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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 "태초에 다른 이야기도 있었어요"

『고양이는 왜 장화를 신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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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른 이야기를 알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면, 다른 선택을 해서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어요. (2022.12.23)


명작 동화 속에 감춰진 세계사 이야기를 들려줬던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의 후속편이 찾아왔다. 『고양이는 왜 장화를 신었을까』는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반지의 제왕』까지, 『헨젤과 그레텔』『빨간 머리 앤』『제인 에어』『톰 아저씨의 오두막』 등을 경유하며 유럽의 역사를 아우른다. 우리에게 친숙한 고전, 동화, 명작을 다루고 있어 유럽 역사를 잘 모르더라도 쉽게 빠져들 수 있다. 저자는 익숙한 이야기들을 향해 '왜 그럴까?', '정말 그럴까?' 질문을 던짐으로써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해내는 동시에,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다른 이야기를 알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잘살고 있는지 회의가 들 때, 글을 쓰다가 외로워질 때면 좋아하는 역사책을 꺼내 읽는다는 박신영 저자는 숙명여대 국문학과에 입학해 사학을 부전공했다. 직장을 다니며 새벽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던 시절, 껌정드레스라는 닉네임으로 YES블로그 활동을 시작했다. 첫 책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를 출간한 후 전업작가가 되어 『삐딱해도 괜찮아』『이 언니를 보라』『제가 왜 참아야 하죠?』를 썼다.

지난 12월 15일, 카페꼼마 합정점에서 박신영 저자를 만났다.



세상이 변하지 않아도 내가 변하면 되거든요

10년 전에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를 쓰실 때부터 이번 책의 내용을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에 들어갈 내용을 기획하면서 같이 원고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때가 2011년이었어요. 이후에 퇴고를 하고 책이 나온 건 2013년이었고요. 그때 『장화 신은 고양이』의 내용도 쓰기 시작했는데, 뭔가 미흡한 것 같아서 책에 싣지 않고 덮어뒀어요.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를 낸 다음에 계속 공부하고 보강해서 써온 거죠. 이번 책의 마지막 꼭지에 『니벨룽의 노래』가 나오는데, 그것도 첫 책에 실으려고 쓰던 꼭지였거든요. 그런 식으로 기획했던 내용을 다 쓰지 못하고 덮어두었다가 계속 공부하면서 실었고, 새로 기획한 내용이 들어가기도 했고, 그러면서 10년이 걸렸어요. 그동안 계속 원고를 쓴 건 아니고, 공부하고 구상하는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유럽 역사를 시대순으로 정리하셨어요. 독자들을 위한 배려로 읽혔습니다. 

첫 책을 내고 나서 독자 리뷰를 쭉 봤는데, 거의 다 좋은 리뷰였고 큰 응원이 되었어요. 그런데 한 분이 전체를 휘어잡는 힘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굉장히 고맙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음 책은 전체가 연결되게 써야겠다, 대중 역사 에세이지만 역사책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통사식으로 써야겠다' 생각하고 구상했어요. 재밌는 옛날이야기처럼 읽는데 그러다 보면 유럽사 전체가 보이는,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처음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를 기획하실 때부터 3부작으로 만들고 싶으셨다고요. 

작가가 되기 전부터, 저 혼자 '박신영의 명작과 역사 시리즈'를 기획한 거죠.(웃음) 2008년인가부터 YES블로그를 시작했는데, 제 블로그에 '박신영의 명작과 역사' 코너가 있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유럽편, 동양편, 한국편을 생각했었는데요. 첫 책을 쓰면서 제가 구상하고 공부한 내용들 중에 덮어두었던 것들이 있으니까 유럽 심화편으로 쓰자고 생각했어요. 이번 책은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의 후속작이면서 심화편이라고 생각하고 썼죠.

첫 책이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후속편을 쓰는 데 부담이 따랐을 것 같기도 합니다. 

부담은 많았어요. 첫 책이 얼떨결에 사랑을 받았고 외국에도 출간이 됐고, 부담이 있어서 퇴고를 열심히 하게 됐어요. 게다가 '내 역량으로 이 소재나 작품을 다루지 못한다면 덮어두자' 그런 각오가 있었어요. 유물 발굴을 보면, 그 시대의 기준으로 나온 유물을 감당할 수 없으면 파내지 말고 덮어놔야 되거든요. 그 유물을 보존할 기술을 갖게 되면 그때 파내야 돼요. 이번 책을 쓸 때 그런 비슷한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몇몇 이야기는 못 쓰고 그냥 덮어놨고요. 저 혼자 마음속으로 다짐한 건데, 일기일회(一期一會)라고 하잖아요. 제가 작가로서 이 소재를 쓸 수 있는 기회가 한 번 있다고 생각해요. 제대로 못 다뤄서 망쳐버리는 것보다 묻어뒀다가 제 역량이 될 때 쓰자고 생각했고, 그런 마음을 저한테 엄격하게 적용했어요.

