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교육 현장에서 웹소설을 다시 생각하다
『웹소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융희 저자 인터뷰
웹소설이 무엇인지, 어떤 가치가 있는지, 좋은 웹소설 작품은 무엇인지, 웹소설을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고 어떤 내용을 가르치는지, 그 과정을 다뤘다. (2023.03.22)
장르 문학이 좋아 공부하고 교육까지 된 저자가 그간 고민해온 결과를 한 권으로 풀어냈다. 웹소설이 무엇인지, 어떤 가치가 있는지, 좋은 웹소설 작품은 무엇인지, 웹소설을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고 어떤 내용을 가르치는지, 그 과정을 다뤘다. 이를 통해 저자는 웹소설을 잘 모르는 독자에게 웹소설에 대해 설명하고, 웹소설 시장과 학문을 매개하고자 한다. 『웹소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를 읽으면 웹소설 탐구서로서 교육 현장에 한층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웹소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는 어떻게 나오게 된 책인가요?
웹소설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 대부분 웹소설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시장이 확대된단 말은 웹소설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저는 2017년부터 대중을 상대로 한 인문학 강연이나 대학에서 웹소설 관련 특강을 하며 이러한 현실을 끊임없이 체감해왔습니다. 웹소설 강연을 들으러 오는 대부분은 웹소설이 무엇인지 개념적으로 잘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제가 소설가로 데뷔해 한창 활동할 때엔 장르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꾸준히 데뷔의 문을 두드리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웹소설을 읽지 않거나 잘 모르는 사람이 이 바닥에 들어오는 걸 이해하지 못할 뿐더러 노골적으로 경계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제 활동 영역이 일반 사교육 시장이거나 멘토-멘티로 엮이는 도제식 웹소설 교육 공간이었다면 저도 비슷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대학에 있어기에, 다른 학과들이 그렇듯 웹소설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읽어본 적 없는 사람에게 웹소설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고민할 수밖에 없었죠. 마침 지식 공유 플랫폼 '아홉시'에서 지면을 주었고, 이러한 고민을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웹소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는 이때 연재된 칼럼을 모아서 다듬고 보충한 책입니다.
판타지, 로맨스, 무협, SF, BL 등 이제는 다양한 장르의 웹소설들이 있는데요. 정확히 웹소설이란 무엇인가요? 일반 소설과 어떤 점이 다른지 궁금합니다.
웹소설을 정의 내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웹소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플랫폼에서는 환상성을 기반으로 한 장편의 장르 문학을 편당 5,000자 내외로 끊어 유료로 거래합니다. 이때 장르 문학은 판타지, 로맨스, 무협, SF, BL 등 다양한 형식과 제도, 관습을 갖춘 문학을 통칭하는데, '웹소설'이라고 일컬어지는 텍스트는 이러한 서사가 '웹'이라는 미디어와 '웹소설 플랫폼'이라는 시장의 규칙에 따라 특화된 형식을 일컫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출판 인쇄물에서도 장르 문학을 다룹니다.
제도를 통해 등단한 작가들 역시 자신의 소설에서 환상성을 적극적으로 다루고요. 그렇다 보니 웹소설은 단순히 장르를 다루느냐 마느냐로 구별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웹에서 대여를 통해 유통되었던 상업 장르 문학이 특화되었다는 데 주목합니다. 물론 앞의 정의가 웹소설을 모두 포함하는 건 아닙니다. BL이나 로맨스 같은 장르는 분절된 연재 형태가 아니라 단권 형태의 전자책 출판물로 출간하는 경우도 많고, 웹소설 플랫폼에서 연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여점 시절 출간된 소설을 웹이라는 공간에서 2차 저작한 형태나, 일반적인 형식의 문학을 단순히 분절한 소설도 있으니까요.
일반 소설에 비해 웹소설은 독자의 요구가 많이 반영되는 것 같습니다. 작품 속 세계관 설정이나 결말이 바뀌기도 하고요. 이런 점도 웹소설의 특징인가요?
이건 웹소설의 특징이라기보다 소비자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도드라지는 모든 웹콘텐츠의 특징에 가깝습니다. 시청자들의 전화 의견으로 결말이 바뀐 드라마 사례만 보아도 알 수 있지요. 그럼에도 웹소설에서 이러한 특징이 도드라지는 까닭은 웹소설이 장편을 연재하기 때문입니다. 웹소설은 보통 하루에 한 편씩 연재되고, 완결까지 최소 70~100편, 많게는 1천 편이 넘습니다. 그 말인즉, 독자들은 하나의 콘텐츠를 연속성을 갖고 반 년에서 1년 가까운 시간을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기존 창작물에서는 미완성된 콘텐츠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보는 건 편집이 끝난 영상 콘텐츠나 인쇄된 출판물이지요. 하지만 전자책 세계에서 언제나 수정 가능한 형태로 디지털화된 텍스트는 완결될 때까지 분절된 미완의 상태이고 수정 역시 간편하게 이루어지지요. 즉, 웹소설의 특징은 독자의 요구가 많이 반영된다기보다는 수정이 간편하고, 독자들이 그 수정 과정을 보기 쉽다는 것에 가깝습니다.
