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혁명가, 예술가, 선구자, 개혁가였던 백신애 작가"
<소설, 잇다> 시리즈 첫 번째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그래, 백 년의 시간도 이렇게 왔는데, 우리는 더 천천히 오래오래 끝까지 갈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는 달라질 것이다'라는 긍정의 에너지가 필요했어요. (2023.01.26)
신춘문예로 등단한 첫 여성 작가 백신애. 항일 여성 운동가이자 방랑가이자 배우이며 소설가였던 그는 1939년, 서른한 살의 나이에 췌장암 판정을 받은 후에도 계속 썼다. "내 마음은 항상 문학에 가 있었다"고 말하던 그다. 백신애 작가는 작품 활동을 한 5년여 동안 소설 20여편, 수필 및 기행문 30여편을 남겼다.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백신애 작가를 몰랐던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는 알찬 선물 상자일 것이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는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만남을 통해 한국 문학의 근원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다시, 또 함께'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소설, 잇다>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백신애 작가의 소설 3편과 최진영 작가의 소설과 에세이를 담았다. 백신애 작가의 「아름다운 노을」의 두 주인공 '순희'와 '정규'를 현대로 데려와 이들만의 사랑 이야기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로 재탄생시킨 최진영 작가는 "백신애 선생님 문장에 힘이 있잖아요. 그게 저를 막 떠밀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계속 뭔가가 끓어오르는 느낌인데, 그게 분노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랑 때문일 수도 있거든요. 그 둘이 공존하고 있는 소설이어서 배운 바가 정말 많았죠. 마치 희망과 절망을 반반 이렇게 같이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라고 말하며 백신애 작가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밝혔다.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작품을 한 권의 책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획이라니, 엄청나게 멋집니다.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는 걸 알게 하는 기획이기도 하고요. 작가님은 백신애 작가님과 연결이 되었는데요. 백신애 작가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책에 수록된 선생님 소개를 보면 한 편의 영화 같아요. 영화로 만들어도 너무 멋있는 작품이 될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로 이력이 풍부하시고요. 당시를 생각하면 이 정도의 기개와 용기, 배포가 없었다면 글을 쓸 수 없었겠다 싶기도 하죠. 그래서 비단 '작가'라는 이름만이 아니고 혁명가, 예술가, 선구자, 개혁가와 같이 다양한 이름을 백신애 선생님께 붙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현대에서, 글만 쓰는 작가로 살 수 있지만 1930년대에는 훨씬 더 많은 역할과 능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요. 그 시대의 여성 작가는 그냥 글 쓰는 사람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독립운동가이기도 하고, 그야말로 선구자인 거죠. 너무나 멋있었어요.
백신애 작가님뿐 아니라 이 시리즈를 통해 다른 근대 여성 작가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자긍심과 동기 부여, 그리고 공부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어요.
맞아요, 이 기획을 보자마자 반했던 것도 그 부분이었는데요. 우리는 배우지 못했어요. 배울 곳이라고는 학교밖에 없는데 정말 관심이 있어서 찾아보지 않는 한 교과서가 전부였어요. 심지어 찾기에도 자료가 많지 않았죠. 수많은 남자 독립운동가, 남자 작가에 대해 배운 걸 생각하면 우리는 근대 여성 인물에 대해 접할 기회가 너무 없었어요. 그렇다면 한 세기가 지난 지금이라도 이렇게 근사한 시리즈가 기획되어서 우리가 그들의 글을 볼 수 있고, 그들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제야 빛을 하나 내보내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는 상당히 의미가 있고요. 이제부터가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요.
저는 나혜석 선생님이나 강경애 선생님의 이름은 들어봤어요. 하지만 그들의 삶을 그렇게 잘 알지는 못하죠. 제가 공부를 안 해서이기도 하지만 배울 기회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요즘의 언어로 표현하면 롤 모델, 멘토를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기획물이 계속 나오면 좋겠어요.
앞으로 어떤 작가님들이 연결될지, 기대가 되는 이유기도 해요.
