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일타 강사 조정식 "영어는 언어, 요령으로 배울 수 없다"
참고서 『괜찮아 어법』
저는 학생들에게 늘 강조해요. 기책(奇策)은 상책(上策)이 될 수 없고, 편법은 절대로 정론을 이기지 못한다고요. (2023.03.10)
수능 영어 일타 강사 조정식이 참고서 『괜찮아 어법』을 펴냈다. 온라인 강의를 듣는 학생들을 위해 꾸준히 교재를 집필해 온 그가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참고서를 본격 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정식 강사가 시중 출판에 도전하게 된 것은 어법의 기본을 알고 싶다는 학생들의 요청 덕분이었다. 수험생의 러닝메이트를 자처하는 그에게 어떻게 하면 수능 영어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영어에 요령은 없다. 정도를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중 출판을 하기 위해 편집부에서 오랜 시간 강사님을 설득했다고 들었어요.
메가스터디북스뿐 아니라 다른 출판사에서도 참고서를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많이 받았는데요. 저에게는 고민스러운 일이었어요. 시중 출판을 하면 저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교재 가격을 낮춰야 했거든요. 이미 저는 메가스터디북스 내부 플랫폼에서 교재를 판매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참고서 하나를 만드는 건 엄청난 공력이 들어가는 일이라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학생들 덕분에 결심을 할 수 있었어요.
어떤 이유에서요?
제 수업을 듣는 중학생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저는 수능 영어를 가르치기 때문에 내신을 위한 기본 어법에 대한 강좌는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다수의 중학생 친구들이 "어떤 수업을 들어야 기본 어법을 배울 수 있냐”고 묻더라고요. 이 친구들뿐 아니라 인강을 듣는 지방 학생들도 내신 문법에 대한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요.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기본 어법을 정리한 참고서를 만들어보자 싶었습니다.
시중에는 수많은 수능 영어 참고서가 있습니다. 『괜찮아 어법』만의 차별점이 있을까요?
크게 3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어요. 첫 번째로 문법 용어를 최대한 배제했습니다. 학창 시절에 '가산 명사', '불가산 명사' 같은 문법 용어 많이 들어보셨죠? 저는 이렇게 어렵기만한 용어들을 최대한 빼고 문법을 쉽게 설명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내신 문제 위주의 참고서를 만들었어요. 저는 '모든 문법 시험을 커버할 수 있다'와 같은 홍보성 문구를 믿지 않습니다. 그런 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여기서는 오로지 학교 내신에만 초점을 맞췄습니다. 고등학교 교과서 수준에서 다뤄질만한 문법에만 집중해 문제를 냈죠. 마지막으로 내신의 등급을 가르는 핵심인 '서술형 영작 문제'를 다수 실었습니다.
어법 공부는 언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저는 중학교 3학년 정도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어법을 공부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문법 용어를 만나는데, 이보다 어린 시절에는 어려운 용어 때문에 편견과 거부감이 생길 수 있거든요. 중학교 3학년쯤이면 국어 수업에서도 형태소, 의문, 음절 같은 국어의 문법 용어가 조금씩 나와서 익숙하죠. 고등학교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저는 어린 나이부터 어법 공부를 시작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일찍 시작하면 더 잘할 수 있지 않나요?
오히려 역효과예요. 제가 현장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영어 실력이 쭉 상승하다가 2등급 선을 못 뚫는 학생들이 있거든요. 그 친구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문장을 문법적으로 쪼개서 분석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어렸을 때부터 문법을 많이 공부했다고 하더라고요. 소위 5형식을 외우고, 이것으로 문장을 쪼개서 해석하는 연습이 되어 있는 거죠. 하지만 수능 영어는 문장을 그렇게 천천히 분석할 만큼의 시간을 주지 않아요. 읽고 바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영어를 접하면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중학교 1,2학년 때는 교과서의 내용을 이해하는 정도로 공부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어린이들은 영어 공부를 굉장히 빨리 시작합니다. 조기 영어 교육에 힘쓰는 양육자들은 "영어를 빨리 완성해놓고, 다른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해요.
영어 공부에 완성은 없습니다. 그건 불가능해요. 우리나라에서 영어 교육에 가장 열성인 곳이 대치동일 텐데요. 대치동 아이들은 영어 유치원을 졸업해도 영어를 까먹지 않기 위해서 또다시 영어 학원에 다닙니다. 이렇게 계속 영어 공부를 하게 되죠. 또, 어린 시절에 언어로 접한 영어와 수능 영어는 완전히 달라요. 우리가 한국말을 못해서 국어 영역 100점을 못 맞는 게 아니잖아요. 미국에서 6~7년씩 살고 온 학생들도 수능 시험에서 2등급을 받는 경우가 허다해요. 이 친구들의 특징은 자신이 영어를 잘한다는 생각 때문에 고3 시절에는 다른 과목 공부에 집중했다는 거죠. 언어는 안 쓰면 순식간에 잊어버립니다. 저도 영어의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일주일에 2번은 외국에 있는 친구와 한 시간씩 전화 통화를 합니다. 어학에 '미리'는 없어요.
