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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의 어린 개가 왔다] 아주 먼 곳의 강아지

정이현의 어린 개가 왔다 -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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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강아지가 개라는 걸 처음 알게 된 사람처럼, 나는 상자 속의 어린 개를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았다. (2023.01.02)


소설가가 얼룩 개를 기른다고요?
정이현 소설가에게 어느 날 찾아온 강아지, 그 작은 돌봄과 애쓰는 마음을 연재합니다.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강아지,

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서로 적응해가는 이야기,
격주 월요일을 기대해주세요.





개가 왔다.

강아지인 줄 알았는데. 분명히 그런 줄 알았는데.

모든 강아지가 개라는 걸 처음 알게 된 사람처럼, 

나는 상자 속의 어린 개를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았다.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먼 곳으로 차근차근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어쩌면 그렇다.

먼저, '나'라는 사람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는 (아, 시작하기 전부터 목이 막힌다) 선물로 화분을 받으면 일단 당황부터 하는 사람이다. 아니 멀리서 누군가 화분을 들고 내게 다가오는 모습만 봐도 마찬가지다. 그 화분에 심긴 식물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식물이 현재 살아 있다는 것, 그것만이 중요하다.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다는 것, 죽어버린다는 것. 그것만이 사실이니까. 내가 어떻게 해도 그 결말은 돌이킬 수 없다. 안 죽이면 되지 않느냐고? 딜레마는 거기서 시작된다. 그건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물을 생존시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쏟겠지만, 어김없이 실패할 테고... 그러면 나는 또다시 괴로워질 테고... 그런 상상의 무한궤도였다. 

그러니 화분이 내게 올 것 같은 기척만 느껴져도 나는 이내 침울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 부담감과 불안감은, 생래적이라고 추정된다는 것 말고는 딱 떨어지게 설명할 방도가 없다. 어떤 식물도 자발적으로 집에 들인 적 없듯이 여태껏 어떤 동물도 자발적으로 집에 들인 적이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내게 그 정도의 분별력은 있다.

물론 정말로 피치 못할 예외는 있었다. 딱 한 번. 몇 해 전, 빌라 마당에서 아픈 아기 고양이 한 마리를 얼떨결에 구조하여 좋은 주인을 찾아주기 전까지 짧은 기간 함께 산 적이 있다. 그러나 계속 키워야 할지 고민하기도 전에 나의 극심한 고양이 알레르기가 발현되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가려워서 엉엉 울다가 항알레르기 약제에 취해 몽롱해 있기를 반복하느라, 저 태생적인 마음의 부담감과 불안감을 미처 느낄 틈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지만 어떤 이야기 하나가 거기서 발아되고 있었다. 미래의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그 짧은 동안, 집에 아기 고양이와 함께 살았던 사람이 나 말고도 더 있었다. 식구들. 특히, 당시 열 살 안팎이던 두 아이는 고양이와 정이 함빡 들었기에 이별을 몹시 힘들어했다. 사랑하는 아기 고양이와 같이 살 수 없는 이유가 엄마의 알레르기 때문임을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돌이켜 보면, 그때가 기회였다. 나라는 사람이 사실은 식물이든 동물이든 인간 이외의 종과 한집에서 살기 힘든 사람임을 솔직하고 소상하게 아이들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 그러지 못한 건 미안함 때문이었겠지.

"엄마 알레르기가 다 나으면 같이 살면 안 돼요?"

"그러면 좋겠지만, 이게 금방 나을 것 같지는 않아."

"그럼 알레르기가 없는 동물은 괜찮아요?"

"(잠깐의 침묵) 그건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자."

이런 대화가 오갔다는 사실을 나는 곧 잊었다. 어른의 '나중에'란 원래 그런 것이다. 나이브하고 부주의하고 비겁하게도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그러면 강아지"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해가 갈수록 그 강도는 점점 심해져 갔다. 어릴 적 길고양이를 구조해 임시 보호하고 입양 보냈던 기억 때문인지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강력하게 외치며, 유기견 보호소의 SNS 계정들을 팔로우해두고 틈만 나면 들여다보는 게 일이었다. 강아지들의 구조와 임보와 입양 소식을 자매끼리 공유하고, 특히 불쌍하고 눈에 밟히는 어린 강아지가 있으면(당연히 매우 자주 있었다!) 공들여 지켜보며 좋은 집에 입양되어 가기를 기도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좋은 집'의 1순위는 자기 집이었다. 부모와 함께 사는 집. 그렇다. 그 집은 내가 사는 집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철벽을 쳤다. 반려견이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자녀들이 졸라서 입양한 뒤, 누구도 아닌 엄마가 개에 관련된 모든 현실적인 뒷바라지와 돌봄의 책임을 떠맡았다는 사연은 너무도 흔했다. 당장 내 주변에도 그런 중년 여성이 예닐곱 명 이상 있었다. 나는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또한 무엇보다 그럴 만한 시기가 아니었다.

나는 수년 동안 출간을 하지 못하고 있는 소설가였다. 표면적으로는 작업을 쉬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제대로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하다는 자괴감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돌봄 노동도 그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이제 졸업의 고지에 다다른 것도 분명했다. 아이들은 10대였고, 사춘기라는 복병이 있을지언정 어떤 의미에서 1차원적인 돌봄의 손길은 거의 필요 없는 상태였다. 2022년 나는 아주 오랜만에 삶과 작업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중단했던 몇 가지 유의미한 작업을 다시 시작해서 이어가는 중이었고, 무기한 연기했던 출간 약속들을 지킬 수 있다고 조심스레 믿게 되었다.

정말로 어렵게, 오랜 시간에 걸쳐 겨우 만들어놓은 아슬아슬한 균형이었다. 여기에 깃털 하나만 얹는대도 무너질지 모른다. 다시 주저앉아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날이 오고 말았다.

평범한 저녁이었다. 아이들은 책상 앞에 앉기 싫어 소파에서 꾸무럭대고 있었다. 그들은 여느 때처럼 스마트폰을 펼쳐 유기견 보호소 계정을 둘러보기 시작했고, 하필이면 내가 10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어떡해. 형제들 다 입양 갔는데 얘만 남았대."

"날씨 금방 엄청 추워진다는데 이 조그만 애기 어떻게 해."

아이들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뭐에 홀렸던 걸까. 어쩌자고 나는 10센티미터 가까이 다가가 앉았을까.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았을까. 서울에서 아주 먼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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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정이현(소설가)

1972년 서울 출생으로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오늘의 거짓말』『풍선』『작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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