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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의 어린 개가 왔다] 하물며 알 수 없는 것들
정이현의 어린 개가 왔다 - 4화
몇 시간을 (울타리라는 안전망을 사이에 둔 채) 붙어 앉아 면밀히 관찰한 결과, 바둑이에게는 특기할 만한 점이 셋 있었다. (2023.02.13)
소설가가 얼룩 개를 기른다고요? 정이현 소설가에게 어느 날 찾아온 강아지, 그 작은 돌봄과 애쓰는 마음을 연재합니다.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강아지, 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서로 적응해가는 이야기, <채널예스> 격주 월요일을 기대해주세요. |
강아지를 키운다는 건 어쩌면 결혼식을 치르는 일과 비슷하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결혼하기로 했으면 결정해야 할 것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어디 살 것인가의 문제부터 상견례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의 벽을 넘고 나면, 본격적으로 결혼식장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식장은 어디로 할 것인가, '스드메'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객은 몇 명 초대할 것인가, 식사의 단가는 어떻게 할 것인가, 꽃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 '식'과 관련한 크고 작은 고민들이 산적해 있다. 마침내 디데이가 끝나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된다. 이제 아주 긴 하루하루가, 진짜 생활이, 남아 있구나. 이 사람과 함께 그 기나긴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구나. 그랬구나. 그런데 왜 가장 중요한 그 사실을 깜빡 잊었던 것만 같지?
바둑이가 우리 집에 도착한 것은 일요일 늦은 저녁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12시간 뒤에 E는 출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등교를 해야 했다. 자, 그럼 이 집에 누가 남을까? '4 빼기 3'이 아니었다. '5 빼기 3'이었다. 나는 역시 산수에 약했다. 당장 내일 아침부터 이 집에 남아야 할 둘은 바둑이와 나였다.
물론 나 역시 평소에 집에만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즈음 내가 추구하려고 애쓰던 생활 루틴은 가족을 모두 내보내고 나서 간단한 정리를 마치곤 노트북을 둘러메고 집을 나서는 것이었다. 집에서 1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공유 오피스까지는 걸어서 갔다. 그 '출근길'을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넓고 반듯하고 비교적 쾌적한 길이라 실제로 출근이라는 목적을 위해 오가는 행인이 많았다. 그 길을 걸어 목적지로 가다 보면 나도 무언가 사회생활이라는 걸 하고 있다는 기분,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다는 기분에 젖어 들게 되었다.
이 세상의 수많은 기혼 여성 프리랜서 노동자가 그렇듯 내 출근 루틴은 타의에 의해 아주 쉽게 망가지기 일쑤였다.(구체적인 사례를 열거하고 싶지만, 지면이 모자랄 것 같아 생략한다) 아무리 급한 마감이 있어도 주말엔 당연히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는 처지에 '월요일 아침 나 홀로 출근길'은 정말 소중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입양 첫날부터, 새로 온 강아지를 홀로 남겨둘 수는 없는 노릇. 강아지 입양을 열렬하게 주장한 것은 75퍼센트의 그들이지만, 그들은 직장에 안 갈 수 없고, 학교에 안 갈 수 없다. 물론, 그들은 집에 저 어린 생명체를 두고서 출근도 등교도 하기 싫다고 속상해했지만, 결국 홀로 남아야 하는 사람은 25퍼센트인 나였다. 그런 역할을 할 인간은 이 집에 오로지 나뿐이었다.
그리고 아침 아홉시. 바둑이와 나는 마침내 집에 단둘이 남겨졌다. 바둑이는 울타리 속에, 나는 그 옆의 소파에 있었다. 일단 간밤에 잠을 설친 것은 저쪽이나 나나 마찬가지인 듯했다. 아이는 졸린 건지 혹은 내가 '진짜 주인'이 결코 아니며 '진짜 주인들'은 외출 중이라는 사실을 이미 눈치챘는지 나에게는 별 관심 없는 듯 굴었다. 나로서는 다행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몇 시간을 (울타리라는 안전망을 사이에 둔 채) 붙어 앉아 면밀히 관찰한 결과, 바둑이에게는 특기할 만한 점이 셋 있었다. 하나는 사료를 주는 대로 정말로 한 톨도 남김없이 약 3초 내로 스르릅 먹어 치운다는 점이었다. 혹시 내가 양을 조금 주는 건가 싶어 급히 찾아 보았지만 오히려 정량보다 더 주고 있었다는 것만 알게 되었다. 보호소 자원봉사자님이 "먹는 걸 좋아해서 금방 친해질 것"이라고 했다는 말이 그제야 떠올랐다. 그렇게 먹고 나서도 빈 밥그릇을 하염없이 핥아대는 걸 보니 아직도 배가 덜 찬 건지, 사료가 아니면 간식이라도 줘야 하는 건지, 혹 배고픔 때문이 아니라 마음이 허전해서 저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또 하나는 이 아이가 배변 천재라는 점이었다. 울타리에 내려놓자마자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배변 패드를 찾아가 대소변을 보았다. 패드가 젖자마자 나는 잽싸게 새것으로 교체했다. 한 번 싸면 바로 바꿔주는 게 맞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면 하루에 도대체 몇 개의 패드를 써야 하는 거지? 혹시 자기 대변을 밟거나 먹는(!)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제일 알 수 없는 건, 그럴 위험성에 대비해 내가 언제까지 24시간 감시 카메라가 된 심정으로 곁에 지키고 있어야 하는가, 였다.
세 번째 특기할 만한 점은 바둑이가 켄넬에 제 발로 잘 들어가 있는 강아지라는 것이었다. 켄넬을 구매한 애견용품점 사장님은 처음부터 켄넬 교육이 가장 중요하고 그만큼 어렵다고 충고했다. 그렇다면 이게 웬 행운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행운이라는 게 그렇게 쉽고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올 리 없지 않은가. 혹시 바둑이가 켄넬에 들어가 있는 이유가 이 집과 울타리와 나의 시선이 너무나 불안해서는 아닐까. 저 웅크린 자세는, 이 넓은 공간에서 안정감을 느낄 곳이 컴컴한 켄넬 속밖에 없다는 뜻이 아닐까. 두고 온 진짜 엄마가 그리워서일까. 알 수 없었다.
소파에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수십 번 반복하다가 나는 반려견을 키우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보기로 했다. 대부분 첫마디에 소리를 질렀다.
"아앗 정말이야?", "아아앗 너무 잘 했어!"
아무도 "그런데 너는 좀 어떠니?"라고 묻지는 않았다. 나는 일단 몇 시간에 걸쳐 관찰한 특기할 만한 점과 그로부터 파생된 (내가) 알 수 없어 괴로운 문제들을 빠르게 열거했다.
친구 1이 말했다.
"너무 과몰입하는 것 같은데."
친구 2는 말했다.
"일단 걔를 그냥 좀 놔둬 봐."
친구 3은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하나도 모르고 데려왔어?"
비난의 어조가 전혀 아니었음에도 갑자기 눈물이 났다. 친구의 말이 맞았다. 어떤 일을 이렇게 모르고 하면 안 되었다. 하물며 생명의 일이었다. 책임의 일이었다. 나는 겨우 대답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사려 깊은 친구가 다독여주었다.
"괜찮아. 이제부터 배우면 되지."
그렇다. 모르면 배우면 된다. 나는 눈물을 닦았다. 모든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준다는 어플에 접속했다. '반려견 교육'을 입력했다. 교육? 교육이 아니라 훈련이 더 적확하지 않을까? 그 또한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전문가들의 사진과 프로필이 쭉 떴다.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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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서울 출생으로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오늘의 거짓말』『풍선』『작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