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춘화 작가 데뷔 소설집 『야버즈』
『야버즈』 전춘화 저자 인터뷰
'야버즈'는 중국어를 발음 그대로 따온 단어로 '오리의 목'이라는 뜻입니다. 차이나타운에 가면 야버즈를 맛볼 수 있는데요. 이질적이고 낯선 음식이라는 점에서 한국에 장기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의 삶과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되어 주요 소재로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2023.02.28)
씹히는 건 딱딱한 뼈인데 혀를 현란하게 움직여 뼈만 밖으로 뱉어 내고 고기를 훑어 내야 하는 건 언제나 똑같았다. 이건 동일하게 삶의 스킬이어야 한다고 경희는 생각했다. 삶의 고단함과 퍽퍽함, 딱딱함은 어떻게든 밖으로 밀어내고 즐겁고 좋은 것들만 내 것이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_『야버즈』 표제작 「야버즈」 중
인생의 고단함을 맛보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이 구절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야버즈』만의 특별함은 삶의 희로애락 앞에 울고 웃는 인물들이 바로 조선족이라는 점이다. 조선족 작가인 전춘화는 역사 교과서에서든, 세계적인 문학 작품에서든, 로맨스 드라마 어디에서든 주인공으로 등장한 적 없는 조선족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쓰면서, 그들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지금까지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색다른 이야기로 가득한 『야버즈』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중국에서 활동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가님에 대해서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해 주세요.
우리말로 쓴 제 소설을 읽어 줄 독자를 만날 꿈을 안고 10년 전 한국에 온 중국 동포 작가 전춘화입니다. 20대 중반까지는 중국 연변에 살면서 한글로 소설을 썼었는데요. 연변에는 우리말 소설을 읽는 독자층이 별로 없는 상태였어요. 글쓰기를 접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한국 독자들이 생각나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한국에 와서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소설 공부를 하게 되었지요. 현재는 간간이 중국에 있는 우리말 격월간지에 소설을 발표하고 있고요. 작년 3월 출판사 호밀밭과 행운처럼 만나 소설집을 준비하게 되었답니다.
소설집 제목이 독특합니다. 독자분들께 '야버즈'가 무엇인지, 소설 속 주요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설명해 주세요.
'야버즈'는 중국어를 발음 그대로 따온 단어로 '오리의 목'이라는 뜻입니다. 표제작 「야버즈」에도 설명이 나오듯이, 오리의 목에 붙어 있는 고기입니다. 차이나타운에 가면 야버즈를 맛볼 수 있는데요. 이질적이고 낯선 음식이라는 점에서 한국에 장기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의 삶과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되어 주요 소재로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야버즈』의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조선족인데요. 한국 사회에 쉽사리 동화되지 못하는 인물들에게 체념 같은 부정적 감정보다는, 긍정적 기운이 넘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긍정의 기운은 과연 어디에서 근거하는 것일까요?
우선 제가 긍정적인 기운이 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일상에서 뼈 때리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면, 멈칫하면서도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 긍정적인 기운을 끌어모아 내뿜는 그런 생존 스킬을 가졌다고나 할까요. 소설 속 인물들이 가진 긍정적 기운은 '저'로부터 기원한 것 같아요. 더 거슬러 올라가 제가 이런 긍정적 기운을 가지게 된 건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연변의 어른들로부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오늘만이라도 일단 견디고 봐야 하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긍정의 기운은 어쩌면 치열한 생존 의지일지도 모릅니다. 웃으면서 애써 긍정을 말하는 사람들, 그 내면에는 어떤 식으로든 살아내고야 말겠다는 삶에 대한 존중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앞서 중국에 계시면서 한글로 소설을 썼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중국어로도 창작이 가능하실 테고, 또 연변에서는 한국어로 된 소설을 읽어 줄 독자층이 별로 없었음에도 한국어 창작을 지속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쑥스럽지만 저는 중국어로 창작이 어렵습니다. 일상 대화는 크게 어려움이 없지만 창작을 하려면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 이상의 문학 언어도 구사해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저는 두 언어 중 한국어가 훨씬 더 편하답니다. 20대 후반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번 생은 글쓰기를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결단을 하고 나서, 표현 수단인 언어에 대한 고민이 따라오더라고요. 중국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중국어로 된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저에게 편한 우리말로 소설을 쓸 것인가, 하는 문제였어요. 그때 정말 뼈아프게 느꼈던 건 제 중국어가 한족 작가들에 비해선 많이 부족하고 우리말도 한국 작가들에 비해 어설펐다는 점이었어요. 작가에게 언어가 정말 중요한 도구인 점을 생각하면 마음 아픈 일이었지요. 그렇게 선택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우리말이 저를 선택해 주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태어나서 처음 "엄마"라는 말을 우리말로 했고, 첫사랑에게 떨리는 마음으로 고백했을 때 사용했던 언어도 우리말이었고요. 짧은 제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제가 선택한 언어는 우리말이었거든요. 조선족인 제가 우리말로 연변에서 글을 쓴다는 것이 어쩌면 무모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지만, 그 무모한 일을 저만 하는 건 아니었기에, 같이 글 쓰는 조선족 작가들과 함께 연대하는 마음으로 계속 써 갔던 것 같아요.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이끄는 대로, 결론을 미리 점치지 말고, 그저 견디며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저에겐 글쓰기가 그런 것이었어요.