지난 10년 동안 『삐딱해도 괜찮아』『이 언니를 보라』『제가 왜 참아야 하죠?』를 쓰시면서 조급함을 느끼지 않으셨을까 생각했습니다. '빨리 첫 책의 후속편을 써야 하는데' 하고요. 그런데 '내 역량이 될 때 쓰자'고 생각하셨으니, 조급하지는 않으셨겠네요. 

역사 내용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사건이나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도 중요하잖아요. 모든 역사 사건에 대한 해석은 기본적으로 나의 역량에 달린 거거든요. 그런 점에서 '내가 다른 사건을 겪고 다른 일을 하면서 나를 성장시켜서 그걸로 다시 쓰자'고 생각했어요. 『제가 왜 참아야 하죠?』는 미투 운동이 일어나면서 출판사 대표님께 제가 겪었던 일을 말씀드리다가 쓰게 된 책인데요. (이전과는 다른) 생뚱맞은 책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책을 쓰면서 제가 굉장히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묻어두었던 소재를 다시 열어봤을 때 약자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볼 수 있었고, 제가 특히 좋아하는 『브레멘 음악대』 같은 작품을 어떻게 다룰지 방향이 더 섰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왜 브레멘으로 가려 했을까」라는 글에서는 어떤 결의 같은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 글은 울면서 썼는데요. 죽을 위기에 닥쳤는데 자기 운명을 개척하러 떠나기도 하고, 그 글의 중간에 '페스트 이후 지주들은 변하지 않았지만 농노들이 변했다'는 내용의 문장이 있어요. 그걸 쓰면서 혼자 좋아했어요.(웃음) 세상이 변하지 않아도 내가 변하면 되거든요. 내가 변하고, 브레멘 음악대의 동물 친구들처럼 내 친구를 찾아가고, 함께 떠나고 움직이고 무언가 하고... 그런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너무 절망하지 말고 친구를 만들고 움직이자는. 그러면서 시스템도 바꾸려고 노력하면 되지만,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잖아요. 일단 내가 변하면, 그런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음악대가 돼서 합을 맞추면, 무언가 변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썼어요.

동물들이 브레멘으로 가지 않은 것도 의미 있어요. '여기'에서 자유를 쟁취했으니 굳이 '그곳'에 갈 필요가 없었던 거잖아요. 

맞아요. 굳이 이상향에 안 가도 돼요. 갈 때는 이상향을 목표로 가는데, 우리끼리 해결됐으면 여기 정착해도 되는 거죠. 너는 왜 끝까지 가지 않았어, 이렇게 성과 위주로 갈 필요가 없죠.

'그곳'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겠죠. '여기'를 '그곳'으로 만들었으니까요. 

그렇죠.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고양이는 왜 '장화'를 신었을까?

서문에 '다른 이야기를 알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쓰셨습니다. 

첫 꼭지가 그리스 신화인데, 거기에서도 '태초에, 다른 이야기도 있었다.'고 썼어요. 『니벨룽의 노래』를 이야기한 마지막 꼭지에서도 '우리는 어떻게 이야기를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물었고요. 제 나름대로 주제를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배치를 해놓은 건데요. 우리는 오직 한 번 살잖아요. 다들 인생 1회차인 거죠. 그럼 무엇으로 내 인생을 시뮬레이션하고 선택하는지 생각해보면, 저는 그게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뉴스건 옛날이야기건 책이건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건, 그런 이야기가 쌓여서 자기한테 익숙하고 편한 쪽으로 선택하게 되거든요. 세계사도 각각의 단계에서 선택한 것의 결과예요. 필연적이지 않죠. 가령 서구 크리스천 백인 남성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도 필연적이지 않고 선택의 결과예요. 성차별이라든가 소수자 차별도 사람들이 자기에게 익숙한 이야기대로 선택하고 말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다른 이야기를 알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면, 다른 선택을 해서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어요.

