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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호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 육호수 시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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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진 곁을 모두 시에 내어주고, 백지 앞에서 조금도 비켜가지 않겠습니다. (2023.03.14)


육호수 시인이 첫 시집 『나는 오늘 혼자 바다에 갈 수 있어요』 이후 두 번째 시집을 펴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은 시를 향한 시인의 고민이 짙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작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허수경 시인론」이 당선되며 평론 활동을 시작한바, 동시대의 시를 세밀하고 깊게 살피려는 시인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첫 시집를 통해 빛과 꿈, 새, 바다나 모래성과 같이 섬세하게 반짝이는 감각과 이미지들로 소년기의 상처를 되짚고 현실과 천국의 풍경을 겹쳐 보았던 시인은 이번 시집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에서 한층 더 단단해진 사유와 언어에 대한 감각을 선보인다.



두 번째 시집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를 출간하셨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두번째 시집을 출간하는 마음은 어떠신지 말씀 부탁드려요.

첫 시집 때는 사는 것을 어떻게 시로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면, 이제 어떻게 이 시를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어요. 한 편 한 편 방을 만들고 큰 창을 내고 벽난로와 의자를 만들어 살다가, 언젠가 이곳에 와 머물 독자들을 위해 청소를 하고 방을 비우며 5년을 보냈네요. 첫 시집에 실린 시를 쓰던 때에는 과연 이 시들이 세상에 나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을까 막막했어요. 영원히 이 모니터 속에 갇혀 있을 것 같아 시들에게 참 미안하기도 했고요. 

이젠 이 시들이 꼭 필요했던 누군가에게 반드시 닿게 될 거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여러 마음들 덕분이에요. 이 시집이 몇 명의 사람에게 닿게 될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다만 이 시를 알아볼 수 있는, 이 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당신'에게는 꼭 이 시집이 눈에 띄었으면 좋겠어요. 우연히 서점이나 여행지에서 이 시집을 마주친다거나, 인터넷에서 어떤 구절을 보고 지나칠 수 없게 된다거나 하는 그런 일이 벌어졌으면 해요.

제목이 무척 강렬한데, 시집을 읽기 전까지는 정말 '영원', '소년', '천사' 등이 나오지 않는 시집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듯해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제목인지 소개해주세요.

'영원'이라는 말로 영원을 담을 수 없어서, '천사'라고 쓴다고 천사를 볼 수 없어서, '소년'이라는 말로 소년이 될 수 없어서 이런 제목을 붙이게 된 것 같아요. '영원'과 '소년'과 '천사'는 첫 시집을 쓰던 시절부터 제가 골몰해 있던 것들이에요. 첫 시집이 세상에 나오고 난 후에 이들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어서 고민하다 이들을 표하는 '시어'를 믿지 말자는 생각에 다다른 적이 있어요. 그날 종이에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라고 크게 써서 책상 앞에 붙여두었죠. 당시 '2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등 여러 금지를 오가던 때라 금지란 말을 매일같이 들었거든요.

'천사', '영원', '소년' 이 셋 모두 이 세상에선 내게 금지된 것 같기도 했고요. 무언가가 금지되고 나서야, 우리에게 금지된 것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되곤 하잖아요. 미문에 천착하지 말자, 시어에 경도되지 말자.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이지만 여전히 어려워요. 영원이라는 말로 담고자 했던 건 영원보다 더 먼 영원이었어요. 천사보다 더 투명한 천사, 소년보다 더 무위(無爲)의 소년에 닿고 싶었죠. 금지의 방식으로라도 그들이 이 시 안에 와주었으면 했어요. 시집의 제목에 대해 이런저런 배경을 말씀드리긴 했지만, 이 제목에는 어떤 의미도 담겨 있지 않아요. 시의 의미는 시의 언어와 문장 안에 이미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영혼과 마주하는 때에 비로소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시인님의 시 세계에서 '꿈'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악몽 부자입니다. 나는 내게 진실하기 어렵고, 세상에 진실하기 어려워요. 반대로 누군가에게, 세계에게 진실을 바라기도 참 어렵죠. 영혼과 진실은 공기에 취약하잖아요. 내놓으면 갈변하죠. 자기의 영혼과 진심을 세상에 드러내고 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는 것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그렇지만 악몽만은 악몽의 방식으로 내게 진실해요.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후회하는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고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지 아주 투명하게 펼쳐 보여주지요. 

악몽 안에는 이 세계의 것은 아니지만 시공간이 있고 감각이 있고 이야기와 감정이 있죠. 이 세계와 단절된 세계이면서도 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고요. 그런 면에서 악몽과 시는 참 닮았어요. 악몽에서 깨기 직전의 순간과 시의 마지막 문장도 비슷하고요. 저는 악몽에서 깨고 난 직후 한밤중에 시가 가장 잘 써져요. 악몽을 한바탕 겪으며 세상에서의 내가 완전히 무장 해제되고 무방비의 영혼이 노출되는 시간이니까요.