『야버즈』에서는 과거의 기억들이 중요한 장면으로 나타납니다. '과거'에 대한 글쓰기는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과거 이야기를 쓰면서 저도 처음엔 '내가 왜 자꾸 과거 이야기를 쓰지?' 하며 머리를 갸우뚱했었거든요. 제 나름 얻은 답은 그래요.
과거를 붙잡고 놓지 않는 건 과거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가 남았거나, 아니면 과거가 지금보다 훨씬 좋아서다.
저는 전자였던 것 같아요. 제가 자라 오면서 부딪친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부조리, 정체성에 대해 주위 어른으로부터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했어요. 어른들은 나름 최선을 다해 대답해 주셨지만, 그래도 '어? 이게 아닌 것 같은데?'라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단 말이죠.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빨랫감들을 깨끗이 빨아 정리하듯이 제가 겪은 과거를 잘 이해해서 차곡차곡 기억 서랍에 넣어 둬야 제가 더 단단하게 오늘을 살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과거 일이라도 대충 흘려보내지 않고 뭔가 잘못됐다, 아니다 싶으면 불편하더라도 꺼내서 마주하고 해석하고 싶었어요. 그 마음이 과거의 기억과 관련된 이야기를 쓰게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야버즈』의 다른 작품들에서는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이의 이야기, 혹은 누군가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면, 「낮과 밤」에서는 각각 중국과 한국에 살아가는 두 여성이 전화를 매개로 매일 밤 자신들의 하루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갈 것을 다짐하잖아요. 이 이야기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나요?
실제로 몇 년 전 늦은 밤에 우울하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어요. 학교에 다니는 동안 오랜 추억을 함께 쌓아 온 소중한 친구였기에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긍정적인 언어를 동원해서 그 친구를 간절히 붙잡았던 것 같아요. 뜬금없이 책 속에서 읽은 문장을 읊어 주기도 하고, 친구의 장점 10가지를 말해 주기도 했지요. 전화를 끊고 나니 문득 내가 언제 이만큼 절박한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나 싶더라고요. 그 기억의 잔상이 오래 남아 다른 감정들과 섞이면서 쓰게 된 작품이 「낮과 밤」이었어요.
이 소설집을 전달해 드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지 살짝 들려주세요.
시골 마을의 철없는 초등학생이었던 저에게 작가의 가능성이 보인다며 부모님까지 설득해 백일장 대회에 데리고 가셨던 국어 선생님, 글 쓰는 일에 자신감을 잃어 갈 때 "재주가 있으니 의심하지 말고 전진하라"고 격려해 주신 문예 창작학과 선생님, 블로그에 올린 푸념글에까지도 댓글을 달아 주고 조언해 주신 지숙 언니까지... 흔들리는 순간마다 저를 잡아 줬던 고마운 사람들에게 『야버즈』를 전달해 드리고 싶습니다.
*전춘화 중국 길림성 화룡시에서 태어나 연변대학교 조문학부를 졸업했다. 2011년에 한국에 왔으며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 창작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에 거주하며 글을 쓰고 있다. 중국 조선족 문예지들에 소설과 수필을 발표하며 활동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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