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예수가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니고~!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329회) 『예수가 하려던 말들』, 『제사를 부탁해』, 『태풍의 계절』
우리가 인문서에서 사고의 전환을 보고 머리가 맑아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 경험을 이 책을 읽으면서 자주 하게 됐고요. (2023.02.23)
김호경 저 | 뜰힘
저자는 국문학을 전공하고 신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서울장로회신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쳤고요. 이 분의 인생적인 고민 중에 하나가 있었는데, 항상 예수가 하는 비유를 듣고 나면 그렇게 놀랍지가 않은 거예요. 성경 속에서 예수의 비유를 들은 사람들은 다 기절초풍하고 '예수가 감히 이런 말을 했다', '저 사람을 죽여야 한다', '저 사람을 쫓아내야 한다'라고 반응을 보이는데, 김호경 교수는 아무리 성경을 읽고 비유를 해석하는 설교를 들어도 '당연한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한데, 왜 그렇게 놀랐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사회적 상황을 생각해서 다시 한 번 비유를 해석해보고자 하는 과정을 거쳤고, 그 과정이 이 책에 담겼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종교서가 될 텐데요. 철학자들의 논거를 빌어서 비유를 설명하는 부분도 있어서 인문서라고 봐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목이 『예수가 하려던 말들』이었는데요. 책을 다 읽고 나니까 약간 그런 뉘앙스로 저한테 다가왔어요.
'아니, 예수가 하려던 말이 그게 아니고... 아휴, 답답해 죽겠네! 그게 아니고 하려던 말이 뭐냐면...'
이런 느낌의 뉘앙스로 다가오는 책입니다.
예수의 비유 중에 유명한 것들이 많이 있죠. 신약 성서에서 예수가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천국은 마치 이것과 같다' 혹은 '나를 따르는 믿음 있는 자들은 마치 ~와 같다'라는 식으로 비유를 굉장히 많이 사용합니다. 겨자 씨 비유도 유명하죠. '작은 겨자씨가 마치 믿음과 같다, 이것은 아주 작지만 땅에 떨어지면 10배 100배 천 배의 결실을 낼 것이다' 이런 비유가 유명합니다.
예수는 굉장히 급진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는데요. 실제로도 유대교 바리새인과의 마찰이 좀 심했었는데, 바리새인이 당시 유대교의 경건주의 분파라고 해요. 그때는 유대교가 거의 법의 중심이었는데, 그 법을 아주 잘 지키는 사람이 바리새인이었던 거죠. 바리새인과 분란을 일으키는 예수라는 존재는 기존의 사회 질서를 안 좋게 만드는, 어떻게 보면 거의 범법자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을 텐데요. 이런 개혁적인 것을 당시 상황과 철학을 빌려서 '어떻게 예수가 이야기하고 있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비유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자, 라는 제안들이 많이 나오고요. 우리가 인문서에서 사고의 전환을 보고 머리가 맑아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 경험을 이 책을 읽으면서 자주 하게 됐고요. 예수가 죄인들과 함께 있다든지 새리들과 함께 있다든지, 당시에 죄인이라고 생각했던 정결하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그들과 같이 다니는 행동을 되게 많이 보여줬었는데요. 당시의 정결법에 대한 도전이나 마찬가지였고 예수는 사실 기존 질서를 다 엎어버린 망나니에 가까운 사람이었던 거죠. 그런데 그 망나니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지금 시대에도 울림을 주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성경에서 예수가 했던 말과 비유라는 게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삶에서 꾸준히 그 비유를 생각하고 행하는 것에 있다는 아이디어를 얻으실 수 있고요. 삶의 전 과정으로 어떤 행위를 받아들이는 것, 저는 이것이 비단 기독교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 인간의 문제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박서련 저 / 정영롱 글·그림 |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새로 나온 <보이는 이야기> 시리즈의 첫 번째 책입니다. 이 시리즈는 소설가와 만화가가 함께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기획인데요. 두 작가가 중심이 되는 인물이나 세계관을 만들고 나서 각각 이야기를 만든다고 해요. 『제사를 부탁해』에서는 박서련 소설가의 소설이 먼저 나오고, 뒤이어 정영롱 만화가의 작품이 나옵니다. 소설의 제목은 「둘이 먹다 하나가」이고, 만화의 제목은 「죽어도 모르는」이에요.
소설은 '권수현'이라는 인물이 일을 하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을 합니다. 수현은 직업이 굉장히 독특해요. '제사상 코디네이터'입니다. 고인과 그 가족이 원하는 방향으로 제사상을 기획해주고 차려줘요. 첫 장면에는 어떤 상황이 나오냐면, 고인의 생전에 가족들이 개종을 했어요. 그래서 고인의 뜻에 따라 제사를 지내기가 힘드니까 수현에게 맡긴 거죠. 수현이 일을 마치고 가려고 하는데 이 집의 맏며느리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그의 웃는 얼굴을 보면서 '박정서'라는 친구를 떠올려요. 수현은 정서를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하는 아이였다고 기억하는데요.
수현이 정서를 떠올리면서 운전하고 있는데 동창생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수현과 정서와 함께 학교를 다녔던 친구인데, 수현이 "나 지금 정서의 집에 일하러 가고 있어"라고 하니까 친구가 '왜? 정서네 제사 드릴 일이 있어?'라고 물어봅니다. 수현이 "오늘이 정서의 1주기"라고 이야기합니다.