표제작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에서 단어의 순서만 바꾼 시들은 하나의 시 속에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되거나 병치되어 있고, 「하다못해 코창에서 스노클링을 하다가 말미잘을 보고도 네 생각이 났어」는 전체가 사진 한 장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또, 특수 문자와 외계어로 가득찬 시도 있습니다. 이 작품들의 독법을 제안해주실 수 있을까요?

얼마 전 찾은 외국의 한 해변에서 꼬마 아이 셋이 모래성을 짓는 것을 한참 보았는데요, 파도가 깊게 들어와서 아이들이 쌓던 모래성이 무너질 때마다 아찔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러는 사이 아이들의 놀이에 제가 더 몰입해서 보고 있는 거 있죠. 우리는 학교에서 시 속에 숨겨진 의도를 찾게끔 배워왔잖아요. 정해진 주제나 틀에 박힌 표현과 효과를 학습하고 그것에서 벗어난 답을 내면 가차없이 오답이 되고요.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에는 어떤 표현상의 의도나 의미도 숨겨두지 않았어요. 그것을 찾으려 애쓰지 않으셔도 돼요. 모래성을 무너뜨리려고 파도가 치는 게 아니듯이, 그 파도에는 의도와 의미가 없어요. 파도와 파도에 무너지는 모래성을 보고 있는 누군가의 마음이 더 중요해요.


육호수 시인이 싸이월드에 올렸던 사진

'특수 문자와 외계어로 이루어진 시'가 발표되었던 웹진 <같이 가는 기분>에도 프로필 사진 대신 2000년대 초반의 사진을 올려두셨는데, 그 시기에 대해 특별한 추억을 가지고 계신 걸까요?

2005년 싸이월드에 실제로 올렸던 사진을 그대로 가져왔어요. 당시 열다섯 살이었으니 마의 중2를 지나고 있었네요. 당시의 채팅체로 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그것으로 어떤 시를 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 오랫동안 묵혀둔 아이디어였어요. 그 무렵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녔던 아이들이 메신저로 소통해본 첫번째 유년 세대가 아니었나 싶어요. 학교에서는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 친구들과 채팅을 통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이른바 '사이버 자아'라고 할까요, 학교에서와는 다른 자신의 모습을 미니홈피에 표현하기도 했죠. 특별한 추억이랄 건 아니지만, 제가 초등학생 때 제주도에서 경북 구미시로 이사를 갔거든요. 제주 친구들은 세이클럽 타키를 썼는데 구미에서는 드림위즈 지니를 써서 항상 메신저를 두 개 켜두고 있었죠. 전학 직후엔 적응이 힘들어 제주에 있는 친구들에게 메일을 많이 보냈던 기억이 나요.

시인님께서는 202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평론가로도 등단하셨어요. 시를 쓰는 일과 평론을 쓰는 일은 어떻게 다른지, 각각의 일에 무게 추가 있다면 어느 쪽이 조금 더 무거운지 말씀해주세요. 

각각의 일에 무게 추가 있으면 재어볼 수 있어 좋겠는데, 무게 추가 하나밖에 없어서 힘들어요. 그러니까 하나의 무게 추가 완전히 시로 기울거나, 완전히 평론으로 기울게 되는 거죠. 어떻게 둘을 병행하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그때마다 병행을 못해서 큰일이라고 답해요. 어떻게 병행하지? 저도 묻고 싶네요. 평론을 쓰는 중엔 시를 쓰지 못하고, 시를 쓰는 중엔 평론을 쓰지 못해요. 

난생처음 써본 평론이 덜컥 당선되어버렸는데, 한 편의 시를 이삼 주 동안 꼬박 쓰고 한 주를 쉬는 패턴으로 지난 수년간 살아왔기 때문에 난처한 한 해를 보냈어요. 눈앞에 있는 마감들만 처리하다 일 년이 훅 지나갔네요. 데뷔 이후 처음으로 원고를 펑크 내기도 했고요. 내가 모든 시를 쓸 수 없듯, 모든 시에 대한 평론을 쓸 수는 없는 거구나, 새삼 깨닫게 된 사건이었죠. 시와 평론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아직 좋은 대답을 드리기 어려울 것 같아요. 평론을 시작한 지 고작 일 년밖에 되지 않아서 저도 잘 모르겠거든요. 십 년쯤 후에 같은 질문에 좋은 답을 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를 읽을 독자분들께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시인이기 이전에 한국 시를 좋아하는 독자예요. 이십대 중반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시가 문장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좋아하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답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평론도 하는데요, 오래오래 여러 시를 곁에 두고 읽고 쓰며 평생을 지내고 싶어요. 제가 가진 곁을 모두 시에 내어주고, 백지 앞에서 조금도 비켜가지 않겠습니다.



*육호수

1991년생.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졸업. 2016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여 <창작과비평>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202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되었다.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
육호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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