로 된 한국어 문장을 쓰는 단계예요. 이왕이면 아름답고 정확한 우리말로 옮기려고 하죠.

원문의 의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독자에게 가닿는 문장을 쓰는 것, 참 어려울 것 같아요.

맞아요. 저는 번역가니까 지나치게 개입해서 작가의 의도를 해치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저울질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요.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정말 한쪽에는 독자, 다른 한쪽에는 저자를 두고 저울질하는 것 같아요. '내가 너무 저자 편만 들고 있지 않나? 이렇게 쓰면 독자는 좋아하겠지만 저자는 왠지 싫어할 것 같은데?' 번역은 수많은 과정을 거쳐요. 원서를 열 번 이상 읽는다는 말이 정말 맞아요.

첫 소설 『자두』에는 번역가인 '내'가 '오역의 공포'에 시달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지만 "번역을 할 땐 힘들다. 그래서 재밌다"고도 하셨죠. 번역을 할 때, 가장 보람찬 순간은 언제인가요?

가장 좋은 순간은 독자들이 구체적인 문장에 응원과 지지를 보여줄 때예요. 에이드리언 리치의 산문집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를 번역하고 나서 그런 기쁨을 많이 느꼈는데요. 출간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참 많았어요. 책이 나오자 리치의 문장들에 밑줄을 긋고 발췌해서 SNS에 올려 주시더라고요. 번역을 하면서도 '와, 이 문장 너무 좋다' 감탄했는데, 독자가 정확히 그 문장을 좋아해 줄 때 정말 기뻐요. 거기에 번역에 대한 칭찬은 하나도 없죠. 오히려 역자들은 그게 좋아요.

온전히 작가의 목소리로 받아들이니까요?

번역 이야기가 전혀 안 나올 때 좋은 것 같아요. 많은 번역가 선배님들이 그래요. 역자가 열심히 매끄럽게 옮겨 놓으면, 사람들은 작가의 필력을 칭찬하고, 조금만 문장이 거칠면 번역 탓을 한다고요.(웃음) 독자가 번역문이라는 것조차 모르게 넘어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에요. 온전히 작가의 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번역이 좋았다는 거니까요. 그래서 역자를 '그림자'라고 하는 것 같아요. 

독자가 번역 탓을 할 때, 속상하기도 할 것 같아요.

번역은 서로 다른 언어가 만나는 것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번역이 별로다"라는 욕을 들을 때는 순간적으로 속상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하지만 진짜 오역을 해버린 경우는 정말 심장이 땅바닥에 떨어져요. 그렇게 수차례 교정을 봤는데 내가 어떻게 됐었나 싶을 정도로 단어 자체를 잘못 보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때가 제일 속상한 것 같아요.

육아서와 자녀 교육서, 그림책을 다수 작업하셨어요. 긴 시간 동안 독자가 부모인 책을 번역하셨는데요.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번역을 시작했다고 했잖아요.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커가면서 번역하는 책들도 달라진 것 같아요. 저는 엄마이자 독자이자 역자니까, 관심 있는 양육서나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은 그림책으로 시작했죠.

육아서를 번역할 때의 고민이 있었나요?

엄마로서 번역 일을 하지만, 엄마들에게 모든 육아의 부담을 지우는 번역이어서는 안 되잖아요. 그래서 어떤 용어를 번역할 때, 주 양육자 혹은 돌봄 제공자로 되어 있는 경우에는 정확하게 그대로 옮기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로컬라이징을 핑계로 다 엄마로 바꿔 놓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한계를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엄마라서 이런 책을 읽고 번역하게 되었지만, 돌봄이 오로지 엄마의 몫이어야 한다고 압력을 가하는 사회는 바꾸고 싶잖아요. 그런데 제가 참여한 번역서가 오히려 그런 억압에 가담하는 경우도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출판사와 참 많이 부딪쳤죠.



뜨겁고 치열한 여성들의 시간

추리 소설, SF 소설 등도 다수 번역하셨어요. 특히 여성 작가나 젠더적 관점이 녹아든 소설들이요. 

소설 번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가 조 월튼의 『나의 진짜 아이들』이었어요. 주인공의 선택에 따라 갈라진 두 세계에서 한 여성이 겪는 운명을 나타낸 소설인데요. 제가 기혼 유자녀 여성이기도 해서 더 재미있게 읽은 것 같아요. 이런 상상력이 가능하구나 하면서요. 출판사에 이 책을 꼭 번역하고 싶다고 했고, 그 뒤로 다른 장르 소설도 연달아 작업하게 됐어요.

P.D 제임스의 <여성 탐정 코델리아 그레이> 시리즈가 눈에 띄었어요. P.D. 제임스는 본인이 여성인데도 남성의 이름을 빌려 추리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던 작가예요.

