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정희원,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의 비밀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 <월간 채널예스> 2023년 3월호
누구나 나이 드는 것을 싫어하지만, 정작 그 방법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 정희원은 대부분의 현대인이 '가속노화'에 빠져 있다고 진단한다. 한국 사회가 급속도로 늙어가는 이 시점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2023.03.17)
누구나 나이 드는 것을 싫어하지만, 정작 그 방법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 정희원은 대부분의 현대인이 '가속노화'에 빠져 있다고 진단한다. 한국 사회가 급속도로 늙어가는 이 시점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는 그가 삶을 네 가지 기둥으로 바라보며, 지속가능한 나이듦을 제안하는 책이다.
한국 사회가 빠르게 늙고 있다고 진단하셨습니다.
숫자 나이보다 생물학적 나이가 많은 것을 '가속노화' 현상이라고 하는데요. 최근 진료실에서도 나이는 젊지만 몸과 마음이 노쇠한 환자들을 많이 만납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이 현상이 심각해졌어요. 저는 근감소증을 연구해서 걷는 것을 보면 근육의 전반적인 균형이 보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전후로 일상에서 사람들이 걷는 모습이 많이 달라졌어요. 코어근육이 사라지고 고관절이 나가서 엉덩이와 무릎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합니다. 근골격계 노화가 깜짝 놀랄 정도로 심해진 게 보여요.
이대로라면 '3040세대가 부모보다 빨리 늙는 첫 세대'가 될 거라고요.
해외에서는 이미 관찰된 현상이에요. 일본은 돌봄 요구가 급증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10년 전부터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미국과 유럽에서는 1990년대 이후로 노화가 빠른 속도로 나타나고 있다는 걸 데이터로 증명했고요. 한국도 국민건강영향조사에 따르면 2014년까지는 고연령층의 노쇠 정도가 좋아지다가 어느 순간 개선을 멈췄어요. 특히, 30-40대에서 만성 질환이나 노쇠 현상이 관찰되기 시작했습니다. 원인은 너무 명확해요. 사람들이 점점 더 움직이지 않고 나쁜 자세로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거예요. 이 추세대로라면 현재 3040세대의 몸은 50대가 되면 만신창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속가능한 나이듦』에 이어 두 번째 책을 낸 이유일 것 같습니다.
과거에 비해 의학이 발달하면서 수명이 늘고 질병을 치료할 수 있으니까 '병'과 '죽음' 사이에 노쇠를 경험하는 시간이 늘어났어요. 돌봄을 필요로 하는 상태가 길어졌는데도 사회 시스템은 텅 비어 있는 거죠. 이 과정은 80~90년대에 세팅된 질병 중심 의료 시스템의 맹점이에요. 당시에는 노인 의학이 없었기 때문에 의료적 접근은 빠진 채로 돌봄에 대한 복지만 만들어졌죠. 이 질병과 돌봄 요구 상태를 연결하면서, 질병 중심의 사고에서 기능 중심의 삶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노인 의학'이 필요한 이유죠.
일본은 이미 '개호 예방'(케어 요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지역 사회의 복지와 의료를 통합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어요. 돌봄 요구 상태가 되면 개인적으로는 삶의 질이 떨어지고 사회적 부담이 생기니까 미리 예방하는 거죠. 젊은 사람부터 나이 든 사람까지 삶의 목표가 개호 예방이 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노화를 이야기하면 아직 와 닿지 않는다고 해요. 이번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를 통해서, 사람들이 노인 의학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사회 시스템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노인 의학(노년 내과)' 역시 아직은 낯선 분야인데요.
사실 이 답변을 10년째 반복하고 있어요.(웃음) 해외에서는 노인 의학이 보편화되어 있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왜 노인 의학이 필요하냐고 묻죠. 흔한 오해 중 하나가, 노년 내과는 65세 이상만 진료하냐는 것인데요. 노인 의학은 특정 나이를 무 자르듯 나눠서 진료하는 개념이 아니라, 생리학적으로 노쇠의 특성을 가진 인구 집단을 전문으로 보는 분야입니다. 노쇠가 일어난 사람은 복잡도가 높고 통상적인 성인 의학에 준하는 진료를 하면 오히려 건강이 악화되는 일도 생겨요. 하지만 지금 현대 의학은 일반 성인을 기준으로 진료를 하니 문제가 발생하고요.
실질적인 사례를 들어주신다면요?
