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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가] 이혜미 기자, 오늘도 분투하는 모든 여성들에게

『여자를 돕는 여자들』 - <월간 채널예스> 202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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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제도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일상에서 느낀 불평등을 조금씩 바꾸려는 노력이 궁극적으로 나를 해방시킨다. 그런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2023.03.10)


"여자의 적은 여자" 여성들이 '큰일'을 도모하는 매 순간에는 이런 꼬리표가 붙는다. 이혜미 <한국일보> 기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른바 '여기자'로 살면서 젠더 불평등 사건을 꾸준히 취재했지만, 그럴 때마다 편견의 시선과 비난의 말들이 돌아왔다. 그런 세상에 그가 내놓은 건 젠더 관점의 뉴스레터 <허스펙티브>와 여자를 돕는 여성들의 인터뷰다. 여자를 돕기 위해 시작했지만, 오히려 기자 자신이 위로를 받았다. 그렇게 『여자를 돕는 여자들』을 세상에 내놓으며 그는 "오늘도 분투하는 모든 여성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썼다.



지금 여성에게 필요한 이야기

세상을 젠더 관점으로 바라보는 뉴스 프로젝트 <허스펙티브>(전 허스토리)를 이끌고 계세요. 메일 주소도 '허스토리'더라고요.

2017년 한국일보 입사 당시 이야기부터 해야겠네요. 여성이라면 누구든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을 기억할 거예요. 저 역시 '여기자'로 살면서 젠더 불평등을 생활 속에서 느끼고 있었지만 언어화하지 못한 시간이 길었어요. 그런데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젠더 불평등 이슈를 취재하면서 페미니즘을 더욱 적극적으로 삶에 받아들였어요. '허스토리'에 담고 싶은 뜻은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지금껏 역사가 남성에 의해 기록되었지만, 이제는 여성의 이야기를 펼쳐 보이겠다는 것이었어요. 다른 하나는 '허 스토리(her story)' 그녀의 기사라는 뜻인데요. 영미권에서는 기사를 '스토리'라고 하거든요. 이혜미라는 개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쓰겠다는 마음을 담았죠.    

인터뷰 시리즈 『여자를 돕는 여자』(이하 여돕여)는 <허스펙티브>(전 허스토리) 연재 당시부터 주목을 받았어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통념이 개인의 성취를 가로막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10명의 여성을 만났죠.

'여돕여' 프로젝트는 여성들의 어려움을 직접 목격하면서 시작됐어요. 대학교 특강을 나갔는데 한 학생이 이런 호소를 하더라고요. "기자님, 제가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페미니스트임을 드러냈는데 익명 게시판에 저를 저격한 글이 올라왔어요. 같은 캠퍼스를 누비는 누군가가 저를 혐오한다는 사실이 너무 공포스럽습니다." 저널리스트로서 이 학생을 도울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어요. 결국 현재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밖에 없더라고요.

교정지를 덮을 때쯤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고요. '이렇게 아름다운 책이 세상에 나오다니. 그런데 내가 썼다니!'

외부의 반응을 기다리기 전에 저 스스로가 먼저 이 이야기를 아름답게 봐주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독자들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어요. 이 책을 읽고 여성들이 지금 있는 자리에서 엉덩이가 들썩이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정치, 대중문화, 창업, 커리어,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여성을 폭넓게 섭외했어요.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은 한 번쯤은 부당한 공격이나 편견을 겪어본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차별적인 상황에서도 어떻게 자기중심을 잃지 않았는지를 질문했죠. 뒤따르는 후배 여성들에게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다양한 분야의 여성을 섭외한 것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어요. 여성으로서 창업을 고민하는 사람, 남성 중심적 이공계 연구실에서 공격을 받는 사람, 페미니스트이지만 트랜스젠더나 난민 이슈를 볼 때 모순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허스토리> 오픈 당시, 언론사에서 뉴스레터와 크라우드 펀딩 방식을 택한 것도 화제를 모았어요. 직접 동대문 시장에 가서 굿즈도 제작했고요. 

저널리즘의 목적은 시민들의 민주적 소통을 유도하는 것인데, 기성 매체들이 점차 독자의 삶과 멀어지는 것 같아요. 물론, 현장에서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기자들이 정말 많아요. 그렇지만 디지털 환경에서 좋은 기사가 도달조차 못하는 것을 보면서, 기사를 잘 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요. <허스토리>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뉴스레터를 보내고 크라우드 펀딩을 하고 굿즈를 만든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단순히 기사 한번 클릭하고 흩어지는 독자가 아니라, 젠더 이슈에 열정적인 독자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어요.

