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출판사에 '절'하고 싶은 책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22회) 『미지를 위한 루바토』, 『그렇게 죽지 않는다』,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2023.01.05)
불현듯(오은) : 새해 <어떤,책임> 첫 시간입니다. 주제를 고민하다가 프엄님께서 멋진 주제를 제안해주셨어요.
프랑소와엄 : 이번 주제는 "출판사에 '절'하고 싶은 책"입니다.
캘리 : 이 주제를 통해 출판사를 호명할 수 있다는 것도 되게 좋은 의미라고 생각했어요.
김선오 저 | 아침달
김선오 시인은 『나이트 사커』라는 제목의 시집을 아침달에서 출간하고, 『세트장』이라는 시집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한 시인인데요. 아침달 시집은 특별하고 특이한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기성 시인들, 등단 제도를 거쳐서 시인으로 호명된 분들의 책도 나오지만, 등단 여부와 상관없이 시집 한 권 분량의 원고를 투고 받아서 심사를 한 뒤 시집이 출간되기도 하는 거죠. 김선오 시인은 후자의 방식으로 책을 출간하면서 데뷔를 했어요. 시인의 첫 시집도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두 번째 시집도 너무 좋아서 산문집이 나온다는 소식에 바로 구입을 해서 읽었어요.
제목에 '루바토'가 들어가죠. 이건 템포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템포를 조절하면서 연주자가 연주할 수 있는 악상 기호라고 해요. 재즈를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8분 음표를 4분 음표로 늘려서 연주할 수도 있고, 16분 음표인데 온음표처럼 아주 길게 할 수 있는, 연주자의 재량이 많이 들어가는 방식의 악상 기호인 거죠. 어쩌면 시를 쓰는 것도 루바토 기호를 가지고 행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역시나 김선오 시인도 이것을 시와 연결시켜서 글을 적었습니다.
김선오 시인은 초고를 쓸 때 루바토처럼 쓴다고 해요. 사실 초고는 누가 검사하지도 않고, 내가 자유자재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나만의 방식으로 적는 거잖아요. 그런데 퇴고를 하면 정제되기도 하고, 리듬감을 위해서 손을 대게 돼요. 그러면서 시의 꼴에 더 가까워지기는 하지만 자유분방함이랄까 나의 리듬감, 나의 색깔은 좀 지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인은 퇴고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결국 나중에 시를 발표하려고 보면 초고에 가까운 시가 다시 되어 있다고 해요.
가장 좋았던 글 중에 하나는 '부드러운 반복'이라는 제목의 글이었어요. 김선오 시인이 네 살쯤 됐을 때 동생이 태어났대요. 그럼 동생에게 많은 관심이 가겠죠.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김선오 시인이 어느 날 가출을 했대요. 그러니까 시인에게는 이게 희미한 기억이에요. 그 가출 사건이 있고 2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김선오 시인이 누하동이라는 동네를 걸었는데요. 그러다 어떤 골목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골목에서 네 살로 보이는 한 아이가 혼자서 걸어오는 장면을 마주한 거예요. 그것이 마치 예전에 나를 보는 것 같았다고, 김선오 시인은 그게 네 살짜리 자기 자신이었다고 확신한다고 말합니다.
예스24 박형욱 PD님께서 "'시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는 고백으로 시작하는 그의 이야기는 시와 피아노, 프랑스 교환학생 시절의 기억에 이르기까지 자유롭게 펼쳐지고, 그의 리듬에 맞춰 사유의 흐름을 따르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에 달한다"고 남겨주셨는데요. 정말 그런 책이고요. 새해에 처음 흥겨움과 상상력을 얻고 싶으신 분들은 이 책에 관심 기울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홍영아 저 | 어떤책
제가 막판까지 고민했던 책이 세 권 있어요. 한 권은 목수책방에서 출간된 『산책의 언어』라는 책인데요. 목수책방은 정말 식물이나 나무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 꼭 읽어보셔야 되는 책들을 많이 출간하는 곳이에요. 너무 예술적이고 정성스럽게 책을 만드시고요. 목수책방에서 나오는 책들도 꼭 한번 살펴보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두 번째로 고민했던 책이 낮은산 출판사에서 나온 장일호 기자님의 『슬픔의 방문』이에요. 이 책은 정말 전하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는 책인데요. <월간 채널예스> 인터뷰를 했기 때문에 제외할 수밖에 없었어요. 결국 선택해서 가지고 온 책은 어떤책 출판사에서 나온 『그렇게 죽지 않는다』라는 책입니다.
저는 어떤책에서 책이 나오면 정말 믿음을 갖고 봐요. 이 출판사의 독특한 점 중에 하나는 첫 책을 내는 신인 작가의 글을 많이 내는 출판사 중 한 곳이라는 점이거든요. 투고를 많이 받기도 하고요. 출판 창업을 하신 편집자님이 예전에 근무하던 대형 출판사에서 있었을 때 계약했던 책의 저자를 끝까지 놓지 않고, 결국 원고를 받아내서 나오는 책들도 있어요. 그런 모습을 밖에서 지켜보면서 굉장히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출판사입니다. 그래서 어떤책 출판사의 신간을 가지고 왔어요.
