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왜 배우에게 '연기'를 묻지 않죠? (G. 김신록 배우)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26회) 『배우와 배우가』
"연기가 항상 재미있고, 동시에 항상 어렵다"고 말하는, 배우 인터뷰집 『배우와 배우가』를 출간하신 김신록 배우님 나오셨습니다. (2023.02.02)
'현존'은 배우들의 오랜 숙제이자 숙원입니다. '지금, 현재'라는 시점을 품고 있는 이 단어를 곱씹어 볼 때, 무대 위에서 '지금'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고민해봅니다. 사실 저는 요새 극장에 있는 모두를 한 점으로 모으는 '지금'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배우에게도 모든 인식이 통합된 '지금' 같은 것은 없다고, 혹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식은 선명할수록, 더 많은 것이 연결될수록, 극장의 시공간은 더 윤곽이 모호한 구름과 같아진다고 할까요? 하하하. 이 책이 출판될 때 즈음에는 이 생각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으니까 너무 자세히는 묻지 마세요. 저도 잘 모릅니다. 그냥 겨우겨우 더듬어보는 거예요.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김신록 배우님의 배우 인터뷰집 『배우와 배우가』에서 한 대목을 읽었습니다. 김신록 배우님은 "연기를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에게 연기에 대한 더 다양한 시도와 시각이 열리기를, 잘했다 못했다를 넘어선 더 풍부한 언어와 감상이 가능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배우들을 인터뷰합니다. 그리고 탐구하죠. '배우란 무엇인가'.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무대와 화면을 활발히 넘나들며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연기를 보여주고 계신 김신록 배우님을 모셔서 '배우가 직접 말하는 연기'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오은 : 배우님을 작가님으로 만나게 되니까 더 설레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 영향을 받아서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신 인터뷰를 봤어요. 아버지께서 "연극이 아니라 인생을 배우라는 거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하는데요. 활자로만 읽어도 굉장히 울림이 컸어요.
김신록 : 아버지께서 원래 명언 하는 걸 즐겨하셨어요.(웃음)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방학에 집에 가면 "산책 좀 하자"하셨거든요. 함께 길을 걸으면서 "최고의 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같은 철학적인 질문을 하시곤 했죠. 대답에 관심이 있으셨는지는 모르겠어요.(웃음) 연극은 중학교 2학년 때인가 그랬던 것 같은데요. 아버지가 지역에 있는 극단에 저를 데려가서 아는 분이 극단 대표로 있으니까 여기 와서 좀 놀고, 연극도 좀 배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근데 연극이 아니라 인생을 좀 배웠으면 좋겠다"라고 하신 거예요.
그때 되게 조그마한 소극장에서 <태백산맥>이 공연 중이었는데요. 그러니까 그렇게 큰 작품이 이렇게 조그마한 소극장 위에 올라 가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그 후로 은밀하게 배우가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대외적으로는 변호사가 되겠다, 외교관이 되겠다(웃음) 했지만요.
오은 : 김신록 배우님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배우. 연기를 통해 삶을, 삶을 통해 연기를 생각한다. <비평가>, <마우스피스>,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등의 연극과 <괴물>, <지옥>, <재벌집 막내아들> 등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동시대인의 움직임과 사고의 메커니즘을 배우의 몸으로 탐구하는 사람이다." 마지막 문장이 좀 어려워요.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신록 : 연기를 심리적인 것으로 이해하던 때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의 마음이 뭘까, 어떤 감정일까를 더 집중해서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고, 지금도 그 부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언제부턴가 사람들 몸이 궁금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저 할아버지는 왜 손잡이를 저렇게 높게 잡고 계실까, 생각해보는 거죠. 팔이 아플 텐데 말이에요. 저건 어떤 심리나 논리나 개연, 이런 걸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몸들이잖아요. 그렇게 어떤 이상적인 개연이 아니라 감각적인 개연,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몸 같은 것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과거의 사람들의 몸과 지금 시대의 몸은 너무 다르잖아요. 핸드폰도 있고요. 팬데믹 이후의 몸들은 또 달라졌죠. 이렇듯 시대에 따라서 사람의 몸이 달라지고 또 생각하는 방식도 달라지는데 그게 어떤 과정을 통해서 몸에 작동하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생각이 흘러가는지, 어쩌면 그 과정을 짚어보고 그 과정이 드러나게 하면 지금 시대의 사람들을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오은 : 얼마 전에 종영한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에서 '진화영'역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배우로서 이 작품을 하면서 달라진 것도, 확실해진 것도 있었을 것 같아요. 어땠나요?
김신록 : 일단 예능 섭외가 많이 들어와서(웃음) '저'라는 배우를 친근하게 바라보실 수 있게 됐구나, 느껴요. 이것이 저는 무척 고무적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고, 그것이 달라진 점이에요. 확실해진 점은요, 흔히 관용구처럼 '배우의 변신' 같은 문구를 많이 쓰잖아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그렇지, 배우라는 일이 이렇게 계속 새로운 모습으로 변이하는, 변신하는 직업이지'라는 생각을 확실하게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오은 : 작가님께서 직접 『배우와 배우가』가 어떤 책인지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책이죠?
