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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의 어린 개가 왔다] 글로 배운 모든 것
정이현의 어린 개가 왔다 - 3화
큰 강아지가 아니었다. 바둑이는 '작은 개'였다. (2023.01.30)
소설가가 얼룩 개를 기른다고요? 정이현 소설가에게 어느 날 찾아온 강아지, 그 작은 돌봄과 애쓰는 마음을 연재합니다.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강아지, 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서로 적응해가는 이야기, <채널예스> 격주 월요일을 기대해주세요. |
바둑이의 고향은 우리 집에서 30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이다. 일요일 대낮에 출발한 이동 봉사자는 저녁 일곱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그날 서울로 입양되어 가는 아이가 바둑이만이 아니어서 차 안에는 다른 개들이 같이 있었다. 바둑이는 종이 상자에 실려 왔다. 배변과 구토의 흔적과 함께였다. E가 종이 상자에서 꺼내려고 강아지를 위로 들어 올렸다.
"아, 너무 조그맣잖아!"
아이들이 탄성을 질렀다. 잠깐만. 나는 눈을 비벼야 했다. 조그맣다고? 크고 작다의 기준이 사람마다 제각각임을, 어떤 기준도 그런 것임을 나는 새삼 깨달았다.
바둑이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고(도무지 무엇을 상상했던 거야?) 음... 또 뭐라고 하면 좋을까, 그래, 탄탄하고 묵직해 보였다. 큰 강아지였다. 그리고 꿈틀, 움직였다. 어리벙벙하게 눈을 껌뻑이면서. 자다 일어난 걸까. 그렇다면 꿈이 아닌 꿈에서 깬 게 분명했다. 그 꿈과 꿈 아닌 세계의 경계가 흐트러진, 옅고 뿌연 느낌을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다 돌연히 맞닥뜨린 현실이 더 당혹스럽다는 것도 말이다.
더러워진 상자 안에 바둑이를 도로 집어넣을 수는 없었다. E는 두 팔에 바둑이를 안고서, 나는 빈 상자를 들고서 집으로 들어왔다. 낯선 품에 안긴 바둑이는 깨갱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지금껏 본가를 거쳐 간 개들을 다 자기가 키웠다고 큰소리치던 E가 어쩐지 쩔쩔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 건 기분 탓일까.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을 글로 배운 내가 '강아지 입양 첫날' 같은 키워드를 폭풍 검색하지 않았을 리 없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배우는 게 나쁜 거지. 그러니까 내가 가장 안 좋아하는 종류의 말은 이런 것이다.
"고생하다 보면 저절로 알게 돼."
그 저절로 알게 되기까지의 시행착오와 고난과 역경은 어쩌고요.
검색 결과에 따르면 입양 첫날 강아지에게 해주어야 할 일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 것 같았다.
(1) 잠자리 교육
(2) 식사 교육
(3) 배변 교육
전생의 기억인 듯 무언가가 어슴푸레 떠올랐다. 이건 흡사 육아서의 목차가 아닌가. 설마 지금 내 앞에 닥친 것이 그 ×××하고 ○○○했던 신생아 육아와 비슷한 일이란 말인가. 전혀 모르는 대상에 대한 공포심보다 익히 알고 있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더 무서운 법이다. 육아가 어떤 것인지, 아니 육아하는 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 나는 잘 알았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첫아이 출산 무렵, 나보다 2년 먼저 아기를 낳은 친구에게 물려받았던 책이 『베이비 위스퍼』였다. 친구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페이지 곳곳이 알록달록한 형광펜으로 강조되어 있었다. 한때 우리는 정말로 즐겁고 자유롭게 이 세상 곳곳을 함께 놀러 다니던 사이였더랬다. 친구의 그 손때 묻은 책을 받아들고 보니 감회가 밀려왔다. 어떤 책은 책이 아니라 마음이다. 그 책을 무슨 비법서를 받아들듯 고이 모셔 와 정독하던 밤이 있었다. 지금도 떠오르는 E.A.S.Y와 S.L.O.W의 법칙. 아기가 울면, 일단 멈추고 듣고 살피고 또 어떻게 하라고 했는데. 멈춰서 듣고 살펴도 아기가 왜 우는지 울음을 멈추지 않는지 몰라 나도 따라 울어버리던 밤들을 다 잊고 있었다. 내 인생에서 다 지나간 줄로만 알았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결국 나겠지, 내 잘못이겠지, 흐느끼던 긴 밤들을... 그런데 내가 지금 시작하려는 것이, 뭐라고?