한편으로 제가 백신애 선생님과 연결된 게 너무 좋았어요. 백신애 선생님은 여성을 향한 억압과 여성에 대한 폭력, 차별을 쓰면서도 그 중심에 단단하게 사랑이 있더라고요. 그 지점이 너무 기뻤어요. 하다못해 「광인수기」에서도 그래요. 주인공의 남편이 외도를 하잖아요. 그렇지만 남편과 아내가 아주 사랑한 시절이 있었어요. 그것을 한번 짚어준다는 게 뜻깊고 좋았거든요. 「혼명에서」도 마찬가지고요. 백신애 선생님의 에너지는 사랑이 아니었을까 짐작할 수 있는 작품이에요. 저 역시 사랑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요. 출판사에서 저를 백신애 선생님과 엮어준 이유를 조금은 알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제목이 참 좋아요.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라는 제목에 어떤 마음을 담으신 건가요?
제가 제목을 진짜 못 지어요.(웃음) 대부분 소재나 동기가 됐던 것들을 제목으로 잡는 편이어서요. 이런 제목을 짓기는 무척 오랜만인데요. 이번에는 금방 제목이 나왔어요. 이 소설을 쓸 때가 대선 정국이었고요. 그걸 보면서 굉장한 혼란에 빠져 있었는데요. 마음 한 편에는 '그래도' 긍정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 백 년의 시간도 이렇게 왔는데, 우리는 더 천천히 오래오래 끝까지 갈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는 달라질 것이다'라는 긍정의 에너지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라고 쓰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나만큼 나이를 먹었을 때 또 다른 세상이 되게 해야지, 그러려면 천천히 오래오래 가야 된다, 라는 생각을 담을 수 있어서요. 또, 백신애 작가님이 활동했던 그 시기와 지금을 생각하면 천천히 오래오래, 그래도 꾸준히 변해왔다는 생각도 했죠.
또한, 이것은 '순희'와 '정규'를 위한 단어이기도 했어요. 제가 공을 많이 들인 부분은 두 사람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예의를 지켜가며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이었거든요. 무례하지 않게 두 사람이 천천히 가까워져서 오래오래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 제목을 짓게 됐습니다.
작가님의 소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에는 백신애 작가의 소설 「아름다운 노을」의 두 인물과 같은 이름을 가진 인물, 순희와 정규가 등장하는데요. 정규의 성별이 달라요. 이지은 평론가님이 '오늘날 우리에겐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오염되어'(253쪽) 있다고 하신 데 공감했는데요. 작가님께서는 '여자와 여자의 사랑에 다시 기대고 싶었다'(236쪽)고 말씀하시기도 했어요.
여자와 여자의 사랑에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느 한쪽이 상대를 억압하고 지배하려 하는 경우가 분명히 있겠죠. 그렇지만 적어도 불법 촬영이나 교제 살인까지는 저는 본 적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그 가능성을 계속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너무 서글픈 얘기인데요. 길에서 보는 청소년이나 유아동을 보면 걱정하는 마음이 먼저 들어요. 어떻게 보면 저도 오염된 거죠. 이제는 더 이상 길에서 남녀 커플을 보고 좋겠다거나 예쁘다, 아름답다, 하는 생각에서 그칠 수가 없어요. 혹은 조금만 다투고 있어도 계속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죠.
그렇게 되어버린 건 서글프지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보다는 그래도 계속 예민하게 응시하고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여자와 여자의 사랑에 다시 기대고 싶었다는 것도 같은 의미예요. 지금 일어나는 각종 범죄도 한몫을 했고요. 사실 과거에는 그런 범죄가 훨씬 더 많았겠고, 범죄인지조차 모르고 행했던 행위들이 이제야 이름을 부여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은 나아졌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그래도 나아가야 할 곳이 너무나도 요원하게 느껴져서요. 좀 더 이해하고, 이해 받는 사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남녀 구도보다는 여자와 여자의 사랑이 필요했고요.