장르 구분, 시대 배경, 코드, 제목 등 웹소설을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제가 웹소설을 가르칠 때 제일 강조하는 건 '제목'입니다. 웹소설의 제목은 인터넷 유머 게시판 등에서 조롱거리가 되어 돌아다니기도 하지만, 사실 웹소설의 내용을 경제적,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로그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는 웹소설에서 통용되는 장르 문법, 계보, 공감의 감성과 기대감 연출의 기법, 그리고 장르가 만들어내는 세계관까지 전반적인 정보값이 들어 있습니다. 수만 종의 웹소설 콘텐츠가 범람하다 보니 웹소설 제목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독자의 유입 정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팬덤이 없는 신인 작가일수록 이러한 경향은 강해집니다. 그렇다 보니 3~5주가량은 웹소설 제목 분석과 만드는 방법을 중점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 혼자만 레벨업」, 「주인공이 힘을 숨김」, 「재벌집 막내아들」 등 웹소설 제목은 대부분 제목만 보고도 어떤 내용일지 예상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제목들이 전략적으로 설계된 것이라고요?
웹소설은 분절되어 한 편당 100원으로 유료 거래됩니다. 그 말인즉, 내가 이 편을 읽고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면 그 순간 독서를 멈추고 다음 편으로 넘어가지 않게 되지요. 이때 독자들이 다음 편으로 독서를 지속하게 만드는 힘이 바로 '기대감'입니다.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수강생들이 '궁금증'과 '기대감'을 착각하곤 합니다. 궁금증은 다음에 무슨 일이 펼쳐질지 아무것도 모를 때 생기는 것이고, 기대감은 다음에 무슨 일이 펼쳐질지 뼈대가 될 정보를 알 때 생기는 감정입니다.
웹소설 독자들은 대체할 수 있는 수많은 콘텐츠를 놔두고 웹소설 한 편을 선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편 한 편에서 도박을 하거나 시간을 낭비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정보가 없고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는 소설보다는 내가 좋아하고 확실하게 즐거울 수 있는 콘텐츠를 소비하고 싶어 하지요. 웹소설의 제목은 이러한 포인트를 공략합니다. 주인공에게 위기, 고난, 역경이 닥쳤을 때, 어떻게 극복하는지 패턴을 안내하는데, 이 패턴에는 장르의 문법과 계보가 있지요. '레벨업'이라는 단어 는 게임에서 흔히 보지만 이것이 '시스템창'이나 '헌터물' 같은 웹소설 내 장르 문법과 합쳐질 때, 독자들은 이 소설의 작은 서사 구조를 모두 파악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지점을 기반으로 독서를 시작하는 것이지요.
'교육 현장에 있으면서 예술 교육과 기술 교육, 그리고 교육, 세 가지 모두를 고민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느끼셨다고요. 웹소설 교육 현장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요?
교육 현장, 특히 대학에서 웹소설을 가르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내부 구성원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현재 웹소설 교육은 대부분 전문화된 3년제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산업 대학으로 진학하는 학생들은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더라도 기초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산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바라고 대학에 진학하지요. 이는 웹소설 관련 학과뿐만 아니라 모든 학과가 비슷할 겁니다.
그런데 웹소설을 학문으로서 어떻게 교육할 수 있는지 체계와 시스템, 구조가 잡혀 있지 않다 보니 그 안에서 웹소설 교육에 대한 교육자들의 태도 역시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합니다. 실전에 중점을 둔 웹소설 교육을 지향하다 보니, 학생이 웹소설을 써 오면 합평이나 피드백만 끊임없이 하는 학원식 교육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웹소설을 잘 모르는 작가들이 어떻게 웹소설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지 단계별로 안내하는 교육 대신 웹소설의 상업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교육이 이루어지기도 하죠. 아직 강사풀이 많지 않다 보니 웹소설을 잘 모르는 사람이 웹소설 강단에 서 어설픈 강의를 하다가 실수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구요.
대학은 그 구조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와 역할이 있습니다. 산업 역군을 키우는 산업 전문 대학으로 특화할 거라면, 인쇄 매체의 문학을 가르치거나 교강사 섭외가 어려운 과목을 가르치며 과도기적 상황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 실험을 하는 형태는 지양해야 하고요. 지식의 상아탑으로서 자격과 지위를 얻기 위해선 보다 전문화되고 이론적인 교육을 고민할 필요가 있겠지요. 이러한 고민은 웹소설 교육뿐만 아니라 대학 교육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만큼, 웹소설 교육도 이러한 고민을 끊임없이 했으면 합니다.
『웹소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를 만나게 될 웹소설 입문자, 웹소설 지망생, 웹소설 작가 등 다양한 독자분들께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책은 웹소설 교수자의 고민을 풀어내는 데 집중하였습니다. 부디 이 한 권이 웹소설을 쓰고, 배우고, 가르치는 여러분의 위치에서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매개로 작동하길 바랍니다. 그렇게 한걸음 더 다가가 서로를 이해할 때, 우리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융희 작가 겸 문화 연구자. 한양대학교 국문과에서 「한국 판타지 소설의 역사와 의미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수료했다. 2006년 『마왕성 앞 무기점』 출간 이후 다수의 장르 소설을 출간했다.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웹소설창작전공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장르 비평 동인 텍스트릿(textreet)의 팀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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