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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미의 혼자 영화관에 갔어] 험난한 21세기 관객의 길 - <아바타: 물의 길>

김소미의 혼자 영화관에 갔어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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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쿠아리움의 관찰자일 때 충분히 즐겁지만, 나비족 가족의 풍경 안에 나의 자리를 찾아야 할 때 헤매고 만다. (2022.12.30)


영화 평론가 김소미가 극장에서 만난 일상의 기술을 소개합니다.
서울을 살아가는 30대로서 체감한 영화 속 삶의 지혜, 격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미래에도 사람들이 영화관에 갈까요?"

극장 상황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작년까지만 해도 영화 기자들은 엇비슷한 질문을 종종 받거나 건넸다. 감염병 시기에 그 효용을 질문 받은 영화-극장의 관계는 멀지 않은 미래에 반드시 극장 환경이 요구되는 궁극의 영화들만 살아남을 지도 모른다는 암울한 전망도 불러 일으켰다. '극장용 영화'의 조건에 관한 일반적인 추측 중 하나는 영화관의 기능을 최상급으로 경험할 수 있는 시각적 볼거리, 실감과 체험이 강조된 시각 효과 중심의 작품에 승산이 있으리란 진단인데, 이것은 익히 충분한 관심과 쟁점을 획득한 <아바타: 물의 길>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동시에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관객들이 한 편의 영화를 보기 전 끼니를 챙기거나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용변을 미리 해결할 정도로 대중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긴 러닝 타임을 꾸렸다. 나는 그것이 좋은 것을 최대한 많이, 그리고 길게 보여주겠다는 과식의 포부가 아니길 바라며, 한반도를 대체로 거뜬히 가로지를 수 있을 만큼 긴 시간의 열차에 탑승하기로 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자기 취향의 성소를 짓고 있다는 점에선 일론 머스크와 비견될 만한 인물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초국적 자본의 무대를 오직 영화로 한정하고 있기에 (전자와 달리) 개척가로서의 집착과 진정성을 인정받는 모양새다. 그는 2012년, 마리아나 해구에서 수심 1만 908m까지 잠수해 단독 잠수로는 당시 최고 기록을 세울 정도로 유별난 심해광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계 데뷔작인 B급 속편 <피라나2> 이후 <어비스>, <타이타닉>, 3D 중편 다큐멘터리 <에이리언 오브 더 딥>, <심해의 영혼들> 등 천착을 거듭하더니, <아바타: 물의 길>에선 오랜 집념의 대상을 오롯이 재창조한다. 일찍이 관객의 기대도 이와 같아서, <아바타>(2009)가 개척한 3D 영화의 원년 이후 13년 만에 나타난 <아바타: 물의 길>이 거의 실감에 가까운 3D 기술의 진보를 보여준다는 점만으로 흠뻑 매료된 이들이 적지 않다.

동시에 일관적으로 이어지는 세간의 혹독한 반응도 뚜렷하다. 기술적 성취는 눈부시지만 이야기가 지루하고 나아가 퇴행적이라는 평가다. 한 영화에서 서로 밀접한 연관을 이루는 두 핵심 요소 —  기술과 서사 — 가 이토록 분열된 가치를 지향하는 경우, 대개는 그 자체로 의도된 허점이자 정체성일 테지만 <아바타: 물의 길>에선 의도가 어떻든 그 이상의 단점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바타: 물의 길>은 전적으로 '보여지는 영화'다.



제이크 설리와 네이티리 가족이 맷케이나 부족의 일원이 되기 위해 수중 생활을 배우는 구간을 독립적인 버라이어티 쇼로 보아도 좋을 만큼. 이 무렵 내겐 막연한 질문이 한 가지 떠올랐다. 시각적 볼거리에 대한 반응에 불과한 이 감흥도 '시네마적' 효용이라 할 수 있을까. 내가 내린 대답은 '그렇다'이다. 덧붙이자면 어떤 영화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초기 영화의 문법과 형태를 규정하는 '어트랙션 영화'의 관점으로 <아바타: 물의 길>을 다시 바라보면 서사는 기술 구현을 위한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는 지위를 갖는다.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1895)은 기차가 돌진하는 단순한 2D 화면만으로 시각적 유희를 선사했고, 최초의 코미디 영화 <물 뿌리는 살수부>(1895)는 자기 얼굴에 물 폭탄을 쏘고 마는 정원사의 모습을 당대 영화가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의 실감 효과라고 믿었다. 이 때 쓰인 최신 기술은 초기 영화 그 자체이다. 이듬해 <벽 철거>라는 작품에선 역재생(영사기를 실제로 거꾸로 돌리는) 기술을 도입해, 허물어졌던 벽이 다시 세워지는 스펙터클을 구현했다. 이야기나 인물의 심리적 동기는 이들 영화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아니며, 바다와 폭포 등 놀라운 자연 풍경은 일찌감치 시네마토그라피의 볼거리로 자리잡았다. 어트랙션의 개념을 구체화한 영화 이론가 톰 거닝은 '영화적 조작(느린 동작, 역 동작, 대체, 다중 노출)을 통해 참신함을 제공하는 속임수와 같은 영화적 성질도 전시용 어트랙션이 될 수 있다'(『어트랙션 시네마: 초기영화, 관객 그리고 아방가르드』)고 썼다. 효과적인 3D 구현을 위해 부분적으로 48프레임 촬영한 <아바타: 물의 길>이 배경 피사체가 자연스럽게 느리게 움직여 48프레임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물 속 환경과 시너지를 낸 점은 동시대 어트랙션 영화의 구체적 물증인 셈이다.