편의점 장면만 해도, 만약에 정규를 돕는 순희가 남자였다면, 그 역시 너무 무섭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그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여자는 이게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인지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것을 어떤 남자들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다는 것 말이에요. 그래서 좀 더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여자들의 사랑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지점들이 일상생활에 굉장히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무례한 여자도 있지만 그가 나를 때리지 않을까, 생각하진 않잖아요. 근데 무례한 남자는 저를 때릴 것 같아요. 이게 과연 편견인지 묻는다면, 글쎄요. 편견이더라도 나는 의심하겠다는 쪽이에요. 나는 나를 지켜야 되니까요. 그런 것을 같이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는 두 인물을 쓰고 싶었어요.
백신애 작가가 살았던 시대에 선구자적인 여성이 넘어야 하는 무수한 장애물과 고난을 얘기하기도 했지만 그로부터 백 년이 지난 지금, 변하지 않은 점들을 자꾸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달라진 점도 분명히 기억해야겠지만 말이에요.
이혼한 여자에 대한 시선들도 별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죠. 백 년이 지났으면 많이 달라졌어야 할 텐데 말이에요. 백 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길어요. 그동안 우리는 독립도 했고, 전쟁도 있었고, 온갖 일을 다 겪었는데 왜 젠더 의식만큼은 변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돼요. 지금도 여전히 여성에게 요구하는 것이 훨씬 많거든요. 만약 자녀가 있는 기혼 여성이라면, 이 여성은 돈도 벌어야 되고, 아이도 보살펴야 되고, 자식 교육도 책임져야 하며, 시가과 친정에도 잘 해야 하고, 남편 내조도 잘 해야 돼요. 또,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엄마 탓이 되잖아요. 남자가 일 욕심을 내면 능력 있는 거고, 여자가 일 욕심을 내면 독한 거고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듣는 말들이 그런 차별과 억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 중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에서 작가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꼽아주신다면 무엇일까요?
두 사람의 대화 중에 빗속을 달리는 것에 대한 대화가 있잖아요. 예전에 글쓰기 수업을 할 때 한 분이 비 오는 날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되게 인상적이었거든요. 비 오는 날 달리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를 오랫동안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그 장면을 넣게 됐어요. 빗속을 달리는 건 내가 너무 화가 나고 속상하고 힘들 때 타인을 해치는 방식이 아니잖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가장 건강한 방식, 가장 바람직한 방식의 해소 같아요. 빗속에서 해방감과 자유를 느끼는 동시에 울기도 하고 소리도 지르는 건 그 누구도 해치지 않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외로운 모습이기도 하죠. 그런 복잡한 마음이 드는 장면이긴 한데요. 아주 강해 보이면서도 외로워 보이는 그 느낌을 가지고 빗속을 혼자 달리는 여자를 생각하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소설, 잇다> 시리즈 기획 자체의 훌륭함과 필요성에 대해서 얘기했지만 수록된 작품을 보면 백신애 작가가 얼마나 훌륭한 작품을 쓴 소설가였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아름다운 노을」은 성인 여성과 미성년 남성의 사랑을 다루는데요. 그런 혁신적인 작품이 1930년대에 발표되었다는 게 정말 놀라웠어요.
진짜 놀랍죠. 게다가 남성 화자 중심의 소설에서 여성을 대상화 하거나 소모적인 인물, 전형적인 인물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요. 백신애 선생님은 이미 백 년 전에 성인 남성을 그렇게 치워버렸더라고요. 정규의 형 '성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끝까지 있잖아요. 그런 역할을 사실 젊은 여성이나 아내 역할의 인물이 많이 했거든요. 남들은 다 알고 있는 걸 끝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가는 그런 역할 말이에요. 그런 부분도 아주 짜릿했어요.