정서의 집에 도착했더니 정서의 딸이 있었어요. 아이는 "우리 집에 제사 드릴 사람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듣고 보니 아이가 거의 대부분 집에 혼자 있다는 거예요. 아빠는 새벽에 잠깐 다녀간대요. 이유를 물어봤더니 "저도 이제 다 컸고 아빠도 재혼해야죠"라고 합니다. 그러면 누가 널 챙겨주냐고 했더니 아줌마가 가끔 오시고 할머니도 오신대요. 수현이 깜짝 놀랍니다. 장례식장에서 아이의 할머니를 뵙지 못한 거예요. 정서의 딸은 할머니가 엄마를 마음에 안 들어 했다고 말합니다. 수현은 정서에 대해서 몰랐던 이야기들을 알게 되는 거죠. 정서의 딸이 계속 "그래서 우리 집엔 제사 드릴 사람이 없어요"라고 말하니까 수현이 단호하게 이야기해요. "너희 엄마가 나에게 1주기 제사상을 차려달라고 의뢰했다"고요.
그래서 정서의 딸을 데리고 제사상을 차리면서 정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요. 갑자기 수현이 화들짝 놀라서 집을 뛰쳐나갑니다. 그것으로 소설이 끝이 나요. 이어지는 정영롱 작가의 만화는 정서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요. 첫 장면은 정서가 의사로부터 진단을 받던 순간입니다. 남은 생이 길지 않다는 말을 듣고 왜인지 모르지만 정서는 수현의 얼굴을 가장 먼저 떠올렸어요. 그리고 이후에 정서에게 펼쳐진 사건과 기억들이 나오는데요. 놀라운 한 마디가 나옵니다.
"죽은 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간다."
그러면 궁금해지잖아요. 그 일 년 동안 정서는 어떻게 지냈을까, 1주기에 집으로 찾아온 수현과 만났을까, 수현과 자신의 딸이 함께 있는 모습을 지켜봤을까, 수현은 왜 집에서 뛰쳐나간 걸까... 그 모든 이야기들이 밝혀집니다.
페르난다 멜초르 저 / 엄지영 역 | 을유문화사
페르난다 멜초르는 1982년에 멕시코 베라크루스에서 태어났고요. 2013년에 첫 소설 『가짜 토끼』를 출간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고 해요. 2017년에는 베라크루스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마녀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는데, 그게 바로 『태풍의 계절』입니다. 이 소설이 그해 멕시코 최고의 소설로 평가 받았다고 하고, 독일 문화의 집이 수여한 국제문학상과 안나 제거스상을 수상했고, 맨부커상 국제 부문과 더블린 국제 문학상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고 합니다.
『태풍의 계절』은 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이 된 소설인데요. 독자가 이야기로 진입을 하면 최소한 그 장이 끝날 때까지 읽기를 절대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이 책 전체가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어요. 속도감이 있다기보다는 흡인력이 있어요.
소설의 배경은 주로 '라 마토사'라는 마을인데요. 이 마을 농수로에서 아이들이 물에 잠긴 시신 한 구를 발견하면서 시작을 합니다. 이게 1장의 내용 전부에요. 이어지는 8장까지의 내용은 살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 범인과 목격자 그리고 증언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각 장마다 내세우는 주요 화자가 있는데, 특이하게도 사건 피의자인 살해당한 마녀는 한 번도 화자로 나서질 않아요.
2장이 라 마토사의 마녀 이야기인데요. "그녀는 자기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마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어머니도 마녀인 거예요. 이 문장의 주어인 '그녀'는 1장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사람입니다. 2장의 이야기는 그 마녀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이 되는데, 선대 마녀라고도 할 수 있을 어머니 마녀는 남자를 독살하고 그의 아들들을 저주로 죽인 여자, 혹은 매춘부라는 낙인을 안고 사는 여성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읽기로는 그저 혼자 사는 여성이에요. 마을 사람들은 마녀의 집을 혐오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이 마녀의 집을 꾸준히 드나드는데, 여자들은 주로 마녀의 힘을 빌리려고, 배앓이라든지 두통이라든지 작은 일상의 고통들을 해결하려고, 혹은 인생 한탄을 하러 마녀의 집에 가고, 남자들이 마녀의 집에 가는 목적은 아마도 폭력입니다. 남자들이 그 집에 들어간 뒤에 집안에서 마녀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말하는 부분은 없어요. 없지만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일이 지나서 마녀의 집에 어느 날부터 어린 여자아이가 있게 됩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 어린 아이를 '새끼 마녀'라고 불러요. 그리고 마녀가 죽은 뒤에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서 또 '마녀'로 불립니다.
뒷장부터는 마녀 살해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등장을 하는데, 범인도 있고 공범도 있고 목격자 증인도 있습니다. 사실 이 소설에서 범인이 누구인지가 중요한 건 아니에요. 어떤 특정한 사람만이 범인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요.
이 소설에서 좋았던 점은 나를 휩쓸어 가는 이야기 자체의 매력이 대단했고, 입말들이 상당히 노골적으로 서술이 돼 있지만, 동시에 또 빼어난 문체인 이 소설의 말투가 있거든요. 이게 대단히 매력적입니다. 그리고 용서가 없어요. 마녀의 집에 침입해서 모욕하고 폭력을 저지른 인간들은 이 소설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만의 지옥에 떨어집니다.
그리고 배경에는 언제나 빈곤이 있어요. 페르난다 멜초르는 이들의 이야기를 외설이나 어설픈 도덕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제가 눈이 번쩍 열리는 소설을 읽었고 매우 만족스러워서 같이 읽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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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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