'비서구권 황인종 여성의 시각'을 유지한다는 이야기도 하셨어요. 첫 책의 서문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말씀하셨는데요. 그런 시각을 계속 인식하고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일이 작가님에게 중요한가요?

네, 저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노력한다고 하지만 저도 이 문화권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러고 있겠죠. 제가 항상 옳고 잘 쓴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저한테도 그런 부분이 있을 테고 그걸 덜어내려고 노력하지만, 또 다른 독자 분들이 리뷰로 지적해 주신다면 그걸 보고 화낼 것이 아니라 '내가 더 공부해서 이걸 떨쳐내야겠구나' 생각할 거예요. 말하자면, 고사리를 오랫동안 물에 담가서 독을 빼는 것처럼, 저도 그런 작업을 해야 되는 거죠.

두 번째 꼭지에는 '포메리움'이라 불렸던 로마인들의 경계선 이야기가 나옵니다. 로마인들이 성벽을 쌓고 그 너머에 있는 사람들에게 편견을 가진 채 배척하고 억압하고 지배했다는 이야기인데요. 그런 일이 역사에서 계속 반복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죠. 마녀와 괴물로 몰아서 배척하고, 유럽인들이 대항해 시대에 유럽 밖으로 나가면서 또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고, 그 역사가 발전되죠. 그런 사고방식을 받아들여서 서구식 근대화를 이루어가려고 하는 일본이나 우리나라 같은 경우도 계속 그렇게 가잖아요. 우리나라가 되게 인종 차별이 심한 나라잖아요. 로마 제국을 이어받은 영국, 영국의 사관을 이어받은 일본, 그런 일본의 사관을 또 우리가 받아들이면서 굉장히 서구 위주적이고 우리보다 GNP가 낮거나 피부색이 진한 사람을 차별하는 게 굉장히 심하거든요. 포메리움이 계속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거예요.

책의 제목이기도 한 「고양이는 왜 장화를 신었을까」라는 글이 실려 있습니다. 고양이는 왜 '장화'를 신었던 걸까요? 

고양이가 달라고 한 장화가 비올 때 신는 장화가 아니라 승마용 부츠였는데, 당시 루이 13세 시절에는 총사들의 패션이 승마용 부츠였어요. 그래서 귀족 집안의 자제들이 말을 안 타도 멋으로 그 부츠를 신고 다녔고요. 그러니까 고양이가 장화를 달라고 하는 것은 '나한테 총사의 자격을 달라, 그럼 너를 위해 활약해서 너를 출세시켜주겠다'라는 의미죠.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욕망, 부르주아가 되어 신분 상승을 이루고 싶은 욕망이 반영된 건가요?

신분 상승이라는 것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내가 현실을 어떻게 움직여보겠다는 거거든요. 신분의 벽, 차별을 없애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거죠. 그런 중세말의 변화를 표현한 거예요. 결국 고양이는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는 부르주아 계급의 비서로 연결되니까요.



『헨젤과 그레텔』의 마녀는 제빵사였다?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에 이어 이번 책에서도 『헨젤과 그레텔』의 마녀 할머니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여성사에 대해서 쓰려면 마녀 이야기를 안 쓸 수가 없죠. 마녀 이야기를 하면 당시의 여성사가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 밖에 길드의 여성 차별, 배제 등 여러 가지를 이야기할 수가 있거든요. 여성사뿐만 아니라 중세 사회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동화이기 때문에 『헨젤과 그레텔』을 골랐어요. 글을 쓰고 소재를 잡기 위해서 일단 의문점을 가진 것의 역사를 다 찾아보는데요.

『헨젤과 그레텔』에서 마녀가 빵 과자로 집을 만들었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빵의 역사와 마법의 역사를 파봤더니, 마녀는 빵을 무서워한다고 나오더라고요. 반죽이 들어가서 빵으로 구워지는 게 크리스트교에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광경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또, 빵은 예수님의 몸이잖아요. 그래서 마녀는 빵을 보고 무서워한다고 생각했어요. 마녀로 고발당한 사람이 마녀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방법 중에 하나가 빵을 먹게 하는 거였어요. 마녀가 빵으로 집을 만들었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이야기더라고요.

책에서 말씀해주신 풍습이 생각나네요. 아픈 아이를 빵 굽는 척 오븐에 넣었다 뺐다고 하셨죠. 유럽인들에게 빵이 그런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네요.

