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의 탄생] 주목, 출판사 기획! 요즘 것들의 시리즈
<월간 채널예스> 2023년 2월호
출판사에서 시리즈를 기획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잘나가는 시리즈에는 '요즘 것들'의 취향이 스며 있다. (2023.02.16)
출판사에서 시리즈를 기획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잘나가는 시리즈에는 '요즘 것들'의 취향이 스며 있다. 숨어 있으나 찾아내기만 한다면 지적 동반자가 되어줄 시리즈도 분명 존재한다.
책은 정신세계를 이끄는 일만 하지 않는다. 지금 좋아하진 않아도 언젠가 눈길이 가고 기분에 품을 것 같은 '잠재적 상품'이 되기도 한다. 성공한 시리즈, 잘나가는 시리즈 얘기다. 2017년에 시작해 취향 저격 에세이 시리즈의 대명사가 된 <아무튼> 시리즈는 벌써 55권이 출간되었다. 독자들은 '아무튼'의 문패에서 여름이면 '서핑'을, 겨울이면 '스웨터'나 '뜨개' 앞에서 머뭇거릴지도 모르겠다. 이 '아무튼 좋은 관심거리'에 대해 인스타그램의 어느 독자는 말했다.
"책 표지가 예뻐서 책 싫어하는 친구도 빌리고 싶다고 한 책, 지금 안 빌려도 나중에 꼭 빌려야지 하는 책"이라고.
세미콜론의 <띵> 시리즈는 1인 가구, 먹방 전성시대에 알맞은 기호품을 내놓았다. 2020년 시작한 시리즈가 지금까지 내놓은 먹거리는 21가지. 2022년 여름만 해도 '띵캉스' 특집으로 『아이스크림』, 『치킨』, 『멕시칸 푸드』를 동시에 출간했다. 맛난 것 앞에 두고 '띵'한 군침은 당연한 거고 얽히지 않은 추억도 없을 것이다. 여행을 앞두고 세 권을 모두 산 독자는 썼다.
"맛있게 읽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출항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출간을 앞두고 있는 시리즈는 어떤 마음으로 시작되었을까?
마티의 <온(on)> 시리즈는 이미 정지돈의 『스페이스 (논)픽션』과 도서관 여행자의 『도서관은 살아 있다』 두 권이 독자를 만났다. '시리즈가 먼저 있고 원고를 기획한 순방향'은 아니었다는데 출간 예정이던 에세이들의 주제가 어깨동무하고 있는 지점을 발견, 이를 확장해 시리즈로 기획한 결과다. 시리즈를 기획한 서성진 편집자는 '세 글자를 넘지 않고 기억에 유리한' 이름을 고민하며 그야말로 '광범위한 삽질'을 했단다. 그 결과 '~에 대해'라는 의미의 <온(on)> 시리즈로 결정했는데, 『마이너 필링스』로 시작한 같은 출판사의 기존 시리즈 <앳(at)>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요즘 시리즈의 고민거리답게 판형과 로고를 고심해 디자인을 했지만, 한 손에 쥐기 쉬운 길쭉한 판형, 네모진 마티 로고와 어울리는 시리즈 로고, 시리즈 번호를 알려주는 숫자 디자인만 통일성을 줄 뿐 책마다 다른 디자이너들이 참여해 개성을 부여할 예정이다. 올해는 웹진 <채널예스>에 연재되기도 한 번역가 노시내의 『작가 피정: 경계와 소란 속에 머물다』가 독자를 만나고, 안온의 『일인칭 가난』, 김서울의 『박물관 소풍』, 복태와 한군의 『수선하는 삶』(모두 가제) 등이 출간 목록에 올라가 있다.
글항아리는 올해 <밀도> 시리즈를 출간할 예정이다. 이은혜 편집자가 밝힌 '밀도 있다'의 의미는 능력이 있다는 말과 동의어, 한 사람 몫의 시공간을 촘촘하게 채워 결국 '나'라는 정체성을 완성해 주는, 내 삶의 '능력'을 완성해 주는 이야기다. 매력적인 언어로 이루어진 밀도의 세계를 통해 독자들의 밀도 찾기를 도와주는 시리즈다. 다재다능한 밀도 리스트는 올 상반기 시인 유진목의 『영화의 밀도』를 시작으로 김겨울의 『문장의 밀도』와 배우 김신록의 『연기의 밀도』 등이 채워갈 예정이다. 작은 판형에 길지 않은 원고지만 '심원하고 풍부한' 세계를 담아낼 것이며 독자와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다양한 마케팅을 준비하고 있다고.
편집자의 말대로 "책의 구상은 언제나 작가의 머리와 마음속에서 나오기 때문"에 전적으로 자기 기획을 제안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리즈만큼은 편집자의 제안이 적극적으로 발휘되는 영역"이고, "비록 공동의 생산물은 아니지만 그 안에 담긴 다르지 않은 지향점이 연대 의식을" 풍기며, "양질의 작가를 섭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위즈덤하우스는 지난해 11월 <위클리 픽션> 시리즈를 시작했다. 공식 홈페이지에 매주 1편씩 단편 소설을 공개해 소설로 출간할 예정인데, 1년 동안 총 50편의 이야기가 독자들을 찾아간다. 구병모 작가의 「파쇄」를 시작으로 박소연의 「북적대지만 은밀하게」, 윤자영의 「할매 떡볶이 레시피」, 이희주의 「마유미」 등이 공개를 마쳤고 김동식, 곽재식, 이종산 작가의 소설이 속속 뒤를 잇고 있다. 온라인에서 단편 소설 전문을 미리 공개하는 방식, 소설을 읽을 수 있는 기간이 단 3주라는 제한된 시간, 개성 있는 작가들이 써 내려간 다채로운 소설의 향연이라는 삼박자가 맞아 새로운 단편 소설 읽기의 경험을 선사한다.
포도밭출판사가 시작한 <월딩> 시리즈는 21세기 인류학의 최전선에 있는 저작들을 소개한다. 벌써 『타자들의 생태학』과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이 출간을 마쳤는데, 출판사 특유의 미학적 표지도 표지이지만, 서구와 인간을 중심에 놓은 근대 인류학의 방식이 아니라 서구와 비서구,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허무는 포스트 인문학 사상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융숭한 지적 모험을 보장해 준다.
'요즘 것들'의 방대한 취향은 제한이 없다. 무릇 모든 책이 그렇듯 시리즈 역시 세상을 읽고 드러내는 우아한 방식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시리즈 출간 경향에 대한 마티 편집자의 답변은 기억하고 싶다.
"시리즈 이름을 인지하지 못하는 시리즈가 정말 많습니다. 그저 유명해지지 않아서 묻히고 있는 좋은 시리즈도 너무 많고요. 갈무리에서 '카이로스 총서'를 91권까지 냈지만 '카이로스 총서'를 기억하는 독자가 많을까요? 포노에서는 '음악의 글'을 13권까지 냈고, 철수와영희의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는 42권이 나왔어요. 수류산방중심에서 나오는 '아주까리 수첩 시리즈'는... 아마 아는 이가 적을 거예요. 시리즈의 경향을 말하는 건 조심스럽습니다. 눈에 띄는, 유명해진 시리즈만 놓고 경향을 보게 될 테니까요."
독자들이 기어이 발굴해 낼 시리즈가 벌써 이 문장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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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스 에디터. 결혼과 함께 귀농 했다가 다시 서울로 상경해 빡세게 적응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서른, 우리가 앉았던 의자들>,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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