저희 병원에서도 대여섯 군데의 진료과를 전전하며 약 수십 개를 드시다 건강이 나빠져서 노년 내과를 찾는 환자가 많아요. 한국의 의학 시스템은 주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질병 중심으로 전문의과가 분절되어 있어 여러 분과를 전전하다 약물 연쇄가 발생하는 거죠. 한 사람의 삶에서 축적된 노화 정도와 질병 등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노년 내과 의사가 필요한 이유예요. 노인 의학은 한 사람을 여러 노화 요소가 쌓인 복잡계로 봐요. 숫자 나이와 상관없이, 노화 정도를 복합적으로 파악해서 맞춤 의료를 제공하죠.
노화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개념이 '내재역량'(WHO가 2015년에 제시한 새로운 건강 개념)입니다. 이 개념을 이해하면 가속노화를 늦출 수 있다고요.
내재역량은 몸 건강, 마음 건강, 사회적 역량, 재산 등을 총체적으로 판단하는 개념인데요. 게임의 스탯(능력치)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거예요. 캐릭터의 능력치에 체력, 공격력 등 여러 항목이 있는 것처럼 가속노화에도 여러 도메인 항목이 있어요. 그 도메인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가 문제가 생기면 전반적인 건강이 무너지죠. 내재역량의 세계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는데요.
첫째, 일정 수준 이상 채워지면 아주 많거나 조금 적은 건 별 차이가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사람들은 돈을 최대한 많이 벌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삶과 건강을 보존할 만큼만 주어지면 더 많이 번다고 내재역량이 개선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돈 때문에 나머지 삶의 요소를 망가뜨리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는, 한 가지 요소가 아무리 높아도 어느 하나의 기능이 크게 떨어지면 노화로 수렴된다는 거예요. 시험에서 한 과목에서 만점을 받아도 나머지 과목 하나가 기준 이하면 과락을 하게 되는 것과 같죠. 아무리 부유해도 매일 술과 담배를 하다가 이른 나이에 뇌경색이나 치매가 오면 곧바로 노쇠 상태가 되는 거예요. 결국,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전반적으로 파악하고, 내재역량을 강화하는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재역량을 개선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4M 건강법'을 소개했어요.
느리게 나이 들기 위해서는 네 가지 기둥이 필요합니다. '이동성(Mobility)', '마음건강(Mentation)', '건강과 질병(Medical issues)', '나에게 중요한 것(What Matters)'이 그것인데요. '나에게 중요한 것'은 전반적 노화 정도와 내 삶의 목표, 커리어, 자산, 취미, 가족 등을 모두 포괄합니다. 이 개념을 한국 사람들은 특히 어려워해요. 어려서는 시험 성적, 어느 순간부터는 돈 같이 외부적으로 측정 가능한 하나의 숫자만 바라보고 평생을 사는 경우가 많거든요.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다시 점검해야겠네요.
맞아요. 소비 자본주의에 의해 주입된 쓸데없는 것에서 벗어나서, 정말 내재역량에 좋은 것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해요. 저는 그걸 '실재감 있는 이해'라고 표현하는데요.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것을 내재역량의 측면에서 이해하면 이동성 역량을 계속 깎아먹고 있는 거예요.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중요한 것들'을 살펴보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나머지 세 가지 M을 어떻게 조율할지 결정하는 밑바탕이라고 할 수 있죠.
두 번째 M '이동성'은 신체 활동과 운동을 포괄하는 기둥인데요.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서 '이동성 도메인'을 학대하고 있다고 짚으셨습니다.
원래 사람은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현대인들은 움직이는 것을 '손해를 보는 행동'이라고 인식하고 되도록 움직이지 않으려고 해요. 그러면서도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하죠. 사고방식을 바꿔서 이동과 운동을 분리하지 말자고 제안하고 싶어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걷고, 자동차 대신 걸어서 이동하는 거예요. 생활 속의 이동을 최대한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진료실에서 잘못된 방식으로 운동을 하는 환자들을 많이 만나신다고요. 올바른 운동 방법을 알려주신다면요?
많은 환자분들이 매일 걷는데 왜 허리와 무릎이 아프고 근육이 사라지냐고 해요. 걷기만 하니까 그렇습니다. 이동성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해요. 충분한 수면을 확보하고 좋은 식사를 하며 근육의 약한 부분을 고루 강화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헬스장에 가서 특정 근육만 열심히 키우거나 한 가지 운동만 죽어라 하면서 잘 하고 있다고 착각해요. 하지만 근육의 전반적인 균형과 연결성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특정 운동만 고집하면 오히려 몸이 더 악화됩니다. 그래서 저는 맨몸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적절히 병행하라고 말씀드립니다. 발레나 요가, 필라테스, 태극권 등 코어를 중심으로 근육의 연결성을 회복시키는 운동이 반드시 필요하죠.