네. 그래서 깜빠뉴 같은 빵을 보면 구운 빵 덩어리 위에 칼로 십자형 흠을 내잖아요. 마녀가 빵 반죽을 망가뜨릴까 봐 십자 표시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헨젤과 그레텔』의 할머니가 마녀라는 것 자체가 그 문화권에서는 이상한 거죠. '(마녀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제빵사인데, 왜 숲속에 혼자 있을까' 그런 걸 생각하다 보면 길드까지 연결되는 거고요. 그렇게 여러 가지로 역사를 파서 연결시켜서 구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어요.

따돌림 당한 이야기도 떠오릅니다. '마녀로 고소당한 이는 반드시 다른 마녀를 고발해야 했기 때문'에 '마녀로 찍힌 여성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위험'했고, 그래서 마녀가 따돌림 받았다는 이야기였죠.

프랑스의 아날학파 쪽을 보면 '망탈리테'라는 걸 되게 중요시해요. 어떤 시대에 굳어진 사람들의 사고방식, 의식 구조라는 뜻인데요. 중세인들의 말도 안 되는 망탈리테가 지금까지 전해져요. 예를 들면 중세 말에 페스트가 유행할 때 사람들이 기도하고 채찍질 치면서 막 회개하잖아요. 우리가 보면 되게 어리석은데, 그때는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거예요. 재난이 닥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인간이 되게 무력해지거든요. 자기가 알 수 있는 데에서, 평생 들어온 이야기의 패턴대로 움직이게 돼요. '아, 내가 죄를 지었구나, 참회하면 해결되겠지'하면서 그렇게 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지금도 어떤 사회적 재난이 닥쳤을 때 악플 같은 것이나 사람들이 막 하는 말을 들어보면 딱 그 망탈리테예요.

그런가요?

이태원 참사에 '그러게 왜 놀러 가서 죽었대?' 이런 말을 하잖아요. 왜 그러겠어요? '나는 놀러 가지 않고 부지런히 일했으니까 그런 일을 안 겪을 거야'라는 망탈리테거든요. 중세인과 똑같아요. 그렇게 남을 비난하고 약자를 욕하는 걸 애초에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는 이런 새로운 이야기의 해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 그런 걸 많이 느꼈어요. 『제가 왜 참아야 하죠?』에서 저의 직장 성폭력 이야기를 썼잖아요. 분명히 제 편이고 제 친구고 저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인데 '그러게 왜 그 남자의 차를 탔어' 이런 식으로 제 앞에서 친구가 피해자인 저를 탓하더라고요. 

왜 주위의 여자들이 피해자 탓을 할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열심히 역사책 보고 생각을 해봤더니 (그들은) 이런 일이 너무 무서운 거예요. 성폭력이. 그러니까 '나만 똑바로 처신하면 그런 일을 안 겪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피해자 욕을 하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짐작해요. 내가 무섭기 때문에 '나는 저 사람들이 했던 짓을 안 하면 되겠지'하고 저 사람들을 욕하게 돼요. 자기도 약자이면서 강자의 입장에 이입해서 약자를 공격해요. 왜냐하면 강자의 편에 서고 싶으니까. 그래서 태초에 다른 역사도 있었고 다른 이야기도 있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제인 에어』의 로체스터는 아내를 다락방에 가두는데요. 여기에는 '크레올(식민지 현지에서 태어난 백인과 혼혈인 이르는 말)'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이 있죠? 

크레올에 대한 차별도 있고, 무엇보다 1870년 '기혼여성재산법'이 생기기 전에는 그런 일이 너무 많았죠.

아내의 재산을 착복할 목적으로 정신병이 있는 것처럼 몰았던 건가요? 

그런 재산이 없는 사람들도 그랬어요. 찰스 디킨스의 경우처럼 아내가 싫증나서 정신 병원에 보내는 경우도 있었고요.

'여성, 그것도 가난하고 못생긴 여성의 권리를 말하는 명작 『제인 에어』에서조차 영국 출신이 아닌 여성은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쓰셨어요. 

제가 '황인종 동양인 여성의 시각'으로 보겠다고 한 게 바로 그런 의미죠. 저만 똑똑하고 사람들이 생각이 없다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항상 주인공에 감정 이입하기 때문에 제인의 성공을 기뻐하거든요. 제인이 행복할 때 광녀가 웃는 소리 들으면 무섭고, 그러면 제인의 편을 들게 되잖아요. 그때 그 구도에서 살짝 벗어나서 보는 훈련을 하는 게 중요하죠.



