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의 미로를 헤매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온기
『기꺼이 헤매는 마음』 임승주 저자 인터뷰
자기방어적 생활이 더없이 안온하다가도, 어느 날 문득 빗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게 『기꺼이 헤매는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고 한 번쯤 느껴 봤을 감정에 대해 조곤조곤 말을 건다. (2022.12.27)
여기, 카페에 가면 메뉴판도 보지 않고 아이스카페라테부터 주문하는 사람이 있다. 『기꺼이 헤매는 마음』의 임승주 작가는 커피 한 잔도 실패하기 싫어서 늘 비슷한 수준의 맛이 나는 아이스카페라테를 기본값으로 정해놓고 지낸다.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해 확실하지 않은 일에는 손을 내밀지 않고, 중간과 평범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다. 그런 자기방어적 생활이 더없이 안온하다가도, 어느 날 문득 빗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게 『기꺼이 헤매는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고 한 번쯤 느껴 봤을 감정에 대해 조곤조곤 말을 건다.
오늘도 아이스카페라테를 마셨나요?
오늘은 생크림이 올라간 커피를 마셨어요. 어제 저녁을 가볍게 먹었더니 아침부터 배가 고파서요. 어딜 가든 아이스카페라테만 시키는 걸 보고 한 지인이 "스티브 잡스가 늘 블랙 터틀넥 티셔츠만 입는 것과 같은 이유냐?" 물은 적 있거든요. 그 질문 이후로 자각했던 것 같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맞더라고요. 커피 한 잔도 실패할까 두려워서 아이스카페라테를 디폴트로 정해놓고 사는 거죠. 물론, 다른 메뉴를 고를 때도 있어요. 그 카페의 시그니처 음료 같은 것. 남들이 맛있다는 건 또 먹어보는 것이 평범성을 유지하는 비결이니까요.
『기꺼이 헤매는 마음』. 제목이 조금 어려운데요. 보통은 헤매는 일을 기꺼워하지 않잖아요?
튀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해하실 텐데요. 중간과 평범이라는 경계 안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지만, 살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날이 있잖아요. 갑자기 아프다든가, 그간의 '힘듦'이 쌓여 눈물이 터진다든가, 반대로 좋은 의미에서 주목받는 일이 생긴다든가,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기도 하죠. 주변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되기도 하고요. 그럴 때 사람들은 허둥지둥 헤매게 되고, 평소보다 크게 널뛰는 감정에 당황하기도 하는데요. 제 경험을 돌아보니 그게 인생의 하이라이트로 남더라고요. 힘들었던 일까지도요.
책을 쓰다 보니 더 여실히 느껴졌어요. 겨우겨우 큰맘 먹고 행한 일들이 나중에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되는지를요. 할까 말까 할 때는 하고,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고 하잖아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자기 계발서 같은데, 이게 결국은 먼 훗날에 이르러서야 '그때 그 경험도 나쁘지 않았어'를 알 수 있는 거라서 조금 어려운 지점이 있더라고요. 어쨌든 시간은 가고, 기억은 반들반들 윤색되는 법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그러니 지금 헤매고 있더라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말라고요.
방송용 글쓰기와 에세이용 글쓰기는 많이 달랐을 것 같아요.
정말 그랬어요. 일단 제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것부터 큰 차이였어요. 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며 살았는데, 제 이야기를 꺼내려니 익숙지가 않더라고요. 방송을 위해 사람들 인터뷰를 하다 보면 그들의 인생이 너무도 빛나서 저의 그림자가 짙고 길어 보이는 날이 많았어요. 자연히 저의 부족한 점을 돌아보게 되고, 그래도 이만큼 사람 구실 할 수 있게 된 게 누구 덕인가도 돌아보고요.
다들 '책 쓰느라 힘들었겠다'라고 하던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리 힘들지 않았어요. '책이 팔릴까?' 걱정만 빼면, 약간 신나기까지 하더라고요. 섭외 걱정 없이, 영상으로 어떻게 구현해낼까 걱정 없이 마구 쓸 수 있으니까요. 방송을 만들 때 새로운 사실 혹은 공감, 둘 중 하나만 있어도 괜찮은 방송이라고 하거든요. 책도 그럴 거라는 믿음으로 썼어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방송 작가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건, 아는 사람의 모르는 이야기'라고 했는데, 저는 그것의 정반대 지점에 있거든요. '모르는 사람의 아는 이야기'. 그렇지만 아는 이야기 속에서 나의 것을 찾아낼 때 그것 또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일과 병행하며 책을 쓰는 것이 어렵진 않았나요?