'마음챙김'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도 유용했습니다. 기존 건강서에서 보기 어려운 내용이었는데요.
'마음챙김'은 삶을 위한 전략을 시작하는 기초입니다. 일단 마음이 안정된 상태를 만들어야 나머지 도메인인 나에게 중요한 것, 이동성, 건강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선순환을 만들 수 있는데요. 마음챙김 하면 명상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앞서 말했던 '실재감 있는 이해'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대중교통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것이 마음챙김과 가장 거리가 먼 상태임을 인식하는 것이 우선일 것 같습니다. 몸의 어떤 곳에 불필요한 긴장이 들어가 있는지 살펴보고, 자연스러운 호흡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마음챙김 명상이 됩니다.
직접 실천하시는 가속노화를 방지하는 식단이 트위터에서 화제가 됐어요. 느리게 나이 들기 위해 식단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까요?
많은 분들이 식단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갖고 있습니다. 칼로리를 제한하거나 탄수화물 양만 줄이면 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이런 식단은 혈당을 올려서 인슐린을 분비시켜 궁극적으로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오고 배에는 지방이 쌓이게 됩니다. 가속노화로 가는 페달을 밟는 것이죠. 핵심은 우리 몸의 자연스러운 인슐린 체계를 건드리지 않고, 혈당 변동성을 줄이는 식사를 하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칼로리나 탄수화물의 총량이 아닌 '탄수화물의 흡수 속도'예요. 같은 양의 탄수화물을 먹더라도 아주 느리게 흡수되도록 할 수 있으면 인슐린은 움직이지 않고, 이 탄수화물을 근육을 유지하고 머리를 굴리는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당과 정제 곡물, 과도한 동물성 단백질을 피하고, 렌틸, 귀리, 현미 같은 통곡물 위주의 식단이 필요합니다.
특히 '마인드 식단'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는데요. 몸에도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고요.
'마인드(MIND) 식사'는 많이 알려진 지중해 식사의 장점을 변형한 것인데요. 단순당과 정제 곡물을 피하고, 올리브 오일을 주요 요리용 기름으로 사용하고, 치즈와 붉은 고기는 조금만 먹고 채소와 달지 않은 과일을 섭취하는 것입니다. 이 식단을 직접 실천해보니 한식과 비슷하고, 일반 사람들이 쉽게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식사임을 알았어요. 그러면서도 저렴하고, 환경적으로도 지속가능한 방식이죠.
보다 넓은 관점에서 보면, 인류는 현재 기후위기에 직면하고 있고, 그로 인해 전 세계의 농산물 산출량은 줄어들고 가격도 크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구 구조 또한 변화하고 있어, 앞으로 우리가 풍족하게 섭취했던, 탄소 배출을 많이 일으키는 육류 중심의 식단이 계속 비싸지고 환경에도 부담이 될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건강상에도 이롭지 않고, 환경적으로도 좋지 않은 식단을 지속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건강에도 좋고 저렴하고 쉽게 실천하기 쉬운 식단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노년을 맞이한 환자들이 병원을 찾았을 때, 여러 의료 기관을 전전하고 약물을 다량 처방받아 몸이 더 악화되는 '약물 연쇄 현상'에 빠지기 쉬운데요. 실질적인 조언을 주신다면요?
평소 복용하는 약이 5개 이상이라면, 다니는 의료 기관과 사유, 처방 받은 약에 대한 목록을 만들어 의사에게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10개 이상의 약을 드시는 분이라면, 몸이 갑자기 안 좋아졌을 때 질병 때문이 아니라 약으로 인한 증상이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작정 의료기관 개수를 늘리기보다는 지역 사회에서 주치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1차 진료의를 갖고 계시면 좋습니다. 75세가 넘는 환자라면 건강보험관리공단이 하는 다제 약물 관리 사업에 참여하여 점검을 받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왜 미리 노화를 대비해야 하는지 묻는 사람들에게 한말씀 해주신다면요?
2022년 한국에 돌봄이 필요한 인구는 공식적으로 백만 명입니다. 2040년이 되면 300만 명 정도가 되고, 생산가능연령인구는 지금의 4분의 3으로 줄어듭니다. 이런 추세라면 늘어나는 돌봄 요구를 지탱할 방법이 없습니다. 동시에 개개인의 삶의 주기는 길어지고 있어요. 80세까지는 사회, 경제활동을 유지해야 하니, 무엇보다 독립적으로 일상 생활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지겠죠. 지금부터라도 개개인이 자신의 주치의가 되어 내재역량을 위한 장기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 노화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을 교정하고 건강하게 나이 들기 위한 조언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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