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소설 『턴아웃』 하은경 작가 인터뷰
『턴아웃』 하은경 작가 인터뷰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꿈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 뛰어난 친구에게 느끼는 열등감 등 청소년들의 현실적인 고민과 더불어 멀지 않은 미래에 맞닥뜨릴 과학 시술, 진정한 예술에 대한 신념 등의 생각할 거리를 독자들에게 던진다. (2023.03.16)
청소년이 직접 뽑는 비룡소 제2회 틴 스토리킹 상을 수상하면서 전국 청소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하은경 작가가 신간 『턴아웃』을 출간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꿈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 뛰어난 친구에게 느끼는 열등감 등 청소년들의 현실적인 고민과 더불어 멀지 않은 미래에 맞닥뜨릴 과학 시술, 진정한 예술에 대한 신념 등의 생각할 거리를 독자들에게 던진다. 자신의 진정한 꿈이 무엇인지, 또 자신이 누구인지 답을 찾아가는 청소년들에게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고자 하는 하은경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발레와 SF라는 조합이 신선하게 느껴졌는데요. 이런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우연한 기회에 발레를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발레 공연이 아름다워서 감동을 받긴 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또 다른 생각을 했어요. 아무런 기구도 없이 공중으로 훌쩍 뛰어오르는 무용수들을 보면서 '연습하다가 얼마나 다쳤을까'라고요. 그래서 SNS를 통해 발레리나들의 일상을 살펴봤더니, 역시나 대부분의 무용수들이 부상에 노출되어 있다는 거예요. 부상 때문에 인생을 건 발레를 중간에 포기한 경우도 있고요. 그렇다면 덜 다치면서 아름다운 동작을 보여주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상상을 하다가 유전자 편집 기술을 떠올렸습니다. 유전자 조작을 해서 발레에 최적화된 몸으로 태어난다면, 덜 다치고 더 아름다운 춤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몇 년 전, 노벨 화학상을 받은 '크리스퍼 카스9'처럼 유전자 편집 기술이 진보한다면 미래에는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갔습니다.
나보다 빼어난 친구를 보면서 열등감, 시기, 질투 등을 느끼는 소율의 모습은 청소년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 역시도 글을 잘 쓰고 인기 있는 작가분들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어요. 질투도 나고요. 하지만 겉으로 티 내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씁니다. 안 그러면 너무 구차해 보이니까요. 한마디로 연못에 떠 있는 백조 같은 사람이에요. 수면 아래에서 쉴 새 없이 발을 놀리면서 같은 분야의 다른 작가들보다 잘 쓰려고 언제나 애를 쓰고 있지요.
그런데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열등감이나 경쟁 의식의 강도가 좀 약해졌어요. 계속 저의 내면을 괴롭히면서 살 수는 없으니까요. 부정적인 감정을 이겨내는 것은 어렵지만,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고 생각해요.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신나게 하기로 마음 먹는 거죠. 글을 쓰는 동안 저는 스스로 '이 분야에서 나만큼 잘 쓰는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고 주문을 걸곤 해요. 어떤 일을 꾸준히 하는 데 필요한 건 기다림과 자신감이라고 생각해요.
제나와 소율, 라희, 로미뿐만 아니라 서단장, 엄마 수연, 아빠 태영, 김형민 형사까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인물들 덕분에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습니다. 이들 중 작가님이 묘사하는 데 가장 신경을 쓴 인물은 누구인가요?
주인공 제나를 묘사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어요. 실력, 외모, 인격까지 두루 갖춘 너무나 훌륭한 캐릭터라 주인공인데도 밋밋해서 자꾸 고쳤습니다. 제나가 나중에 큰 시련을 겪게 되지만, 너무 착한 아이로 그려져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요즘엔 착하면 매력이 없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그 착한 인물을 매력적으로 고쳐놔서 만족스럽습니다. 두 번째는 서연조 단장이에요. 어른 캐릭터이지만 이 책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고, 두 얼굴을 지닌 유명 인사 캐릭터죠. 아마도 제가 어른이어서 감정 이입이 많이 됐던 인물인 것 같습니다.