첫 책이다 보니 책 한 권을 완성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서 원고 마감 기한을 길게 뒀어요. 매주 목요일마다 한 편씩 담당 편집자에게 원고를 보냈죠. 가끔 펑크도 냈고요. 그렇게 1년을 보냈어요. 책을 쓰기 위해서 전년도에 비해 일을 조금 줄였어요. 그래도 불안하더라고요. 벌이가 줄어서가 아니라, 일을 모두 접지 않고 책을 쓴다는 것이 스스로 불손하게 느껴져서요. 좋은 책을 쓰려면 생활의 걱정은 접어두고 책에만 올인해야 하는 건 아닌가, 진정성이 없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요.
그런 마음도 나중엔 욕심인 걸 알겠더라고요. 일을 그만두고 책에 집중한다고 제가 갑자기 예술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일상과 글에 가능한 만큼의 에너지를 배분해가면서 균형을 잘 잡자고 생각했어요. 주변의 여러 작가님들이 그렇게 생활하고 있고요. 글 쓰는 일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닌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까 의연하게 끈질기게 글을 쓰는 수밖에요.
가족과의 시간, 동료와의 대화 같은 일상적 순간부터 인생의 큰 사건이라 할 수 있는 병원 생활, 개명 사건까지 두루 쓰셨는데요. 지금의 작가님을 있게 한 일 하나를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우선, 제가 상당히 방어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커피 한 잔도 실패하기 싫고, 타인의 평가가 두려워서 SNS 게시물도 댓글도 잘 달지 않을 정도니까요. 이렇게 두꺼운 껍질을 가지게 된 이유를 돌아보면 결국, 병원 생활을 꼽아야 할 듯해요. 제 몸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 하나에 매달렸을 때니까요.
제 인생을 인구 구조표처럼 그려보면 표주박형이 될 텐데, 학창 시절 친구들을 만나 확장됐던 세계가, 20대 중반 암을 앓으면서 급속히 좁아졌거든요. 좋게 말하면 깊어진 것이겠고요. 그러다 다시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하며 겨우 넓어지고 있는 중인데, 그때 좁아진 길목은 쉽게 트이지 않는 것 같아요. 내가 행복을 느끼는 지점과 괴로운 지점에 대한 파악이 빨라지고, 그만큼 운신의 폭도 좁아진 것은 확실해요. 다만 이런 삶이 틀렸다거나 부족하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저 달라졌을 뿐이고, 앞으로 또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좋아하는 것이 별로 없다고 하셨는데, 요즘 낙이 있으시다면요?
출간 후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요. 방송 스탭스크롤에 제 이름이 나올 때 엄마나 주변 사람들이 가끔 인증샷을 보내줬는데, 요즘은 책 구매 인증샷을 보내주더라고요. 부담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이 마음은 언제 다 갚나 싶고 그래요. 결국, 남는 건 사람인 것 같아요. 책이 나오기까지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이 추천사를 써준 김란주 작가인데요.
김란주 작가와 저는 이전까지 얼굴 한번 보지 못했지만 함께 아는 사람이 여럿 겹쳐있는 이상한 인연이었어요. 그런 작가님이 싸이월드 시절부터 페이스북까지 제가 남긴 글 조각을 봐왔고, 가끔 위로도 얻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에세이를 써보지 않겠냐고 출판사를 연결해준 거고요. 지난 여름에야 처음 만났는데, 우리 둘이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3시간 넘게 쓴 것 같아요. 작가님은 일단 해보는 스타일, 저는 일단 안 해보는 스타일. E와 I의 치열한 승부였죠. 책이 또 저를 어떤 사람 앞으로 데려다줄지 궁금해요.
어떤 분들이 읽으시면 좋을까요?
분명 밖에서 열심히 살았는데, 집에 들어와 앉아 있으면 울적해지고 생각이 많아지는 분들이요.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재미없고 평범하지?' 하시는 분들도요. 평범함은 그 자체로 안온하다는 의미이고, 정말 그 평범함이 싫다면 선 밖으로 튀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거든요. 책을 보시면서 이 지루함도 언젠가는 행복이 되겠구나 여겨주시고, 미지근한 자신을 미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임승주 1983년생 방송 작가. TV, 라디오, 유튜브, 신문, 잡지에 필요한 글을 쓰며 사람들의 말을 글로 바꾸거나 글을 말로 바꾸는 일을 한다. 평범과 중간을 좋아해, 사람들 사이에 잘 숨어 지내면서도 가끔은 선 밖으로 나가 헤매길 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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