함께 수록한 에세이 「절반의 가능성, 절반의 희망」에도 썼지만, 「아름다운 노을」에서 서로 사랑하게 되는 대상이 성인 여성과 미성년 남성이라는 것도 의미가 큰 것 같아요. 소외되는, 중심에 서지 못하는 인물들에게 굉장한 역동성과 주체적 의지를 부여했다는 점이 상당히 놀라웠고요. 그래서 저도 「아름다운 노을」로 변주를 하게 됐어요.
작가님의 단편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를 작업할 때의 마음이 어땠는지도 궁금했거든요. 어떤 과정을 거치셨나요?
부담이 너무 컸죠. 백신애 선생님의 끓어 넘치는 에너지와 약간의 광기가 담긴 문장들, 정념이 소설에 가득 있잖아요. 저도 '한 정념'한다고 생각하는데(웃음) 도저히 백신애 선생님처럼 쓸 수 없더라고요. 안 어울릴 것 같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저도 급진적인 전개와 타오르는 인물들을 써볼까 생각했는데요. 그건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었고요. 그렇게 쓰면 활활 타오르는 불 옆에서 숯이 될 것 같았어요. 저의 소설은 본 행사 전에 진행되는 식전 행사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요. 여러 고민 끝에 그냥 현대의 중년 여성과 청년 여성을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사사롭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이야기를 보여주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러면서도 백신애 선생님으로부터 백 년이 지났어도 변하지 않은 여성을 향한 차별과 억압의 시선을 넣어보자고 생각했죠. 불과 같은 정념보다는 상쾌한 바람이나 따뜻한 햇살을 써보고 싶었어요.
에세이에 '평범한 일상과 보편적인 고민 속에서 반짝 빛을 내는 사랑의 순간을, 그 빛에 마음을 비추는 장면을 쓰고 싶었다. 최근의 나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필요했다.'(237쪽)고 쓰셨죠.
이 소설을 쓰던 당시 대통령 선거가 있었어요. 젠더 갈등이 극에 달했던 때죠. 저는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아니었더라고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남성을 기본으로 보고, 여자가 남자의 자리를 뺏는다고 말하고, 더 이상 이 나라에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믿고 있더라고요. 통계와 수치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뭐랄까요, 소설을 쓸 의지가 별로 안 생겼었어요. 저는 대단한 낙관주의자이기도 하지만 굉장한 허무주의자이기도 하거든요. 늘 그것과 싸우거든요. 그 탓인지 '이렇게 써서 뭐하나' 이런 생각도 드는 거예요.
한편으로는 그래도 이것을 보는 사람들이 있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런 기획을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따라서 절반의 가능성과 희망이 있다는 생각과 비관이 서로 싸우면서 갈피를 못 잡기도 했었어요. 그래서 더 순희와 정규의 대화에 집중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쓰는 과정이 작가님 개인으로서도 의미가 있었겠네요. 쓰기까지 힘드셨지만, 언제까지 좌절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소설을 쓸 때 갈피를 못 잡기도 했는데요. 책이 나오는 것은 소설을 쓸 때와 약 6개월의 시차가 존재해요. 그러니까 책이 이렇게 나왔을 때의 저는 과거의 제가 아니거든요. 마치 별빛처럼 과거의 생각이 이제 도착한 거죠. 이렇게 멋있는 책으로 나온 것을 보면서, 당시에는 갈피를 못 잡았지만 지금은 그래도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6개월 동안 저도 나름대로 잘 살았고, 지금은 좀 더 단단해졌으니까요. 그래서 책이 나온 지금에서야 저는 좀 더 확신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소설을 쓸 때보다는요.
작가님의 고민을 들으니까 마음에 와 닿던 문장이 생각 나요. '절망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 적은 있으나 절망을 전파하기 위해 글을 쓰진 않았다.'(239쪽)라는 에세이의 문장이었는데요. 그 마음에 대해서도 더 이야기해주시겠어요?
