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대건의 두 번째 장편 소설 『급류』
『급류』 정대건 저자 인터뷰
『급류』는 거센 물살 같은 시간 속에서 헤엄치는 법을 알아내는 연약한 이들의 용감한 성장담이자 단 하나의 사랑론이다. (2023.01.16)
열일곱, 작은 마을 '진평'에서 운명처럼 시작된 동갑내기 '도담'과 '해솔'의 첫사랑은 예상치 못한 사건을 마주하며 전혀 다른 국면에 들어선다. 뒤흔들린 삶 속에서 그들은 다시 헤엄을 치고, 서로의 손을 마주 잡을 수 있을까? 『급류』는 거센 물살 같은 시간 속에서 헤엄치는 법을 알아내는 연약한 이들의 용감한 성장담이자 단 하나의 사랑론이다.
"너 소용돌이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 수면에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돼."
소설은 같은 트라우마를 지닌 채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도담과 해솔이 같은 상처를 어떻게 다르게 지나가는지, 어떻게 다시 한 번 서로를 사랑으로 선택하는지를 그려낸다. 충격적이지만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이자, 동시에 낭만적이기만 하지는 않은 복잡하고 깊은 물 같은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급류』에 주요하게 등장하는 직업인 소방 구조대원의 일과 성격에 대해 쓰기 위해 조사한 것이 따로 있으신가요?
제가 군 생활을 소방서에서 했어요. 의무 경찰은 많이들 아실 텐데 의무 소방이라는 전환 복무 제도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의무 경찰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지만요. 2년 2개월간 소방서에서 생활하면서 밀접하게 관찰한 바를 많이 녹였고, 동기들이 소방에 현업으로 있어서 자문하기도 했습니다.
소설 전반에 물과 관련된 다양한 개념과 표현들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물에 대한 이러한 표현이 인물들의 서사와 촘촘하게 얽혀 있다고 느꼈는데요. '물'이라는 소재를 선택하고 이번 이야기에 연결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진평'과 비슷한 곳에서 생활하며 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쓰게 된 것 같아요. 물은 흔히 상징하는 바처럼 생명의 원천이기도 하면서 그 안에서 숨을 쉴 수 없다는 점에서 공포이기도 하잖아요. 사랑도 그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면서 때로는 큰 상처를 주는 것, 그러므로 용기를 내야 하는 것. 도담이 무엇보다 좋아했지만 두려워하게 된 물에 다시 들어가기까지, 이야기의 시작인 계곡으로부터 바다에 다다르기까지 서사의 여러 맥락에서 사랑에 대한 은유로 어울린다고 생각하여 적극적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같은 절망 속 도담과 해솔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절망을 극복하려 합니다. 도담은 과거를 잊으려 무절제한 삶에 빠져들고 해솔은 행복해지기 위해 강박적으로 성실한 삶에 집착하죠. 작가님께서는 둘 중 누구의 방식에 더 공감 하시나요?
저의 실제 삶은 이성적으로 통제된 해솔의 방식에 더 공감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성의 감시를 벗어나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숨 쉴 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성적이고 계획적인 해솔의 삶이 아폴론적이고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도담의 삶이 디오니소스적이라면 그 둘의 조화가 이상적이지 않을까요?
상처받고 힘겨워하는 두 주인공의 심리가 절절하게 느껴지는 문장들이 많아서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면서 읽었습니다. 쓰시면서 특별히 심혈을 기울이신 장면이나 문장이 있으실까요?
쓸 때 개별 장면들도 신경을 썼지만 전체를 생각했어요. 소설을 읽은 후에 독자들이 사랑에 대해 이미지로, 은유적으로 생각하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몇몇 단어나 장면을 반복해 썼는데요. 도담과 해솔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서로의 손을 잡는 이미지를 많이 넣었어요. 허우적거리는 세상에서 손을 잡는 것,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게 서로의 구명환이 되어 주는 것이라고 그리고 싶었거든요.
소설 속에서 보여 주는 도담과 해솔의 열일곱, 스물둘, 서른의 사랑은 모두 조금씩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데요. 작가님께는 소설 속 어떤 사랑이 가장 마음에 깊이 남아 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각각 소용돌이처럼 빨려 들어가는 사랑, 서로에게 데일 듯한 불 같은 사랑, 서로의 존재 자체를 안쓰럽게 여기는 사랑이라고 한다면, 저는 서른에 재회한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소설 후반 이들의 나이가 서른에 불과하지만, 순탄하게 살아온 누군가의 나이로 치면 노년에 가까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급류』의 후반부에 도담이 말하는 대로 그저 속절없이 빠져 버리는 사랑보다는 자신의 의지로 자각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랑을 지지하고 싶어요.
첫 장편 소설 『GV 빌런 고태경』이 사랑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번 장편 소설 『급류』는 사랑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읽힙니다. 사랑에 대한 작가님의 철학이 있을 것 같은데, 작가님은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사랑은 제가 정의하기에는 너무 다양한 감정과 넓은 그물을 가진 단어라고 생각해요. 어떤 때는 이타적인 감정 같기도, 어떤 때는 이기적인 것 같기도 하고요. 제가 누구보다 사랑을 어려워하기 때문에 계속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적어도 이 소설에서는 '한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이라는 문장으로 정의한 것 같습니다.
'두사람 앞에 파도가 일고 있었지만 그들은 수영하는 법을 알았다.'는 문장이 어떤 해피 엔딩보다 강렬히 와닿았습니다. 또다시 파도를 만날지도 모르지만, 마침내 함께 헤엄치게 된 두 사람에게 남기고 싶은 당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삶에 언제 또다시 파도가 닥칠지 모른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후회 없이, 남김없이 사랑하고 함께 살아내는 것, 이것이 도담과 해솔이 삶에서 터득한 영법(泳法)일 것입니다. 두 사람에게 제가 당부한다기보다는 제가 삶에서 그런 태도를 배우고 싶습니다. 도담과 해솔 두 사람이 안녕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정대건 2020년 장편 소설 『GV 빌런 고태경』을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소설집 『아이 틴더 유』를 출간했다. 다큐멘터리 <투 올드 힙합 키드>와 극영화 <사브라>, <메이트>를 연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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