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기자가 고백하는 이 시대의 저널리즘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김성호 저자 인터뷰
'될 일은 되고 만다', '알려져야 할 문제는 알려지고 만다'는 믿음 아래 끝없이 분투하는 기자들이 세상엔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23.01.16)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는 저널리즘 상실 시대에 자주 부끄러워지는 우리가, 가끔 행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들어야 한다는 한 기자의 고백이다. 저자는 사라지는 저널리즘에 관해 낱낱이 드러내며, 우리가 지켜야 할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책에 담긴 기자의 유려한 문장과 섬세한 시선은 출판사 편집부 전원을 감동하게 했고, 동시에 그의 다음 행보를 걱정시킬 만큼 통렬하고 솔직하다.
작가님을 처음 만나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쓰는 사람, 김성호입니다. <파이낸셜뉴스> 기자로 6년 동안 일했고, 영화평과 서평, 그밖에 다양한 글들을 10여 년간 써왔습니다. 2021년을 끝으로 언론사를 그만두고 그간 겪은 일을 모아 책으로 내게 되었습니다.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지키려다 제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비단 언론에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각자의 자리에서 자긍심을 지키려는 모든 이들에게 진솔하게 가닿는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마음을 담아 써 내려간 글인 만큼 알아봐 주는 독자와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3급 항해사로도 활동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떻게 항해사가 되셨던 건가요?
막 3년 차 기자가 되었을 때 해운 부문을 담당하던 동료 기자가 나라에서 항해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삼면이 바다이고 수입·수출을 통해 나라 살림을 꾸려가는 한국에 살면서도, 바다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지원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항해사는 선박을 조종하는 임무 외에도 화물을 관리하고 현지인들과 관계하며 업무를 처리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그 과정을 겪으며 한국이라는 나라, 서울이라는 도시, 학생이자 기자로 만난 세상이 얼마나 좁았는지 생생히 깨달았습니다. 고단하고 괴로운 일도 많았지만, 기댈 곳 없는 바다 위에서 오로지 제 경험과 지식에 의지해 길을 찾아가는 이들의 겸손함을 겪어내는 건 여러모로 매력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기자로서의 삶은 어떠셨나요?
배를 타고 돌아온 뒤 바라본 세상은 전과는 제법 달라 보였습니다. 일도 마찬가지였죠. 이전에 몸담았던 언론사에서 불러주어 다시 기자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훨씬 더 적극적으로 관심 있는 분야를 깊이 파고들었어요. 스스로 체감하진 못했으나, 취재원 중에서도 제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말하고, 쓰고, 생각하는 일 모두에서 나름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자 사회는 제가 떠나 있던 2년 동안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경제 상황부터 현지의 법과 환경에 따라 민감하게 움직이는 해운과는 영 딴판이었죠. 다른 어느 부문보다 민감해야 하는 언론이지만, 늘 제 자리에 앉아서 기존의 방식대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진실한 보도며 독자에 대한 충성, 저널리즘 같은 가치들은 조금씩 흐릿해져 가는 듯해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분명 작가님과 같은 마음으로 입사한 기자분들이 더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초심을 잃지 않고 기자 생활을 지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회에서는 어떻게 그들을 지원할 수 있을까요?
초심을 지키는 건 결국 개인의 몫일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하는 일이 무엇이고,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는 무엇인지, 어떤 마음으로 제 삶을 꾸리려 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다면, 남은 건 그것을 지키는 일뿐입니다. 물론, 동료 기자들과 언론사, 나아가 사회 전체가 초심을 지키기 더 수월한 환경을 만들어갈 필요는 있을 겁니다. 우선 기자가 본인이 쓰는 기사에 애정과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여러 제도가 마련돼야 합니다. 이를테면 외압에서 기사를 지킬 수 있게끔 하는 전통이 분명히 세워진다거나, 조직 차원에서 공이 든 기사를 제대로 평가하는 체계를 운용한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죠. 많은 언론사가 이런 일을 하고는 있지만 허울뿐인 경우가 많아요. 여기에 더해 독자들이 질 좋은 기사를 위해 분투하는 기자들을 알아봐 주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한 명의 좋은 독자가 한 명의 좋은 기자를 구할 수 있는 법이라고,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에서 작가님이 같은 주제로 50건이 넘는 기사를 작성하셨다는 내용이 인상 깊었습니다. 당시 기자님을 포기하지 않게 한 동력은 무엇이었나요?
하나의 주제로 한국 언론이 통상적으로 다루는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훨씬 많은 기사를 작성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저널리즘을 위협하는 일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을 직접 만난 적도 많았습니다. 사실, 특정 부문의 사건을 집중하여 다룬 데는 대단한 이유가 있지 않습니다. 언론의 특성상 한 번의 보도로 공론화가 이뤄지길 기대하기는 어려웠다는 점, 같은 사안을 수차례에 걸쳐 보도할수록 더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선택이었을 뿐입니다.
또한, 유령 수술과 의료 범죄, 수술실 CCTV 법제화, 국가 배상 소송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움직임은 한국 사회에서 언론이 반드시 조명해야만 하는 중대한 움직임이란 확신이 있었을 뿐이지요. 제가 이 사건을 만났을 때 언론이 이를 다루는 방식이 일회적이며 표피적이었기에, 또 이를 책임지고 다룰 수 있는 다른 이를 찾지 못했기에 제가 다룰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힘들게 기사가 세상 밖으로 나온 만큼, 많은 사람이 읽어주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콘텐츠 범람의 시대에 기사, 그것도 소외된 사람들에 관한 기사는 외면받기에 십상입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널리 읽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사의 형식이 바뀌어야 할까요? 사람이 바뀌어야 할까요?
많은 기자가 기사에 공을 들이지만, 그만한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좌절합니다. 반면, 별 노력 없이 화제가 되는 키워드를 엮어 써 내려간 기사가 많은 조명을 받는 일도 흔히 발생하지요. 그렇다고 앉아서 환경만 탓하는 건 기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할 수 있는 온갖 수단으로 더 많은 독자에게 문제를 전하는 것이 기자의 일 아닌지요. 그것이 기존의 언론이 하지 않았던 방식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될 일은 되고 만다', '알려져야 할 문제는 알려지고 만다'는 믿음 아래 끝없이 분투하는 기자들이 세상엔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 기자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라 한다면, 기자는 감각을 담당하는 세포쯤이 될 겁니다. 문제를 일깨움으로써 사회가 더 건강하게 존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기자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황제의 옷깃을 잡아끌고 직언하던 대신에게서,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기록하던 사관에게서, 농장이며 학교에서 사람들을 일깨우던 활동가들에게서 이 시대 언론이 마땅히 맡아야 할 역할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권력을 감시하고 강자의 폭주를 견제하며 소외된 이들에게 발언권을 주는 일, 저는 그것이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언론의 역할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김성호 1986년 서울 태생으로 영일고등학교,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기자, 영화 평론가, 서평가, 3급 항해사다. <파이낸셜뉴스> 기자로 6년간 일했다. 3급 항해사 자격 취득 후 상선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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