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된 도시 한가운데서 이동의 위기를 탐구하다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전현우 저자 인터뷰
자동차에 지배되고 있는, 납치된 도시에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기후위기 시대의 도시에서 길을 찾아보려는 탐구다. (2023.02.01)
기후변화 시대, 우리의 이동이 위기에 처했다. 온실가스 감축의 필요성을 인류가 조금씩 자각하기 시작한 최근 15년 동안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한 세계 각국의 노력이 이어졌지만 교통만은 감축에 실패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이동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인 열망이 있다. 전현우 작가의 신작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는 "뭐 타고 갈까?"라는 일상 속 질문으로 이러한 기후위기를 직면한다. 첫 책 『거대도시 서울 철도』로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한 화제의 저자 전현우는 철학과 도시 계획, 한국 현대사와 진화론을 넘나드는 성찰 속에서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는 해결법을 제시한다. 자동차에 지배되고 있는, 납치된 도시에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기후위기 시대의 도시에서 길을 찾아보려는 탐구다.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가 출간된 지 한 달이 넘었어요. 처음 책을 내고 난 후에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는 제가 두 번째로 혼자 쓴 책입니다. 첫 번째 책인 『거대도시 서울 철도』, 과 대조될 수밖에 없었는데요. 저번 책은 글 분량과 도판의 물량이 너무 많아 읽기 힘들었다는 반응을 들었다면,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는 "가볍고 깜찍한 책"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농담도 좀 더 살아 있다고 하고요. 그동안 과학 철학에 중점을 두고 있는 연구자, 또는 철도 덕후인 줄만 알았는데 사람들의 마음과 같은 넓은 지평에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반응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탐구 시리즈는 손에 들어가는 사이즈의 빨간색 표지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데요. 책 표지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탐구 시리즈는 가볍고 깜찍한 판형이 정체성인데요. 167mm인 책 가로 길이보다 제 손이 길더군요. 출간을 앞두고 신새벽 편집자에게 처음 시안을 받았을 때가 떠오릅니다. 표지 스티커는 마치 신호등이나 비상구 표지의 사람 표지처럼 생겼지요. 저는 조금 단순하다고 생각했는데, 몇 가지 시안 가운데 하나를 고른 거였어요. 시리즈 디자인을 맡은 유진아 디자이너가 탐구 시리즈는 면적이 작기 때문에 최대한 상징적이고 효과적인 이미지를 찾는다고 해서, 단순함의 매력에 손을 들었습니다.
뒤표지의 점을 배열한 모양도 또한 좋은데, 화살표 모양입니다. 가을과 겨울 하늘을 수놓는 기러기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잘 아시다시피 기러기들은 세모 모양의 대형을 이뤄서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대장정을 떠납니다. 보이지 않는 먼 길을 찾아 나서는 기러기들처럼, 기후위기 시대의 도시에서 길을 찾아보려는 사람들의 앞에 이 책이 위치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의 도시에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카피 문구가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기후변화 앞에서 어떤 실천 방법을 택할 것이냐 하는 비유 같기도 하고, 실제로 어느 길로 걸어야 할까 하는 뜻 같기도 하거든요. 걷기는 왜 중요한가요?
핵심은 도시 속의 걷기입니다. 개인의 층위에서는 '우리가 왜 걷는가'의 문제라면, 사회의 층위에서는 '걷기가 왜 기후위기 속 도시의 미래인가'의 문제인데요. 걸을 때는 기후변화의 주범인 탄소가 나오지 않으니까요. 도시 계획 분야의 고전인 제인 제이콥스의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의 제안이 출발점이었습니다. 결국 걷기 편하고, 걷기 재미있고, 걸을 때 안전한 도로가 수많은 도시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제안이었죠. 다만, 걸어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규모의 '15분 도시'는 대도시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다양성, 분업화, 기능 고도화를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확장된 걷기 공간'이라는 개념을 대안으로 내놓았습니다. 박소현·최이명·서한림의 『동네 걷기 동네 계획』의 논의가 큰 디딤돌이었는데요. 좋아하는 코스는 걷고, 짐이 있거나 경사 때문에 걷기 힘든 구간에서는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식의 동네 이동 패턴을 풍부하게 분석한 이 책에서 걷기와 동력 수단의 관계에 대한 통찰을 빌렸습니다.
원고를 집필하실 때는 이 책을 통해 '이동하는 모든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출간 된 뒤로 실제로 어떤 독자들과 만나셨어요?
