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민병훈 『달력 뒤에 쓴 유서』 인터뷰
『달력 뒤에 쓴 유서』 민병훈 저자 인터뷰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는 것이 인간 민병훈의 이야기라면 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왜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소설가 민병훈의 이야기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인간 민병훈, 그리고 소설가 민병훈은 과연 이 소설을 통해 다음으로 나아갔을까? (2023.02.24)
2020년 출간된 소설집 『재구성』과 2022년 출간된 『겨울에 대한 감각』에서 문학적인 경험을 독자들에게 선사해온 민병훈 작가가 이번에는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작가는 『달력 뒤에 쓴 유서』를 통해 지난 그의 작품들 전반에 드리워 있던 죽음의 그림자들의 근원과도 같은 아버지의 불행한 죽음을 마주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는 것이 인간 민병훈의 이야기라면 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왜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소설가 민병훈의 이야기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인간 민병훈, 그리고 소설가 민병훈은 과연 이 소설을 통해 다음으로 나아갔을까? 소중한 이의 죽음 앞에서 멈춰 서 있던 작가가 마침내 나아가기 위해 발을 내딛는 순간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장편 소설 출간은 처음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출간 소감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독자들의 반응에도 차이가 있나요?
오랜 기간 고민하고 쓴 소설인 만큼 감회가 새롭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직접 소설로 쓰는 일이 쉽지 않았는데, 저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독자 분들에게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인지 앞서 출간한 두 권의 소설집이 어렵고 난해하다는 반응과는 다르게 이 소설은 비교적 읽힌다는 반응을 보았어요.
『달력 뒤에 쓴 유서』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면, 어떤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소설은 소중한 사람을 잃은 뒤 그 경험을 글로 쓰려는 한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의 작품들과는 결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번 소설은 이전까지의 소설들과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떻게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가장 다른 점은 문장들의 진행 방식이었어요. 단편 소설에서의 문장들은 표현하려는 바를 에두르고 언어적 분위기로 전달했다면, 이번 소설에서는 최대한 솔직하게 문장을 쓰고자 했습니다. 비슷한 점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야기에 제동을 거는 지점이에요.
소설 속 작가 '민병훈'은 끊임없이 왜 이 이야기를 써야 하는지, 이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힐지 질문합니다. 이번 소설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히길 바라시나요?
남겨진 사람들에게 이 소설이 읽히길 바라고 있어요. 소설에 이런 문장을 썼어요. ;문학은 제게 불행을 불행으로 말해도 된다는 사실을 알려줬다;고. 누군가는 이미 겪었고, 누군가는 미래에 겪을 어떤 순간들. 무섭고 두렵지만, 이제는 제대로 마주하고 넘어서려는 한 사람의 시도로 읽히길 바랍니다.
소설을 쓰고 나서 소설가 '민병훈'에게 생긴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소설 속에서 언급한 '끝없는 공포'를 밀어내셨을지 궁금합니다.
많이 밀어냈어요. 최근에 어머니를 만나 책을 전하면서 지금껏 하지 않았던 대화를 나눴어요. 이 책을 통해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인간 '민병훈'의 변화는 희미하게 느껴지지만, 소설가 '민병훈'의 변화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다만 글쓰기로 뭔가를 시도했구나, 앞으로도 뭔가를 시도할 수 있겠구나, 라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메모, 편지, 전화 통화, 대화 등 다양한 언어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한편으로 이런 이질적인 언어의 조합은 통상적인 전개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몰입을 방해함으로써 독자가 기대할 법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지연시키죠. 이러한 유예가 가져다주는 다른 차원의 몰입이 있는 것 같고요.
우리가 뭔가를 기억할 때 논리적이고 분명한 순서를 갖지 않듯이, 사실 이야기라는 형식도 그런 성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그것이 한 개인의 오래 전 경험에서 출발했다면요. 그래서 그 지연의 과정에 읽는 이를 동참시키고 싶었어요. 그것이 소설이라는 장르만의 특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야기 전개가 지연될수록 어떠한 거리감이 발생하고, 그때 이야기에서 잠시 빠져나와 다른 생각들을 할 수 있죠. '기억하기'와 유사합니다. 몰입에서 멀어질수록 몰입하게 되는 것이 바로 기억의 힘, 이야기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달력 뒤에 쓴 유서』가 작가님께서 통과해야할 어떤 단계라고 생각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다음 단계,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는 어디를 향해 갈까요?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될까요?
이번 소설처럼 제가 경험한 일들 중 '다시 겪기'를 통해 다음 이야기로 향하고 싶어요. 소설을 처음 썼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야기의 여러 가능성들을 고심하며, 새로움 보다는 낯선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민병훈 2015년 <문예 중앙>에 단편소설 「버티고(vertigo)」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재구성』과 『겨울에 대한 감각』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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