김신록 : 제가 인터뷰어로서, 2019년부터 2021년 사이에 25명의 배우들을 인터뷰하면서 오직 연기에 대한 이야기만 나눴었거든요. 그 뒤 2022년에 다시 이 25명의 배우들을 만났어요. 3년 만에 만난 사람도 있고, 1년 만에 만난 사람도 있었는데요. 그렇게 다시 만나서 그동안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요즘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소박하게 들었어요. 그리고 이 두 번의 만남을 각각 하나의 글로 정리해서 한 배우 당 두 개의 인터뷰 글을 책에 실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보시면 제 목소리나 저의 이야기, 저의 관점도 볼 수 있고요. 다른 25명의 배우의 목소리와 연기, 삶에 대한 관점 등을 들어보실 수 있을 거예요.
오은 : 배우님은 대개는 인터뷰어로서보다는 인터뷰이로서 계실 때가 많았을 것 같은데요. 역할이 바뀌니까 적응이 잘 안 되진 않았나요?
김신록 : 인터뷰어로 이야기 나눌 기회보다는 인터뷰이가 되는 기회가 많았죠. 그런데 이 시절, 그러니까 2019년에서 2021년 사이에는 특히 저에게 그런 갈증이 있었어요. 왜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배우에게 묻지 않고 연출들에게만 물을까, 배우들에게는 왜 학창 시절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만 물을까, 직업인에게 전문적인 직업 이야기를 물었으면 좋겠다, 하고요. 결국 그 갈증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던 것 같아요.
오은 : 책의 마지막 인터뷰 이들은 어린이 연기자 분들이에요. 깜짝 놀랐어요. 계속해서 이름을 들으면 알 것 같은 배우들, 연극을 보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배우들의 이름만 나오다가 마지막에 어린이 연기자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데요. 이분들이 또 명언 제조기시더라고요.
김신록 : 말씀하신 것처럼 답변에 꾸밈이 없어요. 그리고 대답들도 담백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말들이었죠. 마치 무술 고수가 아주 쉬운 답변을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런 거죠. "공연이 뭐예요?"라고 물으니까 "내가 뭐를 하는데 남이 나를 보는 거요"라고 답을 하더라고요. 피터 브룩이라는 연극의 대가가 『빈 공간』이라는 책에서 "빈 공간이 있고 누가 거길 걸어가고 누군가 그걸 지켜보고 있다면 그것이 연극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너무나 몸통 그 자체, 코어 그 자체를 내 귀로 들으니까 너무 시원하고 신선했어요.
오은 : 이 책의 에필로그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어제 우연히 윤계상 배우를 만나 작품 이야기, 연기 이야기를 하다가 무대가 아닌 카메라 앞에서 더 많은 시간을 연기해온 배우들을 만나 연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습니다. 그 대화들이 어딘가 또 글로 남고, 언젠가 또 책으로 엮여 여러분 앞에 놓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후속작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김신록 : 제가 되게 충동적인 사람인데(웃음) 에필로그를 거의 책이 인쇄소에 넘어가기 직전에 썼어요. 그날 정말 우연히 윤계상 배우님을 만나서 작품 이야기를 잠깐 하고, 배우로서 갖고 있는 연기 고민을 나눴거든요. 그러면서 카메라 앞에서 오랜 시간 연기해 온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나한테도 너무 도움이 되겠다, 이 이야기를 또 들어볼까, 여기까지 생각이 든 거예요. 그걸 에필로그에 바로 넣었습니다.(웃음)
오은 : 이제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책읽아웃> 청취자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해 주세요.
김신록 : 오은 작가님이 <책읽아웃>에 왔다고 책을 한 권 선물로 주셨어요. 『마음과 엄마는 초록이었다』라는 제목의 책인데요. 이것이 연극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이런 현장성.(웃음) 이 책을 오은 작가님께서 엮으셨어요. 엮으신 분께 직접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오은 : 2022년에 제1회 경기 시 축제의 예술 감독을 했어요. 축제만 1박 2일로 하는 것보다 축제의 결과물을 하나의 책으로 만들면 좋겠다, 생각해서 기획을 했던 책이고요. 또, 경기 축제이기 때문에 경기도에 사는 시인들에게 시를 받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엄마를 주제로 한 40편의 시와 40편의 산문이 들어가게 되었어요. 제목은 한 시인의 시구에서 나온 제목입니다.
*김신록 배우. 연기를 통해 삶을, 삶을 통해 연기를 생각한다. <비평가>, <마우스피스>,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등의 연극과 <괴물>, <지옥>, <재벌집 막내아들> 등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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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편/<권민경> 등저9,800원(0% + 5%)
엄마는 내가 아는 가장 순한 모국어마흔 명의 시인이 부르는 우리들의 ‘엄마’난다에서 『마음과 엄마는 초록이었다』라는 ‘엄마’에 관한 특별한 시집 한 권을 펴냅니다. 22년 10월 7~8일 열리는 제1회 경기 시 축제 〈시경(詩京): 시가 있는 경기〉의 일환으로 펴내는 이 시집은 축제 예술감독을 맡은 시인 오은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