크라우드 펀딩 반응이 뜨거웠어요. 목표치를 훌쩍 넘어 마감되었는데요.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독자분들을 믿고 있었어요. 뉴스레터를 읽는 독자들은 오탈자부터 무심코 쓴 차별적 언어까지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시거든요. 그만큼 독자들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결국, 독자들의 사랑 덕분에 여성들의 이야기들이 세상에 나온 거잖아요. 함께 선순환을 만들어나가는 것 같아요.



'핫펠트'의 인터뷰는 "나는 꽃이 아니라 새예요"라고 선언하며 시작하죠. 어떤 앵글로 접근하여 질문을 구성했나요?

특정 앵글을 미리 정해두지는 않아요. 인터뷰이가 내어놓은 이야기를 왜곡하지 않고 전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지만 제가 던지는 질문에 어떤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면, 그건 저널리스트이자 페미니스트로서 쌓아온 관점 그대로일 거예요. 9년 차 기자인 제게는 핫펠트의 외모보다 "네가 뭔데"라는 비난에 굴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 더 중요해 보이거든요. 그래서 인터뷰를 할 때 "20대 때보다 30대인 지금이 더 좋아 보인다"고 말했어요. 원더걸스의 텔미를 추던 '예은'보다, 지금의 핫펠트 박예은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고요.

지금도 '핫펠트'의 뉴스를 검색하면 외모를 칭찬하는 기사들이 많아요. 

정확하게 그런 기사와 반대로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임해요.(웃음) 여자 아이돌을 다룰 때, 각선미가 어떻고 솜털이 어떻고 하는 식의 기사가 많잖아요. 그런데 한 사람의 신체 부위를 따지는 것이 과연 동등한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일까요? 대상화하는 시선에서 벗어나 한 사람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려고 했어요.

뉴스레터 <뉴닉>을 창업한 김소연 대표의 인터뷰에서는 '능력주의'를 짚었어요. 여성들에게 '능력주의'는 모순적인 단어예요. 능력주의를 통해 유리천장에 맞서면서도, 차별적인 구조를 승인하는 건 아닐까 고민하게 되죠.

나임윤경 문화인류학과 교수님의 말이 답이 될 것 같아요. 

능력주의는 어떤 여성들에게는 굉장히 평등합니다. 능력만 되면 어디서든 선택받으니까요. 그러나 능력주의의 수혜를 받은 엘리트들이 할 일은 탑을 쌓는 게 아니라 대청마루 같은 평상을 까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_221쪽 

저 역시 능력주의 안에 있는 사람으로서, 성취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내가 너무 체제 순응적인가 하는 부채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핵심은 이 성취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예요. 불평등한 구조를 강화하는 데 쓸 것인가, 아니면 다른 여성들과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 것인가. 개개인의 성취를 비난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여성들을 위한 평상을 까는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랬을 때 더 자유로워지고요.

국회 의원 류호정 인터뷰의 온라인 판 제목은 '악플 모아 전시회 여는 건 어떨까요'였어요. 그 기사 아래에도 어김없이 악플이 달렸고요.

류호정 의원 같은 사람을 만나면 참 즐거워요. '악플을 모아서 전시회를 열겠다'니 너무 산뜻하잖아요. 그래서 인터뷰에도 소박하게나마 악플을 인용해서 전시해줬죠. 류호정 의원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했던 건 전형성을 깨고 싶다는 거였어요. 정치야말로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큰데, 정치의 전형적인 얼굴은 늘 '대졸, 서울 출신의 중년 남성'이잖아요. 다양성이 없죠. 그런 의미에서 류호정 의원이 던지는 메시지가 많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현장에서 "젊은 여성 정치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어요. 그보다 정치인으로서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가장 통과시키고 싶은 법안은 무엇인지 집중적으로 물어봤고요.



우리는 함께 세상을 바꿔나간다

체육계 성폭력을 고발한 김은희 코치가 2020년 자유한국당에 입당할 당시 첫 인터뷰를 했고, 이번 '여돕여' 기획을 통해 두 번째로 만났어요. 한 여성의 성장을 지켜본 셈인데요. 

완성형의 여성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가치가 있었던 인터뷰였다고 생각해요. 공론장에서 마이크를 든 여성은 수없이 자기검열을 해요. 남성들은 쉽게 손을 들고 발언을 하지만, 여성은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되나 끊임없이 고민하죠. 김은희 코치는 아마 자유한국당 청년인재영입이 되었을 때 엉겁결에 마이크를 쥐게 되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당시 인터뷰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직시하고 숨김없이 표현했어요. 이후에도 성폭력 피해 소송을 진행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성찰할 줄 아는 사람이었죠. 지금도 김은희 코치가 완성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사람인 걸 알아요. '완성형이 아니어도 된다. 직접 해보면서 성장하면 된다.' 그런 걸 느꼈어요.