우선 작가를 잘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P.D.제임스가 영국에서 유명하지만, 국내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거든요. 작가의 삶 자체가 여성으로서 많은 것들을 시사하더라고요. 여성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남성 이름으로 활동했고, 남편이 장기 입원하자 혼자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 글을 썼어요. 굉장히 늦은 나이에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저도 감정 이입을 많이 했죠. 특히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은 최초로 여성 탐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리즈여서 신나게 작업했어요. 출간 당시 한국에서도 페미니즘이 리부트 되는 시기였잖아요. 독자들의 여성 서사에 대한 열망과 딱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출판계의 중요한 장면 중 하나가 에이드리언 리치의 산문집이 번역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산문집이 출간된 2020년에 사건이 굉장히 많았잖아요.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 사건도 현재 진행형이었고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 사건으로 온라인상의 논쟁이 뜨거울 때였죠. 페미니즘 활동가 에이드리언 리치의 목소리가 필요한 시점이었던 것 같아요. 

책임감이 정말 무거웠어요. 에이드리언 리치의 산문집은 페미니즘 공부를 하면서 '누가 번역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책이었어요. 그런데 그 기회가 제게 온 거죠. 당시 트위터 상에서 논쟁이 뜨거웠기 때문에 부담감이 정말 컸어요. '젊은 여성 독자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이걸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을까 누를 끼치면 어떡하지.' 모험이자 도전이었죠. 그리고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너무 어려워서 매일 후회했어요.(웃음) 보통 한 권의 책을 3~4개월 작업하는데, 이 책은 6개월 정도 걸렸어요. 참고 자료를 찾아보고 계속 고치고 다시 이해하는 과정을 거쳤거든요. 제 소설 『자두』에서도 번역가인 주인공이 오역의 공포에 시달리잖아요. 제 마음이 딱 그랬어요.

해당 책을 담당한 염은영 편집자가 <채널예스>와의 인터뷰에서 "번역서 작업에서 가장 큰 원료가 번역가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작가님과의 치열한 대화, 신의의 환대가 작업의 원동력이 됐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편집자와 번역가의 관계는 많은 부분 우연에 기대는 것 같아요. 서로 합이 맞으면 너무나 좋은 작업이 되기도 하지만, 철학이 맞지 않으면 괴로운 시간이 되거든요. 리치의 산문집은 처음부터 편집부에서 큰돈을 벌지는 못하겠지만 현재의 페미니즘을 위해 꼭 필요한 책을 내겠다는 각오가 있었어요. 그래서 편집자와 저 사이 의지하는 마음이 컸죠. 편집 과정에서 이 단어가 맞을까 이 분위기가 맞을까, 굉장히 많은 대화를 주고받았죠. 염은영 편집자님보다 제가 연장자니까 언니로서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힘든 만큼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자두』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데요. 화자는 에이드리언 리치의 산문을 번역하면서 '마더링'을 대체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하죠. "'마더링'은 '어머니 되기'일까 '어머니 하기'일까? 그렇다면 어머니는 자격인가, 상태인가, 아니면 행위인가?"(14~15쪽)

리치의 책에 매료된 또 하나의 이유는 '모성' 경험이었어요. 리치는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엄격한 가정에서 자란 딸이었거든요. 트위터에서도 기혼 여성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이 있었잖아요. 저는 기혼 여성이자 아들만 둘인데 그럼 가부장제의 부역자인가, 가정을 나와 혼자 산다고 떳떳해지는 건가 의문이 들었어요.

모성 신화를 반성하는 리치의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를 읽으면서 저도 '모성'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모성이 뭔지, 마더링이 뭔지. 그건 번역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지만 엄마로서의 태도, 존재 자체에 대한 고민이기도 했어요. 당시 제가 딱 50대가 되어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지' 질문할 때였거든요. 50대 엄마는 어떤 엄마로 존재해야 할까, 나는 엄마됨을 그만해도 되는 건가? 그런 고민을 안고 번역을 했어요. 리치의 산문집은 제게 그저 번역 작업이 아니라 공부와 고민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리치는 자신의 경험을 밀고 나가면서 정말 뜨겁고 치열하게 쓴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번역을 할 때 희열을 느끼셨을 것 같은데요.

한 친구가 "리치는 다섯 사람의 삶을 살고 간 사람 같다"고 했는데 정말 그래요. 시인이자 페미니즘 활동가, 번역가로서 열정적으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랑에도 치열했어요. 삶의 매 순간마다 절대 타협하지 않더라고요. '치열하다'도 많이 닳아버린 단어지만, 리치의 삶을 보면 정말 '치열하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어요.



번역은 과거의 글을 발굴하는 작업이기도 하잖아요. 최근 여성 작가의 작품이 재조명되면서, 페미니즘의 고전들도 시차를 두고 우리에게 도착하고 있어요. 현재의 여성이 과거의 여성과 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분명 과거의 글인데 어쩜 이렇게 낯설지 않지? 어떻게 내 생각과 이렇게 비슷하지? 세상이 이렇게까지 안 변한다고?(웃음) 작년 여름에 나희덕 시인의 영미 여성 시인 강의를 들었어요. 에밀리 디킨슨부터 뮤리엘 루카이저까지 1960-70년대 미국의 페미니즘 제2물결에 활동했던 여성 시인의 번역 시집을 함께 읽었는데요. 50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전혀 낯설지 않았고, 모든 시인들의 작품에 한 사람이 쓴 것처럼 비슷한 경험들이 있는 거예요. 애써 희망을 찾아보자면, 여성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라고 할 수 있겠죠. 계속 알리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에세이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에서 이렇게 쓰셨죠. "번역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그러다 얼핏 보석 같은 문장을 발견하면 얼마나 간절하게 소설이 쓰고 싶어지는지"(51쪽) 번역할 때 만났던 '화소'들이 소설이나 에세이가 되기도 한다고 밝히셨는데요.