이렇게 얘기해도 될지 모르겠는데요. 나이 들수록 더 무서워요. 지금보다 젊었을 때는 절망이라는 것, 좌절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예민하게 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게 절망이나 좌절이라고 생각도 안 했던 것 같고요. 그러다 어느새 저도 사십 대가 되었고, 이제는 한 번의 절망이 너무 두려운 거예요. 그래서 이번 소설을 쓸 때도 그것을 굉장히 신경 쓰게 됐어요. 제가 쓸 수 있는 이야기가 뭘까, 생각했죠.
제가 지금까지 쓴 소설 속 인물들은 다들 어려운 상황에 있거든요. 근데 그들이 절망만 하거나 좌절하고, 어떤 지옥 속에 있는 것으로 소설을 마무리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만신창이로 넘어져 있었다면 일어나 앉기까지, 혹은 그 자리에 서기까지, 혹은 한 걸음 내딛을 때까지는 쓰고 결말을 맺었던 것 같은데요. 왜냐하면 내가 사랑한 인물을 그냥 그렇게 둘 수는 없기 때문이에요. 그것은 나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이 책을 읽을 사람들에게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늘 해요. 그래서 언제나 절망과 좌절에 빠진 인물이 그곳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어요. 저도 그렇게 살고 싶고요. 특히, 어느 순간부터 저는 '이번 생은 망했어' 이런 말 안 하려고 하거든요. 그보다는 '다른 것이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좀 더 하려고 해요.
팟캐스트 <책읽아웃>에 나오셨을 때 "나이 들어서 사랑을 비웃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고 하신 말씀이 무척 좋았거든요. 방금 말씀과도 연결이 되는데요. 뭔가를 희망한다는 게 때로 유치해 보일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이번 생은 망했다는 말을 자조적으로 하는 거겠죠. 그 지점에서 작가님은 그렇지 않다, 그래도 사랑이 중요하다, 아주 어렵지만 희망할 수 있다고 얘기해주고 계세요. 그런 말을 하는 작가님이, 소설이 있다는 게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일상생활에서 만난 사람 중에는 나를 무시하고, 나를 너무 하찮게 대하고, 나를 물건 취급하고, 너무나도 이기적으로 구는 사람들이 물론 있어요. 그렇지만 그런 사람이 열 명 있더라도 한두 명은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걱정하고, 위로가 되려고 하고, 보다 다정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없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면 망한 게 아니에요. 그러면 결코 망하지 않아요. 그런 것을 좀 더 많이 생각하고 싶어요.
좀 더 구체적으로,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그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나이 들어서도 끝내 비웃지 않고 싶은 사랑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 궁금해요.
일단 사랑은 저를 살게 해요. 사랑은 저를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게 만들죠. 가족, 친구나 연인,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도 있고, 사회에 대한 사랑도 있고,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에 대한 사랑이나 종교적 신념도 있을 수 있는데요. 애틋하게 생각하는 그 마음이 사람을 좀 더 나은 존재로 만드는 것 같거든요. 사실 누군가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 애틋해 하는 마음, 누군가의 기분과 감정을 살피는 행위 자체가 피곤할 때도 있어요. 저는 그럴 때마다 '이건 나를 위한 거다, 내가 형편없어지는 것을 막는 거다'라고 생각해요. 내 기분대로 이기적으로 굴고, 욕심 부리고 하면 저는 그만큼 제 자신이 작은 존재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담대하고, 이상을 추구하는, 그리고 인간들이 만든 고상한 가치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렇게 늙고 싶어요. 그게 제 꿈이니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을 잘 해야 되는 거죠. 내가 바라는 나에 점점 더 가까워져야지 거기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가지 말자는 생각이에요.
*최진영 1981년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서울에서 태어났다. 낮엔 일하고 밤엔 글 쓰다가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팽이』, 『겨울방학』, 장편 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이제야 언니에게』, 『내가 되는 꿈』, 『팽이』, 『겨울방학』 등을 썼다. 앤솔러지 『장래 희망은 함박눈』을 함께 썼다. 박범신, 공지영, 황현산 등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제15회 한겨레문학상에 당선되었으며, 만해문학상, 백신애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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