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갓더비트의 기대감과 자신감, 그 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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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더비트(GOT the beat) 미니앨범 'Stamp On It'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 갓더비트(GOT the beat)의 미니앨범 <Stamp On It>을 듣고 있자면 자연히 떠오르는 말이다. (2023.01.25)

글 | 미묘(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 평론가 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칼럼이 격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최신 이슈부터 앨범 패키지에 담긴 이야기까지 지금 케이팝의 다채로움을 전합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

갓더비트(GOT the beat)의 미니앨범 <Stamp On It>을 듣고 있자면 자연히 떠오르는 말이다. 복잡한 곡의 구조라는 케이팝의 표준에서도 이 미니앨범은 내내 청자를 수시로 길 잃게 하고는 멱살을 잡아 끌고 다니며 패대기친다. 사운드는 매번 격렬하게 허를 찌르고, SM 엔터테인먼트 걸그룹 드림팀으로 구성된 멤버들은 폭발적이고 날카로운 보컬과 래핑으로 숨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그야말로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기세로 가득하다. '강-강-강'으로 일관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멤버라도 청자의 다리가 풀리는 '강'을 구사하지만 또한 '약'에 해당하는 부분에서도 은근한 협박처럼 긴장을 바짝 조여버린다. 'Stamp On It'이나 '가시(Rose)'의 브리지가 찬란한 R&B를 구사할 때조차 음악적 생경함이 낳는 구조적 긴장이 청자를 결코 마음 놓지 못하게 한다. 그런 카리스마적 완급 조절은 갓더비트의 기량의 진가이고, 또한 이 미니앨범이 보여주는 상향 조정된 긴장의 맥시멀리즘을 대변한다.

패키징은 커버의 제목 표기를 비롯해 많은 텍스트가 단정한 서체의 인쇄와 그래피티 스타일 글씨를 겹쳐 두었다. 텍스트는 인물 사진의 배경으로, 전경으로도 자주 교차한다. 선명하고 깔끔한 스튜디오 사진과 폐건물 같은 황량한 어반 풍이 병립하고, 마스터 인쇄의 질감, 다양한 색조의 모노톤 처리, 스크랩 풍의 콜라주와 데콜라주, 실크 스크린을 덧입힌 듯한 연출 등이 공존한다. 어떻게 보면 케이팝 앨범 아트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기법을 총망라한 것도 같다. 그러면서도 케이팝이 원형으로 삼는 어반-스트리트의 미감을 거칠고 도발적인 이미지들 속에서 구현하기도 한다. 세대도, '세계관'도, 캐릭터도 상이한 일곱 멤버들을 어느 정도 다채롭게, 그러나 원점으로부터 선분을 그어 덜 이질적으로 담아내는 의도로 보인다.

여담이지만 스마트 앨범인 'SMini Ver.'은 주얼 케이스 CD 미니어처로 구현된 키링을 채택하고 있다. 사실 볼체인이 포함된 키링이라는 아이템이 2023년에 정말 어울리는 굿즈인가 질문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케이팝 굿즈는 실사용보다는 소장용에 가깝고, 현실에서의 쓰임새보다는 케이팝 씬의 레거시, 혹은 관성이 중요한 아이템 선정이 이뤄지는 세계이기도 하다. 이 지극히 1990년대적인 사물이, 다른 아티스트라면 모르겠으되, 적어도 갓더비트에게는 더 어울리는 선택일 수도 있겠다.

맥락과 의미가 불분명한 가사는 고달프지만, 미학적이다. 알고 보면 표준어인 '엔간히'나 두 번째 트랙 제목 'Goddess Level'처럼, 아주 우아하다고는 못하겠지만 구어적인 말맛을 가진 표현들이 마구 떠다닌다. 이들은 비트와 사운드의 폭풍 속을 마구 떠다니다가는 지표면에서 들어올려진 청자를 이따금씩 강타한다. 태풍이 불 때면 날아다니는 간판들이 때로 강풍 그 자체보다 더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듯이. 그러면서 파편적으로, 그러나 그 집합체가 그리는 윤곽으로서, 갓더비트라는 유닛이 표방하는 인물의 면면을 잘 담아낸다. 찜찜해지는 것이 있다면 가사의 형태가 아니다. 어떤 인물인가 하는 것이다.

자신감 가득한 인물이다. 'Stamp On It'이 후배들 '꼽주는' 꼰대처럼 들린다는 말도 있지만, 은근히 격려하기도 한다. 그 격려를 할 만한 '윗사람'으로서의 자리매김이 중요할 따름이다. 그는 '작은 흔들림도 하나 없'고, '매 순간을 놓지 않는 완벽주의'와 '시선들을 다 즐기는 낭만주의'(Goddess Level)를 가졌다. 그런 인물이다. '가시(Rose)'가 사랑받는 이의 매서운 이면을 논하기는 하지만, 그의 자신감은 '나는 완벽하고 너는 하찮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딱히 뭔가를 하지는 않는다. 그저 누구도 자신을 무시할 수 없고, 함부로 덤비면 쳐내겠다고 으르렁거린다. 그런 다짜고짜 자신감 표현이 케이팝적이라고 할 수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르세라핌의 독기나 아이브의 나르시시즘, (여자)아이들의 전복(적 시도), 뉴진스의 케이팝 걸그룹 안티테제 등이 쏟아진 뒤의 2023년에 듣기에는, 아무래도 조금 낡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자격의 증명에 집중하는 자신감은 SM식의 엘리티시즘이 갖는 특유의 질감일 수도, 또 그 한계일 수도 있다.

<SM Town>의 이벤트성 유닛인 줄 알았던 갓더비트가 정식 미니앨범을 발매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 음반에 대해, 멤버 구성의 으리으리한 상징성이나, 케이팝의 원점, 또는 이 구성이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SMP의 '본때'에 더 시선이 가게 된다는 것은 아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갓더비트의 의의가 'SM의 레거시 총집편'에서 그다지 더 나아가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건 가사와 인물상이 지향하는 바가 다소 빈한하면서 또한 비교적 선명한 데에서 비롯된다. 그러다 보니 짜릿하도록 과잉한 사운드와 구성마저 '이 멤버라면 가능하다'는 흥분으로만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다시, '이 멤버들은 해낼 수 있다'는 증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갓더비트 멤버들에게 더이상의 자격 증명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격 증명을 갖춘 여신들이다'를 반복하는 건 적당히 접어두고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 편이 훨씬 자신감 있어 보일 것 같은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