가끔 책 제목으로 소셜 미디어에서 검색을 해 봅니다. 기후 문제에 관심은 있었으나 교통과 도시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명확히 짚어 주는 책이 없었는데, 마침 흥미롭게 읽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유튜브에서는 저번 책에 기가 질렸던 분들이 이 책을 먼저 살펴보려 했다는 소식도 들었고요. 책을 좀 더 경쾌하게 만들어 다가가려 했던 분들이 알아봐 준다는 이야기이니 보람이 큽니다. 늘 막히는 길, 보행자를 몰아내고 자동차가 점령한 이면 도로에서 문제를 느끼는 사람들과 더 많이 만나고 싶네요.
'탐구'는 학계의 논의와 현장을 연결한다는 콘셉트의 총서인데요. 실제로 다른 저자들과 어떻게 교류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탐구 시리즈 가운데 『철학책 독서 모임』과는 '만남 구역'이라는 개념을 통해 직접 환승할 수 있었습니다. 철학책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는 일종의 만남 구역이라는 것인데요. 오늘의 철학에 요구되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자와 독자 또한 서로 다른 사람들이니, 학계에서 쓰이는 언어를 사람들이 계속해서 곱씹을 수 있는 문제로 전달하는 것이 이번 책의 목표였는데요. 기후위기 시대의 이동 문제를 왜 곱씹어야 하는지 설득하기 위해, 저 자신이 문제를 발견하게 된 개인적인 상황을 이야기로 만들어 보았고요.
실제로 『철학책 독서 모임』의 박동수 작가는 마지막 장을 집필할 때 격려를 보내와 큰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를 바꾸는 우리』는 사회가 맺은 약속이라는 주제를 통해, 그리고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은 과학 기술의 발견이 사회에 수용되는 과정이라는 주제를 통해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지금 한창 집필 중인 박진영 연구자는 '재난 대응 탐구'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다루고 계신데요. 몇년 전 저는 이 사건을 실제로 사람들이 인지할 수 있게 만든 과학인 역학에 대한 책인 『역학의 철학』을 번역했습니다. 어떻게든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번역과 저술 양면에서 계속 새로운 연구 과제들을 마주하고 계실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신가요?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와 거의 동시에 집필한 책인 『오송역』의 편집이 진행 중입니다. 호남 고속 철도 분기역 결정을 설명하기 위한 세밀한 역사적 추적 작업인데요. 지질학부터 사료로 남은 분기역 의사 결정 과정은 물론 노선망 대안까지, 충청 지역의 철도, 정치, 도시가 얽힌 이야기입니다.
또한, 『거대도시 서울 철도』,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에서 이어지는 3부작 기획을 완성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앞의 책들은 철도 없이는 돌아가지 않을 수밖에 없는 밀도와 규모를 자랑하는 거대도시에서 철도의 가능성을 만개시킬 방법에 대해, 그리고 이 철도를 이용하러 오는 행위자인 인간의 몸과 마음에 주목한 책이라면, 이번에는 거대도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여전히 철도가 필요한 도시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책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남부 지역을 배경 삼아 '도시 속의 철도'라는 가제로 준비 중이에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수많은 문제 중에서도 이동과 교통이 왜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요?
기후 문제가 이제 우리의 턱밑에 도달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행복을, 삶을 포기할 수 없지요. 그리고 그 삶의 배경이 되는 도시의 삶을 포기할 수도 없고요. 그 가운데 이동은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도시의 모습과 이를 둘러싼 녹지 구조를 결정합니다. 더불어 각각의 개인이 그저 무력하지만은 않은 영역입니다.
대도시라면, 최대한의 통행을 대중교통으로 수행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이용객들이 시민으로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서울급의 거대도시라면 승용차가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다수를 위한 정책이, 정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물론, 중소 도시나 군에 계신 분이라면 꼭 차량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시는 경우가 많을 텐데요. 그때는 에너지 효율에, 그리고 방문객의 교통 수단에 신경을 써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승용차가 제공하는 이동력은 아주 귀중한 자원이니까요.
꼭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좀 더 세심한 토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마다 공공 교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민 단체가 이루어지고, 이들의 네트워크가 구성되어 공공 교통의 운영과 투자에 대해 영향력 있는 대안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겠네요.
*전현우 서강대학교에서 분석철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자연종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교통, 철학 연구자. 과학 철학을 연구하던 와중, 대규모의 자원과 에너지를 소모하면서도 사람들을 매일같이 끌어들이는 교통 시스템의 마력 덕에 본격적으로 교통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자연과학연구소에서 교통에 대한 관심을 더 발전시키면서, 앞선 저술에서 누락되거나 충분히 해명하지 못한 쟁점을 검토하는 새 책을 몇 권 준비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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