문제는 다시 시간이다. 영화는 시간을 소유할수록 서사를 욕망하게 되어 있다. 예컨대 예술 영화가 원래 느리고 정적인 것이 아니라, 서사적 충동을 합당한 윤리와 형식으로 세공한 영화들에 예술적 가치가 부여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열차의 도착>은 겨우 1분짜리 '영화'다. 이처럼 어트랙션 개념으로 호명되는 영화들은 대개 1906년 이전의 단편 영화들이고, 이후의 영화들은 길이가 길어지면서 현대까지 철저히 서사에 복속되어 왔다. <아바타: 물의 길>이 온전한 어트랙션 영화가 되지 못하고 서사 영화가 된 것은 거대 자본이 투입된 극장용 장편 영화가 되어야 할 태생적 숙명과도 무관하지 않다. 어트랙션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쇼를 채울 이야기가 필요해진다.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 열차는 두 번 도착한다. 어트랙션 영화와 서사 영화가 기계적으로 연결된 형태로.

인물의 내면을 소거하고 스펙터클로의 몰두를 돕는 어트랙션 영화의 태도로 서사를 구축한 결과, 제이크 설리의 신념은 내적인 공명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공허한 구호로 떠돈다. 가족주의와 가부장 정신, 생태적 삶에 대한 표방은 가족이 숲을 떠날 때 남겨진 부족의 안위 또한 영화상에서 함께 증발하는 것에서 그 태도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결국, <아바타: 물의 길>에선 이야기 역시 무대 장치이기에 오직 눈앞에 떠오른 장면들의 총집합 일 뿐, 프레임 너머를 상상해선 안 된다.



덕분에 우리는 아쿠아리움의 관찰자일 때 충분히 즐겁지만, 나비족 가족의 풍경 안에 나의 자리를 찾아야 할 때 헤매고 만다. 요컨대 <아바타: 물의 길>은 성공한 쇼이면서 실패한 환영으로 남은 블록버스터의 (길고 거대한) 퇴행적 사례이다. 이 영화에서 3장 구조는 비유가 아니라 실질적인 기능 면에서 열차처럼 관객을 실어 나른다. 극장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면 일정 시간 새로운 판도라 환경에 적응을 마친 뒤(숲), 몽타주가 가속도를 내면 본격적인 유희를 즐기고(바다). 마지막으로 주제를 완결 짓는 서사적 종착지에 느리게 멈추어 선다(포획과 전투). 재밌는 것은 하나로 연결된 세 개의 열차 칸에 탄 관객들 상당수가 열차의 두 번째 접합 지점에서 심리적으로 중도 하차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바라는 바를 이미 모두 얻었다는 충족감일 수도 있고 최종장을 견디기 힘든 지루함 때문일 수도 있다. 험난한 21세기 관객의 길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1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포박된 툴쿤처럼 붙잡혀 있다가 영화가 놓아주면 서둘러 사라지는 것이다.

승객들이 모두 떠나자 상영관은 금세 텅 비었다. 나는 앞으로 남은 3편의 <아바타> 시리즈에 할애하게 될 내 인생의 10시간을 놓고서, 차라리 하나의 길고 긴 완벽한 어트랙션 열차라면 더 즐거운 마음으로 탑승할 용의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초기 영화를 관람하러 카페나 보드빌 극장을 찾은 도시의 유흥자들처럼 서사적 욕망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자유가 오늘의 관객에게도 필요하다. 제임스 카메론과 <아바타> 프랜차이즈의 일원들이 이 선택지를 고려한다면, 퇴행의 블록버스터는 언젠가 회귀의 블록버스터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가 극장에서 모여야 할 이유인 기술 혁신 역시 어쩌면 그때 더욱 순수한 결정체가 되어 반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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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소미 <씨네21> 기자

보는 사람. 영화를 쓰고 말하는 기자. <씨네21>에서 매주 한 권의 잡지를 엮는 일에 가담 중이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독립 영화잡지 <아노>의 창간 에디터, CGV 아트하우스 큐레이터 등으로 일했다. 영화의 내면과 형식이 만나는 자리를 오래 서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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