조기 영어 교육뿐 아니라, 수능 영어에 대한 세간의 오해도 많습니다.
굉장히 많죠. 대표적으로 '수능 영어는 쓸 데 없이 문장을 꼬아서 낸다'는 건데요. 2018학년도 수능 영어 절대 평가가 시작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온 모든 수능 문제를 살펴보면, 출제진이 편집을 하거나 다시 쓴 글은 하나도 없어요. 이건 글을 꼬아서 내는 게 아니라, 미국인들이 글을 쓰는 습관 자체가 그런 겁니다. 예를 들어 영어는 수사적인 표현을 좋아해서 "조정식은 못생겼다"는 말을 "아름다움이 죄라면 조정식은 무죄이다"라는 식으로 표현합니다. 이건 단순히 문법을 배워서는 알 수 없어요. 영어로 쓰여진 글을 많이 읽어봐야 이해할 수 있죠. 저는 학생들이 글을 많이 읽고 이해하는 훈련을 더 했으면 좋겠어요. 수능 영어 시험은 그저 주어진 글을 이해하면 끝나는 시험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 문제를 빨리 푸는 요령을 배우는 데 집중하죠.
특히 영어는 절대 평가 과목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유혹에 많이 빠질 거예요. 맨 앞과 뒤의 문장만 읽고 정답을 찾는다거나, 빈칸의 앞뒤만 읽고 정답을 찾는 등 문제를 더 빠르게 풀 수 있는 방법을 찾기 마련인데요.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늘 강조해요. 기책(奇策)은 상책(上策)이 될 수 없고, 편법은 절대로 정론을 이기지 못한다고요.
이 책을 더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는 꿀팁이 있을까요?
솔직히 말해서 온라인 강의를 들으셨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학교 내신과 수능은 우리가 학교 다녔을 때처럼 혼자 공부를 해서 효율을 내기가 쉽지 않거든요. 시험의 범위가 무척 방대해졌고, 깊이도 깊어졌어요. 저는 02학번인데요. 제가 학창 시절에 봤던 수능 영어 시험은 지금 고등학교 1학년 영어 모의고사보다 쉽습니다. 수능이라는 시험도 회차가 거듭되니 어쩔 수 없이 어려워지는 거예요. 그런데 이걸 혼자 공부하라고 하면 힘들죠. 저는 제 강의가 수능 영어 공부의 가장 효율적인 로드맵을 짜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수능의 난이도가 과거와 크게 다르다면, 양육자의 수험생 시절을 생각하면서 자녀의 학습 계획을 짜면 안 되겠네요.
제가 가장 답답하게 생각하는 지점이에요. 요즘 부모님들이 문법 공부에 열성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부모님이 수능을 본 시절에는 영어의 만점을 결정하는 게 문법 문제였으니까요. 문법 문제는 배점도 높았고, 문제 수도 많은 데다 난이도가 꽤 높았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수능에서 문법 문제의 비중이 확 줄었어요. 오히려 독해 영역이 늘어났죠.
또 하나는 2010년대 극초반까지는 수능에서 굉장히 어려운 단어가 자주 출제됐어요. 예를 들어 'inner polarity(내적양극성)' 같은 단어가 나왔거든요.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구나 아는 단어가 완전히 다른 뜻으로 해석되는 문제를 내요. 예를 들어 'discharge(배출하다, 방출하다)'가 작년 수능에서는 '실행하다'는 뜻으로 나왔습니다. 재작년 수능에서는 'air(공기)'가 '공개하다'는 뜻으로 나왔고요. 그래서 단어를 외울 때 반드시 예문을 많이 봐야합니다. 이제 단어를 노트에 써가며 달달 외우고, 자기만의 단어장을 만드는 방법으로는 수능 영어를 제대로 공략할 수가 없어요.
현재 고등학교 3학년이 된 학생들은 무엇을 중점적으로 공부해야 하나요? 상위권, 중위권, 하위권으로 나누어 말씀해주신다면요.
상위권(1~2등급) 학생들은 최근 3년 정도의 수능 기출문제 지문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정도로 공부하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매일 3~4문제 정도 꼬박꼬박 풀어보면 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중위권(3~4등급) 학생들은 문장을 해석하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수능 지문은 무척 긴데, 중위권 학생들은 이 지문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서 아는 단어를 조합해 추측하죠. 문장의 해석을 배우는 건 어쩔 수 없이 온라인 강의의 도움을 받는 게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에요. 마지막으로 하위권(5등급 이하) 학생들은 듣기 부분이라도 다 맞출 수 있도록 공부하세요. 우선 듣기에 나오는 초보적인 형태의 영단어를 외우는 게 시작입니다.
선생님의 SNS를 보니 강의를 앞두고 "무대를 찢어놔야지"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더라고요.(웃음) 무대에 오르는 심정으로 강의를 하세요?
맞아요.(웃음)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짜놓은 동선대로 내용을 완벽하게 알려주고 내려와야 하니까요. 사실 저는 강의력으로 모든 걸 압도하는 수업이 가장 좋은 수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럼 학생들이 착각을 하거든요. 선생님이 열심히 잘 가르친 건데, 본인이 잘 배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학생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생각을 유도하는 수업을 짜려고 노력합니다.