아테나 여신이 되지 않으려면

코넌 도일의 『공포의 계곡』에 대해 쓰신 글(「공포의 계곡에서 실제 일어난 일」)을 읽으면 한 명의 개인으로서 코넌 도일이 갖고 있는 한계를 알게 되고, 우리가 그것을 비판 없이 흡수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걸 깨닫게 돼요. 

『공포의 계곡』 이야기는 꼭 쓰고 싶었어요. 지금도 추리 소설 하면 무조건 코넌 도일을 이야기하고 추리 과정이 재밌다고 쫓아가지만, 그걸 읽으면서 영국 귀족 남성의 제국주의 시각을 그대로 답습하게 되잖아요. 가령, 모리아티 교수는 왜 아일랜드 출신인지 묻지 않고요. 특히, 『공포의 계곡』 같은 경우는 (책의) 흐름상 미국사가 한 번 들어가야 했고, 이왕이면 남북 전쟁 이후에 또 어떤 차별의 문제가 생겼는지를 다루고 싶었는데, 마침 그 이야기가 들어가서 배치도 맞게 잘 됐어요.

『공포의 계곡』의 2부는 실제 사건인 '몰리 매과이어스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데, 사실을 왜곡했다고요.

선악 구조를 다 바꿔버렸죠.

코넌 도일이 갖고 있는 시선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에요. 

전반적으로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우리나라까지 이어지는 시선이기는 해요. 서부권 엘리트 남성들의 시선이죠. 많이 공부하고 읽다 보면 계속 거기에 젖어 들게 돼요. 별로 교육의 기회가 없었던 시대의 여성들이 공부를 하고 책을 많이 읽고, 차별의 벽을 깨고 승진하고 갈수록 그 사회의 남성 승자들의 사고방식이나 시선을 습득하게 되죠. 아테나 여신이 되는 거죠.

그리스 신화 이야기에서 말씀하셨던 아테나 여신이요? 

네. 아버지, 가부장의 이익을 지키는 여신이 지혜의 여신이잖아요. 그 외에는 지혜가 아닌 거죠. 남자를 위한 지혜만 지혜의 여신인 거예요. 아테나 여신을 보면 다 남성 영웅과 같이 있어요. 여자 옆에 있지는 않아요. 오디세우스랑 같이 있고 아킬레우스랑 같이 있고 그러잖아요. 참 무서운 게 성차별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젠더나 계급이나, 하층이나 더 약자에 속해 있는 '나'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나의 원래 젠더와 계층, 계급에서 멀어지고 위쪽의 사고방식을 닮아가게 돼요. 제우스가 잘못했지만 여자들을 벌하는 아테나 여신처럼 되는 거죠. 되게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곧 크리스마스입니다. 책에도 크리스마스에 대한 글이 실려 있는데요. 그 중 하나가 「크리스마스 선물은 왜 산타클로스가 줄까」예요. 

중학교 때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었는데요. 제제의 집안이 가난하잖아요. 그래서 제재와 동생 루이스가 크리스마스 공짜 선물을 못 받아요. 제제가 울면서 '아기 예수는 우리를 미워해'라고 말하거든요. 그걸 읽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선물을 못 받았는데 왜 아기 예수를 미워할까? 선물은 산타클로스가 주는 거 아닌가?' 생각했죠. 알고 봤더니 카톨릭권 남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아기 예수가 주는 거였어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브라질 소설이잖아요. 그래서 더 파봤더니 유럽 북부에서는 선물을 산타클로스가 주고, 남부 유럽은 아기 예수가 주더라고요. '선물은 부모가 주는 건데 왜 누구를 내세워서 거짓말을 할까?' 싶어서 파봤더니 「크리스마스 선물은 왜 산타클로스가 줄까」에 쓴 것처럼 이야기가 연결되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제가 오랫동안 갖고 있던 궁금증들이 연결됐어요.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의 또 다른 후속작인 동양편은 집필하고 계신가요? 

지금 400매 정도 있어요. 거친 초고 상태예요. 공부를 하다 보면 같이 다 연결이 되는데, 이번 책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를 하면서 아편 전쟁을 다뤘거든요. 영국 제국주의를 이야기하면서. 그러면 아편 전쟁 이야기를 영국 편에서 쓰지만 중국사도 봐야 되잖아요. 그때 공부해 놓은 중국사는 따로 메모해놓고 그런 식이 되기 때문에 동양편 원고는 지금 많이 있는 상태예요. 동양편은 진짜 10년 안 걸려요.(웃음) 그리고 동양편은 편하게 흐름 위주로 구성할 거라 조금 더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과 『고양이는 왜 장화를 신었을까』 그리고 동양편으로 시리즈가 끝날까요? 