전수연 변호사를 통해서는 '난민'과 '여성' 이슈가 만나는 자리를 발견했습니다. 2018년 예멘 난민 사태처럼, 여성 커뮤니티 안에서도 타자에 대한 혐오가 드러날 때도 있어요. 여성 이슈가 궁극적으로는 구조적 차별을 바꿔내려면, 어떤 관점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여성이 느끼는 두려움은 너무나 이해해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누구든 안전에 위협이 되는 감각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예멘 난민 사태나 숙명여대가 트랜스젠더를 입학 거부한 사건을 떠올려보면, 일상에서 우리가 그들을 보았는가 묻고 싶어요. 트랜스젠더와 난민은 이 사회에 가시화되지 않는 존재들이고, 그렇기에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는 위협을 가할 수도 없어요. 결국, 우리의 분노와 요구가 향해야 할 곳은 차별을 만들어내고 안전을 위협하는 조직이나 구조예요.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소수자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거고요.

문화인류학과 나임윤경 교수의 성평등 교육을 받았던 기자님이 10년이 지나 그를 인터뷰하게 된 것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사실 나임윤경 교수님을 섭외할 때 번아웃이 온 상태였어요. 젠더 기획을 하면서 매 단계가 증명의 연속이었고, 언제나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질문에 답해야 했거든요. 아무래도 '여성'을 내세워야 하는 인터뷰이다 보니, 섭외를 실패하는 과정을 겪기도 했어요. 나임윤경 교수님을 섭외할 당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 이슈가 지속될 때였는데요. 양평원장으로서 교수님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표현을 썼다는 이유로 남초 커뮤니티와 정치권에서 온갖 공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것이 교수님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섭외 전화를 걸었어요. 그런데 교수님의 첫마디가 이랬어요. "당연하지. 우리 둘만 보더라도 인터뷰할게." 그 순간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게 바로 '여자를 돕는 여자'구나 싶었어요.

교수님을 직접 만났을 때, 현장에서 가장 와닿은 메시지가 있었나요?

"누구도 내 영혼에 손톱만큼의 균열도 낼 수 없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이게 제목이라는 직감이 왔어요. 그만큼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30대 여성으로서 조직 생활을 하고 글을 쓰면, 중심을 잃게 하는 사건이 무수히 일어나는데요. 그럼에도 분노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여기 있는 모든 여성들은 다 자신이 속한 장을 바꾸는 사람들이었거든요. 왜 바꾸냐고 물어보면, 바꾸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안 하면 다른 사람들이 또 고통받기 때문이라고 해요. 기꺼이 감내하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거죠.

기자님이 젠더 불평등에 대한 기사를 쓰고 <허스펙티브>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네요.

마지막 인터뷰이인 한승희 글로벌리더십컨설팅 대표가 그러잖아요. "희생자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세요." 괴로운 환경 속에 머무르면 계속 피해자가 되지만, 해결사가 되면 바뀐 환경에서 나 역시 편해져요. 저도 2015년 기자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에 비하면 지금이 훨씬 편하거든요. 단번에 제도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일상에서 느낀 불평등을 조금씩 바꾸려는 노력이 궁극적으로 나를 해방시킨다. 그런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기성 언론사의 변화도 관찰돼요. 젠더 데스크가 생기고 젠더 관련 기획이 늘어나고 있죠. 기자로서 '젠더 관점'을 설득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에요. 그것이 저널리즘의 역할인데, 뉴스가 만들어지는 사회적 조건은 성평등하지 않기 때문에 특정 목소리만 과대표될 뿐이죠. 왜 어떤 목소리는 유독 들리지 않을까? 그런 문제의식으로 젠더 관점의 기사를 꾸준히 쓰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이 책의 공통 질문을 기자님께 드리고 싶어요. 지금의 이혜미를 있게 한 '나를 도운 여자'는 누구인가요?

최은희 여기자상을 수상할 당시, 소감으로 "이 상은 현재 여성 기자들이 현장에서 맘껏 누빌 수 있도록 궤적을 그려온 많은 여성 선배" 덕분이라고 말했어요. 지금도 현장에서 분투하는 많은 여성 기자들. 그들 모두가 '나를 도운 여자들'이에요.




*이혜미
한국일보 기자. 『착취도시, 서울』 등을 썼고, 젠더 뉴스레터 <허스펙티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의 여기자상'과 '최은희 여기자상' 등을 수상했다.



여자를 돕는 여자들
여자를 돕는 여자들
이혜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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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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