수업을 하는 입장에서 '영어'라는 교과목이 가지는 장점이 있나요?
저는 수능 트렌드에 민감해져야 하는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영어뿐 아니라 국어 영역의 비문학 문제도 자주 풀어보거든요. 그러다 보면 왜 영어가 학술의 제1언어인지가 느껴집니다. 영어 문장은 오해의 소지가 적고요. 영어로 쓴 글은 논리적인 면에서 짜임새가 정말 아름답죠. 요즘 수능 국어 강의 중에는 거시 독해를 가르치는 수업이 많은데요. 이것도 영어권에서 정리된 방식이잖아요. 논리적인 글쓰기에 관해서는 영어 문장의 짜임새가 가지는 매력이 크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은 자녀 영어 교육을 어떻게 하고 계세요?
저희 첫째 아이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어린 시절부터 영어를 배우고 싶어했어요. 해외 여행 가서 엄마 아빠가 영어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호기심을 갖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어학에 재능이 많은 아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채로 영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요. 첫째가 가니까 둘째도 오빠랑 같은 유치원에 다니고 싶다고 해서 함께 다니고 있죠. 막내는 이제 한국 나이로 3살인데 영어 유치원에 안 보낼 거예요. 아직 우리말도 잘 못하는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요. 둘째 아이도 마찬가지로 오빠가 학교에 가서 혼자 다니는 게 싫다고 하면 일반 유치원으로 옮길 생각이고요.
아이가 영어에 흥미를 느끼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네요.
작년 하반기에 가족과 함께 하와이 여행을 갔는데요.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는 영어 유치원을 다니기 때문에 영어를 잘해요. 그런데 막내는 아직 영어를 모르잖아요. 자기만 빼고 온 가족이 다른 나라 말을 쓰니까 아이가 신기했나 봐요. 저희는 한 번도 막내에게 영어로 말을 한 적이 없는데, 누가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주니까 유모차에 앉아있던 아이가 그 사람을 보면서 "Thank you"라고 하더라고요. 언어는 이런 거라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하는 기회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죠. 저도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운 게 아니거든요.
영어 공부가 매년 새해 목표인 성인들도 많은데요. 영어 회화를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회화 실력을 늘리는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많이 말하는 수밖에 없어요. 제가 추천해드리고 싶은 사이트가 있는데요. 'SPIRES'라는 온라인 영어 튜터 플랫폼이에요. 수강생이 자기의 영어 수준, 학습 목표를 올리면 거기에 맞는 튜터가 지원을 하는 시스템인데요. 튜터의 수준이 높아서 일반적인 전화 영어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될 거예요. 그리고 영어 공부를 시작할 때 목표를 명확히 하셨으면 좋겠어요. 여행을 가서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과 영어로 토론을 할 수 있는 건 차원이 다르잖아요. 내가 영어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부터 생각하면 훨씬 더 목표 도달을 쉽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현재 영어가 초급 수준이라면 미드를 보고 따라하거나 AI 기반의 회화 어플은 효과가 거의 없을 겁니다.
내가 소진되었다고 느낄 때는 어떻게 충전을 하세요?
저는 그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타고난 성격이 우직하기도 하고요. 성공 경험이 쌓이면서부터 더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에너지의 고갈은 내가 쏟은 일에 대해 결과가 없을 때 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성공의 기억을 계속 만들라는 이야기를 자주 해요. 예를 들어 강사들은 힘이 빠지다가도 교재비가 정산되면 힘이 납니다.(웃음)
저는 학생들에게도 이런 보상이 있어야 된다고 봐요. 수험생들은 자신을 마치 수도승처럼 몰아붙여요. 내가 공부할 수 있는 양이 100이면, 100만큼의 계획을 짜죠. 그런데 인생은 결코 계획처럼 되지 않아요. 중간에 작은 변수가 생겨서 그 계획을 지키지 못하면 매일 반성을 하게 됩니다. 이게 반복되면 자괴감이 생기고요. 내가 소진되었다고 느껴진다면 일단 어깨의 힘을 빼야 합니다. 할 수 있는 것보다 작은 계획을 세워서 우선 성공의 감정을 느낀 뒤에 조금씩 양을 늘려가는게 지치지 않고 목표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괜찮아 어법』으로 수능 영어를 공부할 학생들에게 조언의 말씀을 해주세요.
공부를 하다 보면 '괜찮지 않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을 거예요. 이 책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고, 충실히 공부를 했는데 시험 성적이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진부한 얘기지만 원래 동트기 전 새벽에 가장 어두워요. 회의감이 든다는 건 그만큼 열심히 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한눈 팔지 말고 이왕 시작한 공부, 끝까지 밀고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만 두고 싶은 순간일수록 더 자신을 믿고 공부를 해보시면 정말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조정식 수험생들의 러닝메이트를 자처하는 '수능 영어 일타 강사'. 어법의 기본을 알고 싶다는 학생들의 요청을 받고, 참고서를 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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