제게 번역과 창작은 서로 삼투하는 관계 같아요. 리치의 산문에서도 '삼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타인의 경험을 그대로 가져오면 표절이 되지만, 타인의 경험이 제 안으로 들어와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지점을 건드리잖아요. 제게는 번역이 그런 순간 중 하나예요. 번역을 하다가 어떤 문장이나 이미지가 유독 제 안에 들어올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소설 『자두』에 에이드리언 리치와 엘리자베스 비숍이 차를 함께 타고 뉴욕에서 보스턴으로 가는 밤길을 달리는 장면을 넣었는데요. 리치의 산문집에서 그 장면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대목이거든요. 그런데 번역을 하던 겨우내 그 장면이 떠오르는 거예요. 비슷한 상처를 지닌 두 사람이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그럼에도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까. 그 장면이 마음 주머니 한구석에 들어가 있다가 소설을 쓸 때 엉뚱하게 그 장면이 떠오르더라고요. 원래 시아버지의 병간호를 맡게 된 '내'가 여성 간병인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것으로 소설을 쓰려고 했는데, 리치와 비숍의 만남이 전체 이야기를 건드리는 지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도입부에 리치와 비숍의 만남을 넣게 됐죠. 그렇게 연관이 없는 장면들이 제 안에 오래 머물다가 우연히 소설과 만나는 일이 일어나요.

작가님의 단편 소설 「소금의 맛」(『나의 레즈비언 여자 친구에게』 수록)에서 다른 국적의 두 사람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캐롤』을 각자의 언어로 번역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합니다. 여기서 '번역'이라는 행위는 거듭해서 오역할 수밖에 없지만 이해로 다가가려는, 결국 사랑하려는 노력처럼 느껴졌어요.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많이 고민하는 단어가 '이해'인데요. 『자두』를 출간할 당시에도 "이해에 대한 소설로 읽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했을 정도로요. 번역이라는 행위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게 이해의 과정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무언가를 이해했다고 믿을 때 굉장히 기쁜데, 사실 정확한 이해인지는 알 수 없잖아요. 결혼 생활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면, 그들을 이해했다고 생각한 순간조차 철저하게 오해했을 것 같아서 겁날 때도 있거든요. 거꾸로 내가 이해받고 싶어 미칠 것 같은 순간도 있고요.

결국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관계의 핵심이라면, 번역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이해를 향한 노력, 그러나 항상 불가능성을 내포하는 일. 「소금의 맛」에서도 화자가 상대방과 관계가 계속 어긋나지만, 그럼에도 다른 언어로서 이해에 도달하려고 노력하잖아요. 그게 번역하는 과정과 굉장히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이해를 향한 부질없는 그러나 지난하고 포기하지 않는 노력, 그게 번역인 것 같아요.

꼭 번역하고 싶은 작업이 있나요? 출간 예정인 책도 궁금합니다. 

사실 독자로서 이런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많이 하는데, 내가 꼭 번역해야겠다는 생각은 거의 해본 적이 없어요. 겁이 좀 많거든요. 누가 훨씬 더 잘 번역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아직은 더 큰 것 같아요. 출간이 예정된 책은 비비언 고닉의 에세이예요. 감사하게도 최근 작품이 활발히 번역되고 있는데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출판사 에트르 대표님과 "우리도 이제 용기를 낼 수 있겠다"하며 합심해서 올해 상반기에 번역을 마쳤어요. 에이드리언 리치와 마거릿 애트우드처럼 비비언 고닉도 카랑카랑하고 용감하게 말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어렵고도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이주혜 번역가가 아끼는 문장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522쪽

에이드리언 리치 저 / 이주혜 역 | 바다출판사


에이드리언 리치의 산문집에 마침 번역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요. 이 문장을 처음 번역했을 때 역자로서 너무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언어에는 항상 권력의 문제가 개입되잖아요. 특히 제1세계의 언어와 제3세계의 언어가 만날 때 불균형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걸 조율할 책임이 역자에게 있죠. 리치도 백인 여성으로서 자신의 권력을 항상 잊지 않았어요. 말년에는 중남미 지역의 혁명을 지원하기도 하고 시를 번역하기도 했죠. 스스로 "시가 백악관의 만찬장의 뷔페가 아니다. 시는 감옥에도 있고 혁명의 현장에도 있다"고 했고요. 번역은 매 순간 정치적인 일이며, 그래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영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번역자로서 저 역시 늘 새기는 문장이에요.  




*이주혜

번역가이자 소설가. 저자와 독자 사이에서, 치우침 없이 공정한 번역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영어로 된 문학 작품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옮기는 데 관심이 많아 아동 작가로 활동하면서,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 기획 및 아동서 및 자녀 교육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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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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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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