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올해가 가기 전, 이 책만큼은 읽어 주세요!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19회)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2022.12.22)
불현듯(오은) : 올해의 마지막 방송이에요. 그래서 이번 주제를 '올해가 가기 전, 이 책만큼은 읽어 주세요'로 정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올해의 책' 같은 것들을 많이 꼽기도 하지만요. 그냥 한 해를 돌아보면서 마지막 책으로, 12월이 가기 전에 이 책을 읽으면 참 좋겠다는 마음을 담은 책들을 소개하려고 해요.
고명재 저 | 문학동네
오랜만에 시집을 가지고 왔습니다. 제가 모든 작가님들의 첫 책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첫 책에는 작가의 상상력과 가능성이 가득한 것 같거든요. 오늘 가지고 온 책도 고명재 시인의 첫 번째 시집입니다. 어느덧 '문학동네시인선 184번'이라고 적혀 있네요.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가 38번이었는데 말이에요.(웃음)
이 시집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올렸던 시인이 박준 시인이에요. 그런데 차이가 있다면 박준 시인은 지나간 사랑, 예전에 진하게 사랑했지만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사랑의 애달픔에 대한 이야기를 잘하는 시인이라면 고명재 시인은 현재 진행형의 사랑, 그리고 미래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시인이라고 느꼈어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한하게 애정을 발사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집이더라고요.
시인의 말부터 읽어드릴게요. 시인의 말이 참 좋습니다.
어느 여름날, 나를 키우던 아픈 사람이 앞머리를 쓸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온 세상이 멸하고 다 무너져내려도 풀 한 포기 서 있으면 있는 거란다. 있는 거란다. 사랑과 마음과 진리의 열차가 변치 않고 그대로 있는 거란다.
그 '있음'을 잊지 않고 기록한 시집이고요. 장면을 상상하게 만들고, 한국어 문장으로 이렇게나 멋진 표현들을 길어 올린 시집이에요. 아마도 첫 시집이어서 해보고 싶은 것들을 더 해본 느낌이 나는 것도 같아요. 아주 멋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령 「미더덕은 아름다움을 더 달라는 것처럼」 같은 시를 만드는 시인이거든요. 언어를 자유자재로 저글링하는 시인이라는 생각 때문에 더욱더 흥미롭게 읽었어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 그 사람이 눈여겨보는 것을 먼저 꺼내는 일은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사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부지런함 같은데요. 고명재 시인이야말로 그 부지런함을 정말 실천하는 시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어의 말랑말랑한 질감을 느끼고 싶으신 분들, 사랑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으신 분들, 그리고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계신 분들이라면 이 시집을 분명히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김미월, 김이설, 백은선, 안미옥, 이근화, 조혜은 저 | 다람
제가 공저로 『돌봄과 작업』이라는 책을 썼는데요. 그 책을 감사하게도 그냥 님이 <삼자대책>에서 소개해주셨죠. 오늘 소개할 책을 알게 된 건 한 편의 기사 때문이었어요. 『돌봄과 작업』과 이 책이 같이 소개된 기사가 두 건 있었는데요. <동아일보> 기사의 제목이 이거였어요. '엄마로 산다는 건 천국을 업고 지옥 불을 건너는 것.' 저는 이 제목을 보고 제목을 어떻게 이렇게 멋있게 뽑았지, 대단하다, 생각했어요. 저도 엄마지만 진짜 이 감정이 맞거든요. 그래서 기사를 읽는데 이 문장이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에 백은선 시인이 쓰신 글에서 따온 문장이었어요. 저는 이 문장을 읽고 울림이 정말 컸는데요. 엄마라면 이 문장이 비약이라거나 과장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어요. 그래서 이 책을 바로 주문하고 읽었죠.
첫 글이 백은선 시인님의 글입니다. 백은선 시인님의 산문집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를 읽고 이 시인님은 시도 좋지만 에세이를 꼭 쓰셔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읽었었는데요. 이번 책에서 역시 백은선 시인님의 글을 밑줄을 그으면서 읽을 정도로 좋았어요. 제가 꽂힌 문장이 '엄마로 산다는 건 천국을 업고 지옥 불을 건너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이 문장은 백은선 시인님이 친한 언니와 밥을 먹다가 엄마로 사는 건 어떤 것인지 질문을 받고 바로 나온 말이었다고 해요. 생각해서 쓴 문장이 아니고 그냥 대화 속에서 이 문장이 나온 거라는 게 너무 놀랍기도 하고 공감도 됐어요.
그 밖에 다른 작가님들의 글도 물론 너무 좋아요. 정말 재미있고 솔직하면서도 공감이 가는 글들이 많았고요. 이 책은 굳이 '엄마'라는 타이틀을 빼고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는데 엄마인 작가들이 글을 쓸 때 얼마나 투쟁하면서 쓸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됐어요. 무엇보다 저는 이 책을 보면서 호빵이랑 핫초코가 생각났어요. 힘든 이야기들이 있지만 저는 또 그 글들이 따뜻하고 달콤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만큼 글이 너무 쓰고 싶고 좋은 거잖아요. 그 마음을 너무 응원하고 싶고요. 이 작가님들의 글을 어디에서나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저 | 휴머니스트
이 책은 <경향신문>에 연재되었던 동명의 기획 기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고요. 경향신문 젠더기획팀이 2021년 10월부터 '명함은 없지만 일 좀 해본 언니들' 이야기를 찾아다녔고, 그들의 일과 삶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거예요. 저는 이 책을 지난 5월쯤 먼저 읽었는데요. 최근에 정식 출간이 되었더라고요. 올해가 가기 전에 이 책이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서 기쁜 마음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프롤로그에 기획의 변이 나와요. 여성들이 해온 다양한 일이 경제 활동으로 인정을 받지 못해왔고, 가사 노동이 법정 노동으로 인정받은 것이 2021년 5월의 일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씁니다. '우리는 평생 일해온 여성들에게 명함을 찾아주고 싶었다'고요. 그래서 이 책은 각 챕터의 시작 부분에 진짜로 명함을 그렸어요.
그러니까 분명히 명함에 적힐 만한 직업을 다양하게 거쳐온 이 많은 중년 여성들이 이를테면 '주부'와 같은 하나의 이름으로, 심지어는 집에서 노는 사람이라고 불려온 역사들이 있었던 것이고요. 그것이 명백하게 잘못된 역사라는 점을 짚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나쁜 일이 파도처럼 밀려드니까 너무 힘들었지만 도망가지 않았어요.
여기 등장하는 분들의 굳센 마음이 너무나 감명 깊고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한 편의 엄청난 문학 작품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이었고요. 이 책에는 농부, 광부, 사업가, 가사 노동자 등의 다양한 직업인들이 나오는데요. 하나같이 그 일을 하는 동시에 가사 노동과 집안 관리, 육아나 시부모 부양까지 다중의 노동을 해오셨거든요. 그런데도 평생 명함이 없었던 거죠. '명함'으로 상징되는 사회적인 존중 자체가 남성들의 노동에 비해서 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계속해서 하게 됐어요. 이 책은 여성의 노동을 정확한 이름으로 불러주는 책이고요. 그래서 이 기록이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 읽으면 굳센 의지, 단단한 마음 같은 게 생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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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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