(1) 잠자리 교육
인간 육아계 잠자리 파트에 분리 수면 논쟁이 있다면, 개 육아계에는 첨예한 울타리 교육 논쟁이 있었다. 반려동물에 관한 용어 중에 생소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일단 '울타리'가 그랬다. 아, 물론 울타리라는 단어의 뜻이야 잘 알았다. 그러나 내게 그 단어의 쓰임새란 '한 울타리' 같은 것뿐이었다. 이를테면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에 나갔다' 말고는 평생 별로 사용할 일이 없었다. 즉, 구체적인 사물로서의 울타리란 어떤 모습인지, 어떤 크기와 어떤 형태와 어떤 면적을 가지고 있는 것까지를 울타리라고 칭하는지 구체적인 형상이 그려지지 않았다.
"울타리가 뭐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데 큰애인지 작은애인지가 툭 대답했다.
"펜스잖아."
아아, 그렇구나, 펜스! 줄기차게 영어 학원을 보내온 보람이 있었다고 기뻐하기 전에 가슴이 콱 막혀왔다. 얘를 여기까지 키우기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래도 인간은 이만큼의 세월을 키우면 이 정도는 되는데...
울타리를 권하는 전문가들은 막 새로운 집에 온 강아지가 혼란스러울 수 있으니 일정 기간 그 안에서 생활하게 하는 것이 안정에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좁은 공간에서 배변 교육을 하면 더 쉽게 익힐 수 있고, 추후 분리 불안 증상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도 했다.(분리 불안이라니. 이것도 아는 건데. 눈앞이 또 한 번, 아까보다 더 깜깜해졌다)
그에 맞서는 울타리 반대론자들도 많았다. 그들은 강아지에게 울타리 생활은 단점이 더 많다고 말한다. 식구들과 처음부터 접촉하며 생활하는 편이 유대감 형성에 좋고, 울타리 안에서 배변 교육이 성공한 듯 보여도 밖에 나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며, 울타리가 오히려 분리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는 논리였다. 옹호론자가 말하는 장점을 뒤집으면 단점이 되는 셈이다.
결정은 언제나 그렇듯 개인의 몫이었다. 지금껏 이 글을 읽어온 독자라면 쉽게 예상하겠지만 우리 가족의 의견도 둘로 갈렸다. 75퍼센트 VS 25퍼센트.
결과는... 25퍼센트의 승리였다. 이미 대세인 자가 한 수 접어준 덕분이었다. '분리 불안'이라는 말을 접하자마자 유의미한 불안 전조 증상을 보이는 내 모습이 심상찮아, 일단 쟤를 진정시키고 보자는 차원에서 양보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급조한 울타리가 거실에서 바둑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오후, 바둑이가 고속 도로에서 흔들리고 있는 사이 온 동네 애견용품점을 다 뒤져서 조립해 둔 것이다. 울타리는 울타리인데 꽤 널찍한 면적의 울타리였다. 좁으면 답답할 테고, 걔가 답답해하면 내가 죄책감을 느낄 테니, 결국 내가 나를 위해 초대형 울타리여야 한다고 우겼다. 어른 몇 명도 거뜬히 누울 수 있는 그 안에 미끄럼방지 패드를 깔았다. 켄넬을 넣고, 극세사 소파쿠션도 넣고, 식기도 넣고, 배변 패드도 놓았다.
그런데, 드디어 현관문을 통과해 집 안에 발을 디딘 E가 바둑이를 그냥 마룻바닥에 내려놓으려고 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나는 매우 황급하게 울타리를 가리켰다.
여기, 여기, 여기.
바둑이가 울타리 안에 놓였다.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바둑이는 몸을 둥글게 말았다. 가장 작아 보이도록. 둥글게 말면 제 몸이 사라져 버리기라도 하는 듯이. 나는 그의 첫인상에 관한, 조금 전의 견해를 빠르게 수정했다. 큰 강아지가 아니었다. 바둑이는 '작은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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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서울 출생으로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오늘의 거짓말』『풍선』『작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