『턴아웃』의 모든 페이지 이후, 제나는 엄마의 꿈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꿈을 잘 찾아갔을까요?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후일담이 궁금합니다.
제나는 천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아마 유학을 갈 것 같습니다.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에서 천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연구원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는 이 책을 쓰는 데 제게 많은 영감을 준 천문학자 이명현 선생님이 다녔던 곳이에요. 그리고 남자 친구와 함께 가끔 발레 공연을 보러 갈 거고, 딸들을 낳아 키울 무렵에는 엄마와 화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명의 딸들에게 발레의 '발'자도 꺼내지 않겠지만, 혹시라도 두 딸이 발레리나가 되길 원하다면 발레 학원에 보낼 거예요.
유전자 조작, 나노칩 시술 등 몸을 개량하는 과학 시술이 보편화된 사회가 된다면 작가님께서는 과학 시술을 받으실 건가요? 만일 과학 시술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몸의 어떤 능력을 강화하고 싶으신지 궁금해요.
유전자 조작과 나노칩 시술이 보편화된 사회가 된다면, 저도 할까 말까 고민을 할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보톡스나 필러를 맞을까 말까 고민하는 수준이 될 테니까요. 그런데 저는 겁이 많은 편이라 웬만하면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늙어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유전자 조작이나 나노칩 시술이 보편화됐다고 해도 완벽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보톡스나 필러보다 훨씬 더 위험한 시술이 될 테니까요.
사람을 아름답고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 데에는 분명히 대가가 따를 거예요. 부작용이지요. 또 이런 시술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간격을 더 넓게 만들어서 계급 갈등이 심해질 수도 있어요.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테니까요. 다만, 인간을 괴롭히는 병을 치료하는 목적으로는 더 발전된 기술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 챗GTP와 AI의 그림으로 예술계에도 큰 파장이 일고 있는데요, 선생님은 '과학의 힘을 빌린 예술'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를 들어 『턴아웃』 속 과학 시술로 몸을 개조한 발레리나처럼요.
사실 저는 이 책에 나오는 로미의 캐릭터가 제일 현실적이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용돈을 모아 부모 몰래 나노칩 시술을 받다가 사고를 치고, 결국 발레를 하기 위해 과학 시술이 허용된 영국 발레단으로 떠나잖아요. 그만큼 발레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아이예요. 그런데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는 역시 주인공 '제나'입니다. 제나는 과학 시술을 한 발레리나를 정직하지 않다고 말해요. 그리고 자신이 유전자를 조작한 발레리나였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하게 돼죠.
저도 제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예술은 '인간의 노력만으로 일구는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정보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그림에서 과연 진정한 감동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 갑니다. 처음에는 AI가 만들어낸 예술 작품에 호기심을 갖고 열광하겠지요.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손과 머리와 감성, 노력으로 만들어낸 예술 작품과 분명히 다를 거라고 믿어요. 창작은 종종 신이 하는 일에 비유하잖아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거니까요. 그 과정에서 커다란 기쁨을 맛보지만 그만큼 고통스러운 작업입니다. 그런 고통을 극복하고 나온 창작품을, 기계는 모방할 뿐이죠. 기계가 할 수 있는 건 한계를 드러낼 거라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꿈을 찾아가는 청소년 독자들이 『턴아웃』을 읽고 무엇을 얻길 바라시나요? 또, 청소년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돌이켜 보니 『턴아웃』 속에서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그래도 제가 청소년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 가지예요. 과학 시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최고의 아이로 키우고 싶어하는 욕망을 지닌 부모와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꼭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라는 거예요. 예술에 과학 시술을 허용해도 될까? 이런 문제의식을 던지는 이야기가 큰 흐름으로 갔으나, 이 책의 또 다른 큰 흐름은 청소년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래 사회는 아예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의 잣대에 맞춰 아이들이 태어날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렇게 성장하는 아이는 결코 행복할 수가 없어요. 삶이란 계획한 대로 절대 풀려나가지 않고, 누군가의 강요로 만들어지지 않거든요. 그래서 항상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하고,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밀고 나가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하은경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 추리 문학의 세계에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고, 그 길을 성실하게 걷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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