이 책도 작가님의 첫 책입니다. 사실 읽기가 쉽지가 않았어요. 제 주변에도 건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 책 읽으면 내가 너무 힘들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래서 주저했는데 그래도 계속 책이 눈에 밟히는 거예요. 용기를 내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쓰신 홍영아 작가님은 <한국인의 밥상>, <사람과 사람들>, <인간극장>, <세계 테마기행>, <VJ 특공대>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20년 정도 방송 작가로 일을 해오신 베테랑 작가님입니다. 글 스타일이 무겁지 않고 경쾌하면서 씩씩해요. 그리고 핵심을 딱 짚으시면서 명량한 톤으로 전개되는 책이어서 읽으면서 용기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 책의 출발은 홍영아 작가님이 KBS 다큐멘터리 <우리는 어떻게 죽는가> 방송을 준비하던 중에 죽음을 둘러싼 많은 이야기들을 알게 되고, 암 전문의, 요양 병원 의료진, 요양원 원장님을 비롯해 장례 지도사,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이들을 8년 동안 인터뷰해서 나온 거예요. 죽음을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요. 의사 편도 환자 편도 아닌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들, 가족의 이야기들을 담았어요.
이 책의 핵심은 이거예요. 왜 우리나라는 소생 가능성이 전혀 없는 치료를 받으면서 다른 나라보다 세 배가 많은 양의 항암제를 사용하고, 또 평생 쓴 의료비보다 두세 배 많은 돈을 왜 죽기 한 달 전에 다 쓰는 걸까. 여기에 어떤 사회적 맥락이 있는 것일지를 다루는데요. 사실 되게 조심스러운 이야기이긴 한데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그 환자의 이야기 의료진의 이야기 요양 병원의 현실 등을 골고루 짚어내는 점이에요. 그래서 저는 굉장히 실용적인 책으로 읽히기도 했습니다.
송효정, 박희정, 유해정, 홍세미, 홍은전 저 | 온다프레스
사실 소개하고 싶었던 책이 있어요. 온다프레스에서 2022년 1월에 『2146, 529』라는 책을 냈어요. 그 책이 정말 저에게 큰 상처를 입힌, 너무나 소중한 책이었거든요. 그 책을 보면서 이런 책을 내는 출판사가 참 소중하다고 생각했고요. 그렇지만 그 책을 차마 소개하지 못 할 것 같았어요. 그 책을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2146'은 2021년 한 해 동안 산업 재해로 세상을 떠난 노동자의 숫자를 가리키고요. '529'는 그들 중에서 사고로 사망하신 분들의 숫자입니다. 그리고 그 한 권의 책에는 그 매일매일의 사건 기사가 담겨 있죠. 그 책도 꼭 한번 같이 보시면 좋겠고요. 오늘 소개할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는 온다프레스에서 2018년에 출간된 책입니다.
부제가 '화상경험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예요. 중증 화상 사고를 겪은 화상경험자 7명의 이야기를 담은 구술사인데요. 책 소개에 앞서서 '화상경험자'라는 말에 대해서 먼저 설명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흔하게는 '화상환자'라는 말을 쓰기도 하고요. 외국에서는 '화상생존자'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대요. 근데 이 책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한 화상경험자 최려나 님의 말에 따르면 화상환자, 화상생존자라는 두 표현 모두 자신들의 경험을 온전히 담기에는 부족함을 느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한때 화상환자였지만 지금은 환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화상경험자라는 말을 쓰게 됐다고 합니다.
책 속의 화상경험자분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요. 이분들이 화상을 경험하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떠한 사연으로 화상을 경험하게 되었는지, 치료 과정에서 어떤 고통과 좌절을 겪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떤 마음으로 지내는지를 생생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어요. 근데 참 속상하게도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들이 읽히더라고요.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했던 건 경제적 부담 문제였어요. 수술을 해야 되는데 이게 성형 수술이잖아요. 그래서 미용으로 분류가 돼서 다 비급여인 거예요. 어떤 분은 목 주변 피부에 화상 상처를 입어서 고개를 위로 5cm 정도밖에 못 드셨어요. 얼마나 일상이 불편하셨겠어요. 그런데도 수술할 돈이 없어서 힘들지만 그렇게 지내다가 수술을 하고 나니까 고개를 좀 더 들 수 있게 되신 거예요. 이렇듯 일상을 위해서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수술인데 그게 미용으로 분류된다니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하게 됐어요.
우리는 당사자들이 고통의 시간을 온몸으로 통과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삶의 기술이 의사나 학자의 지식만큼이나 귀하게 존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이 사고를 겪고 난 뒤 마치 새로 태어난 듯 걸음마를 떼고 다시 거리로 나서는 모습에서 과거의 자신 그러니까 진정한 자기를 되찾으려던 안간힘이 결국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만들어내는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저는 이 책 읽으면서 인간은 참 알 수 없으면서도 경이로운 존재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여기 목소리를 들려주신 분들은 본인이 갑자기 약자가 된 거잖아요. 되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인데 그렇게 되자, 다시 주변의 약자들을 바라보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힘들었으니 저 사람도 힘들었겠구나, 하면서요.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고요. 고통의 연대라는 것을 감히 상상할 수 있구나, 상상해도 되는구나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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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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