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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원의 혼자서 추는 춤] 폭풍의 언덕 후폭풍
<월간 채널예스> 2023년 2월호
'폭풍의 언덕 후폭풍'을 겪는 데는 과거의 추억도 한몫하고 있는 듯하다. (2023.02.07)
시인이자 번역가인 황유원 작가에게 번역은 곧 '혼자서 추는 춤'입니다. 번역을 통해, 세계 곳곳을 누비고 먼바다를 항해합니다. 번역가의 충실한 가이드를 따라 다채로운 세계 문학 이야기에 빠져 보세요. |
내가 번역한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번역서가 출간된 지 두 달이 조금 넘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애써서 번역한 책이라도 보통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머릿속에서 희미한 그림자로 퇴색되어 있기 마련인데... 이번은 경우가 좀 다르다. '폭풍의 언덕 후폭풍'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어떤 상태에 사로잡힌 듯한 기분이랄까.
이 소설을 유난히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몇 년 전에 앤 카슨의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을 번역하면서 『폭풍의 언덕』을 다시 쓴 듯한 작품인 「유리 에세이」를 읽고 그 잠재성을 재고해 볼 기회를 얻긴 했지만, 그래도 『폭풍의 언덕』은 어디까지나 '세상 물정 모르는 시골 소녀'가 쓴 작품인 게 사실이니까.(내 말이 아니라 『폭풍의 언덕』 1850년판을 편집하고 서문을 쓴 언니 샬럿 브론테의 말이다)
그럼에도 『폭풍의 언덕』은 분명 매력적인 작품이다. 지금껏 영화로 수십 편이나 만들어졌고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질 소설이 『폭풍의 언덕』 말고 또 있을까? 둘이 하나가 되려는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형이상학적 집착에 가까운 사랑 이야기는 그 성숙함이나 온당함을 따지기 이전에 너무나도 강렬하다. 강렬하다기보다는 차라리 시끄럽다고 해야 할까. 번역하는 내내 귀가 따가웠고, 번역하고 나서도 한동안 귓가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떠나지 않던 소설은 『폭풍의 언덕』이 처음이었다. 혹시나 해서 계산해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폭풍의 언덕』에는 '말했다'로 옮길 수 있는 'said'가 375번, '외쳤다'로 옮길 수 있는 'cried'와 'exclaimed'가 각각 114번, 75번 사용되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작품 속 인물들이 두 번 말하고 나면 한 번은 꼭 외쳤다는 뜻이다!(느낌표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사용된 느낌표는 무려 1415개다)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대화는 아니라고 할 수밖에.
'폭풍의 언덕 후폭풍'을 겪는 데는 과거의 추억도 한몫하고 있는 듯하다. 책을 좀 읽고 자란 한국인이라면, '학급 문고' 근처에서 자주 얼쩡거리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폭풍의 언덕』과 관련된 추억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을 텐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중 가장 선명한 기억을 되새겨본다.
때는 그 명칭이 '초등학교'로 바뀌기 일이 년 전인 무려 '국민학교' 시절. 여느 때처럼 흠집투성이 나무 책상에 앉아 『폭풍의 언덕』 축약본을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별로 친하지도 않던 한 여자아이가 나를 째려보며 씩씩거리더니, "니만 그거 읽을 줄 아나? 우리 집에도 그 책 있다!"하고 소리치는 게 아닌가! 그 아이로 말할 것 같으면, 집도 부자인 데다가 얼굴도 뽀얗고, 공부도 잘하고, 옷도 딱 봐도 비싸 보이는 핑크색 원피스 같은 걸 입고 다니던 아이였다. 당연히 나 같은 꼴찌한테 말을 걸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딱 한 번, 히스클리프까지는 아니지만 거의 그만큼 꼬질꼬질하던 내게 말을 걸었(다기보다는 캐서린처럼 소리를 쳤)던 것이다! 나처럼 꼬질꼬질한 게 『폭풍의 언덕』을 읽는다는 사실 자체를 도무지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내가 그 책을 손에 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신에 대한 모욕이자 도전으로 여겨지기라도 한다는 듯! 거의 시뻘게진 얼굴로 말이다. 오죽하면 그때 그 순간이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 생생히 각인되어 있을까.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그때 나는 전혀 모욕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꼴찌로서는 거의 처음 느껴본, 뜻하지 않은 우월감 비슷한 무엇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런 식으로 누군가를 자극하고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니, 책이 정신적 무기가 될 수 있었다니. 사람들 손에 종이책이 들려 있는 일이 거의 없는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꽤나 놀라운 일이다.
아영아, 너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니? 나 『폭풍의 언덕』 번역했다. 어디 사는지 알면 한 권 보내주고 싶지만(그런다고 화내진 않겠지?) 우리는 이제 너무 멀어져버렸구나. 하지만 나는 아직도 너의 어렸을 적 모습, 고작 책 한 권 때문에 몹시 화를 내던 너의 귀여운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 기억은, 아마 네가 이미 잊었다면,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의 것이겠지. 누군가의 삼십 년 전 모습을 혼자서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꽤나 멋진 일이라는 생각도 드는구나.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늘 건강하고, 또 행복하렴. 캐서린처럼 버럭 화를 내던 너의 생기 넘치는 모습은 내가 늘 기억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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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번역가.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초자연적 3D 프린팅』, 『세상의 모든 최대화』, 옮긴 책으로 『모비 딕』, 『바닷가에서』, 『폭풍의 언덕』, 『밤의 해변에서 혼자』, 『짧은 이야기들』,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 『시인 X』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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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카슨> 저/<황유원> 역11,200원(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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