동양편 다음에 4부 한국편을 쓸 계획이에요. 5부는 여성사만 모아서 쓸 생각이고요. 책에 안 쓴 이야기 많거든요.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시리즈라고 해야 되나요.(웃음) 그 시리즈가 5권이 될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치기 전에 하고 싶은 말씀 없으세요?  

제가 YES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YES의 친구들이나 페이스북의 친구들한테 굉장히 고마워해요. 그 친구들은 친구이면서 저의 독자잖아요. 같이 여러 가지를 겪고, 성장하고, 나의 독자가 되어주고, 그 부분이 굉장히 고마워요. 참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아무리 좋은 책을 내도 알려지지 않고 발견되지 않으면 그대로 묻히게 되는데, 저는 그래도 YES블로그도 하고 페이스북도 하면서 초반기에 발굴해 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 이 길을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독자인데 인생의 친구인 거죠. 무슨 일 생기면 같이 분노도 하고 시위도 나가고 그런 친구들이기 때문에. 이번 책이 나오기까지 10년의 세월이 지나갔는데, 그 사이에 한국 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었잖아요. 세월호 참사도 있었고 미투 운동도 있었고 얼마 전에는 이태원 참사도 있었고, 또 저는 그 사이 어머님도 돌아가셨고... 그래도 계속 글을 쓰고, 친구들이 응원을 해주고, 또 그 친구들이 각자 여러 일을 하면서 저와 같이 성장을 해줬고, 그런 점이 굉장히 고맙고 좋아요.



고양이는 왜 장화를 신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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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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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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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27편의 명작에 질문을 던지고 흔히 볼 수 없었던 역사의 뒷이야기를 탐색하는 낯선 세계사. 박신영 작가의 전작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의 후속편으로, 내용은 한층 더 깊어지고 풍부해졌다. 그리스신화, 『신통기』, 『변신 이야기』 같은 고전으로 시작하여, 『백설공주』, 『헨젤과 그레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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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왜 장화를 신었을까

<박신영> 저13,860원(0% + 5%)

익숙한 27편의 명작에 질문을 던지고 흔히 볼 수 없었던 역사의 뒷이야기를 탐색하는 낯선 세계사. 박신영 작가의 전작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의 후속편으로, 내용은 한층 더 깊어지고 풍부해졌다. 그리스신화, 『신통기』, 『변신 이야기』 같은 고전으로 시작하여, 『백설공주』, 『헨젤과 그레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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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잘못된 세상에 맞선 위대한 순간들

지식 교양 구독 채널 '오터레터' 발행인 박상현이 쓴 책. 최근까지도 인류는 성별, 민족, 인종에 따른 차별이 당연한 세상에서 살았다. 차별과 혐오를 지탱한 건 무지였다. 편견에 맞서 세상을 바꾼 사람도 있었다. 『친애하는 슐츠 씨』는 그 위대한 장면을 소개한다.

서로의 목격자가 되어, 살아가는 나날들

안희연 시인의 4년 만의 신작 시집. 이 세계에 관한 애정과 사랑을 잃지 않고, 어둠에서 빛 쪽으로 계속 걸어가는 시인의 발걸음이 시 곳곳에서 돋보인다. 이별과 죽음을 겪을지라도 기어코 사랑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시들을 다 읽고 나면, “비로소 시작되는 긴 이야기”가 우리에게 도래할 것이다.

천선란 세계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

소설가 천선란의 첫 단독 에세이. 작가를 SF 세계로 이끌어준 만화 〈디지몬 어드벤처〉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디지몬'을 통해 모험에 설레고 용기에 위로받으며, 상상의 힘을 얻었던 어린 시절에 작별 인사를 건네는 작가. 지금의 천선란 세계를 만든 불씨가 되어준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책.

챗봇 시대 필수 가이드

마우스 클릭만으로 AI 서비스를 이용하는 본격 AI 시대. 일상부터 업무까지 폭넓게 사용되는 챗봇을 다룬다. GPT 챗봇의 최신 동향부터 내게 맞는 맞춤형 챗봇의 기획부터 활용까지. 다양한 사용법과 실습 예제를 통해 누구나 쉽게 활용하는 챗봇 네이티브 시대의 필수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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